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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24화 (2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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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높여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와 같은 붉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여느 때보다 훨씬 화려한 황금빛 드레스 자락이 커튼처럼 펄럭였다.

언니는 쏜살같이 내 앞까지 달려왔다. 원래 나보다 키가 큰 데다가 높은 구두까지 신은 언니는 가볍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언니를 빤히 올려다보던 나는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리엘?”

그와 동시에 언니의 손이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빡! 하고, 제법 둔탁한 걸 후려갈기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정말 있는 힘껏 때린 듯 눈앞에서 별이 보였다. 눈물이 찔끔 난 나는 뒤통수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힝, 아프잖아!”

“이게 어디서 감히 하늘 같은 언니의 이름을 막 불러?”

이게라니! 언니는 저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을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항상 그랬듯 언니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내가 물건이야? 앙? 사람한테 이게가 뭐야, 이게가!”

“아리엘!”

옆에 서 있던 형부도 화들짝 놀라 뒤늦게 언니를 붙잡았다. 항상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형부도 평소와 다르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 지금 이그드라실께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그, 그러게? 언니, 나 이제 살아 있는 신이야! 이거 저거 하지 말라고!”

“흥.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언니가 삿대질을 하다가 팔짱을 꼈다. 이윽고 턱을 당당하게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프리드린 라비아는 그래도 내 앞에선 죽을 때까지 코찔찔이 쥐새…… 쥐순이야.”

“프리드린 라비아라니.”

카림이 언니의 외침을 자연스럽게 정정했다.

“프리드린 데스테리언을 잘못 말한 거겠지.”

“아, 그렇네요. 이제 아니지.”

자연스럽게 수긍한 언니는 도전적으로 턱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코찔찔이 쥐새…… 쥐순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요, 카림. 프리드린은 제게는 평생 난쟁이 똥자루 같은 생쥐라고요.”

말은 좀 거칠었지만 반응이 좀 의외였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언니라고 해서 다를 게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빨래판 올챙이 배 우리 언니가…….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닌 내 언니가…….

가슴에 찡하고 밀려드는 것이 있었다. 눈시울이 핑 하고 돈 나는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연스럽게 내려간 시선 덕에 언니의 팔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생쥐라, 비슷하네.”

카림은 슬그머니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대꾸했다.

“이제는 내 다람쥐야.”

…대체 대화가 왜 저렇게 튀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기요, 이 인간아.

댁 혹시 통통한 다람쥐 꼬리로 맞아본 적 있수?

* * *

신전에서 하는 말은 고루하고, 뻔하고, 지루하고, 영양가도 없었다. 신관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만 하면 카림이 막고 화를 냈으니 더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왜 내 알 권리를 침해하는 건데?

어쨌든 그렇게 왕실로 가는 마차 안에서.

다소 품위는 없지만 우아함도 없고, 그리고 가식도 없는. 자매만의 지나간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고작 세 살 위인 언니는 내 기저귀를 갈아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그럴 일이 있겠느냐고 늘 반박했지만 그 기저귀가 진짜 기저귀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언니는 내 가족이자 유일한 친구였고, 자매인 동시에 시녀였다. 언니 말대로 내가 아픈 시절의 간호를 언니가 거의 다 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 누워 있는 것밖에 없던 그 시절.

난 늘 언니가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 속을 살아 숨 쉬며 걸어갔다.

지금 어쩌다 내가 뒤집어쓴 이 신화도 언니에게 들은 것이었고, 말리크와 말리카. 언니와 형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언니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런 언니는 늘 내 빛이자 태양이자 하늘이었다. 언니야말로 내 작은 세계이자 살아 있는 신이었다.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는 동생을 보면서 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언니는 언니라는 이유로 어떤 걸 감당해야 했을까.

나는 아팠지만 언니는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언니는 힘든 내색은 했지만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항상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싸운 기억이 더 많았으니까.

싸울 때마다 난 언니를 올챙이라고 놀렸고, 언니는 자신은 빨래판이라고 슬픈 반박을 했다. 언니는 그런 나를 늘 ‘쥐새끼 같은 게!’라고 표현했다.

언니는 반박이라도 했지, 난 반박할 말도 없었다. 왜 쥐새끼라고 부르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아까는 형부가 옆에 있어서 쥐순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아마 곁에 카림만 있었다면 주저 없이 쥐새끼를 외쳤을 위인이셨다, 우리 언니는.

