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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92화 (9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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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오싹 돋았다. 내가 그동안 보아온 하비에르는 정말 저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하비에르가 내 고뇌를 덜어주기는 개뿔. 두 배로 늘어나는 것만 같다. 애초에 내가 괜한 걸 기대한 건 맞지, 뭐.

나는 추위를 타는 다람쥐처럼 몸을 웅크리고 보았다. 일단 하비에르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져야 했다.

“하비에르?”

“예.”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요. 내가 싫어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하비에르를 뒤에 붙이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평소였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앞으로도 만에 하나, 뭔가를 해야 한다면 절대 하비에르를 꽁무니에 붙이고 가는 일 따위는 없을 거다. 그래야만 한다.

시달리고 싶지 않단 말이야! 지금도 이렇게 끔찍한데, 언니의 일을 옆에서 봤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하지 말자, 상상하지 말자…….’

분명 내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일이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간에 나는 분명 학을 떼며 하는 말이었지만 하비에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싫어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기요? 아니, 지금 이 작자가 뭐라고 하는 거야?

하비에르는 늘, 항상, 언제나 내 예상과 어긋나는 답을 내놓았다. 독설가라고 생각했을 때에도 그랬고 광신도라고 생각하는 지금도 그랬다.

물론 차이점은 선명하게도 존재했다. 예전에 독설가일 때의 하비에르는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지만, 지금의 하비에르는 끔찍하게 무서웠다.

둘 중 당연하게도 전자가 몇백만 배 나았다. 재수가 없는 건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는 않잖아! 지금은 느끼고 있다고!

“신도에게 있어 저를 향한 신의 호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고 섬기고 따르는 것은 늘 신실한 신도의 몫일 뿐입니다.”

“…….”

나를 바라보는 하비에르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할 말을 상실한 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미, 미쳤다. 미쳤어. 이 남자는 정말…… 여러 의미로 정신이 나갔다.

아니, 이제 반쯤 질릴 지경이었다. 광신도라고 부르는 것조차 무언가 모자라다.

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한결같을 수가 있냐고! 그것도 한번 빠지면 답도 없다는 신앙에 이렇게까지 맹목적이야! 릴도 이러지는 못하겠다.

나는 하비에르의 시선을 외면하며 속삭였다.

“그런데도…… 내가 죽으라고 하면 안 죽을 거라고요?”

“당연합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하비에르는 딱 잘라 대꾸했다. 저 단호한 태도로 무도 자를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살아 있어야 이그드라실도 섬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듣자마자 궤변이라고 여겼는데…… 이상하게도 그럴듯했다.

아니, 이치를 따지자면 사실 맞는 말이었다. 일단 내가 있어야 내가 믿고 따르는 이에게 경배도 올리는 것 아니겠나?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저런 일을 못 하는 건 맞잖아?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어떤 신이 사람을 해치라는 명을 내립니까?”

저 말에는 당당하게 대답해줄 수 있었다.

하비에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이그드라실이요.

라고.

…실제로도 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저러면 릴의 귀에 들어갈 테고, 릴은 당장 신전의 이그드라실을 불살라버리겠지?

아니면 도끼로 그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버릴지도 모른다. 신전 사람들의 비명을 즐기고, 말리는 사제들을 걷어차면서 한 땀 한 땀, 아주 정성껏 도끼질을 하겠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는 일들이었다. 뭐가 됐든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정말 저 이후에는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을 테니까.

어쨌든 하비에르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옆 나라의 미친 악신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신은 사람을 해치고 괴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그드라실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요?”

“우리 프레이르에서 섬기는 신은 생명을 관장하는 존재입니다.”

그건 그랬다. 프레이르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어느 정도의 신앙심은 있어도, 눈앞의 사람처럼 광적으로 믿지 않는 나조차도 아는 일이었다.

이그드라실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세계수. 세상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만물의 어머니였다. 그렇기에 척박한 사막에서 존경받았고, 사랑받았으며, 수많은 이들이 경배의 언사를 올렸다.

“이그드라실께서는 생명을 키우고, 보듬고, 되살리는 것으로 신성을 얻었습니다. 신이 아무리 전능하다고 해도, 자신을 따라주는 인간이 있기에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얻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이건 신학을 공부하는 이가 하는 신화의 해석이었다. 신전의 사제들끼리도 갑론을박이 제법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왁,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설교를 듣는 기분이다. 나는 설교 시간에는 거의 졸았는데 말이지.

