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건물로 들어서니 먼저 통일된 높낮이의 유리 진열장들이 보였다.
그 안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은 확실히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아름다웠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사랑과 물’이랍니다. 부드러움과 섬세함에 독스타나 보석 특유의 화려함과 풍부함을 결합하여…….”
“아름답네요….”
그토록 고고하게 굴었던 것치고, 란세이는 자신의 설명 자체에 심취해 있었다.
생각보다 견학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떠난 뒤에 따로 공방 견학 코스를 오픈할지도.’
설명을 들으며 넓은 공방 건물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쪽을 보십시오. 최근 몇 년간의 최고급 라인들은 경매에 내보내어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도 경매에 나갈 것들인가요?”
“크흠흠. 그렇습니다. 아, 작업 현장을 한 번 둘러보셔야겠지요?”
“물론이죠!”
보석의 산지이자 유명한 가공지인 만큼, 정기적으로 자체적인 경매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근소하게 일정이 어긋나서 직접 참여는 못 할듯싶지만.
공방주는 자신의 작품관을 마저 설명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가까스로 눌러 참곤 커다란 작업실로 나를 이끌었다.
나무로 구획된 작업실 문을 열기 전이었다.
“얼마 전 채굴했던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 말이야.”
도제들이 잡담을 나누는 건지, 수다스러운 말소리가 들렸다.
“결국 판크 공방으로 넘어갔다는데, 가공 끝났을까?”
“글쎄. 그거야 가공해도 황실에 바치지 않겠어?”
앗, 황실 이야기를 하는군!
자연스레 쫑긋 세운 귀로 여과 없는 말들이 들어왔다.
들어가려던 내가 갑자기 멈춰서자, 란세이 공방주도 의아한 얼굴로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자, 잠깐만요. 지금 공방 분들이 하시는 말에 흥미가 있어서요.”
공방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할 일은 안 하고. 내 저것들을…….”
황실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언제나 있었기에, 란세이 공방주도 나를 그런 유형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문 너머를 진지하게 곁눈질하니 그 뒤의 말들이 들려왔다.
“황태자께서 곧 결혼하시잖아. 예물로 쓸 보석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글쎄, 진짜 하실까? 신부가 도망간 거 아니었어?”
앗. 도망간 건 아닌데……. 오해예요!
제국인들이 나와 클레멘츠의 결혼을 기대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클랏샤를 떠나왔을 때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설마하니 이런 이야기까지 돌고 있을 줄이야.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계속 귀를 기울였다.
“청혼하셨다는 소문은 무성한데, 몇 달째 그다음 소식이 없잖아. 그럼 답이 뭐겠어?”
“뭔데?”
“차이신 거지.”
……!
이, 이게 무슨 소리람!
신분 격차를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차였다는 소문이 돌면 돌 줄 알았지. 이런 여론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세상 어느 여자가 황태자의, 그것도 클레멘츠의 청혼을 거절한단 말인가.
“하지만 왜? 세상 어느 여자가 황태자의 청혼을 거절하지?”
“게다가 그런 극적인 사랑까지 해 놓고. 심지어 황태자 전하는 굉장한 미남이시라던데.”
“흐음……. 사실 그거야 모를 일 아닌가?”
“뭐?”
뭐?
동료들끼리 일하면서 하는 이야기라서인지, 신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황족이 잘생겼다는 말이야 늘 있었잖아. 제정신 박힌 놈이라면 반박하겠어?”
“그렇지만 초상화가…….”
“마법 영상도 있고.”
“그런 거야 얼마든 조작할 수 있는 거고. 여기 누구 실제로 그분을 본 사람 있어? 없잖아.”
뭐?
이게 무슨 소리야! 그게 대체들 무슨 소리야! 그거 아니야! 내 남편은 잘생겼다고!
“오오, 듣고 보니…….”
아니야!
나는 조용히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했다.
“너희들,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도무지 못 하는 소리가 없군!”
그때쯤 란세이 공방주도 이건 아니라 느꼈는지, 나무문을 박력 있게 밀며 일갈했다.
“고, 공방주님!”
“어서들 하던 일이나 끝내!”
주변이 조용해지는 동안, 눈물을 머금고 결심했다. 내 남자의 얼굴의 명예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자고.
‘클레멘츠, 미안해요!’
이번 여행으로 다양한 여론을 들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클레멘츠가 사실 못생겼다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유언비어가 양산된 건 내 책임이었다.
