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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황당하다는 듯, 카림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벌레를 마주한 나는 그의 목덜미에 매달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꺄, 꺄, 꺄아아악!”
“왜 그래?”
“바, 바, 바 선생님! 저기, 저기!”
덜덜덜 떨리는 손끝이 바퀴벌레가 있던 곳을 가리켰다. 카림의 고개가 내 손끝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난 또 뭐라고.”
카림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팔로 가볍게 나를 지탱한 그가 반대 손을 휘둘렀다.
이윽고 찰싹, 바스스! 하고.
…잔인한 소리가 들렸다.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따라오는 건 덤이었다.
“잡았다. 구경할래?”
“저, 저리 치워요! 으악!”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내 비명에 카림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쟤는 네가 더 무서울걸?”
“무, 무슨 소리예요! 내가 쟤를 더 무서워하지!”
“대체…… 이 작은 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징그럽게 생겼잖아요!”
…본능적으로 외치고 생각했다. 카림이라면 이런 내 눈앞에 저 징그러운 걸 들이밀고 즐길지도 모른다고.
천만다행히도 카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이어 짐짓 엄하게 한마디 한다.
“이그드라실이라면 이 땅 만물을, 살아가는 생명체를 아껴야지. 생긴 걸로 차별하면 못쓴다? 외모지상주의는 가장 끔찍한 편견 중 하나야.”
“외모지상주의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그런 게 이그드라실이라면 나 그거 안 할래요.”
울상을 지은 내가 중얼거렸다. 진심이었다.
가족에게 절이나 받고 정중한 경어나 듣고, 억지로 결혼하고, 종래에는 벌레마저 사랑해야 한다니. 이 극한 직업은 대체 뭐냐고!
다른 걸 사랑하라면 몰라도 벌레만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끔찍하단 말이야!
…결국 내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깨 위로 눈물이 방울지자, 일단 자신의 품에서 날 내려놓은 카림이 축축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알았다, 알았어. 뚝 하자.”
카림이 여전히 제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내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나를 번쩍 안아 든 그가 자신의 무릎 위에 나를 앉혔다.
이윽고 따뜻한 손이 뺨을 어루만졌다. 찝찝한 눈물을 거두어 가는 손결을 느끼던 나는 코를 훌쩍거렸다.
…그러다 문뜩 깨달은 바가 있어서 고개를 바짝 치켜올렸다.
“근데 그 손…….”
“응?”
“바, 바, 바 선생님 잡은 손 아니죠?”
“……허.”
카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기막힌 웃음을 머금었다. 이윽고 보란 듯, 그윽한 손길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근데 그거 바 선생님 잡은 손 아니냐고!
기겁한 내가 딱딱하게 굳었을 때 짤막한 답이 뒤를 이었다.
“그게 중요해?”
“다, 당연하죠!”
“씻었어.”
그 손이 맞다는 거잖아! 기겁한 나는 온몸을 바짝 웅크리며 소리쳤다.
“거짓말! 대체 언제!”
“……너 자꾸 내가 누군지 잊는 것 같다?”
“잊긴 뭘 잊어요! 미친 멍멍이 카림이잖아요!”
‘2. 혼인 후 두 사람은 다른 호칭 대신 서로를 반드시 이름으로 부른다.’라는 혼전계약서의 조항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 이건 해당 안 되겠지? 내가 어긴 게 아니라고. 그냥 공식 명함을 말했을 뿐이야.
한숨을 내쉰 카림이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순식간에 물줄기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바닥에 고인 물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맞다, 카림은 물을 다스리는 사람이었지.
“……아.”
“설명이 됐지?”
이보다 더 짧고 굵은 설명이 있을까. 순순히 납득한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똑, 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낭랑하게도 울려 퍼졌다. 그를 찾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원대하신 카림. 아스핀 오펠입니다.”
“아, 들어와.”
끼익, 문이 열렸다. 저번 연회에서 나와 카림에게 은근슬쩍 말을 붙였던 중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저번 연회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카림과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더니, 지금은 어렵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그때 그렇게 굴었던 건 술의 힘이었던 모양이다.
