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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211)화 (211/218)

외전 10화

“병돌아, 이 음식은 어떻게 생각해?”

결국 그의 이름은 원래대로 병돌이가 되었다. 클레멘츠는 상당히 불만스러웠지만 참기로 했다. 한갓 병아리에게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까.

그래. 일단은 좋게 생각하자.

공작으로서 그의 임무는 황녀를 향한 보고와 접대였다. 어쩔 수 없이 보고는 카시스가 대리하게 되었다 해도, 어쨌든 그로 인해 황녀가 즐거워하고 있으니. 이 역시 접대가 아닐까.

그로 인해 황녀가 북부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잃을 게 없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 해도 황녀를 위해 준비된 접시에 그대로 올라타는 건 못 할 짓이었다. 클레멘츠는 오필리어가 동그랗게 모아 주는 으깬 감자를 본체만체하다가 옆에 따로 떨어진 작은 접시 위로 올라갔다.

“이럴 수가!”

“……? 왜 그러세요, 전하?”

오필리어는 생후 3개월짜리 조카가 글을 읽는 모습을 발견한 사람처럼 감동했다.

“우리 병돌이를 봐. 자기 접시에서 따로 먹고 싶은가 봐. 어쩜 저렇게 품위 있을까? 귀족 병아리인가 봐.”

“아, 네….”

황녀 옆에서 식사하던 모나한 백작이 ‘꼴에…….’라고 하는 듯한 눈으로 클레멘츠를 응시했다.

“자세히 보면 우리 병돌이 참 잘생긴 것 같지 않아?”

“아뇨.”

“나 저렇게 잘생긴 병아리는 처음 봐. 숨 쉬는 자세에서 묘하게 기품이 배어나잖아.”

벨라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클레멘츠는 황녀나 그 측근이나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한쪽은 병아리에게 과하게 호의적이었고, 다른 쪽은 너무 적대적이었다.

둘 다 적당히 하면 안 되는 걸까?

“전하. 만찬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네에. 정말 맛있어요.”

“…….”

클레멘츠는 은빛 날개깃 끝으로 조그만 이마를 받쳤다. 황녀의 취향에 맞는 식사를 준비한다고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정작 그녀의 신경은 온통 제게 쏠려 있는 듯했다.

백작의 주장으로는 ‘비루먹었다’고 하는, 이 웃기지도 않은 병아리의 몸에게.

접시에 놓인 음식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포크에 찍혀 작고 도톰한 입술 사이로 들어가는 걸 보면, 맛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그 와중에 황녀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계속 이쪽을 쳐다본다. 부담스럽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무시하려고 해 봐도, 클레멘츠는 황녀가 많이 신경 쓰였다. 샹들리에 불빛 때문일까. 황녀의 금빛 눈은 유달리 번쩍거렸다.

“크흠, 전하. 그 병아리…… 아, 실례합니다. 병돌 군에 대해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다행히 적당한 때에 카시스가 끼어들어 주었다.

클레멘츠는 보좌관을 믿고 있었다.

부탁한다, 카시스. 황녀의 관심에서 병아리 같은 건 멀리 떼어내 버려라.

부디 이번 북부 시찰을 정상 궤도로 올려 놓아 다오.

병아리 클레멘츠의 근엄한 눈이 카시스를 묵직하게 응시했다.

“물론이죠. 어떤가요? 듀프레 님 보시기에도 우리 병돌이가 참 귀엽죠?”

“커흠…. 그렇습니다.”

클레멘츠는 가만히 있던 은그릇 위에서 넘어질 뻔했다.

“실은 황녀께서 병돌 군을 처음 보여 주셨을 때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보통 병아리와 달리 새하얀 털이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졌지요.”

“…….”

“왠지 익숙한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아 왔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앞으로도 오래도록 보고 싶은. 그런 감상이었습니다.”

“어머나!”

카시스는 정말로 벅차오르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돌렸지만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

묘하게도, 저 말은 카시스가 자신에게 충성을 다짐했을 때 했던 말과 거의 똑같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클레멘츠 님을 뵈어 왔고, 참으로 제 주군이 되실 분이란 걸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곁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클레멘츠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수하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일단 감동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 병돌이가 정말 마음에 들거든요. 황궁으로 데려가서 잘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아, 물론 황녀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셔야지요!”

그사이 카시스는 주군을 팔아넘겼다. 클레멘츠는 감동을 취소했다.

“병돌이가 잘 크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연락을 보낼게요. 황궁으로 오시면 만나러 오시고요.”

“감읍할 따름입니다, 전하.”

거기다 인질로 보낸 주군을 대가로 황실과 친분을 쌓을 기회까지 만들고 있었다.

“삐휴우욱…….”

이놈의 병아리는 왜 한숨마저도 이렇게 무게감 하나 없이 나오는지. 점점 모든 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녁 만찬이 끝난 이후에도, 빌어먹을 병아리 대잔치가 끝나지 않았다.

“꺄아! 너무 귀여워요!”

“황녀 전하, 제가 병돌 경을 쓰다듬어 봐도 될까요?”

“안 돼요. 죄송하지만 여러 사람이 만지면 병돌이에겐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모두 한 발짝씩만 물러서서 지켜봐 주세요!”

“네, 전하!”

‘제기랄.’

평소 황녀를 흠모하던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 그녀를 둘러싼 것이었다. 무르기 짝이 없는 황녀는 그걸 다 받아 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저녁 식사 후에는 영지 운영 관련 2차 보고가 있거늘.’

