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2)화 (3/121)

제2화. 황후 소티스 (2)

레먼 페리윙클은 처음 몇 초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건 단순히 영혼을 직접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부의 작은 왕국, 베아툼의 대제사장 레먼은 영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일전에도 이런 식으로 사람의 영혼을 본 적이 있었다.

정말로 놀랄 만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마법사님?”

메리골드 공작이 조심스럽게 레먼을 불렀다. 레먼이 허공을 응시한 채로 잠자코 있자 불안한 모양이었다.

레먼은 어색하게 웃으며 소티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영혼을 보는 일이 익숙하다지만, 산 자의 영혼이 육신을 나와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흔한 일도 아니거니와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창가에 걸터앉은 황후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천천히 가로저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얇은 입매가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티스는 조용히 애원하고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친부인 메리골드 공작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영혼이 육신을 떠나 나와 있다는 사실도, 그 영혼이 말을 걸었다는 사실도 숨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먼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병약하신 분께서 머무르시기에는 방이 조금 찹니다. 창문을 절반만 닫아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지 않습니까.”

“아아, 그걸 살피고 계셨습니까. 살뜰하고 다정하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이따 나가는 길에 시녀들에게 그리 말해 두겠습니다. 저는 또…….”

공작이 초조하고 불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딸아이의 영혼이 그곳에 나와 있기라도 한 줄 알고 가슴을 졸였지 뭡니까. 바보 같은 발상이지만 말입니다, 마법사님. 이렇게 황후 폐하께서 희미하게나마 숨을 쉬고 계시는데, 어찌 영혼이 몸을 버리고 나온다고요.”

“……하하.”

레먼이 어색하게 웃자 창가에 앉아 머리카락을 느릿느릿하게 매만지던 소티스도 쓰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되신 지 한 달이 되었다고 하셨지요. 어떤 의사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고요.”

“그렇습니다. 멘데즈 황국에서 이름 좀 날린 의사는 모두 이 방에 발을 들여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들 그저 허약해진 것 외에 어떤 이상도 없다고 하더군요.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그렇게 속을 끓이며 보낸 한 달. 소티스는 창가에 앉아 그들이 무의미한 담론을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소티스 메리골드 멘데즈가 눈을 뜨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영혼이 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으니까.

오래도록 육신을 떠나 있던 황후의 영혼은 그 너머의 풍경이 비칠 정도로 반투명해져 있었다. 무릎을 모아 앉고 그 위에 뺨을 가만히 댄 그녀의 주변으로 연보랏빛 나비들이 유약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소티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해서 꿈결처럼 들릴 정도였다. 초조하고 절망스러워 보이는 공작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괜찮을 리가 있을까. 그녀의 부모는 매일매일 속을 끓이고, 그녀가 돌보지 않은 황성의 살림이 허술해지며 멘데즈 황국의 사람들은 어질고 현명했던 황후가 다시 일어나 그들을 살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든 마음을 소티스가 모르지도 않을 텐데.

왜 그녀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나.

“공작님.”

레먼은 공작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시선 끝에 눈을 감은 채 숨을 느리게 내쉬는 황후의 육신이 담겼다.

“황후 폐하를 조용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영혼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니, 폐하를 홀로 뵙고 싶군요.”

“그건…….”

공작이 흔쾌히 수락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다. 망설이는 내내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레먼은 메리골드 공작을 위로하듯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영혼과 생명의 신께 맹세코, 소티스 황후 폐하를 욕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폐하의 영혼에 집중하여 살피고 싶을 뿐입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너무 염려치 마시고, 시녀를 불러 아침저녁으로는 방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살펴 달라 청해 주시지요.”

“제가 이리 걱정이 많습니다, 마법사님. 그럼 저는 마법사님만 믿겠습니다.”

의심을 거둔 공작이 방에서 물러났다. 공작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를 부르더니 황후의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이불을 두꺼운 것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창문도 절대 절반 이상을 열어서는 안 된다. 꽃이 다 피거든 그때는 그리해도 좋다. 알겠느냐?”

“예, 공작님.”

“마법사님께서 황후 폐하를 살피고 계시니 혹여라도 방해하지 않도록 하거라. 다른 이들이 이 복도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뜻이다.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아무도! 특히 그 핀인지 팬인지 하는 망할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 똑똑히 알아들었나?”

“명을 받들겠습니다.”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던 공작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멀어졌다.

그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레먼은 손님용 의자를 아예 창가를 향하게 돌렸다. 그는 그 옆에 반듯하게 서서 한 손을 가슴께에 얹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묻기 전에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저는 남부의 작은 왕국, 베아툼 출신의 레먼 페리윙클입니다. 영혼과 생명을 관장하는 페리윙클 마탑의 주인이자 베아툼의 대제사장직을 맡고 있지요.”

소티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그가 격식과 예절을 잊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든 듯했다.

“저는 망자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지고 있으며, 죽은 이의 넋이 세상을 헤매지 않고 신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물론 마탑에 있을 때보다, 길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 대륙을 돌아다닐 때가 더 많기는 하지만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소티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다면, 마법사님. 저도 당신이 인도해야 할 길 잃은 영혼인가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소티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빛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박였다.