“이그드라실께서도 함께 계셨군요.”
“리니?”
그리고 중년 남자의 뒤를 종종 따라 들어온 라일라가 나를 불렀다. 눈을 동그랗게 늘인 라일라는 카림과 카림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 와중 카림의 손은 내 뺨에 붙어 있었고, 내 뺨은 젖어 있었다.
……라일라가 보기에는 훌륭한 불륜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라일라가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본능적으로 하는 삿대질에 중년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지금 여기서 뭐 해요? 남편분은 어떻게 하시고……? 내, 내가 뭘 본 거야……?”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라일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겁한 중년 남자가 라일라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찰싹!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얘가, 얘가! 버르장머리 없이!”
당연히 갑자기 등짝을 얻어맞은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늘였다.
“백부님? 갑자기 왜 때리세요? 어머니 아버지도 안 때리면서 키우셨다고요!”
“내가 진작부터 연회에 제대로 참석하라고 말했지! 두 분 앞에서 이게 무슨 무례야! 아이고, 내 속이 터져!”
…무례를 따지면 연회에서 끈적한 눈으로 나와 카림을 번갈아 본 댁이 더 문제 아니요? 술의 힘이 있었다고 해도.
중년 남자가 라일라의 고개를 내리눌렀다.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된 라일라가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아무래도 영문을 모를 테니까.
“원대하신 카림과 경외하는 이그드라실께 대신 사죄 말씀 올립니다. 제 조카아이인데 배우지 못하여…….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백부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 예? 이그드라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게 틀림없는 라일라가 중년 남자의 악력을 이기고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렸다. 라일라가 떨리는 눈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방을 둘러보아도 있는 사람은 나와 카림, 그리고 중년 남자와 자신뿐.
그녀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리니가……. 아, 아니!”
무슨 말을 더 잇지 못한 라일라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파들파들 떨기 시작했다.
“겨, 겨, 경외하는 이그드라실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들오들 떠는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던 내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고,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오펠 성주.”
“예, 카림.”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방 좀 바꿔줄 수 있나?”
카림을 올려다본 중년 남자가 멍청하게 눈을 끔뻑거렸다. 영문을 묻는 듯이.
카림이 가볍게 날 향해 턱짓을 했다. 다만 가벼운 행동과 다르게, 낮게 가라앉은 눈빛은 나를 면밀하게도 살피고 있었다.
“프리드린이 바퀴벌레를 보고 기함을 해서.”
“예? 바퀴벌레라니요! 얼마나 철저하게 신경을 썼는데!”
중년 남자가 펄쩍 뛰었다.
“일단 옆 건물로 옮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리해둔 곳이 있긴 하니…… 당장 명을 내리겠습니다.”
“응. 찾아온 이유는 얘기는 이사 후에 들을게.”
카림의 나른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라일라는 끝까지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 * *
그렇게 사람들이 옆 건물로 이삿짐을 옮길 때, 나는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추적추적,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가 정수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덥고 습한데도 가장 차갑게 느껴지는 비였다. 내 현실을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내 앞에 무릎 꿇던 부모님의 모습이, 낮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편하게 날 대하던 라일라가 말 한 마디 못 하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길잡이를 잃은 발걸음이 숲속으로 향했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걷다 보니 더 올라갈 곳이 없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앉자 오펠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오펠은 고어로 ‘어둠’이란 뜻이었다. 그 이름과 다르게 하얀 화강암으로 지어진 투박한 성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작게 느껴지는 정원 속에 내가 라일라와 만났던 연못이 보였다.
무릎을 그러안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번 생은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나 봐.”
병이 나은 이후 내가 원했던 게 뭔지 생각해본다. 백지처럼 새하얀 머릿속에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사소한 꿈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바라는 건 소박하고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결국 허망하게 부서진 모래성처럼, 손 틈새로 흘러 내려갈 뿐인 조각들.
한숨과 함께 쏟아지는 비에 처량하게 젖어 나가고 있을 때였다.
“멀리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