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아, 김 대리님 오신다.”
생각에 완전히 매몰되어 압사하기 직전, 김 대리가 A하우스에 도착했다.
어떻게 컨펌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김 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컨펌이 떨어지고 서흔은 W호텔을 나왔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뒤, 혼자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진수가 찾아왔던 날이 떠올랐다.
막무가내로 그녀의 손을 잡아끌던 불쾌함과 그런 감정을 일시에 상쇄하던 뜨겁던 입술…….
서흔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에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높은 언덕을 무작정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왜 높은 구두를 신었을까.’
경사진 비탈면을 내려가자 발끝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발가락부터 종아리, 허벅지까지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나답지 않게.’
그녀답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높은 구두를 신은 것도, 처음 본 남자에게 빠져든 것도, 경계심도 없이 그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 준 것도 모두.
‘아파.’
여린 살 어딘가가 금세 헐었는지 따끔거렸다. 피도 흐르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정 가운데를 긋고 지나간 상처를 떠올리느니 물리적 아픔에 숨을 헐떡이는 게 훨씬 나았다.
서흔이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길게 진동했다. 휴대폰을 꺼내자 지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세 글자가 떠 있었다.
건욱의 전화였다.
서흔은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오늘 그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전해야 했지만, 도저히 목소리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도저히 울음을 참지 못할 것 같아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진동이 울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서흔은 입술을 꽉 깨물고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한참이나 이어지던 진동이 잠잠해지자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
유서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