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돌아가면서 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가 돌려보내 준 집에서 수도로 올라갔고, 거기서 다시 혼우드를 통해 마계로 왔다는 걸.
조용히, 그리고 간간이 반응하며 내 이야기를 듣던 클레멘츠가 물었다.
“이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나는 어쩌고 싶지?
원래는 클레멘츠의 일만 끝내면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 생각이었는데, 막상 이제 와 보니 잘 모르겠다.
“…일단 전하의 일이 마무리되는 걸 봐야겠어요. 그다음에 결정할게요.”
“그래.”
나를 끌어안은 손의 힘이 강해졌다.
“여기까지 끌고 와 준 너의 노고를 헛되이 해선 안 되지. 이번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
“…….”
여전히 황제와 교회는 의견을 바꾸지 않았지만. 클레멘츠가 적극적으로 나오니 벌써 일이 해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인간계로 근접하던 우리 앞에 어떤 광경이 들어왔다.
“어, 제국군이에요!”
마계의 입구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인지. 한 무리의 인간 군대가 마물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직 마계의 중심부가 아니라서 마물 하나하나의 힘이 강한 건 아니었지만, 많은 개체가 달려들다 보니 제국군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제가 도울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클레멘츠는 내가 목소리로 펼친 방어막은 봤지만, 마족을 공격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진 못하지 않았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다만티스로 변해 끼이- 하고 울고 번개가 번쩍!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나의 멋짐에 감격하겠지?
들뜬 기분으로 열띠게 ‘황금색 송이버섯!’을 외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끼이-
어디선가, 내가 아닌 다른 새의 웅장한 울음소리가 하늘을 찢었다.
몇 초 후, 창공이 황금빛으로 변하더니 수백 갈래의 번개가 내리쳤다.
제국군들은 조금 전까지 전투 중이던 마물들이 새카만 숯덩이가 되는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낙뢰를 일으킨 새가 날개를 펼쳤다. 우리의 위에서 몇 차례 선회하더니, 서서히 내려앉았다.
“아니, 내가 하려고 했는데……!”
내 활약을 빼앗아 가서 분하지만 일단, 아다만티스였다.
이거야말로 전설 속에 나오는 그 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내가 성조로 변한 모습보다도 훨씬 더.
그리고 인간인 우리에게도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안녕한가, 젊은 새여.』
“……이건 뭐지?”
말에서 내린 클레멘츠가 불쾌한 티를 내며 나를 뒤에 세웠다.
『유스티온의 후손은 경계심이 많군.』
“난데없이 거대한 새가 바로 앞에 튀어나오면 누구라도 그럴 거다.”
“저기,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누구신가요?”
『나는 아다만티스다.』
그건 누가 봐도 일단 그렇습니다만…….
『마계의 왕이 독한 수를 썼지. 벗이 세운 뒤싱겐 가문의 치세에 이렇게 종말이 오나 싶었다.』
“종말이라고요?”
“벗이 세운 가문?”
동시에 되물은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벗이 세운 가문이라면, 정말로 눈앞에 있는 이 새가 바로 유스티온의 건국을 도운 아다만티스라는 얘기였다.
…….
전설 속의 새가 실존한다는 건 나를 통해 밝혀졌지만, 건국신화의 주인공까지 진짜 있었을 줄이야.
천상의 존재라더니 오래도 산다.
그리고 황가의 종말이라니. 원작 1부식의 배드 엔딩이 아니어도 어떻게든 제국 황실은 붕괴되기 직전이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자아를 잃고 마왕으로 각성한 클레멘츠가 제국을 멸망시켰을지도.
“아다만티스 님. 외람됩니다만…….”
『말하라.』
인자한 목소리가 울렸다. 신성한 새의 황금색 눈은 모든 것을 포용해줄 듯 보였다.
“그렇게 모든 걸 지켜보고 계셨으면서 이제야 나타나시는 이유가…?”
『…….』
“오필리어, 나는 너 말고 다른 아다만티스는 필요 없다.”
“앗, 정말요…?”
『……!』
깊어 보이던 황금빛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신성한 새는 살짝 위엄이 꺾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들 아다만티스는 천상의 권능을 누리는 대신 지상의 일에 간섭할 수 없다. 유스티온과 나의 경우는 그대 젊은 새처럼, 예외적인 일이었지.』
예외라.
시조의 아다만티스도 설마 처음은 나처럼 변신 조류는 아니었겠지.
『세월이 흐르고 유스티온은 이제 갔지만, 나로선 그와의 추억이 담긴 제국이 좀더 존속하기를 바랐다. 그러니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세상 고고해 보이던 긴 목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휘었다.
나를 향해서.
“……저요?”
하긴 따지고 보면 클레멘츠를 내가 구한 쪽이긴 한데……. 이렇게 휘황찬란한 새에게 요란하게 감사 인사를 받아도 되는 걸까?
새삼 바로 앞에 있는 제국군의 시선이 신경 쓰여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잠시 후, 내 눈높이까지 고개를 든 신조의 부리에 꽃이 물려 있었다.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꽃송이였다.
