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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10화 (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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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렇잖아! 결혼은 무덤이라더니……. 장례식 끝나고 내 무덤에 꽃 한 송이 놓고 도망갈 생각이지? 그렇지?”

사실 언니라면 저렇게 하고도 남았다. 어쩌면 부케로 쓰라고 백합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결혼식이 아니라 완벽한 장례식일 텐데 말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장례식이라니.

상상만 해도 엄청나다.

언니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며 속삭였다.

“프리드린, 이 언니를 보렴. 내가 결혼하고 무덤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니?”

그건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결혼한 지 몇 년 안 되긴 했지만, 형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니는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언니가 말을 이었다.

“완벽한 새 인생의 시작이야. 무덤은 무슨, 천국을 여행해도 이렇게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은걸.”

“그건 언니가 형부를 잘 만나서 그런 거고.”

“어머. 물론 우리 여보야가 멋지고 좋고 완벽한 사람이긴 해. 네 눈에도 그래 보이니?”

언니는 상기된 얼굴로 속삭였다. 형부를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형부가 좋은 사람인 건 맞았다.

그런데…… 지금 저 말이 내 앞에서 나오냐고! 난 정말 지옥으로 들어가는 건데!

“……어련하시겠수.”

“왜, 넌 잘 못 만난 것 같아?”

“당연한 소리를 왜 해!”

내 비명 같은 목소리에 언니는 까르륵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한 대 쥐어박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다.

“너무 걱정하지 마.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야. 미친개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너한테만 잘해 주면 돼. 바람둥이가 결혼할 때에는 정말 상대에게 푹 빠져 있을 때라고 하던데, 널 보고 정신 차리신 걸지도 모르잖아.”

“언니? 직접 겪어보면 절대 그런 말이 안 나와.”

몸서리를 치며 한 말에 언니는 웃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카림과 백모님이 잘 알던 사이 같던데, 언니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나 같은 꼴은 경험해 본 적이 없을 테지.

“상상을 초월하는 돌아이라고! 결혼 안 해 주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니까?”

“오, 저런. 자살 협박까지 했어? 그거야말로 연극에나 나오는 집착남의 정석…….”

“아니! 죽어 버리겠다가 아니라 죽여 버리겠다고! 나를 죽이겠다고!”

…언니의 태도에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불과 오 분 전에 한 말이기 때문에 모르는 척, 날 놀리고 있는 거겠지만.

“방금 전에 말했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고.”

그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엄밀히 말하면 백모님도, 심지어 말리카까지 줄기차게 얘기한 것이었다. 정말 냉정하게―라고 쓰고 속물적으로라고 읽는다― 생각하면 언니의 말이 백번 옳았다.

“거기서 하나 더. 넌 이제 성후가 될 거잖아?”

“거기까지는 바란 적도 없어! 나도 언니처럼 소소하게 귀부인 정도면 만족하려고 했단 말이야!”

사실 귀부인도 전혀 소소한 게 아니었다. 귀부인은 영주의 아내를 부르는 말이었고, 당연하게도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으니까.

“근데 그거 아니?”

내 말은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은 언니가 말을 이었다.

“언젠가 넌 아름다운, 카림은 존모하는 소리를 들을지 누가 알아?”

그 말에 순간 경악한 나는 눈을 크게 늘였다.

‘아름다운’은 말리카를, ‘존모하는’은 말리크를 부를 때 쓰는 수식어였으니까.

덕분에 근처에 누가 있나 없나 살펴보아야만 했다. 다행히 언니와 나, 단둘밖에 없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소리를 왜 하고 그래?”

“죽기는 무슨. 카림께서 그 정도 위치라는 거야.”

아, 그걸 누가 모르냐고!

무엇보다 나는 양심이라는 게 있었다. 양심이 너무 깨끗해서 문제였다.

아름답고 가련한 말리카의 자리를 넘보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로. 무엇보다 지난 일 년간 말리카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컸다.

“사랑하는 프리드린, 부디 성후가 되면 이 언니와 형부를 모른 척하지 말아줘.”

…이어지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어쩐지, 너무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싶었다.

아주 솔직해지자면, 내가 언니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머리채를 잡힐 줄 알았다. 아니면 결혼하기 전날까지 날 두고두고 놀려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한 이후에는 두 번 다시 저럴 수가 없을 테니까.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목표였구만.”

“목표라니, 얘는. 언니 서운하게.”

“뭐가 서운해! 목표 맞잖아!”

“내가 너한테 저 정도 부탁도 못 하니? 혹시 내가 네게 못해준 거라도 있어? 너 기저귀 갈아주던 시절이…….”