“그런 인간에게 손을 뻗는 순간, 이그드라실은 신이라고 불릴 자격을 상실해야 옳습니다.”

그건 사제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이들이 주장하는 이야기였다. 이 광신도는 전통파였구나.

“그러니 전 제 눈앞에서 겨우 마주한 기적을 제 손으로 깨부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나는 하비에르의 말을 곱씹어야 했다.

사실 밑도 끝도 없이, 떼를 쓰듯 가볍게 물은 것이었다. 이그드라실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하비에르가 알 도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해 생각 외로 무겁고, 여러 생각이 담긴 답이 들려온 게 아니겠나. 뭐, 어쨌든 하비에르는 광신도니까.

광신도라는 건, 자신이 믿고 따르는 존재에 대해서는 항상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윽, 근데 내가 그 대상이 된 건가?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닌데…….’

동시에 예전에 하비에르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 신앙의 대상이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했던가? 상상과 너무 다르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는 발끈했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지금 이그드라실의 드리아스에게 느끼는 감정이 저것과 비슷할 테니까.

“하비에르 솔테!”

그때 드물게, 릴이 화난 듯 고함을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한달음에 뛰어온 릴이 하비에르의 어깨를 낚아챘다. 얼마나 빠르게 뛰어왔는지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 굴러갔다.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잖아!”

“원대하신 카림…….”

반면 순간적으로 당혹을 삼킨 하비에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굴러갔다. 광신도고 뭐고, 일단 릴의 시종이니 릴의 말을 우선적으로 들어야겠지.

다만 최소한의 발악은 있는 법이다.

“전 그저 이그드라실의 곁에서, 마음을 다해 섬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얘가 캄신을 보더니 드디어 맛이 갔구나?”

한숨을 내쉰 릴이 나를 돌아보았다. 휙 소리를 낸 릴의 손이 제법 날카롭게 꺾였다. 하비에르를 가리키는 릴의 검지가 새침하다고 생각했다.

“봤지, 프리드린?”

“네? 뭘요?”

“이러니까 내가 자꾸 첩 타령을 하는 거야.”

당연히 내가 펄쩍 뛸 소리였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욧! 남편 하나도 감당하기 벅차다고요!”

“카림! 세상천지 누가 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봅니까? 이산나의 야만족도 감히 그런 불경한 생각을 품지는 않겠습니다!”

하비에르도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의 순수한 신앙을 의심받는 게 정말 싫은 모양이다.

……와, 절대로 이해 못 할 족속이었다. 솔테 재상께서도 하비에르 덕분에 꽤나 골이 아프셨겠구나 싶었다.

솔테에서 보낸 감시역이 아니라, 이쯤 되면 쫓겨난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하비에르, 똑바로 생각하고 행동해.”

릴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윽고 창졸간에 그 품으로 당겨진 나는 눈을 끔뻑였다.

“내 아내거든?”

별것 아닌 말을 하는 릴의 태도는 쓸데없이 단호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보여줄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비에르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아미라이시기 이전에 이그드라실입니다.”

“이그드라실이기 이전에 프리드린 데스테리언인 거야.”

내 어깨에서 릴의 손이 미끄러졌다. 못내 아쉬운 듯 머뭇거림이 가득 묻어 있었다.

다시금 하비에르에게 성큼 다가간 릴이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대로 질질 끌고 가며 내게 왼손을 흔들어 보였다.

“프리드린, 나 일하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그래도 여기서 직무 유기는 안 하는 모양이다. 뭐, 그러니까 캄신 안에 고립되었던 거겠지.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안 따라 와? 여긴 네 자리가 아냐.”

“한동안 카림의 곁에도 오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여기선 내가 법이거든?”

“고작 며칠 전에 내리신 명을 번복하시는 겁니까?”

릴은 아무런 대꾸하지 않았다. 하비에르의, 완전히 눈이 뒤집힌 대답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전 이그드라실의 곁에서 이그드라실을 섬기겠습니다. 살아생전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으니 불충한 시종을 이쯤 보내주십시오.”

“와. 하비?”

릴이 혀를 내둘렀다.

“넌 진짜 답이 없다.”

…평상시 저 말을 자주 들을 릴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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