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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47화 (4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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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더없이 싸늘하고 단호한 답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를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떤 점에서요?”

“이그드라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금 그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비에르는 저를 전혀 모르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그렇다고 잘 아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비에르와 나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해야 옳으니까.

“만에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이그드라실께서 정말로 성수 가지를 키우고 계시는 줄 알 겁니다. 개중 몇몇은 카림께서 품위유지비를 제공하지 않아 원예에 취미를 붙였다고 생각하겠죠.”

저건 지나친 비약…… 같지만 소문이란 원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법이니까.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하비에르의 말에 수긍한 내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비에르는 깐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쪽은 이그드라실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사항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니 그냥 두고 보시면 됩니다.”

“두고 보기에는 조금……. 뭔가 걸리는 일이지 않아요?”

“어디가 찝찝하십니까?”

그래, 찝찝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다. 나는 내 마음에 가장 걸리는 걸 입 밖으로 꺼냈다.

“저게 효과가 있겠어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효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더없이 단호하고 냉정한 답에 난 펄쩍 뛰었다.

“효과가 없으면, 내가 신민들에게 사기를 친 게 되잖아요!”

내 필사적인 외침에 하비에르는 여전히 구겨진 얼굴로 날 바라만 보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렵사리 중얼거린다.

“……엄밀히 따지면 사기에 해당하긴 하죠. 이그드라실께서 행한 게 아니라 오펠의 사기꾼이 행한 사기요.”

하비에르가 내 말의 오류를 정정했다. 으,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오해를 받을 가능성은 있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 효과의 유무가 중요합니까? 이그드라실께서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 점에 일단 초점을 맞추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 이그드라실이 만들었다는데 효과가 없다는 게 중요한 거죠. 효과라도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구경해도 내게 손해 될 게 없잖아요.”

“…….”

하비에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압박하더니 한 박자 늦게 중얼거렸다.

“일단…… 누가 이그드라실을 사칭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일이고요.”

나는 눈을 두어 차례 깜빡였다. 그런가?

“저런 건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바보입니다.”

“네? 왜요?”

“정말 이그드라실께서 직접 키웠다는 검증도 없는데 덥석 사버리다뇨. 귀가 얇고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살아가는 천하의 멍청이들이 제 발을 찍은 격이죠. 생각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하비에르의 말은 거침없었다. 와, 카림보다 팩트 몽둥이를 더 아프게 잘 휘두를 것 같다.

나는 마음에 걸리는 걸 속삭였다.

“그렇지만…… 제가 신전에서 성수에 물을 주긴 했잖아요?”

“아귀가 맞아떨어진 겁니다. 그날 하필 이그드라실께서 목격하신 물건이 성수일 뿐입니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그렇지 않나? 신전에서 팔아먹고 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빤히 올려다보자 하비에르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이그드라실께서 발로 차고 지나가셨다는 돌멩이부터 시작해서, 직접 수를 놓았다는 손수건이나……. 심지어 쓰고 벗었다는 모자까지, 별별 걸 다 팔고 있습니다.”

“쓰고 벗은…… 모자요?”

다른 건 다 큰마음 먹고 그렇다 칠 수 있지만, 저것만큼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왜냐하면.

“그건 뭐…… 대머리 치료제인가요?”

“정확합니다.”

“…….”

말리크 일이 어지간히 동네방네 퍼졌구나 싶었다. 졸지에 태생이 대머리라고 자랑하게 된 말리크는 정말 날 죽이고 싶겠지? 흑흑.

게다가 저 모자가 효과가 없다면…… 말리크의 대머리를 치료해줬다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소문이 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말리크는 대머리라고 땅땅 낙인찍힐 거고…….

아, 과거의 내 머리털을 다 쥐어뜯어 놓고 싶다. 왜 그런 일을 저질러서는!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저게 아니었다.

“그런 걸 알고 있으셨으면서 저한테는 아무 말씀도 안 해주신 거예요?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있어야 할 일 아니에요?”

“그야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 말에 나는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중얼거려야 했다. 아, 서글퍼라.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물론, 제가 무능하긴 하지만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내 시무룩한 태도에 하비에르가 펄쩍 뛰었다.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설명을 곁들였다.

“인간이란 나약한 법이라서, 인간의 힘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의지할 만한 걸 찾게 되는 법입니다.”

…옳은 말이었다. 오펠을 비롯한 남부 지방은 때아닌 역병 덕에 뒤숭숭했다.

“다른 때였다면 여러 가지 의지할 것을 찾았을 겁니다. 하지만 마침 이그드라실께서 재림하셨고, 프레이르의 신민 중 이그드라실을 섬기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이그드라실께 의지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고, 그런 심리를 이용할 사람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도 그랬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면 더더욱 신을 찾게 되는 법이니까.

“게르드에서 내려올 때에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비단 오펠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닐 겁니다.”

“……아하.”

그래, 그냥 내가 바보인 거구나. 이건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손끝을 꼼지락대던 나는 하비에르를 빤히 응시하다가 속삭였다.

“저, 하비에르.”

“예.”

“하비에르는 어쩌다 카림의 시종이 되었나요?”

무슨 의미냐는 듯 하비에르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이, 이거 또 오해하기 좋게 말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

“솔테도 명문가잖아요? 말리크의 시종으로 계시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요.”

“……감히 다른 말씀 먼저 올리자면.”

하비에르는 처음 보는, 비교적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목소리도 한풀 꺾여서 평소의 강경함이 없었다.

“성후께서 이제라도, 이런 걸 여쭤보실 마음이 생기셔서 다행입니다.”

이그드라실이 아닌 성후. 덕분에 순간, 그간 하비에르가 나를 카림의 짝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해 카림을 섬기는 솔테의 직계라니. 솔테가 카림의 편이라기에는 제3재상이잖아?

재상들은 대놓고 말리크의 사람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말리크를 섬기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벌써 쫓겨났을 테니까.

“전 솔테에서 보낸 카림의 감시역입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감시역이요?”

“예. 카림께서도 아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말리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으셨거든요.”

하비에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돋아났다. 호수에 피는 안개처럼 곧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카림은 그런 분입니다.”

“…….”

물론…… 말리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 이제는 형을 형수에게 빼앗겨서 말리카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저번에 들었거든요.”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비에르도 카림만큼이나 말리카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요.”

둘이 떠들던 걸 생각하면 카림보다 하비에르가 더, 말리카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의 증오에 가까웠다.

“카림과 하비에르의 사이가 좋은 만큼, 하비에르를 카림의 사람이라고 여겼다면 제가 틀린 거예요?”

하비에르는 대답 대신 한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입을 열었다.

“이걸……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어보실지는 몰랐습니다.”

제법 곤혹스럽다는 듯, 난감한 어조였다. 하지만 그 곤혹스러움과 반대로 이어지는 하비에르의 말은 더없이 단호했다.

“전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갑니다. 가문의 명을 거절할 명분과 힘은 없을지라도 그 명을 고분고분하게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간단하게 표현해서 ‘억지로 시켜서 하긴 했지만 자존심이 있지, 그 말 쉽게는 못 들어준다.’라는 소리였다.

새삼스럽게도 하비에르가 내 화술 선생이 된 이유를 알 법했다. 와, 세상에. 저 말을 어떻게 저렇게 포장할 수가 있지?

“가장 중요한 건 제 신앙이 독실하단 겁니다.”

또다시 튀어나온 신앙 소리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침내 이그드라실께서도 재림하셨으니 프레이르는 프레이르의 길을 걸어가야지요. 아니면 신앙의 모토처럼.”

날 빤히 바라본 하비에르의 시선이 제법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새 나라를 건국하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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