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의 정문 앞. 메라와 닉타가 서 있는 곳의 맞은편에 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평범한 인간들에겐, 아주 유심히 보면 짙은 장밋빛 연기 같은 걸로 보일 터였다. 그조차도 무척 희미한.
하지만 메라와 닉타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웠다.
낮과 밤의 마물들이 잔뜩 움츠러들다 못 해 쪼그라드는 사이, 장밋빛 기운으로부터 한 악마가 나타나 내려섰다.
좋은 날에 초대받은 하객답게 어느 때보다도 잘 차려입은 악마였다. 복잡하게 땋아 내린 진분홍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흑……. 흑흑. 내 뒤싱겐이 벌써 이렇게 컸다니. 결혼도 하고…….』
크렘시아는 레이스 손수건으로 눈물을 톡톡 찍어냈다.
『그것도 아기새 아가씨와…… 우흑. 흑. 흐흐흣… 흐흐흐!』
『…….』
『…….』
메라와 닉타는 눈물이 차츰 음흉한 웃음으로 변하는 기묘한 광경으로부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장미와 전쟁의 악마는 거의 마계의 지배자만큼이나 강한 존재였다.
한편 크렘시아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앞으로의 마생(魔生)에서 이렇게 반가운 초대가 또 있을 수 있을까.
다만 예식이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어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게 한스러웠다. 한껏 힘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맞은편에서 잔뜩 눈치를 보고 있는 마물들과도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그때.
“와아아!”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축포가 터지고 반짝이는 색종이가 뿌려졌다. 공식적인 부부가 되어 나온 남녀가, 황실의 문장이 찍힌 하얀 마차 위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다.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마차를 타고 수도를 행진할 예정이었다.
크렘시아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 돼.’
단단히 축복하고 또 축하해 주어야 했다. 비록 정체가 드러나진 않겠지만, 온 세상이 크렘시아를 하객으로 맞은 결과를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장미의 악마는 마차를 가리키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같은 시간, 낮과 밤의 마물들도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오오!”
이내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마차가 출발하는 동시에, 위쪽에서 장미 꽃잎이 펑펑 흩날렸다. 마치 함박눈처럼 내린 꽃잎이 지면에 쌓이며 생생한 향기를 내뿜었다.
여름 한낮처럼 새하얀 빛이 그들을 따라다니며 비추었다. 마차 바퀴 아래로는 밤하늘처럼 빛나는 검은 구름이 깔렸다.
마치 미리 준비한 듯 자연스러워서, 클랏샤 시민들은 황실에서 특별히 준비한 마법 효과라고 받아들였다. 마차에 오른 채 수도를 행진하는 당사자들만이 알아차릴 따름이었다. 이것들이 누구의 선물인지, 얼마나 특별한지.
“아다만티스 오필리어! 황태자비 전하 만세!”
“황태자 전하 만만세!”
오필리어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너무 크나큰 환영에 때때로 낯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어딘가로 뛰쳐나가거나 숨고 싶을 때마다, 마주 잡은 손에서 단단한 힘과 온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차분히 앉은 채 수도를 크게 돌아 내달렸다. 함께.
모든 것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고생이 많았군.”
“헤헤, 수도가 좀 크긴 하죠. 클레멘츠도 고생 많았어요.”
행진을 마치고 돌아오니, 저녁이 다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와 함께 맞춘 하얀 예복 차림에, 앞머리를 뒤로 넘긴 클레멘츠는 근사한 모습이었다.
장차 어떤 일이 있건 간에 내가 돌아갈 곳은 이 사람의 옆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머무를 곳이라 생각했던 황궁이 이젠 정말 내 집이 되었다.
“오필리어.”
“네.”
주변이 조용해지자, 클레멘츠가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고맙다. 나를 택해 줘서.”
“……!”
“결혼해 줘서.”
아잇! 이것 참! 어허!
낯뜨거운 표정을 갈무리하려 애쓰는 동안, 그는 내게 입 맞추곤 이내 가볍게 떨어져 나갔다.
“줄 것들이 있어.”
꽃마차에서 내려서자, 평소보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유렌이 웨딩드레스의 뒷자락을 잘 정리해 내려놓았다.
나는 클레멘츠의 손을 잡고 황태자궁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그가 가볍게 눈짓하자, 조금 앞에서 뿌듯한 표정으로 서 있던 카시스가 다가왔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황태자비 전하.”
황태자의 보좌관인 그와 공식적으로 주종관계가 성립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카시스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를 공손히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황태자비 전하 앞으로 영지의 소유권이 이양되었다는 증서입니다.”
머리는 내가 들은 말을 이해했지만, 한동안 어리둥절해져서 눈만 깜빡거렸다.
정신을 차린 뒤에는 두터운 서류를 넘겨보았다.
셀레네 황후가 소유했었고 클레멘츠가 물려받은 델윈 백작령과 오르후안 남작령.
그 외에 클레멘츠가 상속받은 포네스 공작령, 라스티냑과 으제니아 백작령 등.
영지의 위치와 규모 옆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인구수와 생산량 등의 숫자가 멍해진 머릿속으로 흘러갔다.
무사히 남작위를 물려받아도 영지 하나 가질 일이 없었는데. 결혼하고 집에 와 보니 갑자기 대영주가 되어 있네.
“영지의 관리인들과 정기 일정은 각 보고서 맨 앞장의 우측 하단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 넵!”
“다음으론 황실의 보물들입니다.”
네…?
