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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110화 (110/115)

110

나와 릴에게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릴에게 감겨들었지만, 릴은 처음부터 내게 흥미를 가질 요소가 있었다는 점이 그랬다.

이그드라실의 드리아스 말대로라면 그 ‘느낀다’는 거, 나는 모를 감각을 사랑으로 착각할 수 있을 법했다.

‘이건 아니잖아!’

나는 그 길로 울며불며 언니에게 뛰어가야 했다. 내게는 지금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언니밖에 없었다.

“언니,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리니?”

눈물 콧물 범벅인 내 얼굴을 본 언니는 순간적으로 당황을 삼켰다.

오늘도 귀족 모임에 가려고 했던 듯 화려하게 차려입은 언니는 갑작스런 내 등장에 저택에 주저앉아야 했다.

당연히 짜증이 난 언니가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마지못해 차를 내주며 한마디 했다.

“그게 뭐가 됐든 말이 되는 일이야.”

“무슨 일인지 들어보지도 않았잖아!”

“네가 할 말이 뻔하지.”

“그래?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말해봐!”

내 반박에 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독심술을 할 수 없던 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상을 쓴 언니가 관자놀이를 압박했다. 이윽고 못 이기는 척 되물었다.

“그래, 그래. 그래서 뭐가?”

“뭐긴 뭐야!”

일단 아득바득 소리부터 지르고 본 나는 잠시 고민해야 했다. 지금 문제는 내가 직면한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릴은 원래 어디에 있든 간에 나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그런데 우리의 신께서는 그 ‘느껴진다’는 게 애정이라고 말했다고?

결론적으로 돌고 돌아서 이제는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잖아! 덕분에 릴의 태도가 돌변한 거고!

…너무 복잡한 소리였다. 무엇보다 저놈의 느껴진다는 건 나조차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니까.

덕분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다.

“남, 남편이 이상하단 말이야!”

“새삼스럽게 왜 그래? 원래 이상하시잖아.”

“지금 그게 언니가 할 말이야?”

누가 누구보고 이상하다고 하는 거야! 언니도 만만치 않게 특이한 사람이라고!

아,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릴의…… 저 묘한 이상함을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별수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내뱉었다.

“신혼인데 그냥 자는데?”

아마 이 상황을 저 한마디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몸의 대화도 마음의 대화도 없고, 릴은 등청과 퇴청만 반복하고……. 어라, 지금 우리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거 아닌가?

다만 언니는 마시던 차를 그대로 뿜어냈다. 허공에 일곱 빛깔 무지개가 그려졌다.

언니는 다소 당혹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마디 얹는 건 덤이었다.

“얘가 이제 부끄러움을 모르네? 어머머, 재미없게.”

“아니!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덤벼대더니! 사람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이상한 거 아니야?”

그렇지, 그랬던 때가 있었지. 달콤하고 행복했던, 지나치게 짧았던 순간을 떠올린 나는 괴롭게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애, 애정이 식었어. 아니, 애초에 애정이 없던 거야.”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뒷얘기였다. 가짜 애정이었다니! 그것도 그놈의 이그드라실 때문에!

내가 정말…… 그 이그드라실 때문에 무슨 삶을 살고 있는 거람? 억울해서 접시 물에 콱 코를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언니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얘가 왜 이래? 벌써 권태기니?”

“엉엉, 좋아하게 만들고선. 나빠……. 미워…….”

“이런 걸 보면 권태기는 아닌 거 같은데…….”

우리의 상태에 대해 진단을 내리던 언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어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진지하게 물어왔다.

“리니, 제발 똑바로 얘기해볼래?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잖아.”

“몰라, 엉엉……. 이건 아니야…….”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우느라 바빠서 제대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관자놀이를 짚은 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연애 한 번 못 해본 애가 처음 연애를 하면……. 어휴, 정말 유난이라니까.”

“그, 그러는 언니는!”

“나? 나 뭐?”

“언니는 연애 많이 해봤어?”

내가 알기로 언니도 형부가 처음이었다. 처음 간 사교 모임에서 만나서, 아주 진한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간 케이스! 첫 연애가 끝이었다고!

언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드물게 담담하고 진지하게 내뱉었다.

“난 너처럼 일희일비해서 울고불고 난리는 안 치잖니?”

……아니, 저기요?