레먼이 곤란하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이어 말했다.

“원칙적으로 영혼은 죽은 이에게서 떨어져 나온 넋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눈을 뜨지 않으실 뿐,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지요.”

[문제,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이 죽어 그 심장이 멈추면,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영혼이 나아갈 길이 열립니다. 하지만 폐하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고, 본래대로라면 영혼이 그 안에 있어야 하니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일종의 탈선인 것이지요. 이대로 계시다가 몸이 점점 쇠약하여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길을 찾지 못하고 영혼이 통째로 소멸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레먼은 그 일이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인 일인지 강조하기 위해 또렷한 말투로 덧붙였다.

“신에게 돌아갈 수도, 안식을 찾으실 수도, 그리하여 다음 생으로 건너가실 수도 없게 돼요.”

그러나 소티스는 레먼의 예상과는 달리 놀라거나 충격받지 않았다. 그저 여상히 웃으며 흰 다리를 살짝 내리고, 바닥에 닿지 않는 발끝을 움직여 작은 원을 그릴 뿐이었다.

[그렇군요.]

“이건 그저 그렇군요, 하고 끝나실 문제가 아닙니다. 황후 폐하. 이대로 폐하께서 사라지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잘 알겠어요, 레먼.]

큰소리를 낼 수 없던 레먼이 그녀를 조그맣게 다그치듯이 불렀다.

“폐하!”

[사라진다는 말이 그렇게 두렵지 않아서 그래요.]

창가에서 내려온 소티스가 사뿐사뿐 걸어서 침대 머리맡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마치 깃털 하나가 내려앉은 것처럼 침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티스는 잠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 위로 가볍게 드리워진 보랏빛 머리카락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레먼을 바라보았다.

연한 푸른색 눈동자는 꼭 눈물을 모아 굳힌 것처럼 슬프게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루하루 죽어 가는 제 모습을 보아도 그리 무섭지 않아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제게 얼마나 길고 지루했는지, 마법사님께서는 절대로 모르실 거예요. 저는 차라리 이 방황이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걸요.]

“……그래도, 폐하께서는 소티스 황국의 하나뿐인 황후시잖아요.”

[명예 없는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던가요.]

“사람들이 어질고 다정한 폐하를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수만 명의 국민 중 누구도 저를 보호하거나 돕지는 못한답니다.]

“공작께서도 폐하를…….”

[마법사님.]

소티스는 사뭇 간절한 음성으로 말하는 레먼을 부드럽게 저지했다.

[저는 이제 너무 지쳤답니다. 이제 모든 게 지겨워요. 어떤 것도 이겨 내고 싶지 않고, 숨 쉬는 것조차도 답답하고 힘겨워요. 모두 포기하고 싶어요. 이대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게 제게는 유일한 희망일 거예요. 그것만이 저를 구해 줄 수 있는 운명처럼 느껴진다면, 제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꾸짖으실 건가요?]

“……제가 어찌 폐하께 감히 그럴 수 있겠어요.”

[너무나도 힘든데 포기할 자신이 없어서, 늘 소리 없이 사라지기만을 바랐지요.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녹아들어서 그대로 없어질 수만 있다면, 제가 목숨만큼 무겁게 끌어안고 있는 그 고민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았어요.]

낮게 읊조리던 소티스가 작게 웃었다.

[마법사님. 쓸모가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얼마나 공허한지 아세요? 이 죽음조차도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상처가 얼마나 뾰족하고 아픈지 아세요?]

“저는…….”

레먼 페리윙클이 천천히 대답했다.

“몰라요. 감히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낱낱이 일러 주신다고 해도 말씀하신 것의 절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솔직하게 대답해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음을 다 안다고 해도, 어쩌면 믿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저는…….”

이걸 뭐라고 불러야 옳을까.

충동? 오만? 동정? 전부 틀렸거나, 혹은 전부 옳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외의 무언가일지도 모를 일이다.

“폐하가 느끼는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요.”

레먼은 제 목소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간절하게 나와서 조금 놀랐다.

“폐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지셨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슬픈지 말씀해 달라고 감히 청한다면 실례일까요.”

자신의 머리맡에 앉은 소티스는 레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레먼 페리윙클.

부드러워 보이는 다갈색 머리카락은 길게 길러 하나로 느슨하게 묶었다.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한 미남은 아니었지만, 단정하면서도 따뜻한 생김새였다. 다정한 미소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입술과 온화하지만 어딘가 슬퍼 보이는 눈은 반듯하고 올곧은 느낌마저도 주었다.

처음 보는 이 같은데, 왜 이리 익숙한 느낌이 들까.

소티스의 시선이 레먼의 눈동자에 가 닿았다. 호박색으로 기이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지나칠 정도로 깊고 묘한 색을 지니고 있어서, 사뭇 비인간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영혼을 보는 눈.

한 달 동안 고요 속에 숨어 있던 자신을 찾아낸, 페리윙클 탑의 주인.

그가 자신을 응시한 채로 묻고 있었다.

“소티스 폐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참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의 누가 묻더라도 답하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소티스는 어느새 입을 열어 그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하고 있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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