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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5화 (5/115)

5

슬프고 가슴 아프게도, 카림 이후에 내게 춤을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카림은 제 생일 연회를 돌아다니면서 이 여자, 저 여자와 열심히 시시닥거렸다.

“원대하신 카림, 오늘은 뭐 즐거운 놀이가 없을까요?”

“즐거운 놀이라. 내가 오늘 받은 게 많으니 베풀기도 해야겠지.”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카림은 술에 스스로를 내맡기며 열심히 그 자리를 즐겼다. 술 한 동이를 단번에 비워낸 카림은 그 근처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여준다면 와인과 보석을 하나씩 하사하지.”

그러면서 보란 듯 팔찌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순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팔찌는 척 보기에도 사치스러웠다. 귀족이라고 한들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가진 게 많기에 더 욕심이 많은 이들이었다. 당연하게도 눈빛이 바뀌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카림의 앞으로 덤벼들었다.

“제가 노래를 잘 부릅니다! 한 곡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카림. 아일보다는 제가 더 잘 부릅니다. 저 먼저 하겠습니다!”

카림은 그들 앞에서 팔찌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그 꼴을 보며 카림이 왕실의 체면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하는 이유를 알 법했다.

왕실의 망나니구나.

혼자 멍청하게 앉아 있던 나는 화려한 연회를 구경하기만 했다.

무척이나 기대했던 첫 번째 연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이게 다 카림 때문이다.

* * *

그렇게 조금은…… 아니, 많이 억울하게 밝아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말리크와 말리카가 하루 늦게 카림의 성에 도착했고, 내게 조찬을 함께하자는 초청장을 보냈다.

“프리드린, 이건 영광이야.”

초청장을 보고 입이 귀에 걸린 백모님이 연신 속삭였다.

아침부터 하녀의 손아래에서 열심히 꾸며지고 있던 난 겨우 대답했다.

“네, 영광이에요. 분에 넘치는 행운이죠. 다 백모님 덕이에요.”

“그렇지? 그러니 잘해 보렴.”

“잘하라뇨? 뭐를요?”

“카림과 잘되어야지. 어제 보니 카림께서는 네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던데.”

…카림과 잘되기를 바란다니, 지금 이 무슨 고양이가 수영하는 소리요? 어제 그 꼴을 보고도 저런 말이 나오나?

진심으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백모님!”

“까, 깜짝이야. 애 떨어지는 줄 알았잖니. 잘 생각하렴, 프리드린.”

내 고함에 백모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너도 알다시피 늦은 첫걸음이잖니. 적어도 이 년 전부터는 연회 자리에 드나들었어야 좋은 혼처를 찾을 수 있었어. 이번이 지나면 네게 또 다른 기회가 올 것 같니?”

백모님의 말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사실 급해야 할 건 내 쪽이 맞았다.

나는 귀족으로서 아슬아슬한 위치였으니까.

조부가 성주라고 해도 아버지가 차남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게 없었다. 말리카의 시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말단이다.

그 와중에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늦어서, 나와 적당히 맞을 법한 상대들은 이미 모두 결혼한 상황이었다.

내가 괜찮게 사는 방법은 작위를 받는 것뿐인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백부님께서는 동생에게도 작위를 나눠주는 걸 싫어하셨으니, 조카에게는 오죽하겠나.

나는 한숨과 울상을 섞었다.

“아무리 그래도 카림은 좀…… 아니, 많이 그래요.”

“모두 부러워할 일에 왜 그렇게 소극적이니? 아리엘이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을 텐데. 네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인 걸 정말 몰라?”

“물론 잘 알지만요…….”

한숨을 푹 내쉰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림께서는…… 아시잖아요, 어떤 소문이 도는지.”

“어떤 소문 말이니?”

“잘 아시잖아요.”

“소문과 실상은 다르단다. 직접 겪어보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거야. 좋은 분이셔.”

…그러면 백모님이 백부님과 이혼하고 그 사람과 재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돌려 말하는 걸 택했다.

“어제 직접 봤는걸요.”

“프리드린, 카림의 위치를 생각해보렴. 카림께서는 애초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분이실 뿐이야.”

“바람둥이라는 것도요?”

내 말에 백모님은 순간 할 말을 상실하신 듯했다. 뭐,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분이 절 선택하신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니? 그분이 네게 줄 수 있는 걸 생각해보렴.”

…무척이나 속물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괜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망가져 버렸다는 내 구두.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었지만 카림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을 터였다. 당연히 그것보다 훨씬 좋은 걸 내게 줄 수 있겠지.

그 좋은 것 중 하나인 유리 구두는 파티가 끝난 직후에 무사히 벗겨졌지만.

어쨌든 헛된 꿈일 터였다.

카림쯤이나 되는 위치에서 고작 나와 결혼할 이유가 없으니까. 자신을 지지하는 자들과 합세해서 말리크가 되고 싶어 한다면 더.

“그래도…… 카림께서 뭐가 아쉬우셔서 절 선택하겠어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린 말에 백모님이 눈을 동그랗게 늘였다.

“네가 뭐가 어때서.”

“현실이 그렇잖아요.”

“아주 예쁘잖니.”

…딸이 없는 백모님의 눈에는 엄청난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

나도 저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때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만 있던 시절에는 그랬다. 하지만 말리카의 시녀로 들어가고 깨달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본인이 말하기에는 재수 없는 소리지만 물론 나도 예쁜 축이었다. 다만 세상에는 예쁜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을 뿐이지. 적어도 말리카의 시녀 중 빼어나게 예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말리카의 시녀는 외모가 괜찮지 않으면 뽑지 않으니까.

그러니 외모는 메리트가 전혀 없었다. 차라리 못생긴 사람이 훨씬 튀어 보일 정도로 말이다.

