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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215)화 (215/218)

추가 외전 2화

“오필리어!”

“우, 우욱…….”

“왜 그래?”

황급히 그녀의 등을 두들기던 클레멘츠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맛이 없었나?”

“…….”

오필리어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게 아니에요…… 우웨엑!”

결국, 오전부터 궁의가 급하게 불려왔다. 그는 황태자의 초조한 눈빛에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진귀한 경험을 하며 진료를 마쳤다.

“경하드립니다, 황태자비 전하.”

“네?”

난데없이 무릎을 꿇는 궁의를 보며 되묻는 순간, 오필리어는 깨달았다.

‘이건 혹시?’

“회임하셨습니다.”

“아……!”

역시나 그거였다. 그녀는 얼떨떨한 기분에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행복한 가정을 꾸릴 각오로 결혼했다. 클레멘츠와 오래도록 함께 평생 살 계획이었으니, 토끼 같은 자식도 오손도손 낳아 기를 생각이, 막연히는 있었다.

‘토끼?’

순간, 오필리어는 꿈속에 나왔던 장군감 병아리를 떠올렸다.

‘병아리 같은 자식도 오손도손 낳아 기를 생각이 막연히는 있었지.’

막상 이렇게 새 식구가 찾아왔다고 하니, 어떤 아이일지 정말 궁금했다. 함께 해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 데려가고 싶은 장소들이 잔뜩 떠올랐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훨씬 많이, 아주 많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한편 과연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말 잘됐네요, 클레멘츠. 그렇죠?”

어쨌든 새 생명을 가졌으니 이런 축복이 또 없었다. 하지만 밝게 웃으며 돌아본 클레멘츠는 무표정했다.

“클레멘츠……?”

부풀어 올랐던 가슴이 순간 저릿해졌다. 혹시 그는 아이를 원치 않는 걸까? 이 소식이 별로 기쁘지 않은 걸까?

‘태어날 아이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어떡하지?’까지, 별걱정이 다 될 때쯤.

그리고 궁의 역시 너무나도 반응이 없는 황태자 탓에 긴장하고 있을 때쯤, 클레멘츠가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3만 크로나의 포상금과 귀족 작위를 내리겠다.”

궁의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

‘저기요?’

오필리어가 황당해 하는 사이, 그는 한술 더 떴다.

“그리고 오늘을 국경일로 지정해야겠군. 또 광장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금화를 뿌리는 것이 좋겠어.”

“저기, 클레멘츠.”

“물론 아이가 태어나는 날, 그리고 네가 무사히 회복하는 날도 국경일로 지정해야겠지. 걱정하지 마, 오필리어.”

“그게 걱정되는 거라고요!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어깨라도 붙잡고 탈탈 흔들면 정신을 차릴까 싶어 벌떡 일어나니, 클레멘츠가 놀라며 그녀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깃털로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너는 이제 일어나지 마. 몸에 무리가 간다.”

“대체 뭔 소리예요!”

“화도 내지 않는 게 좋겠군.”

“허허.”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걸 본 궁의가 인자한 웃음을 터뜨렸다.

“두 분께서 사이 좋으신 모습을 보니, 황가의 홍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맙네.”

“황태자 전하께서 많이 기쁘신 모양입니다. 분명 좋은 아버지가 되실 겁니다.”

그는 포상금과 귀족 작위를 점잖게 거절하며 물러갔다. 클레멘츠가 제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였다.

‘아니, 이게 정신을 차린 게 맞는 건가?’

오필리어는 매우 헷갈렸다. 겉으로 보면 클레멘츠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멀끔했다. 게다가 똑같이 냉철함으로 빛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이 전혀 달랐다.

“뭐가 먹고 싶지, 오필리어?”

이 질문만 벌써 오늘 열 번째였다. 오필리어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별로 먹고 싶은 것 없어요’는 불합격이었다. 그렇게 대답하면 클레멘츠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임신했을 때 끌리는 음식을 먹지 못하면 평생 서러움으로 남게 된다고 하더군.’

‘나는 너를 그렇게 서럽게 만드는 못난 놈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대충 대답하면, 그것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했다. 제대로 대답하라는 압력이 느껴지는 보랏빛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해 내야 한다.’

과연,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내 영혼의, 아니 위장의 외침은 과연 뭐라고 하고 있을지.

“음…… 꿀 케이크가 먹고 싶어요.”

“꿀 케이크.”

클레멘츠가 받아 말하자, 주변에서 조용하고도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오필리어는 나직이 한숨을 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힘들지 않나?”

“저 지금 딱 스무 걸음 걸었어요.”

“임산부는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아예 안 움직이는 것도 별로예요. 저는 많이 걷고 달리는 게 체질에 맞다고요. 지금도 한참 부족…….”

