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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114화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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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이보세요, 고양이 씨? 둘만 좋아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다 쉽고 편하게 해결이 되지!

내 이런 복잡한 마음은 딱 한 마디의 되물음으로 표현되었다.

“네?”

― 다른 사람이 널 어떻게 보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싸가지 없는 놈만 너를 너로 보면 되지.

고양이의 말은 조금 구체적이 되었다. 물론 나로서는 영문을 모를 말이었다.

고양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한 차례 흘낏거렸다.

― 너도 마찬가지고.

“저도 마찬가지라뇨?”

― 너도 그 싸가지 없는 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고.

그건 뜬금없이 무슨 소리람?

내가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치자 고양이는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 물론 혼자 감당하기에는 외롭고 힘들고 버거운 문제지. 인간은 혼자서는 못 살아가는,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거든. 내 쪽을 물려받은 왕실의 아이들은 대부분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하던데.

“…….”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나야 이렇게 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투덜거리는 정도지만…….

정말 평생을 이러고 살아가야 한다면, 서서히 미쳐가지 않을까.

날 추앙하는 사람들에게 도취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나야 원래 세계도 좁았고, 날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언니도 있긴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미묘한 결핍까지 언니가 채워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새삼스럽게도 릴의 그 별명이 참, 여러 몫을 해냈구나 싶었다. 릴은 자신을 감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하지만, 그 별명 덕에 사람들이 그를 좀 친근하게 여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친근하다기보다는 신성한 사람이 아닌 감당 못 할 망종으로 여긴 게 아닐까.

― 근데 어쨌든, 결론적으로 너희는 둘이잖아?

이어지는 말에 나는 한 차례 눈을 깜빡였다. 고양이의 얼굴이 새침하게 물들었다.

― 네가 그렇게 말하는 ‘남’에 그 싸가지 없는 놈도 포함되거든. 네가 자꾸 신경 쓰는 그 ‘남’이 네 생각을 알아주고 공감해줄 수 있다는 거야.

“남이라고요…….”

대꾸하던 나는 무심코 생각했다.

‘그러게.’

릴과 나는 원래는 남남이구나.

릴을 완벽한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아득하기만 했다. 오펠에서의 그날 이후 릴은 남이지만 남이 아니었다. 나와 보다 가까운, 마치 한 몸 같은 누군가였지.

단순히 부부가 된 것을 넘어서, 유일무이한 인생의 동반자라고 해야 할까? 나와 같은 길에 서서, 같은 이정표를 보고 걸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 그게 릴이었다.

― 나는 이시스의 안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시스의 유일무이한 이해자로 남을 수 있었거든. 하지만 너희는 다르지. 너희는 도리어 남남이기 때문에 완전무결한 서로의 이해자가 되어줄 수 있어.

순간 운명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느끼한 말에 온몸에 닭살이 쫙 돋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야, 내가 왜 저런 생각을 하는 거람?

― 내가 볼 때는 다른 사람들이 널 이그드라실이라고 부르든 말든, 그건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아, 물론 신경은 써도 되지. 네가 이시스의 힘을 물려받은 건 사실이거든.

고양이는 새침하게도 꼬리를 흔들었다. 이어 마치 사람이 턱을 괴는 것처럼, 앞발로 자신의 턱을 긁었다.

…누구에게 얘기하면 결단코 믿지 못할 모습이었다.

고양이의 황금빛 눈이 반짝였다.

― 그럼 여기서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닐까?

“제가요? 뭘요?”

― 프레이르 사람인 너는 널 재림한 이그드라실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그냥 너 자신?

“…….”

나는 잠시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야 했다. 결국 내 안에서 내가 나이기만 한다면 된다는 거 아닌가.

…묘한, 정말 오묘한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비 오던 날, 그냥 나이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순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재림한 이그드라실이 아니니까. 신화 속의 위대한 신도, 또 다른 이그드라실도 아닌 그냥 나였을 뿐이다.

맨날 반응이 재미있다며 놀림이나 당하고, 단 음식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인간 하나.

남들이 내 눈앞에서 절을 올리건, 무릎을 땅바닥에 붙이건, 날 어떻게 대하든 간에 말이다.

