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조금 떨떠름해 했지만 그래도 견학 비용을 생각해 예의를 차리는 공방주와 작별인사를 하고, 급하게 숙소로 향했다.
저녁 손님을 대접할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요리는 호텔 주방장이 할 테지만.’
다른 준비할 것들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독스타나 광장에 그들을 세우고 ‘이들은 죄가 없어요! 시민 여러분, 당신들이 너무했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미 편견으로 물든 마음은 그런 식으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목소리의 마력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천천히 바꿔 보기로 마음먹었다.
티네에게 제시할 계약서를 한쪽에 치워 두고, 이번엔 새로운 종이를 꺼내 글씨를 적어 내렸다.
아카데미 마법학부의, 산드라 팔라스 학장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마법과 관련된 현상이라면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을 보이는 사람이니. 목소리로 내는 마법에 대해서도 기꺼이 연구를 진행해 줄 터였다.
충분한 연구비 지원이 있다면, 더더욱.
‘육각형이 아닌 오각형에, 얼음 결정 모양이라.’
티네의 목에는 내 것과는 다른 모습의 문양이 있었다. 아마도 다른 문양인 만큼, 마력의 양상이나 종류도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이 큰 제국의 다른 지역에는 또 다른 문양을 가진 누군가가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건 내가 그들에게, 또 제국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클랏샤를 떠나오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약속시간이 되자 내 객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서 들어와요!”
문을 여니 안으로 들어온 건 티네와, 조금 쭈뼛거리는 기색의 로네였다.
헬멧을 벗고 평상복을 입으니 조금 낯설었지만, 역시 광산에서 보았던 얼굴이었다.
객실에 딸린 작은 홀에는 미리 예약해서 가져온 맛있는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담소하며 식사를 들자,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려갔다.
식사가 무르익었을 때 나는 본론을 꺼냈다.
“두 사람은 독스타나를 떠날 생각은 없어요?”
“네?”
“…….”
무언가 얘기가 나올 타이밍이라 느끼고 있었는지, 그들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제가 보기엔 둘 다 이곳에서 계속 사는 건 무리가 있어요. 이곳 사람들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당신들을 괴롭히잖아요.”
“그렇지만……. 어릴 때 저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건 맞는데요.”
티네가 의기소침하게 웅얼거렸다. 나는 살짝 끙하고 앓았다.
“그건…….”
광산이 무너진 일로 티네는 여태껏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어떻게든 묵묵히 감수했는지도.
“예전에 티네의 울음소리로 인해 큰 사고가 났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될 줄 몰랐잖아요. 당신 본인은 물론이고요.”
“…….”
“아이가 무서워서 운 건 잘못조차 아니에요. 그냥 사고죠. 무척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온 마을이 당신들을 못살게 굴어도 되는 건 아니에요.”
티네는 침울한 얼굴이었다.
도움을 주려는 의도였지만, 이렇게 계속 그녀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말을 해야 했다.
도시 분위기를 보아선 지금껏 이렇게 말한 사람이 분명히 없었을 것 같다.
“누구도 그런 저열한 방법으로 당신들을 징벌할 권리는 없어요.”
묵묵히 감자 그라탱을 입에 넣던 로네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초커와 사람들의 눈총 탓인지 로네는 말수가 매우 적었지만, 막상 입을 여니 발음도 발성도 좋았다.
“누군가 조금만 더 일찍 이런 말을 해 줬더라면, 저희 남매의 삶은 좀 달라졌을까요?”
난 입을 다물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듯했다.
“저는 아버지의 직업을 따른 거지, 딱히 광부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독스티나에서 이보다 더 반듯한 직업을 구할 수도 없었고.”
티네는 포크를 내려놓은 채 눈물을 똑똑 떨구고 있었다. 그녀에게 냅킨을 한 장 더 내어 주는 동안, 로네가 말을 이어 갔다.
“옛일이 있는데 광산에서 절 반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인을 하기엔……. 섬세한 누나에 비해 제 손은 너무 거칠더라고요.”
“그렇다면 더더욱 여기 머물 이유가 없겠네요! 그렇죠?”