일정이 밀렸는데도 카시스마저 ‘허허. 먼 길 오셨으니 조금 더 쉬시지요.’하고 지나쳐 가 버린 게 다였다.

하다못해 모나한 백작이라도 이 난리를 말려 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자마저도 이미 포기했는지 일찍 쉬러 올라가 버린 뒤였다.

어쩔 도리가 없어진 클레멘츠는 주변에 모여선 이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왜들 일하러 가지 않지?’

다들 저녁 일을 마무리할 시간일 텐데. 이렇게 우르르 모여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니.

원래 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 일에 대해 반드시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다.

클레멘츠는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병돌아, 왜 그래?”

“삐흠!(이것, 놓으십시오.)”

자그마한 은빛 날개로 하얀 손가락을 팍 밀쳐냈다.

“병돌아…….”

그는 쳐내고 나서야 흠칫 놀랐다. 너무 세게 쳤나?

늘 방방 떠오르는 것만 같던 황녀의 목소리가 축 처졌다. 고운 황금빛 눈썹 역시 끄트머리가 한없이 내려갔다.

마침내 병아리를 조심스럽게 톡, 내려놓은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고작 병아리에게 거부 당했다고 일국의 황위 후계자가 너무 상심한다는 생각은 어느새 저 뒤쪽으로 밀쳐졌다.

제발 적당히 좀 해 줬으면 했는데. 막상 그리도 밝던 이가 우울해하니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왜 저리도 처량 맞아 보이는지. 작은 몸의 온 신경이 다 쏠렸다.

“삐익….(저기.)”

급기야 클레멘츠는 그녀에게로 다시 다가가기에 이르렀다.

매몰찬 날갯짓을 전했던 바로 그 날개 끝으로, 오필리어의 팔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반짝 고개를 든 오필리어가, 언제 침울했었냐는 듯 활짝 웃었다.

“……!”

클레멘츠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그녀의 표정을 코앞에서 보았다. 혹은 부리 앞에서.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동시에 조그마한 심장이 예사롭지 않은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삐, 삑.(어처구니가 없군.)”

“우리 병돌이! 지금 나를 위로해 준 거야? 너무 좋아! 너무 똑똑해!”

“뺙!”

황녀는, 아예 피할 틈도 주지 않곤 냅다 그를 잡아서 제 얼굴에 살살 비볐다. 클레멘츠는 메추리 꼬치구이 같은 자세로 경직되었다. 그 와중에 그녀의 뺨이 무척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

왜 황녀가 오기 직전에 셀레네의 연구실 같은 위험천만한 곳을 들렀을까. 자신의 실책이었다.

“우리 꼭 같이 살자. 알았지? 세상에 태어난 병아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호사를 누리게 해 줄게. 영원히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삐약.(제발 그만두십시오, 황녀.)”

“너도 좋지? 알아, 알아.”

사태가 점점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클레멘츠는 주변에 둘러선 이들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흐뭇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까진 맛보기에 불과했다. 진정한 위기는 밤에 찾아왔다.

황녀는 기어이 제 침실까지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기겁한 클레멘츠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지만, 황녀는 작은 손으로 잘도 능숙하게 그를 붙잡았다. 심지어 카시스가 올린 보고서를 읽고 있었음에도. 귀 옆에 따로 눈이라도 달린 것 같았다.

“이제 주무세요. 전하.”

바깥이 어둑어둑해지자 벨라가 오필리어의 서류를 빼앗았다. 굳이 더 일하려고 고집부릴 생각이 없는 오필리어가 작게 하품하며 일어났다.

이어서 거울 앞에서 벨라가 오필리어의 드레스 끈을 풀기 시작했다. 황녀는 살짝 피곤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겉치마가 툭 떨어지기 직전. 클레멘츠는 생각했다.

이건 진짜 아니다.

북부 클랏샤의 공작으로서 지켜 왔던 몸과 마음. 신념과 규칙. 그 모든 것이 처참히 박살날 위기였다.

이젠 정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했다. 당장.

온몸의 신경이 기민하게 곤두섰다. 지금 그는 첫 사냥을 나갔다가 조난될 뻔했던 때보다도 예민하고 신중해진 상태였다.

‘비밀 통로.’

벽난로 옆에 비밀 통로가 있지만 특정한 벽돌을 강하게 눌러야 드러났다. 이런 약한 몸으론 개방할 수 없었다.

‘문.’

닫혀 있다.

‘창문.’

황녀 몫으로 내어 준 방의 수많은 창문 중에, 딱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비록 이 몸으로 올라가기엔 살짝 무리가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으로선 어디 한군데 부러지더라도 이곳을 탈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벽을 향해 포로롱 날아간 클레멘츠가 창틀로 오르는 사이. 황녀의 시중을 마친 모나한 백작이 물러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 벨라.”

그리고, 슈미즈 차림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신 오필리어가 그를 발견했다.

“안 돼! 병돌아!”

필사적으로 쫓아와 병아리를 붙잡으려는 여성. 필사적으로 그녀를 피하려는 병아리.

병아리에겐 안 됐지만 사람의 팔이 더 길었다.

맞아도 딱히 아프지 않은 그녀의 손가락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클레멘츠는 그동안 한 번도 찾은 적 없던 신을 찾았다. 사라진 어머니도 조금 작은 목소리로 불렀던 것 같다.

‘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려던 몸이 조금 떠오른 것 같았다. 그의 시야를 감쌌던 검은 안개가 걷혔을 때.

오필리어 황녀는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뜬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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