늘 누누이 말하지만, 치사하게 팩트로 때리지 말란 말입니다!

“그리고 프리드린.”

양손을 허리에 얹은 언니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 엄하게도 내뱉었다.

“부부싸움 했다고 쪼르르 쫓아와서 이르면 안 돼. 이제 그런 건 알아서 해결해야지. 내가 언제까지나 널 챙겨줄 수는 없어.”

“부부싸움 한 거 아니야.”

“응, 다들 아니라고 하던데 사실은 한바탕하고 너처럼 그러더라. 이 언니가 그런 꼴 하루 이틀 본 줄 아니?”

내 소심한 반박은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은 언니는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리는 건 덤이었다.

……우씨. 언니한테 뭘 바란 내가 바보 멍청이다.

당연히도 내 양 뺨이 둥글게 부풀었다. 언니는 심드렁하게 조언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리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잖아.”

“아니…….”

“인정할 건 인정하렴. 싸운 건 창피한 게 아냐. 도리어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말을 늘어놓는 언니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언니도 형부랑 싸워?”

“아니?”

언니는 딱 잘라 부정했다. 어딘지 모르게 수상해 보이는 태도에…… 나는 뺨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속삭였다.

“인정할 건 인정하라면서?”

“인정할 일이 없었는데 뭘 어떻게 인정해? 아직까지는 싸울 일이 없었는데? 이유를 만들어서까지 싸워야 해?”

“……전혀 안 믿기는데.”

“클리드는 누구처럼 속 썩이지 않는다고.”

언니의 당당한 말에 나는 근처를 재빠르게 살펴보며 속삭여야 했다. 왜 저렇게 위험천만한 발언을 하고 그래!

“언니, 그거 불경이야.”

“불경이라니. 지금까지 네가 내 속을 좀 썩였니?”

아니…… 지금 어디서 모른 척이야! 누구를 지적하는지 지나가는 강아지도 알아들었겠다!

“그 말이 아니었잖아!”

“어머, 이상한 오해하지 마렴. 프리드린, 난 너와 다르게 돌 맞으면 죽는 개구리란다?”

“오해가 아니라는 걸 언니가 알고 내가 알아.”

내 반박에 언니는 두 손에 깍지를 끼며 대꾸했다.

“이거 봐.”

“응?”

“싸웠다고 쪼르르 쫓아와 놓고, 그래도 남편이라고 편들잖아.”

……아니, 이게 편드는 겁니까?

할 말이 없던 내가 어버버거리자 언니는 깍지 낀 손에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 거야.”

“…….”

왜 자꾸 싸웠다…… 로 결론이 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 말을 상실한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내가 입으로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유야무야 저녁이 다 되었을 때, 릴이 이곳에 나타났다. 아마 언니가 소식을 전한 듯 릴을 본 언니는 인사 대신 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데려가세요. 달래느라 진 뺐어요.”

“언니가 언제 날 달랬다고! 놀리기만 했잖아!”

“고마워.”

내 대답을 뒤로한 채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릴이 나를 바라보았다. 릴의 푸른 눈이 차갑게 느껴졌던 것은 기분 탓일까.

“가자.”

분명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도 이상하게 냉정하게만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언니랑 더 있겠다고 투정이라도 부렸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순순히 일어선 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탔을 때였다.

“프리드린.”

릴은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피곤에 젖은 눈이 내 모습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뭐가요.”

“처형 앞에 울며불며 나타났다면서.”

릴은 진지하게 물어왔다.

“왜 그랬어.”

그를 빤히 바라보던 내 입술이 흔들렸다. 왜인지 모르게 지금이 아니면 말을 꺼낼 수 없을 듯했다.

“내가…….”

그 순간 눈에서 눈물이 뚝 굴러떨어졌다. 때아닌 눈물 바람에 릴이 당황한 게 보였다.

“내가 싫어졌어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반쯤 기겁한 릴의 눈에서 피로란 게 사라졌다. 빠르게 내게 다가온 그의 손이 내 뺨에 다가붙었다. 눈물로 얼룩진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 온기에 묘한 용기를 얻었다.

“당신 요 며칠 이상했잖아요!”

“응?”

“아침 일찍 사라지고, 저녁에는 늦게 오고, 말도 안 하고……. 정말 잠만 자고 사라지고!”

“아니, 그게…….”

릴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턱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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