“그렇죠. 그런데 저희가 무슨 수로 태어난 곳을 벗어나겠어요? 그럴 능력도, 계기도 없는데.”
이쯤에서 내가 준비한 카드를 꺼낼 차례로군.
티네의 흐느낌이 어느 정도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내 뒤쪽의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문서를 내밀었다.
“능력이 없긴 왜 없어요?”
두 남매를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 둔, 목걸이 제작 계약서였다.
“공방에서 티네와 합의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적어 두었어요. 황족의 결혼식에 사용할 중요한 물건이니, 모든 제작 과정은 수도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
“이에 필요한 공간과 장비, 재료비, 계약자인 티네와 가족들의 주거는 제가 지급하고요.”
남매의 우울하던 안색이 변했다.
아직 기쁘다기보단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수도에도 좋은 귀금속 공방이 많이 있어요. 로네도, 당신이라면 클랏샤에서 더 좋은 직업을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티네의 얼굴엔 좀 더 복잡한 감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제가……. 여긴 저보다 훨씬 훌륭한 장인분들도 많이 계신데.”
물론 티네는 도제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장인이 되지 못한 몸이었다. 그녀에게 황태자비의 결혼식 목걸이를 맡긴다고 하면, 이 지역의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냅다 이의를 제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독스타나의 장인 한 트럭이 아니라 그녀였다.
“그들 중 아무도 아다만티스를 만들지 않았잖아요?”
“그건…….”
“만든다고 쳐도, 그 새의 의미를 당신보다 더 깊이 담아낼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네……. 네.”
머뭇거리던 티네는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좋아요.”
드디어 자신의 자격을 납득한 듯, 녹색 눈에는 흐릿해졌던 광채가 되돌아왔다.
“계약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나는 서식 중간쯤에 있는 항목을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클랏샤에서 다시 만나면, 목소리에 마력이 깃든 사람들에 대하여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연구요?”
남매가 동시에 얼떨떨하게 물었다.
“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 특징이 나타나는지, 전조나 특징은 없는지. 마력은 얼마나 강하고,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힘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지도요.”
“그럼…….”
로네가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들도 나와 생각이 같을까?
나와 그들에게 있는 만큼 또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게 마력을 가진 목소리가 나타날 수 있겠다고.
그들이 차별당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 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니, 더 알고 알리려고 힘쓴다면 언젠가는 상황이 변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을까?
“그 연구에 협조해 주는 게 조건이에요.”‘
말은 조건 제시였지만, 내 눈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 * *
마차가 덜컹거렸다. 나는 흠칫 깨어났다.
어느새 독스타나가 멀어졌는지, 차창 밖으로 새로운 도시가 다가왔다.
저곳에서는 카밀과 합류하기로 했다.
내 손에는 티네와 작성한, 목걸이 판매 계약서가 팔랑거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다가 깜빡 존 모양이었다.
티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나 역시 이제는 황태자비의 서명이 될 ‘오필리어 레오라’를 계약서에 적어 넣었다.
긴 대화 끝에 드디어 활짝 웃던 티네의 얼굴을 떠올리자 나 역시 웃음이 났다.
“여행을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마차에서 내려서며 중얼거리자,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니, 오필리어?”
휴양지풍의 밀짚모자와 갈대 가방 차림의. 그리고 각양각색의 온갖 짐짝을 부려 놓고 있던 카밀이었다.
“나와의 여행을 결정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한 거지? 혹시 진작 카밀과 합류할 걸 그랬다,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
“카밀.”
큰 무늬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가방을 던져 놓더니, 두 팔을 벌리고 다가와 나를 안았다.
“나까지 빼먹고 홀로 하는 여행은 어땠니. 좋은 일이 있었어?”
나는 쿡쿡 웃었다. 카밀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로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카밀과 함께할 ‘소동물 탐험, 그리고 미식’ 여행 역시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클레멘츠의 얼굴의 명예를 위해, 조금은 빨리 돌아가 봐야 하겠지만.
돌아갈 길을 마음먹은 방랑은 뜻깊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