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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207)화 (207/218)

외전 6화

결혼식 장소는 육각의 웅장한 구조를 자랑하고 있는 클랏샤 교회였다.

한때 황태자에게 파문 결정을 내려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장소는, 이제 그에게 더없는 축복과 영광을 안겨 주고 있었다.

심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황제와 황비는 정무와 대외 업무에서 빠르게 손을 놓았다. 양위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황궁의 뒷방으로 들어간 선대 대신 실질적으로 일을 맡은 황태자의 치세가 이어지리란 건 자명해 보였다.

이 결혼식이 본격적으로 그 시작을 알린다는 것 또한.

오르간의 중후한 울림이 홀 안을 채웠다.

하얀 드레스 자락이 단상 앞에 선 신부로부터 길게 늘어졌다. 결국 끝까지 고민했던 13번 디자인이 아니라, 원래 결정했던 디자인을 입었다.

디자이너가 어느 날 밤 수도의 창공에 나타난 아다만티스를 직접 보고 지은 옷이니, 오늘의 주인공에게 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새를 표현한 황금빛 자수가 제국과 아다만티스를 상징하는 작은 다이아몬드와 함께 드레스 전체를 조화롭게 장식했다.

오필리어는 어깨를 드러낸 채 부케를 쥐고 꼿꼿이 섰다.

가느다란 목을 장식하고 있는 목걸이가 전체적인 조화를 잡았다. 화려한 노란 보석으로 날개를 펼친 아다만티스를 표현해, 수려하고 섬세한 걸작이었다.

금빛 머리카락 위에서 투명한 면사포가 흔들렸다.

“두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진실한 부부로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이겨 나갈 것을 맹세합니까?”

단상 너머의 대주교가 물었다.

이전 대주교였던 그노시드는 국법을 어기고 교단의 명예를 훼손한 죄를 물어 추방되었다. 그와 함께 상습적으로 죄를 저질렀던 추기경과 주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 임명된 대주교 앞에서, 새로 부부가 될 이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꿈결 같은 눈빛이 오갔다.

“맹세합니다.”

“네, 맹세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시미크의 이름으로, 이 순간부터 클레멘츠와 오필리어는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식장 안을 메웠다.

한편 신랑 신부가 기쁨에 겨워 웃으며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을, 도저히 보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흥……!’

신부 측 하객들 중 상당히 앞에 서 있던 모나한 백작이었다.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한계였다.

오필리어의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안느라 여념이 없음을 확인하곤, 벨라는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백작님?”

“잠시. 가슴이 답답해서.”

이제는 도중에 부딪힌 사제의 질문에 적당히 둘러댈 만한 깜냥도 있었다.

천장 가까이에 달린 다섯 면의 큰 창문들이 모두 열려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으나, 사제는 달리 토 달 말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교회 밖으로 나가니, 건물 안쪽으론 들어오지 못한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한심한 인간들!’

벨라는 그들을 피해서 무작정 걷고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 언덕 위였다.

그제야 그녀는 목구멍 위쪽까지 솟아오른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결혼은 무효야!”

꼭두새벽부터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는 오필리어를 봤을 때부터,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말이었다.

말도 안 된다. 내 오필리어를, 그런 나약한 재수탱이에게….

하지만 그 아이가 좋아하는 놈이었다. 감히 모나한 저택에서 레몬 크림 파이를 먹을 때보다도 환하게 웃다니.

“용서가 안 돼! 배신자! 행복하지 않기만 해봐!”

혼우드로 청첩장이 날아온 뒤엔 그녀도 바빴다. 사재를 털어 마련한 축의금과 결혼 선물을 오필리어 앞으로 때려 박듯이 퍼부었다.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카밀 드 베일리스를 견제하며 예식 준비에 참견했다.

“얘한테 잘하십시오. 아니면 제가 다시 혼우드로 데려갈 겁니다.”

황태자가 보일 때마다 협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녀석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나오면…. 아니,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라도 나왔다간! 공적으론 이혼을, 사적으로도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는 상당히 자신 있는 모양인지 별 타격을 입지 않았다.

“별걱정을 다하는군. 그쪽보단 잘해 줄 듯한데.”

“이익…!”

“하지만 그 말이 옳아. 오필리어에게 더 이상의 마음고생을 시킨다면, 나는 자격이 없는 놈이다.”

“클레멘츠! 그런 말이 어딨어요?”

안 그래도 배알 꼴려 죽겠는데, 어느새 들었는지. 결혼식에 쓰일 장식 천 샘플을 들고 지나가던 오필리어까지 끼어들었다.

“당신은 저를 버릴 자격이 없어요. 만약 잘못한다면 기회를 줄 테니 저에게 용서받으세요.”

“오필리어.”

그러고는 그 아이, 오필리어가 하얀 팔을 황태자 놈의 목에 감고 배시시 웃었다. 벨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그들이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엉겨 붙는 꼴을 보기 전,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라비가 가끔 홀짝이곤 하던 위스키의 맛이 이렇게 궁금해질 줄이야.

“무효라고!!”

소심하게 외친 말이 언덕 아래로 다 내려가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흩어져 사라졌다. 차라리 흑표범으로 변해서 내지르듯 포효한다면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혼우드도 아닌 수도에서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새벽빛을 닮은 벽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요. 그래서 혼인무효 소송이라도 거시려고요?”

