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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도움을 주겠다고? 내게?”
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물었다.
저기, 도와준다는 사람…… 아니, 고양이한테 왜 그래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 마주쳤을 때, 릴과 이 고양이는 지지리도 앙숙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뭐, 이그드라실과 릴만 봐도……. 가까워 보일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고양이는 새침하게도 되물었다.
― 왜.
“네게 이득이 전혀 없는데?”
― 이득이 왜 없지? 이시스가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면, 나도 이시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저 애매한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시스로부터 분리된 게 고양이라고 했으니까, 이시스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건 고양이가 소멸한다는 뜻이겠지.
자기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양이와 눈싸움을 하던 릴이 기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넌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 더 살고 싶냐?”
― 아니, 나야말로 이시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긴 해.
“그러면 더 설명이 안 되잖아.”
릴이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나도 저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모순이잖아.
― 이런 말은 정말 하기 싫었는데.
“뭔데.”
이윽고 고양이에게서는, 나조차도 입을 떡 벌릴 말이 튀어나왔다.
― 나도 나름대로, 내 화신인 너한테 애정이란 게 있거든.
“……와.”
오한이라도 들었을까. 가까스로, 거의 비명처럼 한 마디 내뱉은 릴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양이를 빤히 바라본 그는 제법 진지하게 읊조렸다.
“나 살면서 들은 말 중에 제일 소름 끼쳤다.”
― 이시스가 네 아내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처럼, 나도 네게 동질감을 느껴.
릴은 그 말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릴도 어느 정도 저 고양이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이건 너한테만 느꼈던 게 아니야. 난 지금까지, 물의 힘을 다루는 아이들에게는 늘 애정을 줄 수밖에 없었어.
릴의 손끝에 매달린 고양이가 새침한 눈을 빛냈다. 새침한 눈빛과 다르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제법 다정했다.
― 난 너희가 어디에 있든 간에, 너희를 느낄 수 있으니까. 늘 너희와 함께하고 있는데 어떻게 애정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겠어?
“…….”
그 말에 릴이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릴이 내게 한 말이었다.
…그런 고로 지금 저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도 릴일 것이다.
그런데 참, 같은 말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릴이 내게 했을 때에는 정말 느끼하게 들렸지만 지금은 제법 경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싸가지는 없었지만.
“……흐음.”
수긍한다는 듯 릴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에 괜한 생각이 들었다. 나를 향한 애정의 시작도, 내가 느껴진다는 그 감각 때문은 아닐까, 하고.
이어 고양이는 앞발을 들어 가볍게 그의 손등을 때렸다. 릴의 손아귀에서 스르륵 힘이 풀렸다. 허공을 가볍게 난 고양이가 바닥에 우아하게 착지했다.
…신전에서, 이그드라실이 내게 날아올 때의 모습이 생각난 건 왜일까.
바닥에 얌전하게 앉은 고양이는 분홍빛 혀로 하얀 앞발을 핥았다. 누가 보면 진짜 고양이인 줄 알겠다.
― 내가 바라는 건 크지 않아. 너희가 수명이 다할 때에, 이시스의 힘을 돌려주기만 하면 되니까.
냉정하게 생각해서…… 평범하게 살고, 어쩌고는 둘째 쳐야 할 일이었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생존이 달린 거니까.
저만한 해결책이 없는 건 맞았다. 이그드라실을 알아서 조용히 만들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게다가 지금 당장 힘이 없어지면……. 나한테 말리크의 가발 벗긴 죄를 묻는 거 아닐까? 그거 사형감이라고.
‘그, 그건 싫어.’
괜히 온몸에 오한이 일었다. 내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 때 고양이가 말을 이었다.
― 어때, 릴. 구미가 당기지 않니?
스스로의 턱을 움켜쥔 릴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잠시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머잖아 그가 입술을 뗐다.
“너무 좋은 조건이라 도리어…… 수상한데.”
― 물론 부작용은 좀 있을 수 있어.
“부작용? 예를 들면?”
― 힘이 좀 약해지는 정도? 적어도 지금처럼 몇 날 며칠 비를 뿌리면서 다니지는 못하게 되겠지. 너의 근원이 잠에 취해 있으니까.
“그것뿐이야?”
― 그래. 물론 네 아내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도리어 너보다 영향을 덜 받을 거야. 쟤는 이시스 그 자체니까.
내가 알아듣기에는 굉장히 모호하고, 어려운 말이었다.
