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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66화 (6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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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죽었다.

갑작스레 발병한 역병에 시달리다가, 열이 오른 지 꼭 사흘째 되던 날.

……언니가, 죽었다.

그 지독한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았다고 전해 들었다.

나와 릴에게, 오펠에 그 소식이 닿은 것은 언니의 사망 직후. 언니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게르드에 보냈던 사람이 브렌델에 도착하기 전의 일이었다.

언니는 나보다는 조금 늦게 발병했다고 한다. 내가 릴의 도움으로 겨우 쾌차했을 때 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완쾌된 내가 입으로 언니를 걱정한다고 떠들어댔을 때, 언니는 눈을 감았다.

그 현실에, 사실에, 나와 언니의 간극에 반쯤 혼이 나갔다. 나는 겨우 영주관 안에 위치한 장례식장에 발을 디뎠다.

끼익, 묵직한 문이 움직이는 소리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죽은 이를 위한 서글픈 추도를 올리고 있던 사람들의 기도는 그렇게 끝이 났다.

정갈하고 새카만 장례식장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내를 잃고 넋이 나간 얼굴의 형부. 자식을 잃고 얼굴이 부은 어머니와 눈시울이 빨간 아버지. 서로를 안은 채 위로를 전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침통한 얼굴의 백부님과 백모님.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사촌 오빠.

그리고 굳이 이 자리까지 온 말리크와 말리카. 시녀들과 시종들까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한 군데에 엉켜 있었다. 다만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나같이 바닥에 무릎을 굽혔다. 능숙하게 눈물을 감추고, 슬픔은 가슴에 품은 채. 죽은 사람을 위한 애도와 기도는 혀끝에 숨겨버린 채.

“이그드라실이여.”

“이그드라실의 영광을.”

그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투덜거릴 정신도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따질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나는 그들의 인사를 무시한 채 비틀비틀 걸었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말리크에게, 존경했던 말리카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 않았다.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 나는 겨우, 관에 가까이 다가갔다.

언니는 투명한 관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지독한 병마에 시달렸다는 사람 같지 않은…….

역병의 끔찍한 고통은 내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어떻게 언니는 저런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언니 밑에 붉은 공단 드레스가 깔려 있었다. 신년 행사를 하는 날이 아니면 옷장에서 나올 일이 없었던, 어머니의 드레스 중 가장 좋은 물건이었다.

늘 결이 좋았던 언니의 붉은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했다. 긴 속눈썹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피부가 창백하다 못해 파리했다. 말라붙은 입술은 마냥 하얬다.

“…….”

나는 입술만을 달싹거렸다. 차마 말은 흐르지 않았다.

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이 짧지 않은 거리를 헤엄쳤다. 손끝에 겨우 닿은 뺨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한 차례, 멍청하게 눈을 끔뻑였다.

정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였다. 눈앞의 사람에게서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것이라면 응당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만 그 어떤 사소한 동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앞에 분명 사람이 누워 있었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도저히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상황에 서서, 나는 입술을 겨우 열었다.

“언니.”

‘응, 내 쥐새끼.’

…당장이라도 저런 대답이 들려올 것 같았는데,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언니, 언니, 언니…….

흔들리는 목소리만이 텅 빈 것만 같은 강당에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오른 나는 대답 없이 누워 있는 언니를 노려보았다. 고작 일 년 전, 아직 낫지 않았을 때. 아팠던 내가 저렇게 누워 있으면 언니는 어떻게 했었더라.

허리를 찌르고 팔뚝을 꼬집어서 어떻게든 깨웠었다. 아프다고 울먹거려도 봐주지 않았다.

그대로 잠이 들면 죽음의 늪으로 가까워지는 거라고, 어떻게든…….

아린 입술을 짓씹었다. 언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언니의 허리를 쿡 찔렀다.

굳어 있는 허리가 딱딱했다. 어쩔 수 없던 입술이 파리하게 진동했다.