“…필리아 님. 이쪽에서부터 보시면 됩니다.”
충격에서 벗어나고 나서 보니 꽤 유익했다.
공방 소속의 제자들은 경매를 앞두고 장신구 제작을 마무리하며, 끝난 작업물을 포장하느라 바빠 보였다.
다들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
구불거리는 붉은 머리칼을 땋아 내린 소녀였다. 너무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게다가 소녀의 주변은 어쩐지 사람이 없었다. 작업대를 멀리 돌며 힐끗 관찰하니, 틀림없이 동료들이 그녀를 피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에 걸린 검은 초커가 이번에도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초커야.’
광산에서 보았던 소년과 겹쳐 보였다. 뭔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몸은 이미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가까이에서 본 소녀 도제는 뭔가 반짝이는 장신구를 진지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왔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과연 뭘 만들고 있길래 그럴까.
시선을 내렸다가, 목걸이가 그리고 있는 모양을 알아본 나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와, 이거 혹시!
“아다만티스인가요?”
동그란 눈이 나와 마주쳤다.
* * *
“잘 됐다!”
티네는 방금 제 손으로 해낸 결과물을 보며 뿌듯하게 중얼거렸다. 작업대 위에는 섬세한 모양을 그리며 세팅된 노란색 보석이 놓여 있었다. 아직 미완성이라서 보석을 물리지 않은 부분들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야, 티네!”
티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기 무섭게, 작업실 건너편에서 누군가 버럭 소릴 질렀다.
“너 지금 소리 냈지? 무조건 닥치고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왜 그래?”
“아, 쟤가 또 쫑알거려서 프롱 녹았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어떡해!”
“몰라! 진짜 짜증 나!”
그리고 그들은 저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티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떨렸다. 이제라도 입을 꾹 다물어 봤다. 소용없을 테지만.
당연하지만 ‘네 작품이 망한 건 내 목소리랑은 관계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건 역효과였다.
미안해, 라고 중얼거리는 것 역시 더한 비난과 야유만 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티네는 죄인처럼 어깨를 움츠린 채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때 공방주 선생님이 들어오며, 작은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이곳은 우리 제자들이 작업하는 곳입니다. 란세이 공방 이름으로 나오는 작품이 워낙 많다 보니, 이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하죠.”
공방주 란세이는 척 봐도 자부심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는 부유해 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성에게 설명하다가, 곧잘 보이던 까다로운 태도로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뭘 보냐? 할 일들 하라니까!”
티네는 자기 작업대를 내려다보았다.
만들다 만 목걸이는 여전히 찬연한 모습을 뽐내며 놓여 있었다. 노란색 시트린으로 새겨 넣은 새는 날개가 반쪽밖에 없었다. 그 되다만 모습을 보니 갑자기 서러워졌다.
제국의 새 아다만티스는 파마의 음성으로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밝히는 영물이었다. 그리고, 아다만티스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오필리어 영애 역시 마계의 계략으로부터 제국을 구한 영웅이었다.
똑같이 목소리에 이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불운한 일이나 일으키는 자신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어쩌면….’
실은 자신의 목소리도 오필리어 님의 것처럼, 더 좋은 곳에 쓰일 수 있는 멋진 힘인지도 몰랐다.
비록 이 독스타나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티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느껴지지만.
그래도 수도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고 나서는, 오필리어 영애가 멋진 아다만티스로 변해 창공을 가르는 장면을 생각할 때면, 망상에 불과할 제 생각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실낱처럼 가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희망이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괜스레 나오는 눈물을 닦으려고 했을 때, 티네 앞에 공방의 손님이 멈춰 섰다.
“와. 이거 혹시….”
“아.”
티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티네가 만들던 목걸이에 집중하며 물었다.
“아다만티스인가요?”
“!”
공방주 선생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곁에 서 있었다. 일개 도제 따위가 주목받을 타이밍은 아니었다.
하지만 티네는 손님이 알아봐 준 게 너무 기쁜 나머지,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물방울 모양의 시트린을 얹어서 형태를 완성하려고 해요. 원래대로라면 아다만티스의 상징대로 다이아몬드를 썼겠지만….”
“그렇구나! 딱 보는 순간 왠지 아다만티스일 것 같더라고요. 다이아몬드가 아니어도 예쁜걸요.”
손님은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표정은 밝고 부드러웠고, 목에는 작은 보석이 달린 초커가 걸려 있었다.
초커. 자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