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서흔이 문을 열고 나오자 다이닝 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 가지고 되시겠어요? 조금 더 든든하게 드셔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본부장님은 다 좋은데 아침을 너무 적게 드셔.”
용산댁의 애정 섞인 잔소리가 룸에 퍼졌다.
“바깥 밥만 먹다가 집에 들어오면 집밥이 생각나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렇게 사 먹기만 하는데 집밥 생각 안 났어요?”
“내가 잘못했네요.”
“본부장님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요. 나는 좀 더 든든하게 드시고 다니면 좋겠어서 그렇지.”
“알아요. 아침엔 입맛이 별로 없네요.”
건욱이 낮게 웃었다.
“아침만 그런가. 저녁에도 그렇고. 매끼가 그런걸. 밥심이 있어야 일을 하는데.”
엄마가 잔소리를 늘어놓듯 이야기를 하던 용산댁이 방에서 나오는 서흔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어? 일찍 일어났네요. 얼른 와서 본부장님 앞에 앉아요.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전복죽 만들어 봤는데 괜찮아요?”
서흔은 용산댁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네, 저 전복죽 좋아해요.”
“다행이네, 우리 본부장님처럼 남기지 말고 팍팍 들어요.”
용산댁은 서흔 앞에 먹음직스러운 전복죽 한 그릇을 놓아 주었다. 양이 상당히 많았다.
“잘 먹겠습니다…….”
서흔의 놀란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숟가락을 들긴 들었는데,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나, 넘어가니까 먹은 그릇만 개수대에 담가 줘요.”
용산댁이 서흔에게 부탁을 하고는 다이닝 룸을 나갔다.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고 했지만, 이 집사와 용산댁은 차 회장과 건욱의 식사만큼은 직접 챙겼다.
그 때문에 그녀들은 늘 바빠 보였다.
“죽 좋아한다더니, 왜 안 먹어요.”
서흔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건욱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녀와 다르게 작은 그릇에 담겨 있던 죽을 다 먹은 후였다.
“먹을 엄두가 안 나네요. 한 번 수저 닿으면 죽은 삭잖아요. 그렇다고 덜어 놓자니 퍼질 테고, 남기자니 예의가 아니고.”
“그럼 다 먹어야겠네요.”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태평하게 말하지 말아 줄래요?”
“내 일은 아니니까.”
“뭐예요, 진짜.”
얄궂게 말하는 건욱에 서흔이 인상을 썼다.
“좀 더 먹을 생각 없어요?”
서흔이 그의 빈 그릇을 보며 물었다. 건욱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깁스 푸는 날이죠?”
“아, 네.”
“잘 다녀와요.”
건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걸쳐 두었던 재킷을 팔에 드는 모습에 서흔이 입을 열었다.
“출근하는 거예요?”
“네.”
“차건욱 씨도 잘 다녀와요.”
별다른 인사 없이 그는 별채를 나갔다.
서흔은 망설이다가 죽을 한 수저 떠먹었다. 고소한 전복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녀는 남겨도 충분할 만큼 많은 양의 죽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묵묵히 먹었다.
* * *
“진짜 시원하다.”
깁스를 푼 서흔은 환희에 찼다. 아직은 팔이 잘 펴지지 않았지만 답답한 깁스를 푼 것만으로도 지금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런데 주 대리님은 어디 계시지.”
재활 치료까지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웬만한 일로는 그녀를 혼자 두지 않는 주 대리가 보이지 않았다. 서흔은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수납하러 간 건가.”
교통사고 이후 주기적으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도, 수납도, 모두 같이 다녔는데. 어딜 간 거지 고민하는데 주 대리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수납은 끝냈고. 일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퇴근합니다. 저 대신 본부장님과 함께 오시면 됩니다. 곧 도착하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