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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93)화 (193/218)

193화

“…컥, 이것 좀 놔 주시겠어요?”

메디프가 괴로운 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후드를 뒤에서 당기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어서 그는 보호막을 보강하는 짧은 주문을 외웠다.

길은 외길이었기에 계속해서 나아가는데, 얼마 안 가서 이번엔 더 많은 수의 마물이 들이닥쳤다.

“안 되겠어요. 갈수록 마물의 힘도, 수도 불어나는군요.”

내가 또 옷자락을 당길까 봐, 두어 걸음쯤 떨어져서 마법을 쓰던 메디프가 말했다.

“오필리어. 제가 더 강한 마법을 시전할 동안 엄호해 주세요.”

“네?”

무슨 소리예요.

“저는 비전투인원인데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허? 무슨 말씀이시죠?”

강한 마법사지만 계속 마법을 시전해야 하는 실전 상황이 부담스러운 듯, 메디프의 진지한 얼굴엔 땀이 배어 있었다.

“저는 당신의 목소리를 주요 전투력으로 믿고 들어왔습니다만?”

“아…?”

“아다만티스 오필리어. 왜 생각도 못 했다는 듯한 반응인가요?”

내 목소리를 여기서?

물론 이 목소리에 마력이 담기긴 했다. 변신을 조절할 때도 쓰이고, 미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기도 하는 힘.

하지만 전투 상황에서 쓸 수 있단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노래하세요.”

“네?”

“노래요. 아무거나 좋으니 계속 부르세요.”

“무슨…!”

대뜸 노래할 것을 요구한 메디프는 이어서 바로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일찍이 메디프는 내 목소리의 마력이 노래를 부를 경우 더 커진다고 한 적 있었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엔 그런 내용도 나와 있었다.

내 선조로 추정되는 옛 혼우드의 귀족 가문은, 이 목소리로 마족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냈다고.

“어서요!”

주문을 외던 메디프가 거칠게 소리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곤충을 닮은 한 무리의 마물 떼가 다가오고 있었다.

“보, 봄이 온기로 나에게 왔을 때!”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노래로 마물을 물리친다니. 그런 동화 같은 얘기가!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일단 눈을 질끈 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나도 함께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 그건 당신이었어!”

감았던 눈 한쪽을 살짝 떠보았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호박벌에게도 눈썹이란 게 있다면, 못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세우고 돌진하던 마물들은 괴로운 듯 주춤거렸다.

확실히 이동 속도가 늦춰진 사이, 주문을 완성한 메디프가 그들 가운데에 마법을 발사했다.

그들은 작은 폭발음과 함께 쏘아진 청광에 익어 버렸다.

“허억….”

“하아, 잘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죠.”

정말 이걸로 되는 거야?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메디프가 멋진 마법을 쓰는 동안 나는 ‘당신이 있어’를 두어 번 완창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노랫소리를 들은 마물들은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졌다.

자잘한 것들은 아예 머리가 터져 버리거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 버리기도 했다.

메디프는 나의 엄호에 힘입어 여러 개의 마법을 보호막 주변에 장전했다.

파직거리는 파란색 구가 우리 둘레에 맴돌다가, 마물들이 반경 안으로 접근해 오면 낙뢰가 되어 꽂혔다.

문제는 마계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마물들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점점 내 노랫소리를 듣고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개체가 많아졌다.

“안 되겠는데요.”

“2황자님. 어떡하죠?”

“다른 노래는 모릅니까?”

노래가 약발이 떨어지는 걸까?

계속 부르면서 살펴보니, 리듬이 복잡하고 템포가 빠른 부분에서 마물을 제지하는 효과가 컸다.

하지만 ‘당신이 있어’의 선율은 전체적으로 단조롭고 느렸다.

그런데 이곳에 또 어떤 노래가 있더라?

“얼른요, 오필리어!”

메디프가 재촉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마물에 맞서 새로운 주문을 외우려는 듯했다.

당장 쉴 새 없이 불러야 하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쪽 세계의 노래는 하나같이 느리고 얌전한 것들뿐이었다.

아, 안 되겠어.

“베이비-”

“……?”

이어지는 내 노래에 메디프의 눈빛이 세게 흔들렸다. 난생 처음 들어 보는 해괴한 가사라는 반응이었다.

당연했다. 나는 지금 ‘네게 반해 버린 내게 왜 이러냐며 연신 종소리를 울려 대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반응도 길게 가진 않았다. 몰려드는 마물들을 어서 해치워야 했기 때문에.

확실히 템포가 빠른 노래를 부르니 마력이 재깍재깍 차올랐다.

효과를 확인한 나는 최대한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꾸만 으르렁대는 노래.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노래 등등.

너무 오랜만에 부르다 보니, 그리고 노래의 효과가 즉시 눈에 보이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몰입했다.

파격적인 곡조에 발걸음마저 휘청거리던 메디프는 어느새 K-팝의 리듬에 맞춰 마물들을 쓸어 버리고 있었다.

‘이, 이게 뭐람.’

마음 한가득 자괴감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내가 노래라도 잘 해서 다행이다…….

“저건….”