릴이 끄응, 하고 입을 다물었다. 반신반의하는 얼굴에 고양이가 한마디 덧붙였다.
― 근데 릴, 난 네게 사기 쳐서 얻을 게 없어. 아, 물론 이시스는 있겠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이었다.
…나라면 저런 말을 들으면 절대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 같은데, 릴은 도리어 저 말에서 신빙성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래.”
어렵게 대답한 릴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숙여 고양이와 시선을 맞댄 그는 한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이시스 몇 대 쥐어박는 거 잊지 말고.”
― 역시, 사하크의 후손에게는 싸가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고양이는, 고양이 주제에 놀랍게도 사납게 인상을 썼다.
…저러다가 제안했던 걸 취소하고 가는 거 아닐까 몰라. 묘한 걱정이 들었던 나는, 마침 궁금했던 걸 물어볼 겸 둘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저, 저기요…….”
차마 예전처럼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신앙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고양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 응?
“혹시 저, 아이를 가지게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이 예쁜 야옹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평온하게도 묻는 말이란.
― 아들 낳고 싶어? 아니면 딸?
“풉!”
“아, 아니! 제가 아니라!”
……옆에서 릴의 웃음보가 터진 건 덤이었다. 반면 순식간에 발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소리쳐야 했다.
아니, 왜 다들 저렇게 오해하냐고! 나 이 꽃다운 나이에 벌써부터 애 낳고 키우고 싶지 않아!
“불임 부부를 도울 수 있냐고요!”
― 아. 그건 숨 쉬는 것보다 쉽지.
내 불안했던 마음과 다르게, 고양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 네 혈육을 되살릴 때를 기억해?
“어, 네……. 그때는 못 잊죠.”
― 그날의 감각을 떠올려. 본질은 결국 같으니까. 그 감각으로 대상에게 축복을 내려주면 되긴 하는데…….
말을 끊은 고양이가 새침한 시선을 돌렸다. 뒷발로 턱 밑을 쓱쓱 긁으며 중얼거린다.
― 이다음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
“……네?”
― 이시스는 내 일을 잘 알지만, 이시스 일은 나도 잘 몰라서.
……이 무슨 무책임한 말씀이란 말입니까? 저 쉽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 건지, 온 마음과 열과 성을 다한 진지한 의심이 들었다.
― 어쨌든.
기막힌 시선으로 바라보자 이 쓸데없이 귀엽기만 한 야옹이는 큼지막한 눈을 빛내며 말머리를 틀었다.
― 행복하게 잘 살으렴. 사하크와 이시스가 그러지 못했던 만큼.
그 덕담에 또다시 오한이 들었던 듯, 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가까스로 한마디 내뱉었다.
“……대체 안 어울리게 왜 그러냐. 소름 끼치잖아.”
― 다시 만나는 날에 네 싸가지는 좀 고쳐졌으면 좋겠구나. 늙어서까지 그러면 추해.
“그러는 넌.”
― 난?
“넌 젊고?”
― 늙은 걸 알면 대접이나 잘해주던가. 내가 괜히 네게 싸가지가 없다고 중얼거리겠니?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릴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릴 때, 고양이는 살포시 내 어깨 위로 뛰어 올라왔다. 내 뺨에 가볍게 자신의 코를 비비며 속삭였다.
― 아무 걱정하지 마렴. 이시스는 좋은 꿈을 꿀 테니.
…저 말을 믿어도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 *
며칠이 지나도 이그드라실이 우리를 찾아오는 일 따위는 없었다. ‘힘’에 대해서도 딱히…… 적어도 나는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다.
‘혹시 고양이가 실패한 건 아닐까 몰라.’
그런 생각이 서서히 머리 한편을 차지해가고 있을 때였다.
말리크가 날 찾는다는 소리에, 왕궁에 발걸음 했다. 말리크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릴을 발견한 나는 반가움에 목소리를 높였다.
“릴!”
“응? 어라?”
고개를 돌린 릴은 아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내가 반갑다기보다는 정말…… 무슨 바람을 피우다가 들킨 사람처럼 기절초풍한 얼굴이었다.
날 가리키는 그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프리드린? 너…… 너, 언제 왔어?”
“왜요? 제가 와선 안 될 곳 왔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릴의 커다란 손이 내 뺨을 감싸 쥐었다.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서서히, 반복해서 어루만졌다. 마치 내가 환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
그의 얼굴이 제법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엉겁결에 내뱉는 듯 작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느껴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