카시스가 신호하자 궁의 사용인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저마다 고급스러운 상자를 열어 보였다.
“이 티아라는 2대 황후 마마 때의 물건입니다.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만들어졌고, 대대로 제국의 황태자비에게 물려져 왔습니다.”
“이 목걸이는…….”
“또한 이 반지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휘황찬란한 빛의 보석들이 눈앞에 범람했다.
너무 유서 깊은 물건들이라서인지, 내 것이라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그보단, 앞으로 내가 관리해야 할 것들이랄까?
‘이런 금전적인 것을 원해서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에요! 라는 대사도 한번 해 보고 싶었지만. 클레멘츠와의 결혼은 황족으로서의 책임이 반드시 같이 따랐다. 권리도 의무도 동시에 그 책임의 안에 묶였다.
솔직히 한평생 소시민으로 살 생각으로 가득했던지라, 별로 자신은 없지만.
아직 이 세계의 나는 이십 대 초반 아닌가. 앞으로 열심히 배우면 충분히 잘해나갈 수 있으리라.
“이 티아라는 특히 너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군.”
“……그, 그만 해요.”
정작 클레멘츠는 입이 귀에 걸린 채 2대 황후의 티아라를 내 머리에 대어 보고 있었지만.
보석들을 전부 황태자궁의 창고에 옮기라고 지시하였다. 그걸로 이제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혼인을 경하드리옵니다. 황태자비 전하.”
또 누군가가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클라우디아 황비의 집사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황비께서 축하의 뜻으로 직접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클레멘츠는 대놓고 불쾌하고 찝찝하다는 티를 냈다. 집사장은 납작 엎드려 편지만 내놓고 사라졌다.
봉투에 흉악한 장치는 없는지, 편지지에 뭐가 묻어 있진 않은지.
굉장히 배알 꼴리는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지.
이중 삼중의 확인을 거친 뒤에야 편지는 수신인인 내 손에 들어왔다.
[지금이야말로 내겐 좋아하던 정원에 뿌리를 내리고 화초처럼 침묵해야 하는 때겠지.]
“이건 무슨 뜻이에요?”
나는 상투적인 축하의 말 사이에 씌어 있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가리켰다.
침실로 나를 안내하던 글로리나 부인이 대답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돌아오신 후, 클라우디아 황비는 정원을 비롯한 황비 궁에 연금되었습니다.”
“…연금이요?”
“예. 그렇게 만드신 분은 황태자 전하이십니다.”
조금 놀라웠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결정이었다.
성격상 클레멘츠가 숙적을 용서할 것 같진 않았다. 황권 계승이 확실해진 지금, 그리도 악랄하게 훼방을 놓던 황비에게 보복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2황자파의 구심점이던 메디프가 사라졌으니. 그 모친인 클라우디아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혈통 문제가 해결된 클레멘츠는 이제 한마디로 약점이 없었다. 반면 황비의 편에 섰던 교단 세력은 불명예스럽게 물갈이되고,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자 황제 역시 황비의 손을 놓아 버렸다.
결국 그녀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그래 왔듯, 유리 온실 속으로 은거에 들어갔다. 아마 다시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리라.
‘그렇구나.’
그에 따른 내 감상도 길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매 순간 기뻐하기만 해도 모자란 날이었다.
예쁘지만 무거웠던 웨딩드레스를 벗고 머리카락과 온몸에 달려 있던 보석을 풀어냈다.
목욕물과 향유를 준비하는 카렌과 유렌은 어쩐지 매우 들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식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했던 나는, 그들이 뭐라 쫑알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캄캄했다.
‘앗!’
망했다는 직감이 엄습했다. 신혼 첫날밤엔 보통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던가? 내가 잠들어 버려서 건너뛰어졌나?
클레멘츠는?
그냥 간 건가?
이럴 수가. 나 때문에 클레멘츠가 소박맞은 건가?
“일어났군.”
“휴…….”
“대체 뭘 안심하고 있지?”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 옆에 비스듬히 누운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여기 있어.”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둠 속에 가라앉은 그의 보랏빛 눈이 무척 따스하게 일렁거렸다.
참 잘생겼다. 나는 결혼을 참 잘했다. 새삼스러운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제나 네 옆에서, 네가 잠든 모습을 지켜볼 거다. 밤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그는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던 손으로, 내 손을 살짝 들어 입을 맞추었다.
온몸에, 손끝과 발끝까지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기운이 확 퍼졌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 눈물이 나도록 행복한 느낌이었다.
“왜 지켜봐요? 당신도 같이 자야죠. 재워 줘요?”
“…….”
불면증 예약할 일 있나. 툭툭 던져 물으니 클레멘츠가 입을 다물었다. 자연스럽던 자세가 뻣뻣해진 것도 같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내뱉었다.
“우리 이제 부부네요.”
“…그렇지.”
“헤헤, 여보.”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가 다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나는 킥킥대며 웃다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온몸이 돌처럼 굳어 버린 그를 껴안자 익숙한 체향이 짙게 끼쳐 왔다. 잔잔하고 매혹적인, 포도나무를 닮은.
“클레멘츠.”
클레멘츠는 신혼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이미 여행에 이골이 난 내가 거절한 바 있었다. 하지만 잠깐 갔다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수도 밖으로 여행한 지 오래되었으니까.
대답 대신 나를 마주 안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같이 있어 주세요.”
우리는 서로가 있어 행복할 것이다. 충실한 보호자이며 다정한 연인이 되어.
“사랑해요.”
아주 오래도록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