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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26화 (2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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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나 다람쥐는…… 눈만 보이지 않아요?”

“바로 그거야.”

바로 맞췄다는 듯 카림이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러면 제가…… 눈만 보인다고요?”

“처음 딱 보면?”

카림이 제법 노골적으로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항상 그렇듯 기름을 두른 듯 느끼한 눈빛이었다.

“이상하지. 피부도 하얗고.”

그야 오래도록 집 안에 박혀서 살았으니 당연히 하얗지. 솔직히 말하면 항상 듣던 칭찬 중 하나였다.

프리드린 영애는 피부가 참 하예요. 아가씨는 피부가 너무 고와요. 같은 말들. 왕성에 들어와서도 유독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말하니까 온몸의 솜털마저 곤두서는 걸까.

순간적으로 내 손발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목구비도 뚜렷한데.”

중얼거린 카림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바다처럼 깊고 푸른 눈빛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좀 정확하게 말하면 눈만 보고 있게 된다고 해야 할까. 사람을 홀리는 눈빛이지.”

동시에 그윽한 손길이 뺨에 닿았다. 그의 엄지가 눈가를 보듬듯 매만졌다.

“대지처럼, 아주 황홀한 황금빛이야.”

그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수정처럼 맑은 호수를 닮은 눈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어……?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눈빛은 이런 것일 터였다.

이대로 저 호수에 잠겨 죽을 것만 같아.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했다.

눈가를 매만지던 엄지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뺨을 스치고, 귀를 스치고, 더 밑으로. 점점 더 밑으로.

기묘한 긴장이 허리를 타고 흘렀다.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남자가 내 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이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대로…….

“무슨 생각해?”

순간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난 눈을 뜨며 어깨를 들썩였다.

“……네?”

“머리카락 떼 주고 있었는데 눈을 감길래.”

그 말대로,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 몇 올을 움켜쥔 카림이 어느덧 의자에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양다리를 꼰 채로.

“왜.”

내가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자, 나른하게 턱을 괴며 물어온다.

“키스라도 할 줄 알았나.”

…정곡을 찔려서 사늘하게 얼어붙은 나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 태도에 생긋, 두 눈을 곱게도 휘었다. 이윽고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네가 원한다면 못 해줄 것도 없지. 아니, 나야말로 바라는 바…….”

“무, 무, 무,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나는 그 얼굴을 밀쳐내고 보았다. 제법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카림은 평온하게 중얼거렸다.

“어라, 반응이 딱 그랬는데.”

이윽고 얄밉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건 덤이었다. 이윽고 이 나쁜 남자의 입가 근육이 움직였다. 아무래도 웃는 모양이다.

…손안에서 남의 얼굴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느낌이 생소했다.

“바라는 게 있어서 조를 때 으레 그러더라고.”

“……제가 뭘 했다고요? 그리고 대체 누가요?”

“뭘 했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그리고 여자들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는 말에 그를 냅다 노려보았다. 여자‘들’이라니.

아무리 계약서까지 쓴 관계라지만, 이제는 같은 성까지 단 사이잖아. 근데 저게 내 앞에서 할 말이냐?

그러잖아도 누구는 연애 한 번도 못 해봐서 억울한데!

“……알아주는 바람둥이라더니. 참 잘나셨어요. 좋으시겠어요, 여러 사람하고 많이 놀아봐서.”

“있잖아. 원래 개는 가는 이성 안 잡고 오는 이성 안 막는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거렸다. 참……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 거부한다고 순순히 물러서면 그게 미친개일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지.

순간 소름이 오싹 돋았다.

“설마요…….”

“응?”

“미, 미친개가 그 뜻의 미친개는 아니겠죠?”

카림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뜻이 뭔데?”

“그, 그, 그…….”

아무나하고 붙어먹는다고! 이성 관계가 아주 난잡하다는 거지!

물론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알아주는 바람둥이이긴 했다. 아침 점심 저녁 옆에 붙어 있는 여자가 바뀐다고 했잖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법한 스캔들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상한 이야기 한두 개쯤은 있을 법도 한데, 왕실의 명예가 정말 곤두박질칠까 봐 차마 입에 얹지 못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이상한 의심과 상상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혹시 문어 다리를 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건 약과인 상상이.