“어제도 말했지만 자신감을 가지렴. 뭐든 해봐야 아는 거란다.”

아무래도 백모님은 나를 카림과 엮어주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저것만큼은 죽어도 사양하고 싶다.

바람둥이고 뭐고, 왕실의 망나니고 뭐고.

‘내 취향이야.’

…카림이 한 말이 귀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 * *

말리크 부부와 카림과 함께하는 조찬은 만찬처럼 화려했다. 아침부터 완벽한 성장을 한 나를 본 아름다운 말리카는 우아하게 눈을 휘었다.

“프리드린, 어서 와요. 내가 곁에 붙어서 챙겨줬어야 했는데 어제 바로 내려올 수가 없었어요.”

“아니에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말리카의 은혜로 부모님께서도 한 시름 더셨어요.”

“그렇다면 참 다행이네요. 자, 이쪽에 앉으세요.”

말리카가 가리킨 곳은 카림의 옆자리였다. 덕분에 말리크와 묘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 카림을 괜히 훑어보게 되는 것이다.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카림은 혼이 나가 있는 듯 얼빠진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어제 연회에서 마신 술 때문인 모양이다.

내가 마지못해 그 옆에 앉자 하인들이 와인과 치즈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말리크가 가장 먼저 치즈에 손을 뻗었다. 한 입 베어 물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리카에게 치즈를 건네었다.

“독은 들지 않은 듯해. 그대가 좋아하는 맛이니 먹어보시오.”

독이라니, 무척이나 살벌한 한마디였다. 얼이 빠져 있던 카림이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독이라니요, 형님. 섭섭한 말씀을 하시고 그러십니까.”

그 볼멘소리에 말리크가 껄껄 웃으며 속삭였다.

“섭섭하다니. 그러다 정말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직접 기미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네가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다만 아랫것들을 너무 믿지 말거라, 릴.”

“제 성에 있는 사람도 못 믿으면 그냥 죽어야지요. 정 걱정이시면 형님께서 믿을 만한 이들로 새로 뽑아 주시겠습니까? 형님께서 오실 때마다 제가 아주 피가 마릅니다.”

카림이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그 행동과 다르게 나름대로 웃는 낯인 걸 보면 말리크와 으레 하는 농담 따먹기인 듯했다.

……살벌한 농담을 하고 있네.

만에 하나 이그드라실께서 삶을 선택할 기회를 주신다면, 절대로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도록 빌어야겠다.

한편 말리크의 말대로 치즈를 입에 댄 말리카는 자그마한 새처럼, 세상 고운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오, 정말 맛이 좋군요. 요즘 왕궁의 것들은 이런 맛이 나지 않는데.”

“그렇지, 요즘 건 참 맛이 별로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 모르겠어.”

“며칠 전 이 성의 요리를 맡은 시녀가 바뀌었거든요. 말리카께서 마음에 들어 하신다면 새로 온 시녀를 왕궁으로 보내겠습니다.”

카림이 부드럽게 제안했다.

카림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 말리카는 생글생글 눈을 잘도 휘었다. 그 모습이 참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카림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할 뿐이에요. 그러면 저도 그 대가로 제 시녀를 한 명 카림께 드려야겠어요.”

“말리카의 기쁨이 곧 프레이르의 기쁨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대가라 하심은, 혹시 지금 제 옆에 있는 라비아 영애를 말씀하십니까?”

……저기요들?

제가 물건입니까?

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카림은 잘만 지껄일 뿐이다.

“마침 딱 제 취향인데요. 말리카께서 제게 내린 선물 중 가장 좋은 것이군요.”

아, 또 취향이래. 게다가 것이래.

기분 나쁘다고! 누가 사람에게 거라고 하냐고, 이 작자야!

내 마음속의 발악과 다르게 말리카의 미소가 짙어졌다.

“카림의 취향이라니, 제 안목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대 심미안은 언제나 세계 제일이지.”

말리크가 말리카의 귓가에 입술을 들이밀었다.

둘은 정말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다.

이미 왕궁에서 많이 본 모습이라 내게는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카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못 볼 것을 본 듯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리카는 수줍게 웃으며 투덜거렸지만.

“레반은 언제나 절 좋게 봐 주신다니까요. 제가 왕궁 연회를 무구로 장식해도 아름답다고 하실 거예요.”

“당연한 것 아닌가? 그대가 그렇게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아마 이름난 무사들이 참여하는 자리이지 않겠나.”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전 당신을 절대 이기지 못하겠어요.”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나야말로 그대를 이길 수 없지.”

말리크는 말리카의 이마에 제 이마를 기대며 속삭였다.

“난 그대 말에 항상 복종하고 살아가는 이요.”

참 다정하고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결혼해서 남편과 저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카림은 저 모습이 영 눈꼴 시렸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켠 카림이 한마디 했다.

“두 분, 금슬이 좋은 것은 알겠지만 아침부터 너무하십니다. 혼자인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나요.”

“그러니 얼른 결혼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대체 언제까지 혼자 살 게냐?”

그 말에 카림의 시선이 나를 스치는 듯했다.

…괜한 소름이 오싹 돋을 때에 카림은 툭 대꾸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말리크는 근처가 다 밝아질 지경으로 환하게도 웃었다. 보는 눈이 없었다면 어깨춤을 출지도 모른다.

“정말이냐?”

“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할 게냐?”

“아마도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볍게 하는 대꾸였다.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내 몸에 소름이 오싹 돋는 걸까.

저게 날 겨냥하고 한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겠지?

암, 정신 나간 자의식 과잉일 거야.

괜한 오한에 몸서리칠 적 말리크의 말이 이어졌다.

“옆에 있는 라비아 영애는 어떠하냐? 네 취향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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