얼떨결에 받아들자, 전설 속의 그 새는 천천히 날개를 퍼덕이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런데 클레멘츠는 별로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내 손에 들린 꽃에 머물러 있었다.
의문을 가지는 것도 잠시. 앞쪽으로부터 큰 환호성이 울렸다.
“오필리어 님께서 전하와 함께 돌아오셨다!”
“전설의 아다만티스에게 축복을 받으셨다!”
“와아!!”
으악, 이럴 줄 알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둥 살 둥 싸우고 있었으면서 그럴 힘이 나는 걸까.
하지만 클레멘츠와 손을 마주 잡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래야 할 타이밍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군사들 사이에서 갑옷을 입은 카시스가 걸어 나와 부복했다. 초췌해졌던 얼굴이 재회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필리어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카시스는 무릎을 꿇은 그대로 내게까지 고개를 숙이려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듀프레 후작님께서 가장 고생해 주신걸요.”
주군과 충신 사이에 할 말들이 많을 터. 클레멘츠와 둘이 이야기하도록 놔두고 살짝 떨어지자, 후방 쪽에서 검은 머리의 미인이 튀어나왔다.
“내가 미쳤었지.”
벨라는 활을 든 채 나를 노려보며 파르르 떨었다. 평소보다도 더 날카롭고 화가 나 있었다.
“두 번은 없어, 오필리어 레오라. 여기서 저 징그러운 마물들을 상대하면서…… 널 여기로 보낸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너는 진짜 죽었다 깨어나도 몰라. 이 바보 멍청아.”
나는 등 뒤에서 신중히 망토를 끌어 내려 팔목을 감추었다. 벨라가 내주었던 팔찌의 방어 마법이 깨진 걸 보면 그녀가 흥분해서 혼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자, 벨라는 잠시 굳어 있다가 고장 나 버렸다.
“넌…… 넌 정말로 뻔뻔하고, 수치도 모르고! 그리고!”
“도대체 뭐라는 거예요, 백작?”
그사이 불쑥 튀어나온 여성이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오필리어, 나 너를 위해 스타테일 가의 군사를 데려왔어. 요 앞에서 사람들이 겁먹는 것 같길래 몇 번 연설도 했다. 잘했지?”
“카밀!”
단정하게 백금발을 묶은 카밀이 나를 끌어안고 고롱거리자, 벨라의 기분은 더더욱 나빠진 모양이었다.
“하…… 당장 떨어지지 못하겠나요? 그깟 오만해 보이는 연설이 뭐 별거였다고……. 그리고 군사는 제가 더 많이 데려왔습니다.”
“뭐, 그러시든가요. 어쨌든 무사히 돌아온 오필리어는 내가 먼저 안았는데 어쩌나.”
“카밀 드 베일리스!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말란 말입니다!”
여기가 마계인 거 확실한가? 왜 수도에서의 일상이 다시 보이는 것 같지?
마계까지 오는 데는 벨라의 활약이 컸다고 했다. 그녀가 데리고 있던 마법사가 마계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 보고했고, 이후 도착한 군대가 진군할 때도 간간이 소형 마물이 공격해 오긴 했지만 걱정하던 마수의 해코지는 없었다고.
보고했다는 마법사는 메디프일 테고, 마수와 마주치지 않은 건 벨라가 미리 손을 써둔 덕분이리라.
상황이 조금 정리된 뒤, 클레멘츠는 짧은 연설을 했다.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대들의 마음을 잊지 않겠노라.”
나에게 들은 이야기와 카시스의 보고를 종합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그는,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할 법한 말을 들려주었다.
“다시 얻은 생명이라 생각하며, 제국의 안녕을 위해 오래도록 걸어갈 것을 약속하지.”
너무 좋아요!
한쪽에 서 있던 내가 요란하게 손뼉을 치자, 군중 전체로 박수갈채가 퍼져나갔다.
연설이 끝나고도 군사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와 클레멘츠를 번갈아 보았다. 뭔가 또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는데…….
옆에 있던 벨라와 카밀이 한 발씩 앞으로 나가선 그들의 시야에서 나를 가려 버렸다.
어쨌든 마계에서는 하루빨리 철수하는 게 최선. 서둘러 주변을 정리한 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인간계를 향했다.
안개의 숲으로 나와 혼우드로, 다시 워프 포탈을 통해 수도 클랏샤로.
돌아가는 길은 일사천리였다. 예전에 한 번 클레멘츠와 함께했던 길이라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그 꽃.”
“네?”
“버리면 안 되겠나?”
“이거요? 그래도 버리긴 좀 아깝지 않나요?”
전설 속의 아다만티스가 준 황금빛 꽃은 한참이 지나도 시들지 않았다. 그러나 클레멘츠는 내내 그것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보더니, 결국 빼앗아 들었다.
“돌아가면 더 예쁜 꽃으로 주겠다.”
“으음…….”
클레멘츠는 나 몰래 꽃을 처리해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컷 아다만티스는 암컷에게 꽃을 줘서 구혼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니, 왜? 나는 진짜 새도 아니고 원래 인간인 거 뻔히 알 텐데.
어쨌든 중간중간 클레멘츠는 카시스와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마차 안에 구겨져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드디어, 클랏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