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65화 (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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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래서 프리드린 라비아의 세상이 전복되었다

오펠에서 브렌델까지의 여정은 짧지 않았다.

브렌델로 향하던 기나긴 여정에서 나는 내내, 언니를 생각했다.

‘언니…….’

아리엘 라비아―브렌델. 예쁜 얼굴과 다르게 성격은 괴팍하고,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날 놀려먹는 실력은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런 언니는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뭐라고 자세하게 묘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소중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난 긴 시간 나를 위해 희생해온 언니를 아낌없이 사랑했고, 언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었다. 언니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을 바친다 해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조용히 입술만을 짓씹었다. 다소 거친 압박에 툭, 하고 터진 입술 덕에 입 안에서 피 맛이 감돌았다. 하지만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좀 어때.”

그런 나를 살피던 릴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비교적 작은 내 손을 한 차례, 꽉 맞잡았다가 놓아준다.

그의 작고도 큰 온기 속에서 또다시 언니를 떠올렸다. 언니의 온기. 언니의 목소리. 언니의…….

“난…….”

겨우 입술을 열었다. 더듬거리며 대답하던 내 머릿속에 문뜩, 기억 속에 묻어둔 옛일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늘, 언니가 아름답게 그려 놓은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내 방 외에 다른 것은 거의 볼 수 없던 시절, 내게 이 세상에 대해 하나하나 말해주던 언니는 내 작은 세계의 전부라고 말해도 좋았다.

그런 언니가 그려 둔 세상은 마치 태양처럼 너무나도 찬연하고 밝게 빛나고 있어서, 나는 그 찬연한 빛 속으로 단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니는 나의 태양이었고 달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올려볼 수 있는 하늘이었다.

‘리니. 내 귀여운 쥐새끼.’

유독 아팠던 어린 시절.

가문을 다녀간 의사가 오늘이 고비라고 말했던 날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 상태는 하루하루가 달랐고, 나를 살피러 온 의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고는 했었다.

다만 그날은 정말 힘겨웠었다. 살고 싶어서 늘 발버둥 쳤던 나조차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식을 앞세울지도 모른다는 고통에 하염없이 울던 어머니와, 같은 고통을 지닌 채 어머니를 달래는 것만 가능했던 아버지 대신 언니가 밤새 나를 돌보았다.

언니는 침대에 누운 채, 고통에 겨워 숨만 겨우 헐떡이던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아마 어느 책에서 보았을, 내게 들려주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반복해서 읽고 겨우 외웠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진주는 진주조개가 흘린 눈물이라고 하더라.’

나는 겨우 눈을 뜨고 언니를 응시했었다. 숨 쉬는 것조차 끔찍하게 힘들어서 그대로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언니의 얼굴을 보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런 마음이 달아났다.

그때의 나는 살고 싶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도 살아가고 싶었다.

‘조개 안에 뭔가 들어가면 그게 조갯살을 판대. 그게 끔찍하게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하더라. 대부분의 조개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죽고.’

죽는다, 라는 말을 할 때 언니는 울먹이는 것 같았다.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숨을 고르며 속삭였지만.

‘그 끔찍한 고통을 이겨낸 조개만 그렇게 비싼…… 아니, 영롱하고 예쁜 진주를 만들 수 있대. 아픔에 울고, 울고, 또 울다가 자신을 괴롭히던 것과 눈물이 함께 굳어진 결정체가 진주라는 거야.’

일부러 내뱉고 강조한 비싼, 이란 그 말. 힘없이 축 늘어진 내가 저 말에 반응하고, 아득바득 기어오르기를 바란다는 걸 알았다.

다만 끔찍한 고통에 겨웠던 나는 언니에게 바로 반응해줄 수가 없었다. 자꾸만 까라질 것 같은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이란 걸 이어 나갔을 뿐.

땀투성이인 내 이마를 상냥하게 닦아주던 언니가 말을 이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래.’

‘사람도……?’

‘누구에게나 아픈 시절은 있어.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 하지만 그 아픔을 이겨내고, 극복한 사람만이 무엇보다 값진 진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아린 상처를 극복할수록 사람은 성장하고 깊어진다는 거지.’

‘…….’

‘너도 그래야지.’

언니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의연하게 속삭였다.

‘이대로 병 따위에 지지 말고, 언젠가는 예쁜 진주를 만들어야지.’