“무슨 기저귀를 갈아줘! 언니랑 나랑 겨우 세 살 차이거든?”

세 살배기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갓난이 기저귀를 갈아준다면, 그건 프레이르 신문 일 면을 장식할 일이었다. 천재가 나타났다며 대서특필되지 않을까나.

하지만 언니는 절대로 천재가 아니었단 말씀.

“너 누워 있을 때 매일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 해주곤 했잖아? 아플 때 누가 몸 닦아줬어?”

잠시 말을 멈춘 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답을 강요하는 모습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언니가.”

“진통제는 누가 먹여줬니?”

“그것도 물론 언니가.”

“잘 아네. 네 이마에 물수건 얹어준 것도 나고, 각혈할 때 닦아준 것도 나고, 위독할 때 밤새 손 붙잡고 기도하던 사람도 나야. 네 병간호의 구 할은 내가 했어.”

“물론 그건 아주 고맙게 생각해.”

“그래, 그럼 그 은혜를 생각해야지.”

…저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언니는 만족스럽게 허리를 주욱 펴며 속삭였다.

“정 불안하면 혼전 계약서라도 쓰든가.”

“……혼전 계약서?”

“응. 결혼한 후에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미리 정하는 거지.”

귀가 솔깃했다.

구미가 당긴 나는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혹시 형부랑도 썼어?”

“우리가 그런 걸 왜 쓰니? 너처럼 불안할 게 없었는데.”

언니가 무척이나 얄미웠지만 저 말이 맞았다. 언니야 지참금만 적당히 들고 가면 됐을 테니까.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나는 힘없이 의자에 기대었다.

카림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혼전 계약서는 아주 좋은 생각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떤 걸 제안할 수 있을까.

생각나는 게 전혀 없던 나는 다시 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럼 난 혼전 계약서에 뭘 쓰는 게 좋아?”

“……안 되겠다. 쥐새끼야.”

이런 내가 답답했던 듯 언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부터 특별 교육 들어간다. 귀 씻고 잘 들어.”

“으, 응.”

그렇게 언니는 아주 자잘한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사소하게는 돈 문제부터 시작해서, 몇 발 앞서 나가서는 자식 이야기까지.

그러기를 한참, 열띤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밤이 저물었다.

세상이 온통 깜깜해진 깊은 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왈칵 열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언니와 내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카림이 그곳에 있었다.

…벽에 기댄 카림은 어울리지 않게도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이윽고 익살스러운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와는 묘하게 다른 태도였다.

“안녕?”

“원대하신 카림을 뵙습니다.”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언니가 드레스 자락을 말아 쥐며 속삭였다.

나는 인사 대신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밤에 카림이 이곳에 나타날 이유가 없잖아?

“이 야심한 시각에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왜긴.”

두 눈으로 날 품은 카림은 예쁘게도 웃었다.

“사랑하는 아내님 보러 왔지.”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방금 들은 게 대체 어떤 멍멍이 소리란 말인가?

뭐요, 사랑하는 아내님?

기가 막혀서 아무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입을 곱게 다문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카림의 오른쪽 입꼬리가 비뚤게 말려 올라갔다. 이윽고 그가 내뱉은 말이란.

“반응이 왜 그래. 부끄러워, 우리 자기?”

자, 자, 자, 자, 자기?

소름이 오싹 돋았다. 느끼해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가, 갑자기 왜 저래? 미쳤어?

몸을 부르르 떤 나는 겨우 속삭였다.

“……보, 보셨으니 됐죠?”

“어라, 왜 이렇게 차가워지셨을까. 둘만 있을 때에는 안 그러잖아. 좀 다정하게 대해줄 수 없어?”

“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

내 냉정한 말에 카림이 혀를 내둘렀다.

“와. 너 지금 나를 쫓아내는 거야?”

“카림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언니와 오붓하게 있…….”

“어머나,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언니 핑계를 대며 내쫓으려고 하는데, 눈치코치 없는 언니는 웃으며 속삭일 뿐이었다. 순간 당황한 난 언니를 돌아보았다.

“어, 언니?”

“우리 프리드린.”

문을 향해 우아한 걸음걸이를 옮긴 언니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하얗게 드러난 내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건드리며 속삭였다.

“이 언니는 열과 성을 다하여 너를 응원한단다.”

……응원이라뇨? 뭘?

“그러니 부디, 좋은 밤 보내렴.”

짓궂게 말하는 언니의 뺨이 어딘지 모르게 붉었다.

저기요?

언니?

……좋은 밤 보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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