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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204)화 (204/218)

외전 3화

물론 저쪽의 초커는 여자가 입은 옷과 잘 어울렸고, 척 보기에도 착용자의 센스를 드러내는 고급품이었다.

보석의 도시인 독스타나에서 목에 딱 붙는 목걸이란 흔한 장신구였다. 많은 이들이 저 손님처럼 자신에게 어울리는 초커를 착용하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불길한 힘을 감추기 위해 둘둘 둘러맨, 흉물스러운 검은 초커를 한 사람은 오로지 둘뿐이었다.

티네 자신과 남동생뿐.

‘…….’

그러니 단지 저분이 초커를 했고, 아다만티스를 알아봤다 해서 그분과 연관 짓는 건 잘못된 연상이리라.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눈앞의 여성은 꿀 같은 금발이 아니라 갈색 머리였다. 무엇보다 황태자 전하의 청혼까지 받았다는 오필리어 님이, 이 머나먼 남부에 계실 리가.

침착하게 현실을 직시하려던 티네는, 손님의 다음 말에 놀랐다.

“괜찮다면 이 목걸이를 구매하고 싶은데요.”

“네? 하지만…….”

파격적인 요청에 주변이 술렁였다.

이것은 개인 습작품인 데다, 란세이 공방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방주님이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게 보였다. 티네는 고개를 수그렸다. 경매에 출품할 장신구를 작업할 시간에 개인작을 했다고 질책하실 게 뻔했다.

‘다 하고 내 일 하는 건데…….’

“아… 저것을 말입니까? 하지만 완성품도 아니고, 뭣보다 도제의 습작입니다만….”

역시나였다. 공방주의 냉정한 말에 티네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나 손님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렇지만 제 마음에 쏙 드는걸요.”

“으음…….”

한편 공방주 란세이는 난감했다. 또한 실망스럽기도 했다.

‘내 작품도 아니고 저런 걸 사다니, 안목이 알 만하구만….’

하지만 손님이 물건을 사고 싶다는데 굳이 거절하기도 이상했다.

침음하던 란세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러시다면 가격은 티네와 직접 상의하도록 하십시오. 티네, 손님을 정원으로 안내해 드려라.”

“예. ……감사합니다, 공방주님.”

티네는 목걸이를 팔고 싶기도, 팔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손님은 목걸이의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황금색 따뜻한 눈빛이 정말 마음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목걸이는 자신이 처음으로 만들어 본 마음에 드는 개인작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손님을 독대하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막막하기만 했다.

‘……흠.’

대화하다 보니 확실해졌다. 이 아이는 목소리에 마력을 가졌다.

나도 수차례 목소리를 통해 마력을 쓰면서 익숙해지다 보니, 보통의 음성과는 다른 독특한 기운의 울림을 구별해낼 수 있었다.

미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답답해 보이는 초커. 그리고 주변의 시선을 보아하니, 그 힘은 소녀에게 호사는커녕 악재였던 모양이고.

“저어기 죄송하지만, 역시 팔 수 없어요.”

이 상황에도 계속 뭔가 고민하는 것 같던 소녀가 말했다.

“제 작품에 관심을 보여 주신 건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이건 저에게 정말 소중해서, 개인 소장하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듯 숙인 정수리가 동그랗고 붉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목걸이도 목걸이지만, 당신 목소리에도 관심이 생겨서요. 티네.”

“……!”

목소리 이야기가 나오자, 티네는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동시에 움츠러들며 뒷걸음질쳤다. 손가락을 뻗어 만지면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 같았다.

“드릴 말씀 없어요!”

“잠깐만요.”

안 좋은 기억만 산더미인지, 티네는 즉시 나를 향해 쏘아붙이곤 공방으로 뛰어갈 태세였다.

뭐라고 주절주절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 말부터 했다.

“저도 당신과 같거든요.”

멈칫한 티네의 눈이 흔들렸다. 화가 난 듯 붉어져 있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려나?’

목소리 탓에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저럴까 싶었다. 뭐라고 설명할까 하다가 일단 내 목에 걸려 있던 초커를 풀어냈다.

목 중간에서 빛나고 있을 문양을 본 티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 그 문양은…….”

클레멘츠를 마계에서 구해 온 이후로 내 ‘아다만티스의 울음’에 관해서도 많이 알려졌다. 목에 새겨진 문양의 모양이나, 거기에 스며든 보랏빛에 대해서도.

주위를 살펴보고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티네는 입을 합 다물었다.

티네는 이제 우울해 보이진 않았지만 역으로 까무러칠 지경이라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거든요.”

“제가 꿈을 꾸고 있나요?”

“하하, 아니에요.”

