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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79화 (7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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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한숨을 푹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정작 우리 두 사람은 그 어떤 욕심도 없고, 심지어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난리인지 모르겠다.

“언니가 그렇지 뭐……. 조금이나마 다른 걸 기대한 내가 바보야.”

“어머, 저게 제일 중요한 거란다?”

어쩌다가 언니가 릴을 지지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언니의 저런 태도를 보면 희대의 광신도, 하비에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릴에게 사람은 이끄는 매력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겉모습의 매력이 철철 넘치기는 하고, 나도 처음 봤을 때에는 사람을 홀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저렇게 말리크로 섬기고 싶어 하는 매력은 또 다른 거니까.

“그리고 말리크께서 카림을 혼자 쫓아내신다면…… 뭐, 너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따라가. 그래도 돼.”

“……정말?”

“응.”

언니가 노골적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이윽고 내 흑역사가 또 입술을 비집었다.

“설마하니 자라나라 머리 머리를 외쳐주신 이그드라실께 뭐라고 하시겠니? 말리크께서도 은혜를 잘 아실 텐데.”

“…….”

아, 그 일 좀……. 언급 좀 안 해 주면 안 되겠니?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저 일은 나만 창피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보면.

…다만, 저 일을 언급하는 언니 덕에 묘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언니를 보다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언니.”

“응?”

“언니는 아무렇지 않아?”

내 질문에 언니가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바로 알아차린 언니는 다시금 내 등짝을 후려갈겼다.

찰싹!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릴에게 자꾸 손바닥을 날리는 것도 언니에게 배운 게 틀림없다.

“힝, 아파. 왜 자꾸 때려!”

“요 쥐새끼야. 설마 나한테까지 절 받으려고 했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언니한테 절 받아서 어디에 써먹으라고?”

“그럼 왜 그런 이상한 걸 물어보고 그래?”

“할아버지도 내가 변했다고 하시잖아.”

할아버지의 품은 늘, 유독 아픈 손가락이었던 내 것이었다. 세린의 후계자인 사촌 오라버니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내게는 쉽게 허락되었다. 가끔 볼 수 있던 할아버지는 날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을 전해주곤 하셨다.

그런 분마저 내가 변했다고 했다. 생각 외의 충격적인 소리라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언니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언니의 붉은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살랑거렸다.

“변하긴 했지.”

…그 말도 생각 외의 충격이었다. 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내가?”

“응.”

“내 어디가?”

“아니, 그게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는데…….”

언니의 금빛 눈이 내 모습을 훑어보았다. 이윽고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예전 같지는 않아.”

그런 언니를 보며 눈을 두어 차례 깜빡였다.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거 좋아해야 하는 말이야, 싫어해야 하는 말이야?”

“나쁜 뜻은 아냐. 그냥……. 그래, 네가 좀 자랐다고 표현하면 딱 맞을 것 같아.”

자랐다는 그 표현이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슬쩍 눈을 내리깐 나는 뺨을 붉혔다.

“릴은 나보고 쪼끄만하다고 하던데.”

“…….”

내 대꾸에 언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땅바닥이 뚫릴 것처럼 깊게.

이윽고 꽁, 하고 앙칼진 주먹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래, 그냥 바보로 살자. 그게 너다워.”

……씨이! 졸지에 얻어맞은 머리를 움켜쥔 나는 눈시울을 글썽거릴 뿐이었다.

* * *

머잖아 새해가 밝았다. 신화를 따르면, 올해는 프레이르가 건국된 지 꼭 4355년이 되던 해였다.

공식적으로 아미라가, 왕실의 식구가 된 나는 행사에 참여를 해야 했다. 처음 참여하는 행사이기 때문인지, 릴은 물론 카림 저택의 식구들이 유독 내게 신경을 썼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억을 투자했다.

사실 아직도 아버지의 근검절약 신조가 몸에 배어 있는지라, 손끝을 덜덜 떨며 부담스러워하는 내게 릴은 단호하게도 내뱉었다. 살아 있는 신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나 어쩐다나.

