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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친개라 곤란하다-4화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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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는 적잖게 당황했다.

연회장에서의 비교적 가벼운 태도와는 상반된 어조였다. 그렇다고 카림의 눈빛이 진지하다거나, 어조가 살벌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심하게 툭 내던진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게 사신의 것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을 바싹 집어삼킨 나는 또다시 입술을 떨었다.

“네, 네?”

“말리카가 뭐라고 하면서 널 보냈냐고 물었는데.”

…뭐라고 하긴, 딱 일 년만 네 곁에서 널 좀 감시해달라고 하셨는데.

말리카는 굳이 저걸 숨기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카림이 그대로 날 죽일까 무서웠으니까.

불과 일 년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침대를 떠날 수가 없던 나였다.

이제 겨우 건강해져서 돌아다니게 되었으니 당연히 길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딱 잘라 부정…… 에 가까운 모르는 척을 했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한데요?”

“프리드린 라비아. 세린 성주의 차남, 라비아 영주가 꽁꽁 숨겨두었던 막내딸. 말리카의 시녀. 내가 너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이 정도거든.”

별것도 아닌 내 신상을 줄줄 읊은 카림이 손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가 습관처럼 미간을 모았다.

“말리카의 시녀가 결혼 상대를 찾겠다는 핑계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게 하필이면 내 취향이라니.”

내 취향, 이라고 말한 카림이 오묘한 눈빛으로 날 훑는 건 덤이었다. 그 눈빛의 의미를 생각지도 못한 나는 카림이 한 말을 곱씹을 뿐이었다.

‘취향, 취향이라고?’

어떤 게 취향이라는 걸까.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는 걸 즐기는 건가?

그렇다면 카림은, 정말로, 취향이 독특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저런 걸 즐기는 사람을 변태라고 부른다.

저래서 미친개라고 불리는 건가.

나는 겨우 중얼거렸다.

“취, 취향이시라뇨…….”

“뭐긴, 말 그대로지.”

카림은 참 매력적으로도 웃어 보였다.

오늘 그런 장면을 목격하지만 않았다면, 이 남자의 미친 멍멍이라는 별명을 알고도 홀라당 넘어갈 정도로 뇌쇄적이었다.

와, 저러니까 아침 점심 저녁 옆에 붙어 있는 여자가 바뀌나? 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 지경이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홀려서 들러붙을 것 같다.

“프리드린.”

아주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이상한 긴장이 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네?”

“혹시 다람쥐 같단 말 안 듣는지 모르겠네."

“다람쥐요? 갑자기 무슨…… 다람쥐요?”

“너, 다람쥐 같다고.”

그 말에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내게 쥐를 닮았다고 말하곤 했으니까.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마, 마음에 들어?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 서, 설마 취향이라고 하신 게 절 말씀하신 거였어요?”

“당연하지. 설마 뭘 말한다고 생각한 건데?”

평온하게 되묻는 거에 따박따박 따지고 싶었다.

‘그게’라면서!

세상 누가 사람을 그거라고 말하냐고!

당연히 사람이 아닌 다른 걸 지적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물론 저런 걸 그대로 내뱉기에는 내가 너무 새가슴이었다. 카림은 너무 무섭다고.

혼이 나간 채 겨우 대꾸하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그런 내 모습을 뜯어보던 그가 웃으며 속삭였다.

“너 지금, 뺨이 둥글게 부풀어 있거든. 다람쥐는 먹이 때문에 볼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데.”

카림의 손가락이 내 뺨에 닿았다.

그 순간, 보석 같은 이채를 품은 새파란 눈이 붉게 번뜩였다고 생각했다.

“넌 지금 먹이 대신 겁을 집어삼켰지.”

“…….”

“근데 그게 아주 귀여워. 그대로…….”

내가 입술을 달싹거릴 적 카림의 음성이 은밀해졌다. 일련의 일들 덕에 한껏 예민해진 사람의 귀를 자극하는, 느른한 음성이었다.

“한입에 꿀꺽 삼키고 싶어져.”

그 발언에 겁대가리를 상실한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전 쥐가 아닌데요.”

“……음?”

“먹을 게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고양이가 아닌데.”

그야 카림은 고양이라기보다는…… 사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긴 했다. 날 당장이라도 한입에 홀라당 집어삼킬 사자!

“왜 그렇게 경계할까.”

테이블에, 정확하게 말하면 내게 조금 더 바짝 다가붙은 카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설마 널 진짜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아서?”

“……원래요.”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알지 못한 채 지껄였다.

“사탕 준다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지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사탕 준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

“그리고 따지자면, 난 분명히 사탕 따위보다 더 좋은 걸 줬어.”

