제36화. 세계 밖의 세계(5)
빈민가의 사람들이 ‘유령’을 보거나, 그 비슷한 현상에 시달리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했다.
그건 단순히 죽은 이가 꿈에 나타나는 것과는 달랐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유령이 관여하기 시작하는 집은 단순히 불운을 겪는 것 이상의 불행에 빠진다고 했다.
“……일가족이 이유도 모르고 죽기도 했다지요.”
“역병 같은 건 아니었을까요, 소티스 님? 의사가 없는 곳이다 보니, 병에 걸려 위중해지면 손쓸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넛집에도 이유 모르고 죽은 이가 있다고 했잖아요. 꿈에 아이가 자꾸 나온다면서요.”
“흠…….”
사람들의 한탄에는 버릴 것이 없었다. 그동안 멘데즈에서 시행했던 빈민 구제 사업이 비효율적이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메리골드 공작 가문에서 수도 근처의 땅을 사들이고 성을 짓겠다며 사람들을 무단으로 차출하고 착취했다는 불편한 진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새삼 실망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알게 모르게 죽어 가는 사람들의 뒤에는 항상 억울한 죽음과 의문스러운 사고,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뒤따랐다.
“우리는 장례를 치를 돈조차도 없어요. 그저 죽은 이들이 그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 감사할 뿐이지요. 후미진 곳에 버리거나 묻어 두면 쥐와 벌레, 들개 무리가 뜯어 먹을 테니까요. 아마 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소티스는 제게 빵을 구걸해 갔던 아이가 넋두리처럼 한 말을 곱씹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장례까지 치르지 못한다면…… 그런 영혼은 어떻게 되나요?”
레먼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대로 된 안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원망과 집념에 휩싸여 이곳을 떠돌겠지요. 그런 식으로 영혼이 상하기 시작하면, 되돌릴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특히 죽은 이의 육신은 제대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묻거나, 적어도 태우기라도 해야지요.”
그는 짐 속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며 덧붙였다.
“완전히 탈선한 영혼을 되돌리는 마법은 복잡하고 어려워요. 베아툼에서도 일부 대마법사만 관련된 마법을 쓸 수 있고요.”
소티스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일부 대마법사라면…….”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녀의 질문에 숨은 뜻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제 스승님 말입니다. 저도 배웠지만, 아직 능숙하지는 못해요. 저는 그 하위의 마법을 쓰는 편입니다. 길을 잃은 영혼들과 짧게 소통하고, 그들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해 스스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지요.”
“그렇군요.”
“부디 제가 이 마법서에 적힌 마법을 쓰지 않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여기에는 부서진 영혼을 소멸시키는 마법들이 적혀 있거든요.”
소티스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수첩을 뒤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죽은 이들을 후미진 곳에 버리거나 묻어 둔다고 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묘지는 아닌 곳에 모아 두는 듯했다.
“그럼 영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시신을 찾아 제대로 장례를 치르면 되는 거겠죠?”
“그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조금요.”
그녀는 레먼이 볼 수 있도록 수첩을 내밀며 주의 깊게 보았던 부분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소티스와 레먼은 그간 들었던 빈민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 민둥산이 보이세요? 제가 어렸을 때 큰불이 나서 야산이 전부 다 타는 일이 있었지요. 그 이후로 저곳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으스스한 소문의 중심지거든요. 밤마다 누군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그래. 몇 채쯤 있었던 집도 죄 흉가가 되어 버렸어. 누가 저런 곳에서 살겠어?”
“누구긴. 관리자는 살잖소?”
“아, 묘지기 말이지. 하지만 그자도…….”
“그래, 그것 봐. 어차피 그런 곳에 살면 다 미치고 만다고!”
민둥산, 통곡하는 소리, 관리자, 그리고 미치고 만다는 이야기.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의 한 단어를 눈짓했다.
묘지기.
그를 찾는다면, 어쩌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야산에 사는 유일한 이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최근 그도 이상한 일을 겪는다고 했다.
“언니, 묘지기를 만나러 가요?”
길에 한참 서서 두런두런 떠들었던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거지 아이들이 다가와 눈을 빛냈다.
“마법사님도 가요?”
“그 산에?”
“왜 가요? 빈민가 사람들도 거긴 가지 않아요. 여기서 더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엄마가 언니는 귀한 집 아가씨랬는데, 왜 저택에 돌아가지 않고 우리 같은 거지들과 함께 지내요?”
“묘지기 아저씨야말로 정말 비천한 사람이랬어요.”
소티스는 허리를 굽히며 아이들에게 웃어 보였다.
“묘지기 아저씨가 왜 비천하니?”
“그야, 산 사람과 만나지 못하고 내내 죽은 사람들과 있잖아요. 전염병이 돌아서 수도 바깥 사람들이 줄지어 죽으면, 힘센 사람들이 모여서 수레에 시체를 싣고 야산 근처에 두고 가요. 그럼 묘지기가 알아서 하거든요.”