‘……이런 게 신으로서의 품위라면 별로 지키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신년이기 때문에 특별히 준비한, 말도 못 하게 화려한 붉은 드레스는 정말 무거웠다. 그동안은 만져본 적도 없는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머리 위에 올렸을 때에는 릴을 흘겨봐야 했다.

‘초록색 다이아는 어디 갔어?’

준다면서?

어쨌든 만발의 준비를 마친 후에, 게르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벽 위에 서서 몰려든 신민에게 순서대로 인사를 했다. 말리크가 첫 순번이었다.

말리크가 손을 흔들자 신민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으레 본 광경이지만 오늘따라 내 뺨이 붉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인사할 때에도 저럴 거 아니야!’

으아악! 싫어!

내게는 상상만 해도 창피한 일인데, 능숙하게 인사를 건넨 말리크가 자리에 착석했다. 그다음은 병색이 완연한 레브아였다.

레브아는 다소 힘겹게 손을 흔들고, 지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릴의 눈시울이 갈쌍했다.

이어 말리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름다운 말리카는 멀리서 보기에도 눈이 부셔서, 그녀를 지켜보는 신민들이 모두 한순간 숨을 들이켰다.

말리카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신민들의 함성에 게르드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말리카는 참 인기가 좋긴 했다. 작년에는 시녀로서 뿌듯하게 말리카의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말리카의 다음 차례는 릴. 설렁설렁 일어선 그는 성의 없이 손을 흔들었다. 릴도 데스테리언을 하사받은 이후에는 처음으로 참여하는 신년회였을 터였다.

그 성의 없는 태도에 신민들의 함성에서조차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괜히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릴이 자리에 앉은 이후 나는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으, 하기 싫어.’

겨우 발걸음을 옮긴 나는 성벽에 손을 얹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도, 게르드가 한눈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전 처음 구경해보는 규모의 인파였다.

방금 전까지와 다르게,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두들 바닥에 무릎을 붙였을 뿐.

‘여기서까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손을 흔들고 뭐고, 인사를 하고말고…… 뭘 할 정신머리가 되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내 다음은 재상들의 순번이었다. 재상들이 순서대로 신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 말리크는 제법 엄중한 목소리로 릴을 불렀다.

“릴.”

습관처럼 내 뺨을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던 릴이 흠칫 굳었다. 릴은 다소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말리크는 신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네, 형님?”

“요즘 직무 태만으로 재상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하더구나.”

……올 게 온 것 같다. 배시시 웃은 릴은 능숙하게 그 말을 받아쳤다.

“형님도 참.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할 줄 아는 게 있어야 재상들처럼 발 빠르게 뛰어다니기라도 하죠.”

말리크는 다른 때였으면 웃으며 저 말을 받아넘겼을 터였다. 다만 정치에 한해서는 가차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 말리크는 정색을 했다.

“지금 네가 날 바보로 여기는 게냐?”

말리크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릴이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난 널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

“형님.”

“애초에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구나. 정말 모른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도리 아니더냐?”

인상을 일그러뜨린 말리크는 제법 엄하게 내뱉었다. 사실 나나 릴이 생각하기에는 어깃장과 다름이 없었다.

“하는 시늉을 할 정도로 국사가 가벼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알면서도 지금까지 그렇게 행동했어?”

“형님께서 뭘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능력 밖의 자리니 파직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직설적인 말이었다. 말리크의 얼굴이 한층 더 험악하게 구겨졌다.

“파직이라고? 네가 지금 내 선택이 틀렸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뭐 어쩌라는 건가 싶은…… 태도였다. 릴도 당황스러웠던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말리크가 비로소 릴을 돌아보았다. 릴을 보는 눈빛이 평소와 다르게 냉정하고 차가웠다.

“릴.”

“네, 형님.”

“아무래도 널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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