그때 메디프가 내 뒤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불길하게.

억지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향하니, 높이를 가늠할 수 없도록 커다랗고 시커먼 생명체가 우릴 덮치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상황을 인지하기 전에 비명부터 터져 나왔다. 그 사이 뒤에서 주문을 외운 메디프가 스태프를 뻗는 게 느껴졌다.

가까스로 눈을 뜨자, 괴물의 팔이 보호막을 후려치기 직전에 오그라들고 있었다.

연이어 주문으로 생성된 불길이 거대한 몸집을 감쌌다.

“그렇게 크게 내질러 주니까 좋네요.”

“…노래하지 말고 계속 비명이나 지를 걸 그랬나요?”

“말이 나온 김인데, 그 노래들은 외국곡인가요?”

뭐 외국곡이긴 하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메디프는 의미 모를 웃음을 지었다.

그는 벨이 딩동 울리는 부분의 후렴구를 계속 흥얼거렸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네요….”

앞으로 마법 연구할 때마다 생각나는 거 아니야?

황당함 반, 미안함 반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괴성을 내지르는 마물 뒤로, 비슷한 크기의 녀석들이 모여들었다.

“망했네…….”

마계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마물들이 강해진다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마왕을 만나러 갈 수 있긴 한 걸까?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클레멘츠를 볼 수 있으니까.

“황자님! 제가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 볼게요!”

“아뇨, 목을 아끼세요. 오필리어 님.”

“네? 왜요?!”

이 순간에도 거대 마물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마의 땀을 닦은 메디프가 결연히 말했다.

“여기서 갈라집시다.”

여기서? 나는 어떡하고? 그리고 님은 어떡하고요?

“당신의 목소리는 마성을 가진 존재와 상극입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지만, 노래를 듣고 자극된 마물들이 사나워졌어요.”

“…….”

“지금부턴 아다만티스로 변해서 가세요. 파마의 음성을 가진 신수이니 마물들을 더 효율적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새로 변해 날아가면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마왕과 클레멘츠가 있을 만한 곳을 찾기도 쉬웠다.

“그럼 황자님은요?”

“저는 이제부터 저것들을 상대해야죠. 그런 뒤에 돌아가 백작에게 마계의 상태를 보고하겠습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거대 마물들을 올려다보았다. 지척까지 다가온 시커먼 생명체들은, 각각이 엔클레이오에서 날 납치했던 마수보다도 서너 배는 컸다.

“πάγος και αστραπές…”

처음엔 수월하게 마물을 상대하던 메디프는 이제 눈에 띄게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주문은 끊이지 않은 채 읊어졌고, 불꽃과 얼음,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푸른색으로 뒤엉키며 응축되었다.

“저쪽에서 강력한 마력장 간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선은 마물을 향해 고정한 채 그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아마도 아타누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강한 구속력을 지닌 마법 담금솥이니.

마왕도, 어쩌면 클레멘츠 역시도 거기 있겠지.

“…지금입니다.”

메디프가 속삭이듯 작게 말하더니, 이어 소리쳤다.

“가세요, 오필리어!”

거의 동시에 투명한 방어막이 해제되고, 마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덮쳐 왔다.

펑, 펑펑-

반구형으로 폭발하는 메디프의 마력을 뒤로 하며, 나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잠시 그 자리에서 선회하며 내려다보니, 메디프는 무난히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마물들 사이에서 그는 너무도 작고 약해 보였다.

『메디프!!』

목청껏 내지른 내 목소리는 날카롭고 맑은 새 울음소리가 되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쾅!

『……?』

목청을 돋운 방향의 저 앞쪽에서 따뜻한 느낌의 빛이 펑 하고 터졌다. 잠시 뒤, 그로부터 수직 방향으로 벼락이 내리꽂혔다.

뭐야? 뭐야 이거?

나에게 이런 종류의 숨겨진 힘이?

…있는 줄 알았다면 무반주 케이팝 메들리 같은 건 부르지 않았을 텐데!

클레멘츠는 수정처럼 투명한 벽 속에 잠들어 있었다.

어쩌면 잠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닐지도 몰랐다.

마왕이 주관하는 육각의 투명한 용광로 속에서는 모든 것이 왜곡되었다. 육체와 정신의 구분이 사라지고 자아의 경계가 흐릿해져 갔다.

그저 차갑고 투명한 곳이었다. 거울처럼, 혹은 얼음처럼.

이곳에서 클레멘츠가 만날 수 있는 건 그 자신의 기억과 예전에 가졌던 관념들뿐이었다.

*

마계까지 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안개의 숲은 주인을 맞이하는 성처럼 깊은 곳으로의 문을 열어 보였다. 그의 발걸음을 붙잡는 건 오직, 그 숲에서 처음 만났던 작은 새에 대한 기억이었다.

마계의 끈적하고 짙은 마기 속으로 들어온 뒤에도 그는 안전했다.

그의 피는 모든 마족을 굴복시켰고,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그는 마계의 후계자였다.

“새 왕이다.”

“왕이 마계를 찾아왔어.”

그는 마물들의 속삭임을 묵묵히 들으며 험한 지형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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