이렇게 허망하게 자신을 떠나지 말라는 간곡함이 엿보였다. 언니의 정성에 힘입어, 손끝을 까딱거린 나는 겨우 중얼거릴 수 있었다.

‘……값비싼 진주가 아니고?’

가득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가냘픈 숨을 몰아쉬던 나는 비로소 언니의 말에 반응했었다.

‘그거…… 그거 팔아서, 언니 목걸이 사 달라는 거지.’

‘요게. 고작 목걸이로 되겠니? 이 언니의 통은 그렇게 작지 않아요, 우리 쥐새끼야.’

늘 그렇듯 언니가 콧대를 세웠다. 지극하게 언니다운 말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목걸이를 살 거면 그걸 왜 팔아? 그걸로 목걸이를 만들어서 하고 다니는 게 이득이지.’

말은 다소 거칠었지만, 정작 언니의 눈시울은 눈물로 반짝이고 있었다. 곧 언니의 뺨 위로 작은 눈물이 방울졌었다.

그때가 떠오르자 울컥, 하고.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치밀어 오르는 묵직한 덩어리가 있었다. 숨이 차올랐다.

언니가 형부에게 했던 말이, 내가 남몰래 엿들었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제게는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딸처럼 키운 동생이에요. 말리카고 카림이고 이그드라실이고……. 클리드도 그냥 다 떠나서, 제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예전처럼요. 이그드라실에 꽃을 피웠다지만 제 동생이라는 사람이 바뀌고 변한 게 아니에요.’

언니에게 여전히 나는 나였다. 하나뿐인 동생이고, 쥐새끼였다. 부모님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언니는 받아줬었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와 마주한 시선을 바라보았다. 늘 따스하고 안온한 물빛 눈은 안타까움으로 범벅이 된 채였다.

“모…… 모르겠어요.”

겨우 대답했다. 릴은 가만히, 그런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익숙한 향유의 내음이 아찔하게 코를 찔러왔다.

커다란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등을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나를 다독이던 릴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내 잘못이야.”

“아니…….”

나는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 속에 치밀었던 어떤 것이 터져 버렸다. 릴의 옷자락을 움켜쥔 내 손등에 하얀 힘줄이 섰다. 파들파들, 가냘프게도 진동했다.

“내, 내 잘못이에요.”

끊임없는 자책이 이어졌다. 흐느낌을 감추려고 입술을 짓씹었지만 그 무엇도 가려지지 않았다. 숨길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에게 닉스톤을 주지만 않았다면……. 오펠에 오지 않았다면……. 말리크께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면……. 연회에서 말리크께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말리카께서 기회를 준다고 했을 때에 괜찮다고, 했다면……. 그 연회에…… 가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다. 미약한 힘이지만, 내가 바꿀 수 있던 것들이 머릿속을 앵앵 감돌았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 애초에.

애초에 내가 없었다면.

흐윽, 하고 깊은 숨을 들이켠 나는 가까스로 말을 만들어냈다.

“그랬다면 언니는……. 내, 언니는…….”

지금도 행복했을 텐데. 긴 인내의 시간 끝에 겨우 움켜쥔 행복을 아낌없이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뒷말은 허망하게 잇새에 치여 사라져 버렸다. 끊임없이 떨려오는 내 등을 다독인 릴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넌 무엇도 잘못하지 않았어. 내가 지켜주지 못한 거야.”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한숨을 얽었다.

“일찍 결정을 내리고 행동했으면 됐을걸. 이기심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나와 같은 긴 자책이었다. 릴이 고개를 꺾는 듯했다. 누군가가 흘린 눈물처럼 짙은, 갈색 마차 천장을 올려다본 그는 자그마한 사과를 유약한 음성에 담았다.

“미안해.”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게 어떻게 릴의 잘못일 수 있을까.

머잖아 끊임없이 달리던 마차가 브렌델에 도착했다. 차마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마차에서 내린 나는 브렌델을 돌아보며 서러운 눈시울을 빛냈다.

초목의 브렌델. 서른 개의 성 중 하나인 라펠리타에 딸려 있는 커다란 영지.

끊임없는 모래 먼지 저편으로 이어진, 프레이르에서 보기 드문 광활한 숲을 지닌 땅.

그 광활한 생명력을 지닌 땅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새카만 장례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물과 슬픔을 가득 머금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바로 아리엘 라비아―브렌델의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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