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세계 밖의 세계(1)
덜컹.
무거운 바퀴가 돌부리에 걸렸나, 싶은 소음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외쳤다.
“쓸모없는 것!”
둔중한 타격음에 소티스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저 한마디 외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무슨 상황을 뜻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싫을 만큼 정확하고 생생하게.
“‘메리골드’를 위해 뭐라도 해 보란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나아지는 게 없어? 네게 매달린 선생이 몇이고, 거기에 쓴 돈이 대체 얼만지는 아는 거냐!”
오늘도 메리골드 공작은 차녀 셰릴에게 악다구니를 퍼붓고 있었다. 황실 귀족 회의에서 은근히 멸시라도 당한 날이면 그 패악이 평소의 곱절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듯했다.
공작의 모욕적인 말 뒤로 손찌검이 이어졌다. 셰릴이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화병이 깨지는 소리도 울렸다. 공작은 값비싼 물건을 내다 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철썩, 뺨을 때린 그가 지긋지긋하다는 말투로 외쳤다.
“어쩌다 이런 것을 낳았는지!”
소티스는 가슴께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게 향한 말이 아닌데도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셰릴의 마음은 오죽 쓰리고 아플까.
나가서 막고 싶었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은 없지만, 아버지에게 언성 높여 맞서고 싶었다.
이 조그만 여자애한테 맞을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아버지. 이렇게 때려도 좋을 만큼 잘못한 일이나 있었나요?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셰릴은 이제 겨우 열 살이에요. 남의 사탕을 탐내거나 도둑질해 본 적도 없는, 그냥 열 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대꾸조차도 하지 못할 어린아이.
소티스는 방을 나섰다. 오늘이야말로 아버지를 막아서야 했다. 수십 번도 더 이어지던 그 매질을, 폭언을, 모진 행동을 한 번만이라도 막아야만 했다.
그러나.
“안 된다.”
메리골드 공작 부인이 소티스의 침실 앞을 막아섰다.
“네 아버지가 저렇게 열을 내시는데, 어디 겁도 없이 나선단 말이니. 여기서 기다리렴, 소티스.”
“어머니.”
소티스가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그때조차도 셰릴은 아버지에게 맞고 있었다.
그건 훈육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화풀이에 가까운 모진 구타였다.
“동생이 맞고 있어요.”
“그래.”
공작 부인이 건조하게 말했다.
“그러니 너라도 조심하라는 거다. 소티스, 널 위해서야.”
그녀의 어머니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너는 황태자비가 될 아이란다. 몸에 흉터 같은 게 남으면 곤란해.”
“…….”
소티스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어머니의 우울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저택의 서쪽 회랑에 줄지어 선 초상화 속 얼굴들과 꼭 닮아 있었다. 역대 공작들처럼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은, 어머니를 꼭 낡은 그림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빛만큼은 달랐다. 보랏빛 눈동자는 매정할 정도로 깐깐하게 소티스를 훑고 있었다. 마치 상품의 가치를 재고 따지는 듯한 시선에 그녀는 그만 오싹해지고 말았다.
“저는…….”
광택 없는 눈동자에 깃든 것은, 광증에 가까운 열의였다.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듯한 마음.
“셰릴을 돕고 싶어요, 어머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란다. 지금 나서면 그 애가 더 쓸모없어 보일 뿐이야.”
왜요? 소티스는 따지고 싶었다.
그럼, 저 지독한 시간을 홀로 참아 낸 아이에게는 무슨 ‘쓸모’가 생기나요?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느꼈다.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동생은 비명을 참으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시간이 멈춰 버린다면 좋았을 텐데.
“너 같은 건 없는 게 나아!”
그 말에 울컥한 소티스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순간, 그 짧은 찰나에 소티스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꿈이구나.
이건 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십오 년도 더 전에 일어났고, 이미 다 지나가 소티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잠들었던 꿈.
소티스는 내내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 보았다. 조그마한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하게도 나 있었으나, 신기하게도 통증은 조금도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건 꿈이고, 그녀가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원하는 대로 하는 것.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녀가 내키는 대로, 오직 그녀만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
“셰릴!”
그녀는 어떤 고민도 없이 방을 나섰다. 흐릿하게 보이는 어머니를 단호하게 밀쳐 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렇게 우악스럽게 굴어 본 적이 없어 심장이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쿵쾅거렸다.
그 감각을 무시한 소티스가 얼른 달려 나가 바닥에 주저앉은 셰릴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제 동생을 온몸으로 덮듯이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미안해.”
“흑…….”
“미안해, 셰릴, 한 번도 이러지 못해서.”
너무도 비겁한 변명이라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꺼내 본 적도 없었지만.
무서웠다. 이 저택이 소티스에게는 세상의 전부와도 같아서, 차마 저택의 규율을 깨고 저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약해진 마음이 그녀를 비겁하게 하고, 작아지게 하고, 도망치게 했다.