“역시, 역시……! 황태자 전하와 헤어졌다는 말은, 진실이 아닌 거죠?”

“절대 아니죠.”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던 티네조차도 의심하고 있었다니.

클레멘츠에게 결별설 부인 기사라도 내라고 해야 할까?

“저, 저, 저는, 정말로 손님이 그분이신 줄은, 그런데 진짜, 진짜로! 만나고 싶었어요……! 오필리어 님!”

“저를요?”

그런데 나를 만나고 싶었다니.

수도에서 나름 인기가 많아지긴 했어도, 나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것도, 수도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왜 하필 저를요?”

“그러니까요…….”

나는 그 뒤엔 이어지는 티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에 깃든 마력 때문에 불행했는데, 똑같은 능력을 가진 나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는 거였다.

쑥스러우면서 가슴 뭉클한 이야기였다.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니.

그런 한편 목소리 때문에 불행했다는 티네의 말에 가슴 아팠다.

“어째서 목소리 때문에 불행했다는 건지, 내게 말해 줄 수 있겠어요? 티네.”

“…….”

한참 동안 침묵한 끝에 티네가 입을 열었다.

“어릴 때 저 때문에 사고가 있었어요. 정말 큰 사고였죠.”

티네의 아버지는 광부였는데, 어느 날 사정상 티네를 광산에 데려갔다.

하필 그날 가벼운 사고로 갱도를 밝히고 있던 불빛이 꺼졌다. 바로 다시 켜면 되는 일이었으나, 낯선 장소의 어둠이 무서웠던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린 티네가 느꼈던 극도의 공포에다, 커다란 울음소리로 증폭된 마력은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냈다. 그렇게, 현장의 광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광산이 무너졌다.

불행 중 다행히도 티네는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지만, 곱지 않은 눈초리와 악의적인 소문들이 길게도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티네가 말을 잘못해서 공방의 금속이 녹았다느니.

사람들은 티네에게 검은색 초커를 씌웠다. 목에 보이는 문양을 가리면 혹여나 그 불가사의한 힘이 억제될까 싶어서였다.

또한 불길해 보이는 검은색 표지를 보고 사람들이 그녀를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공방에 오기 전엔 광산에 갔다 왔는데, 거기서 당신처럼 머리가 붉은 소년을 봤어요. 초커를 하고 있었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았죠.”

“로네를 보셨군요. 제 동생이에요.”

공방의 티네와 광산의 로네는 역시 남매였다.

문제는 남매가 어릴 때 일어난 사고였다.

티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동네에선 그간 할 수 없었던 말을 모두 쏟아버린 덕분인지, 조금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동생인 로네 쪽은 아예 평범해서, 마력을 띤 목소리랑은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분명 누나와 똑같을 거라면서 로네에게도 같은 장신구를 씌웠다.

광산에서 그가 자칫 소리라도 내면 갱도가 무너질 거라느니, 하는 소릴 떠들면서.

“다들 너무했네요.”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기가 있다면, 개인의 삶은 충분히 급변할 수 있었다.

또한 드는 생각이 있었다.

‘독스타나가 아니라도 이런 일은 곳곳에서 일어날 거야.’

목소리에 깃든 마력은 나만의 고유한 특징이 아니었다. 티네와 로네 남매를 보면, 드물게 태어나는 돌연변이 같았다.

이곳은 광산이 있는 고장이라서 비극적인 사고가 눈에 띄게 자주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이곳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 어디든지, 남들과 다른 목소리 탓에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경우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고치려는 시도는 해 봐야겠지.’

다행히도 나에겐, 적어도 이 남매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을 마친 나는 종이를 꺼내 펜으로 숫자를 적었다.

“우선, 목걸이값으론 이 정도 드릴 생각이에요.”

“……네?”

종이를 받아 든 티네는 이제 인간의 눈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느냐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아까 공방주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저 도제인데요. 재료도, 이 값이면 시트린 대신 옐로 다이아몬드를 쓸 수 있어요.”

“그럼 다이아몬드로 해서 다시 만들어 줄래요?”

“네?”

“제 결혼식에 쓸 목걸인데 그 정도는 해야죠.”

“어…….”

티네는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깜빡거렸다. 아직 현실감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일을 처리해 버리자. 나는 연이어 물었다.

“저녁에 시간 있어요?”

“네…, 네! 공방은 새벽에 시작해서 초저녁에 근무시간이 끝나니까…….”

“잘됐네요. 나머지 이야기는 제 숙소에서 저녁 먹으면서 할래요? 동생도 데려와요.”

몇 초 뒤, 온몸으로 승낙 의사를 표현하는 티네를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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