툭 대꾸한 카림의 시선이 구두에 닿아 있었다. 더 좋은 게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유리 구두를 의미하는 게 틀림없었다.

카림에게 휘말린 나는 구두에 손을 뻗었다.

“당장 돌려드릴…… 어, 어라?”

하지만 곧장 인상을 일그러뜨려야 했다.

그대로 구두를 벗어서 카림에게 던지…… 는 것까지는 아니고, 곱게 건네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발을 콱 물고 있는 구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힘을 줘 봐도 마찬가지였다. 거머리가 들러붙은 것처럼 아주 단단하게도 붙어 계셨다.

당혹을 숨길 수가 없었다.

“왜, 왜 안 벗겨져?”

“왜긴, 내가 선물한 거니까.”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한 대꾸였다.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요?”

“내가 침 발라 놨거든. 그러니까 안 떨어지지.”

으엑, 드러워!

날 놀리는 농담이었겠지만,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소리에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더 애가 타게 신발을 붙잡으며 힘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웬걸.

편지 봉투에 붙은 실링왁스처럼 아주 사랑스럽게 내 발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신다.

덕분에 애가 탄 내 손길만 더 다급해질 뿐이었다. 카림은 그런 내 행동을 빤히 지켜보다가 말을 이었다.

“난 한번 찍은 사람은 절대로 놔주지 않는데……. 넌 정말 너무한다.”

“제, 제, 제가 뭘요?”

“내가 선물했는데. 무려 네 앞에 무릎 꿇고 직접 신겨주기까지 했는데 말이지.”

나는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보니 그런 과거가 있었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된 일이었다.

“그런 걸 그냥 벗어버리려고 했어? 와, 태어나서 이런 대우 처음 받아 본다.”

카림이 자연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다. 저 말이 맞았을 것이다.

나도 오늘 그런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감격해서 말도 못 했을 테니까. 이렇게 벗어버리긴 개뿔, 발 냄새에 질식해서 죽기 직전까지 신고 있었겠지.

그러다 악취를 참다못한 근처 사람들이 강제로 벗겨내면 그때 집안의 가보로 장식했을 터였다.

이그드라실의 유지를 잇는 카림은 그런 위치였다.

‘하지만 내 상황이 상황이잖아?’

불과 몇 시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내가 뭘 보고 왔는데!

이번에는 언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제, 제가 언제 신겨달라고 했냐고요!”

내가 생각해도, 이때의 나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채였다. 아마 정신이 가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정말 신발이 신경 쓰이셨으면 제가 실수로 두고 간 걸 가져다주셨으면 된 일 아니신가요! 아니, 이걸 주셨어도 굳이 그렇게 신겨주실 필요는 없었다고요!”

“밟혀서 다 망가진 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아마 그 난리통에 신발이 엉망이 된 모양이다.

아,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싸고 좋은 거였는데. 아끼고 아끼다가 오늘 겨우 신어볼 용기가 생겼었는데.

내가 저도 모르게 울상을 지을 적 카림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 있었어.”

“……네?”

“너, 내 취향이라니까.”

이어지는 말에 그 어떤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끔찍해야 하는 건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 참석하는 연회라니.”

매우, 굉장히, 엄청나게 만족한 듯 카림이 가슴을 쭈욱 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카림의 행동에 감격하며 구애의 춤을 춰야 하는 건 내 쪽이었다.

하다못해 이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육탄공세라도 해야 했다. 이보다 더 훌륭한 홍보는 없었으니까.

카림은 밤낮으로 여자가 바뀐다고 하니 영영 코가 꿰일 일도 없을 테고.

“처음이란 참 특별한 경험이지. 그런 와중에 생애 첫 춤을 엉뚱한 놈한테 뺏길 수야 없는 일 아니겠어?”

“혹, 혹시 말이에요…….”

심호흡을 한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올려, 카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기질적인 그 물빛 눈.

아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른 체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그, 그래서 지금 절 유혹하신다거나…… 꼬신다거나…… 그러시는 건……. 제 완벽한 착각이시겠죠? 호호, 물론 카림께서 저 같은 사람에게…….”

“허.”

“그러실 리가 없…….”

“그걸 이제 알았나.”

거리낌 없는 긍정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정신머리가 가출해버렸다.

“근데 그거 알아?”

“뭐, 뭐, 뭐, 뭘 말씀하시나요……?”

“너, 바락바락 소리 지르니까 더 마음에 들어.”

이건 뭐, 구시대에 유행한 ‘내 뺨을 때린 건 네가 처음이야’냐!

눈이 막히고 코까지 막혀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입술만 덜덜 떠는 것뿐이었다.

뭐 이런…… 정신 나간 작자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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