……하지만 차마 내 입에 담을 수가 없는 소리가 있는 법이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한 나는 앞에 있는 와인 잔을 움켜쥐고 벌컥벌컥, 물 마시듯 들이켰다. 순간 기겁한 카림이 그런 내 팔을 붙잡았다.

“프리드린? 이거 엄청…….”

그리고,

“흐, 흐끅!”

“독한 술인데…….”

나는 내가 술에 아주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 * *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던 나는 겨우 중얼거렸다.

“물…….”

내 중얼거림과 동시에 스르륵, 이불이 내려갔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감쌌다. 동시에 얼굴 위로 물이 확 쏟아졌다.

매끄러운 피부를 때리는 차가운 물벼락 덕에 기겁한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차, 차가워!”

“물 달라면서.”

“누가 이렇게 달라고 했냐고요!”

카림의 무심한 대꾸가 들려서, 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그의 태도가 평소와 다른 듯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장난이 심하잖아요! 곱게 깨우면 덧나요?”

“곱게 깨워?”

카림이 조용히 내 말을 곱씹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그는 생긋, 하고 매혹적인 웃음을 내비쳤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다람쥐야,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볼래?”

“네? 제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관절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아침부터 물벼락을 내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내 반응에 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압박했다. 그 행동에 되묻고 싶었다.

‘저기요, 머리 아픈 건 나거든요?’

근데…… 난 머리가 왜 아픈 거지?

“프리드린, 나 오늘은 아주 많이 진지하거든.”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카림의 태도는 평소와 전혀 다르긴 했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다른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네.”

“이것 참…….”

카림은 제법 살벌하게 읊조렸다.

처음 보는 태도에 등골이 꽤나 오싹했다. 한기가 등줄기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 등줄기?

“정말 기억 안 나? 아무것도?”

평소와 전혀 다른, 굉장히 진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내 귀에 닿는 소리는 아니었다. 바보처럼 내 상태를 살펴봐야 했으니까.

아까 벌떡 일어난 덕에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하늘을 물들이던 석양과 사이좋은 저녁 인사를 나누고 있는 뽀얀 내 상체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후다닥 이불로 몸을 가린 나는 베개를 잡았다. 예전의 훌륭했던 손목의 스냅을 떠올리며 눈앞의 변태를 퇴치하기 시작했다.

“이, 이! 변태야!”

“……갑자기 또 뭐라니?”

“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손 안 대기로 했잖아요!”

얼마 전에는 얌전히 맞아준 카림이었지만, 이번에 그럴 생각이 없던 모양이다.

폭신한 베개가 둔기가 되어 휘둘리던 순간, 그는 내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을 한 채 한숨을 푹 내쉬는 건 덤이었다.

“……이거 참.”

“놔, 놔요!”

카림의 손을 뿌리치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그의 손아귀는 철옹성처럼 굳건했다. 포기를 모르는 내 끊임없는 발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나도 안 귀여운 다람쥐야.”

한숨 서린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뱅글 돌았다.

어느덧 등 뒤에 푹신한 무언가가 닿았다. 허공을 우러르는 내 시야에 가득 차오른 이 남자의 푸른 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현해줘?”

지금 이 순간, 무척이나 위험하게만 느껴지는 나긋한 음성이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어느덧 그가 내 위에 올라타 있었다. 양손이 단단하게 내 어깨를 붙잡았다.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무릎까지.

……응?

그 익숙하지 않은 무게감 밑에서 기겁한 나는 언성을 높이고 보았다.

재, 재현이라니.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기억도 안 난단 말이다!

“자, 잠깐만요, 잠깐!”

“어제 말이야.”

느끼한…… 아니,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손이 뺨을 쓰다듬었다.

뜨거운 손이 천천히 뺨을 타고 올라왔다.

“네가.”

“저, 저기요? 리, 릴?”

내 목소리를 무시한 손이 내 풍성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벗겼지.”

그 충격적인 말을 듣는 순간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정신이 하얗게 빛바랬다.

내, 내가? 벗겨?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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