뺨을 쓱쓱 문질러 닦던 벨라가 눈을 매섭게 떴다.

이, 온통 빠져 있는 목소리.

“어딜 나타나? 신고당하고 싶어?”

“글쎄요.”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언덕 위에 주저앉았다. 하늘색 머리카락 너머로 올려다보는 눈이 천진한 빛을 띠었다.

“다행히도 저희 형님은, 숨어 버린 황위 경쟁자를 몰래 잡아다 가두거나 죽이는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덕분에 결혼 선물도 주고 왔죠.”

“그래?”

“하지만 이곳 클랏샤에 오래 있는 일 자체가 불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은 마탑으로 갈 생각이에요.”

“내가 알 바야? 알아서 해.”

벨라는 언덕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래쪽에 펼쳐진 수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갑자기 끼어든 어처구니없는 놈을 외면하고 있자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 저기. 저는….”

메디프가 버벅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모습을 감추고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벨라가 뛰쳐나오기에 저도 모르게 따라 나온 것뿐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오필리어를 아끼는지는 마계 출정 때를 비롯하여 여러 번 실감했다.

유일한 친구이자 자매와 멀어진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굳이 따지자면 걱정이 됐던 것 같다.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기도 했다.

“오필리어는 잘 살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하지만 돌아온 건 삿대질이었다.

“자꾸 얼쩡거리지 말고 네 마탑으로 꺼져 버려.”

메디프는 생각했다. 꺼지라고 내치는 모습마저 저렇게 예쁜 사람이 또 있을까?

“떠나기 전에, 당신에겐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요. 모나한.”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침착하게 웃었다. 벨라는 뚱한 표정이었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감사?”

“네. 제가 한심할 만큼 어머니에게 휘둘릴 때. 당신은 잘하라고 경고해 주셨잖아요.”

‘오필리어를 괴롭혔다간 수십, 수백 년간 네놈에게 달라붙는 원혼이 될 줄 알아.’

처음 마주한 흑표범의 모습과 함께 들었던, 살벌한 당부였다.

이후에 발톱이 박혀 들었던 가슴의 상처가 선명하게 욱신거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어쩌면 저는 제 마음을 잊었을지도 몰라요.”

“…….”

“권력을 쥔 자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에 동화되고. 악한 행동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들어서. 오필리어나 형님을 도울 생각도, 염치도 망각했을지도요.”

이미 지나간 과거이며 불필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순수한 마음은 곧잘 잊혔다. 메디프는 습관처럼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오필리어와 형님이 오늘에 이른 건, 어느 정도 당신의 덕분이에요.”

“그렇게 생각해?”

“네.”

봄이 찾아온 수도를 등진 벨라가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더디게 의문했다.

‘이 자식 지금 나를 위로하는 건가?’

하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 볼 말주변도, 그럴 만한 관심도 벨라에겐 없었다.

“그럼 난 이만 마탑으로 꺼질게요. 보고 싶을 거예요, 벨라루시아 모나한.”

벨라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여전히 형제가 다 짜증 났다. 오필리어를 보내야 하는 마음도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러 돌아갈 수 있었다.

낮과 밤의 마물들은 실로 몇천 년 만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다른 듯 모두 비슷비슷한 낮들과 다 똑같이 어둑어둑한 밤들.

그들은 간혹 인간들이나 마수들을 저주에 걸리게 하는 재미로 긴 세월을 흘려보내 왔다.

그런데 그 저주 덕택에 인간들이 혼례를 올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들의 주인이 된 뒤싱겐의 후손이!

그가 하늘의 황금 새를 닮은 인간의 딸과 혼인한다는 소식은 각종 삿된 것들의 입을 타고 번져 갔다. 혼우드의 숲 너머 마계까지.

‘보고 싶군.’

‘보고 싶어.’

날이면 다 똑같은 날이어도 놓치기 싫은 구경거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뒤싱겐의 피의 사슬에 묶인 처지였다.

마물이니 인간의 땅을 밟을 수는 없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는 해야겠고.

그래서 그들은 비교적 만만한 쪽을 만나러 갔다. 낮과 밤이 합쳐진 시간의 존재 ‘오라’로서, 황금 새를 닮은 오필리어의 꿈속으로.

“결혼 축하한다. 에반젤린의 딸 오필리어.”

“…….”

그들은 흑백의 날개에 감싸인 채 오필리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에, 감사해요.”

“그래.”

그들은 하얗고 까만 옥좌 위에 앉은 채 오필리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

마침내 꿈속에서도 사랑스러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기, 생각해 보면 말이죠. 저와 클레멘츠가 맺어진 건 닉타와 메라 덕분인 것 같아요.”

“!”

“결혼식 날, 두 분을 모셔도 괜찮을까요? 클레멘츠에게 말하면 잠시 속박을 풀어 드릴 거예요.”

감히 청하지는 못했으나, 본래부터 간절히 바라던바.

새신부가 진심으로 감사하여 초대한 건지, 침묵을 견디다 못 해 눈치로 해낸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옥좌 위의 오라는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싱겐의 신부가 내친김에 누구까지 초대해 버렸는지는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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