“야, 아리엘.”

‘요게 어디서 하늘 같은 언니 이름을 막 부르고!’

……당장 저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쥐어박아야 하는데. 여전히 그 어떤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날 공격하는 움직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점점…… 이 황망한 현실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느릿하게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차디찬 공기가 날 사무치는 추위에 떨게 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들은 것과 눈앞에서 겪는 것의 차이는 컸다. 충격이 배가 되어서, 정신이 반쯤 나간 나는 눈시울이 글썽글썽해진 채 중얼거렸다.

“빨래판. 아리엘 라비아는 올챙이 배.”

‘이게 진짜! 지금 너 나랑 해보자는 거지?’

여전히 그 어떤 반응도 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은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는 메아리는 오직 나의 것만 품은 채 아득하게 울려 나갈 뿐이었다.

“안 돼…….”

나는 결국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니에게 몸을 기대었다. 차갑고 딱딱한 언니의 온도가 냉정한 현실을 읊조렸다.

아니야. 이렇게 날 떠나지 마.

언니, 언니가 말한 진주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잖아. 그걸로 목걸이를 만들어달라고 했었잖아.

나는 이제야 언니가 말했던 것들을 이루어줄 수 있게 되었는데. 왜 그 모든 것을 받기도 전에…….

전하지 못한 말이 입 안에서 까끌거렸다. 들을 이 없는 것들은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아득한 탑을 만들어갔다.

마침내 터져버린 눈물이 언니 위로 뚝, 뚝 방울졌다. 산산이 조각나는 물방울들이 내게 차가운 현실을 이야기했다.

“프리드린.”

서럽게 들썩이는 내 어깨를 감싸 안는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도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이건…… 이건 아니잖아요.”

릴의 손을 밀쳐낸 나는 울먹였다. 끝없는 죄책감과 공허함만이 나를 공격했다.

“왜 언니가……. 우리 언니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 일은 누구의 잘못이지?

오펠에 나를 보낸 말리크? 그래서 언니를 역병에 걸리게 만든 것?

언니를 부득불 불러들인 말리카? 릴의 곁에 있었다면 역병에 걸렸어도 치료받을 수 있었잖아?

아니면…… 모든 일을 만든 원인인 나?

지금,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저것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어떤 이유가 있었든 간에 결국 언니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나였다.

내가 오펠에 가야 해서, 내가 이그드라실에 꽃을 피워서, 릴을 만나서, 말리카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해서, 욕심을 내서, 말리카의 시녀로 들어가서…….

저 모든 일 중에 단 하나만 하지 않았다면 이런 날이 오지 않았으리란 것을,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아서.

“나, 난 언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데……. 이제 그렇게 해주려고 했는데…….”

지나간 일들이 떠올랐다. 그놈의 품위유지비로 투닥거리기는 했지만, 장난도 쳤지만 언니가 진심으로 달라고 했으면 그 정도 못 줄 이유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장난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떠들어댈 수 있던 거였다.

정말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는데. 내 모든 것을 기꺼이 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누가 제발, 내 언니를 돌려줘…….

가장 간곡한 마음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때 목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내가, 너의 바람을 들었노라.]

그 기묘한 울림. 마치, 릴을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누군가가 나의 간곡한 마음을 들은 듯이.

순간 짙은 어둠에 감싸여 있던 장례식장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새카맸던 허공을 새하얗게 퇴색시키는 존재가 그곳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신비로운 도백색 머리가 흐트러졌다. 고아하기 그지없는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음에도 그 사람이, 이그드라실이, 우리의 신이 입고 있던 하얀 옷자락이 흩날렸다.

기묘한 신성함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홀린 듯 이그드라실을 마주하고 있을 때 조곤조곤한 음성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내 아가야.]

생긋, 고아한 눈빛이 부드럽게 휘었다. 이그드라실은 언니를 한 차례 바라보며 결단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읊조렸다.

[네 소중한 이를 살려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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