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 0화 (1/16)

Prologue.

‘이번에는 다를 거야.’

눈을 뜰 때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모래시계를 뒤엎듯 시간은 되돌아가고, 나는 다시 한번 잘못을 되돌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시작 지점에서 이번에는 필시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마치 주문처럼.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날 선택해 줄 거라 믿고 노력했다니.

다섯 번이나 시간을 되돌리고 나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나는 근본부터 글러 먹은 인간이었다.

애초에 대용품으로 살아갔던 존재가 ‘진짜’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모두 헛된 짓일 뿐이었다.

“……으.”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치아가 몇 개 없어서 허전했다.

나는 아래위 치아가 제대로 붙어 있는 곳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있는 힘껏 깨물었다.

한두 번 깨물어서는 원하는 만큼 피가 나오지 않았다. 거죽을 벗겨 낼 듯이 손가락을 여러 번 물어뜯었다.

차라리 손가락이 잘렸으면 했다. 그렇다면 피가 많이 나올 테니까.

혀가 잘린 터라 뭉툭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짐승의 것과 비슷한 신음이었다.

내가 듣기에도 기괴한 그 소리는 손가락을 깨물 때마다 원치 않아도 흘러나왔다.

고통에 무뎌진 육신이라고 하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인상을 와락 찡그리고서는 소리를 죽이려고 노력했다.

창살 밖에 있는 간수들이 소리를 듣고 이상함을 눈치챈다면 두 손마저 못 쓰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입 안에 피비린내가 퍼졌다.

황급히 그것을 뱉어 낸 나는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아도 완벽하게 그려 낼 수 있는 문양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모든 것을 되돌려야 했다.

없었던 일처럼.

또다시.

피가 멎었을 때쯤에 다시 손가락을 깨물었다.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이 도저히 못 쓰겠다 싶을 때는 다른 손가락을 하나씩 희생했다.

그마저도 부족하여 팔을 물어뜯었다.

날카로운 도구가 있었다면 훨씬 쉬웠겠지만 갇혀 있는 입장이었다.

처형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죄수의 손에 별다른 도구가 있을 리 없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작은 항상 똑같았다.

이 제국의 유일한 신이자 드래곤인 황제의 하나뿐인 반려가 죽고, 반려를 잃은 황제는 미쳐 버렸다.

제정신이 아니게 된 그의 앞에 나는 죽은 이와 똑같은 모습을 한 채 내던져져야 했다.

그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당시 나는 몰랐으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이익을 셈하고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나를 입양한 어머니를 제외하고서는 다들 내게 많은 희망을 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죽은 자의 행세를 하는 것뿐이니 눈속임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이보다 더 나아질 것 없다고 체념했고, 누군가는 혹시 모를 가능성에 기댔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의 죽음을 바랐다.

그렇게 수많은 기대 속에서 나는 반려의 대용품으로서 그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진짜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첫 번째 삶은 무지했다.

비록 그가 나를 나 자체로 봐 주지 않더라도 올곧은 사랑에 도취되어 있었다.

죽은 사람은 결국 죽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받을 사랑을 내가 대신 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진짜 반려가 돌아오고, 내 삶은 망가졌다.

두 번째 삶은 그가 ‘나’를 알길 바랐다.

가짜 반려로서가 아닌 진짜 내 존재를 드러내려 했다.

그리고 그날이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그가 원한 건 죽은 자의 대용품이지 나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삶은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기에 사랑해 주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철저히 진짜 반려를 따라 하면서 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그에게 도움이 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날 돌아보지 않았다.

네 번째 삶 또한 세 번째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부족하여 내게 뒤돌아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욱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재능을 갖든 진짜가 돌아오면 내 삶은 끝났다.

그리고 다섯 번째 삶이 되었을 때, 살아 돌아온 진짜를 원망했다.

차라리 그녀가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그녀는 돌아왔고, 내 삶은 끝났다.

그녀를 원망하고, 증오하고, 갖은 간계를 썼다.

그 탓에 이번 삶의 마지막은 다른 삶보다 유독 혹독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이 발악한 최후였다.

손톱이 뽑혔다.

그녀의 뺨을 할퀸 기다란 손톱이었다.

혀가 잘렸다.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한 혀였다.

두 눈을 잃었다.

그녀를 노려본 눈이었다.

등에는 무수히 많은 채찍 자국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내 육체 자체가 죄악을 짊어지고 있었다.

내가 하지 않았던 일까지 죄가 되어서 목을 졸라 왔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악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수많은 죄를 짊어진 나는 처형 날짜를 기다리며 마치 살아 있는 채로 매장당한 것처럼 지하 감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날 찾지 않았다.

다들 차라리 내가 죽기만을 바랐다.

가장 처참한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다섯 번이나 노력한 끝에 깨달았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한들 그들은 날 바라봐 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이 뚝 멈췄다.

무의식적으로 그리던 문양이 완성되었음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다를 거야.’

더는 그들에게 매달리지 않을 테니까.

성치 않은 손으로 그 무엇보다 붉은 흔적을 더듬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릿해졌다.

지난 삶처럼 누군가 내 손을 잡아 주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아, 끝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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