“난 언니가 미워…….”
셰릴은 울먹이며 소티스를 꼬집었다. 힘없는 어린애가 꼬집은 팔이 얼얼하고 아팠다.
“응, 미안해.”
진작에 이렇게 지켜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랬더라면 셰릴은 소티스가 없을 때 더 호되게 혼났을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는 기억했겠지. 이 차가운 저택에 제 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끝없는 절망으로 떨어지는 일을 막아 주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소티스는 품 안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그건 너무나도 작고 힘없는 소리라서,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황태자비가 되어 황성으로 거처를 옮긴 뒤로는 셰릴과 대화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그건 여동생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건 어린 소티스였다. 동시에 셰릴이기도 했다.
기실 그 꿈에서 울던 게 둘 중 누구였는지 구분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건 그저 과거의 파편일 뿐이었고, 소티스가 꺼내지 않은 어떤 과거에서 울고 있던 건 셰릴이 아니라 그녀였을 때도 많았으니까.
결국 두 사람은 같았다. 쓸모에 집착하고 타인에 의해 쉽게 재단되거나 모욕당하는 서글픔을, 자매는 너무 오래도록 느꼈다.
“…….”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품에 가득 끌어안은 작은 몸의 들썩임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흔들림은 마차가 덜컹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짙은 적막이 그녀의 영혼을 온전히 뒤덮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소티스 님.”
다정한 부름에 소티스가 눈을 천천히 떴다.
“괜찮으세요?”
사실 괜찮지 않았다. 눈앞이 뿌옇게 흐렸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으며 속은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불쾌한 기억에 시달린 심장이 고단함을 호소했고, 배 안쪽이 쿡쿡 찔리는 듯한 통증도 있었다.
그러나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레먼에게 무작정 앓는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했나요?”
“네, 방금 마차를 세웠습니다.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려, 잠드신 김에 조금 더 기다릴 참이었어요.”
수도 외곽을 따라 마차가 조금 돌아서 갔던 탓에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든 게 새삼스레 조금 부끄러워졌다.
“괜찮아요. 어차피 악몽을 꾸고 있었으니, 더 잤다면 오히려 피곤했을 거예요.”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수도의 빈민가로군요.”
“네, 소티스 님. 도착했습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레먼의 질문에 소티스가 다짐하듯이 말했다.
“그래야죠.”
그녀는 레먼의 손을 잡고 마차 밖으로 나왔다.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세계로의 첫걸음이었다.
***
소티스 메리골드는 제 스물여덟 해 남짓한 삶이 얼마나 엄선된 것들로만 구성되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건 대단한 노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교훈은 아니었다. 그저 눈으로 보고 피부로 곧장 실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곱 살 난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 던져졌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사람들은 쉴 시간도 없이 급히 걷거나, 혹은 반대로 유령처럼 느리게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말랐으며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길을 헤매는 어린아이들과 병든 들개는 발목이 앙상했고, 그늘진 곳에는 쥐와 벌레가 들끓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내일부터입니다, 소티스 님. 여관을 찾아보았는데…… 그나마 깨끗한 곳으로 골랐지만, 소티스 님께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레먼이 말했던 것은 가감 없는 현실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좁은 방에는 딱딱해 보이는 침대와 탁자, 그리고 낡은 서랍장이 겨우 들어 있을 뿐이었다. 침구는 낡았고 곰팡이가 핀 나무 바닥은 밟을 때마다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저녁이라고 나온 것은 퍽퍽해진 빵과 고기가 몇 점 들지 않은 스튜였다. 밋밋하다 못해 묽디묽은 맛이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레먼이 한 시간도 넘게 발품을 팔아야 겨우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소티스는 조그마한 방에 앉아 자신과 마주쳤던 이들이 보낸 적의 어린 시선을 떠올렸다. 그들은 부유해 보이는 두 사람을 특히 경계했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시선은 두려울 정도로 적나라했다.
방으로 들어오기 전, 레먼은 그녀에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불러 달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차마 그런 게 생기더라도 부를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그녀는 겪어 본 적 없는 이 모든 것이, 길거리를 나다니던 그 사람들에겐 단 한 순간도 당연한 적 없는 사치였을 텐데도. 감히 불평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소티스는 겸허해졌다.
그녀는 불편하고 딱딱한, 퀴퀴한 냄새마저 나는 침대에 몸을 누였다.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서늘함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치맛자락에 고개를 묻었다. 불편해서 도저히 잘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잠은 금방 쏟아졌다.
괜찮아야지. 소티스는 가물거리는 의식 사이로 그렇게 생각했다. 괜찮아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어려운 외출이었다. 그녀는 적어도 세상을 바꾸거나, 그녀 자신이 바뀔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