아이들은 소티스가 친절하게 대해 주자 신이 나서는 실컷 떠들었다.
“난 가 봤는데! 물론 멀리서 보고 도망쳐 나온 거지만. 관을 짜다 남은 널빤지로 집을 지어서 살고 있었어요. 등은 이렇게 굽어 있고, 지팡이 같은 걸로 시체를 휙휙 뒤집는데…….”
“원래도 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요 며칠은 정말 미쳤다는 소문도 있어요. 언니, 언니는 가지 마세요. 큰일 날지도 몰라요.”
“맞아. 우린 못 도와줘요. 유령 같은 게 씌었으면 어떡해요?”
그녀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리고 누군가는 나서서 해결해야지. 그래야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도 편히 쉬시지 않겠니?”
“그걸 왜 언니가 해요?”
“맞아. 황제 폐하도 안 하고, 잘난 귀족들도 안 하는 일을요. 예전에 엄마가 그러셨어요. 황제나 귀족들은 저희가 다 죽으면 오히려 거리가 깨끗해서 좋다고 할 거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굶어 죽든, 병 걸려 죽든 아무 관심도 없고…….”
“아니야!”
소티스가 아이들의 말을 끊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그녀의 시혜적인 마음이 학습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해도.
어떤 생명이든 귀중하며, 죽어 마땅한 것은 없다. 그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적어도 소티스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후가 아닌 소티스 메리골드도 치워져야 마땅한 존재에 불과할 테니까.
그녀는 아이들에게 충동적으로 말했다.
“사, 사실 나는 황후 폐하의 심부름으로 이곳에 온 사람이란다. 황후 폐하께서는 수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셨어. 뒤숭숭한 소문이 도는 것도 알고 계셨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누나가 황후 폐하께서 보낸 사람이라고요?”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했다.
“거짓말! 쫓겨난 황후가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무슨 관심이 있다고!”
“맞아! 좋은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걸요. 우리가 다 굶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살피러 오지 않았으니까! 정말 우리를 위해서 일한 게 맞아요?”
“권력 싸움이겠지, 뭐! 귀족들은 매일 그런 걸 하잖아요?”
아이들의 말은 소티스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심지어 틀린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하는 내내 심장이 아프도록 쿵쿵거렸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에드먼드의 곁에서 떨어질 수 없어서, 몸이 약해서……. 수많은 이유 뒤에 숨어 사람들의 삶을 직접 살피지 않은 자신의 알량한 선의가 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생각하자 숨이 턱 막혔다.
“그렇지 않아.”
레먼이 가만히 나서며 소티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황후 폐하께서는 몸이 약하셨지만,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셨단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여 쉽게 죽거나 다치기를 바라지 않았고, 길 잃은 영혼들이 남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를 바라지도 않으셨어.”
“우리가 그런 걸 어떻게 믿어요?”
“맞아!”
“어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분은 다른 귀족들 같았니? 아니면 좀 다른 것 같니?”
아이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꼬질꼬질하고 작은 손에는, 소티스가 나눠 주었던 빵이 들려 있었다.
그 빵은 루비 귀걸이를 판 돈으로 산 물건이었다. 그녀가 황태자비가 되었을 무렵 에드먼드가 마지못해 사 주었던 첫 선물. 진심 한 조각 담겨 있지 않았던 보석은 그녀의 진심을 담고 더욱 값진 물건으로 변했다.
소티스는 두 손을 모아 잡고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뇨.”
“다른 귀족들과 달리 우리를 더럽다고 하지도 않았고…… 빵도 줬고요.”
“맞아. 그것도 매일매일 줬잖아요. 귀족들이 우리한테 이렇게 큰돈을 쓴 적은 없었는데.”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요. 죽은 사람들도 걱정해 주고.”
“그러고 보니까 다르네.”
“누나. 정말 황후 폐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있어요?”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설령 제 삶이 버거워 다 챙기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고국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염려하던 마음은 진심이라고 말해도 될까.
“그럼.”
그러나 소티스가 무어라 대답하기 전,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던 레먼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는 손을 뒤로 내밀어 소티스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다정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황후 폐하께서는 아주 좋은 분이시란다. 너희들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상냥하고 따뜻한 분이시지.”
소티스는 제 손을 감싼 그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가슴속에 몽글몽글하고 간지러운 기분이 차오르는 듯했다.
“해가 곧 지겠구나. 날이 흐리니, 너희들은 비를 피할 만한 곳으로 돌아가렴. 나는 아가씨와 함께 야산에 다녀와야 한단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졌다. 남은 빵을 소중하게 끌어안은 채였다.
소티스는 그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내내 말없이 레먼의 손을 잡고만 있었다.
“이제 갈까요? 영혼은 보통 해가 진 뒤에 움직이니, 오늘 밤 묘지기를 만나 보는 게 좋습니다.”
“길이 어두울 텐데요…….”
“마법으로 앞을 밝혀 드릴게요. 괜찮을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냥하고 따뜻한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