“……언니까지 날 이상하게 대했다면 정말 울 뻔했어.”

언니의 품에 폭 안긴 나는 반쯤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얘는, 지금은 꼭 안 우는 것처럼 말하고 그래. 어이구, 내 쥐새끼.”

…저 쥐새끼 소리 왜 안 하나 했다.

그래도 언니가 제일…… 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히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건 사실이었다.

“프리드린, 내가 늘 말했잖아. 넌 바락바락 대들 때가 제일 귀엽다고.”

언니는 아팠던 내가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더 투닥거리면서 다퉜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 이 성질머리도 언니가 만들어 낸 건 아닐까? 근데 저 말, 왜 언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들은 것 같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적 나지막한 감탄사가 들렸다.

“오.”

소름이 오소소 돋는 순간이었다.

아, 그래. 이 사람도 언니와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카림은 호수를 닮은 물빛 눈을 반짝 빛냈다.

“처형께서 보는 눈이 있으시네.”

“원대하신 카림, 이런 말씀 드리기 조금 그렇지만 저와 생각이 비슷하신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프리드린에 대해서는요.”

정말, 그런 거 보면…….

첫 만남이 무시무시했음에도 내가 카림에게 바락바락 잘 대들 수 있던 건 언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인간이 그 괴한들을 죽인 걸 생각하면, 나도 똑같이 죽어 나갈 걸 생각해야 했다. 애초에 내 최대 꿈은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었다.

내 목을 보존하려면 카림에게 절대 대들지 말아야 하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겁을 상실한 나는 카림에게 말 한 마디 지지 않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사람이 내게 하는 말이 언니와 종이 한 장 차이잖아?

무심결에 둘이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날 죽이지는 않겠다고, 정말 무의식중에 판단한 건 아닐까.

……어쩌면 이 두 사람, 의외로 쿵짝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 쿵짝이 날 괴롭히는 걸로 탄생하면 어쩌지?

“다람쥐라니, 원대하신 카림의 말씀에 참 감탄했답니다. 원대하신 카림께서 보시기에도 프리드린은 쥐상이죠?”

“맞아. 그 말을 듣고 보니…… 쥐에 좀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아니야, 내 다람쥐는 다람쥐지.”

그래, 그래도 쥐새끼보다는 다람쥐가 낫지. 다람쥐는 귀엽기라도 하잖아!

카림은 언니와, 언니의 품에 폭 안긴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속삭였다.

“자매가 참…… 안 닮았네.”

“그게, 프리드린은 어머니께서 주워 왔거든요.”

“정말? 어디에서?”

“신전 다리 밑에서요. 그래서 이그드라실에 꽃이 피었나 보죠.”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하는 언니의, 내 등을 토닥거리는 손이 미묘하게 진동했다.

저것도 언니가 늘상 내게 잘하던 농담이었다. 어릴 때 저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울고는 했었는데.

“또한 원대하신 카림이시여, 애석한 일이지만 제 동생은 제가 먼저 설치류로 낙인찍었답니다. 이미 십팔 년이나 그렇게 불러왔어요. 그러니 다람쥐 말고 쥐로 통일하는 게 어떨까요?”

“싫어.”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다람쥐는 말이야.”

카림은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답이었다.

“겨울에 자기가 먹을 먹이를 미리 땅에 파묻어 놔. 하지만 자기가 먹이를 파묻어 둔 위치를 매번 잊어버려서 또다시 먹이를 찾아 파묻어 두는 걸 반복하지. 반면 쥐는 약삭빠르잖아?”

쥐는 똑똑하고 다람쥐는 멍청하다는 거였다.

당연히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했다. 입술이 닷 발은 튀어나와 있었을 거다.

“저기요, 저 멍청하다는 소리 그렇게 돌려서 안 하셔도 되거든요?”

“조건 2번.”

카림이 툭 던지는 말에…… 나는 순간 내 자신이 멍청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 혼인 후 두 사람은 다른 호칭 대신 서로를 반드시 이름으로 부른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카림과 했던 말도 있었는데, 저기요라니. 스스로의 멍청함에 진심으로 탄복할 뿐이다.

‘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면 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이……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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