그때, 맞은편 복도에서 ‘카장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접시를 들고 오던 시종이 넘어진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라고 말하며 손을 뻗기도 전, 옆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클레멘츠가 살벌하게 뇌까렸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오필리어를 놀라게 하다니.”

‘저기, 솔직히 당신이 더 놀랐잖아요.’

소리가 나자마자 옆에서 움찔하는 거 다 봤다.

이어서 그가 손짓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다른 시종들이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 오필리어는 의기소침해져서 퇴장하는, 넘어진 시종을 걱정스럽게 응시하다가 클레멘츠를 보았다.

“간단하게 주의만 줄 거야.”

그가 그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왠지 정말로 믿음이 안 가는 표정이었다.

“다 조사해볼 거예요.”

그렇게 말했을 때, 사방에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진동했다. 꿀 케이크였다.

“황태자비 전하, 꿀 케이크를 대령했습니다. 혹여 색다른 것이 끌리실까 싶어 견과류, 초콜릿, 당근 등의 재료를 넣은 것으로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재료가 되는 꿀 역시 여섯 가지로 다르게 만들어 보았으니, 원하시는 걸 말씀만 하십시오.”

오필리어는 이마를 짚었다. 대충 경우의 수로 헤아려도 순식간에 몇 가지가 만들어진 건지 까마득했다.

‘아무리 남은 것들은 황태자 궁에서 일하시는 분들끼리 나눠 먹는다지만.’

크나큰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럴까 봐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 대신 단일 식재료를 댄 적도 있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오필리어는 사과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한 날을 떠올렸다.

심지어 케이크를 가져온 요리사와 시종들은 혹여나 큰 발소리를 내서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매우 폭신폭신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하아…….”

오필리어는 순간적으로 밀어닥치는 크나큰 근심에 한숨을 쉬었다. 즉시 클레멘츠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왜 그러지, 오필리어?”

“그러니까…….”

“안 되겠군. 너를 더 섬세하게 보살피기 위해서 당분간 모든 업무는 보좌실에 일임해야겠어.”

사실, 이미 그가 오필리어를 따라다니는 데 총력을 기울인 관계로 보좌실 업무는 이미 마비 상태였다. 오필리어는 최근 마주쳤던 카시스가 눈 밑이 시커멓게 물든 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던 것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니야…… 이러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

클레멘츠는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그뿐 아니라 클레멘츠의 명령으로 오필리어를 과보호하는 데 애쓰던 주변 사람들 역시 그 순간 허탈함에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임산부를 대접해 주는 건 좋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즉시 말할 테니 일상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자,

“……알았어.”

순순히 대답하기는 했지만, 클레멘츠는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충격받은 게 틀림없었다.

“서운해요, 클레멘츠?”

모든 일정이 끝난 밤, 오필리어는 그의 앞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클레멘츠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그냥.”

사실은 그도 스스로 유난을 떨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오필리어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히려 더 요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걸 오필리어가 인식시켜 주자,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에까지 생각이 닿았다. 회임을 진단한 궁의가 했던 말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분명 좋은 아버지가 되실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될까. 그는 ‘아버지’와 ‘좋은’을 등치 시켜 본 적이 없었고, 그게 자신이 될 거라곤 더더욱 상상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된다면 정말로 좋겠다. 오필리어는 좋은 어머니가 될 것이 틀림없었고, 그녀가 낳은 아이도 좋은 대접을 받으며 잘 자랄 자격이 차고 넘쳤다.

만약 그걸 자신이 망쳐 버린다면, 그래서 두 사람을 괴롭게 한다면 스스로가 미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생각의 끝은 떠올리기 싫은 사람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코넬리우스 뒤싱겐 황제처럼.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클레멘츠는 진심을 털어놓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체면을 차리기 위해 그 진심을 덮거나 말을 돌리기 전, 작고 따뜻한 손바닥이 그의 양볼을 ‘착’ 소리 나게 눌렀다.

“오필리어?”

입이 눌리는 바람에 조금 어눌해진 발음을 듣고, 그녀는 웃었다. 세상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해 나갈 듯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지금도 이런 소심한 고민으로 속을 태우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무척 사랑스러웠다. 자신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데리고 보란 듯이 잘 살아 버릴 것이었다.

“당신은 클레멘츠일 뿐, 다른 누구도 아니에요.”

“……그야 그렇지.”

“저랑 이 아이를 사랑하잖아요? 그렇죠?”

무척 조용하고, 또 부드러운 물음이었다. 클레멘츠는 팔 안에 닿는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어는 숨을 한 번 고른 뒤에 입을 열었다. 어쩐지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행복하게 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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