이그드라실에 꽃을 피운 이후, 내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던 의문. 그것에 대한 해답을 이제야 찾은 듯했다.

고양이의 저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면 참 간단한 문제였다. 굳이 나까지 휩쓸려서 쓸데없는 고민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던.

이제 나는 더 이상 저 문제로 그 어떤 고민을 하지 않아도 것 같았다.

* * *

평화로운 시간은 흘러만 갔다. 그렇게 릴이 열심히 준비해준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신부라면 누구나 완벽한 결혼식을 꿈꿀 것이다.

화려한 식장, 내 새로운 앞날을 축복해주는 하객,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식장을 걸어가는 나.

손을 꼽아가며 기다린 내 결혼식은 완벽했다.

아니, 정정하자. 하나만 빼고 완벽했다.

화려한 색색들이 수국으로 장식한 식장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숨을 들이켜면 풍겨오는 향기로운 꽃향기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하단에 다이아몬드를 자잘하게 박아 넣은 웨딩드레스도 눈이 돌아가게 화려했다. 내 머리 위에 놓인 티아라도, 귀걸이도, 팔찌도, 반지도. 내게 주렁주렁 매달린 장신구 모두 값비싼 다이아몬드였다. 원래의 내가 구경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때보다 완벽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평생 이날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왕족인 릴이 ‘적당히 구색 맞추는 정도’라고 말했던 건 내 상상보다 더더욱 많은 투자가 들어갔다.

하지만 딱 하나.

…잔뜩 얼어붙은 하객들이 이곳이 결혼식장인지, 장례식장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 것만 빼면 말이다.

‘휴.’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기다리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건 내가 기대하던 것과 다르잖아!

“왜 한숨이야, 이 좋은 날에.”

내 시중을 들던 언니가 당연하게도 타박을 놓았다. 나는 애틋한 시선으로 언니를 올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언니 결혼식은 안 이랬잖아…….”

내가 기억하던 언니의 결혼식은 완벽한 축제였다. 언니와 형부의 결합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다들 즐겁고 흥이 나서 그 시간을 즐겼다.

당연히 그런 걸 꿈꾸지, 누가 이런 장례식 같은 걸 기대했겠냐고!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어머, 리니. 그러면 있지.”

언니는 슬쩍, 상석에서 술을 들이켜고 있는 말리크를 곁눈질했다. 말리카는 그런 말리크를 곁에서 지켜보며 온화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다. 아무래도 자식이 생겼다는 소식은 말리크에게도 숨길 수 없던 기쁨인 모양이다. 릴의 결혼식이라 저런 얼굴인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다른 하객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기가 저 두 사람에게는 존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리크와 말리카의 곁에서 슬슬 고개를 조아렸다.

“카림도, 말리크도, 말리카도 계신데 퍽이나 활기차겠다? 저분들 눈치 보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런 거야?”

“응. 왕족의 결혼식은 원래 경건하다고.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쇠심줄인 게 아니란다?”

언니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 말에는 반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내가 쇠심줄이야?”

나만큼 소심한 사람이 어디 있어! 내 반박에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내 흑역사를 언급했다.

“말리크 가발을 벗길 정도면 뭐……. 너만큼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도 없지.”

“…….”

그날의 일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듯했다.

나…… 이런 날까지 언니한테 놀림받아야 하는 거야?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

입술을 비죽 내밀고 언니를 노려볼 때였다.

“프리드린.”

오늘 이날의 또 다른 주인공, 릴이 자연스레 우리 앞에 나타났다. 릴이 반가웠던 나는 자리에서 화들짝 일어섰다.

검은색 전통복을 걸친 그를 보자 왜인지 모르게 처음 봤던 날이 떠올랐다.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완벽한 겉모습은 정말 흠잡을 곳이 없었다. 가뜩이나 평소보다 더 열심히 꾸며놓았기 때문에 넋 놓고 바라보는 게 가능했다.

“자.”

릴은 반쯤 넋이 나간 내게 분홍빛 리시안셔스를 엮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이는 건 덤이었다.

“미리 줬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네?”

“다른 거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부케를 깜빡 잊고 있었네.”

그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려야 했다.

……아니, 그나마 오다 주웠다가 아닌 게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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