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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92)화 (192/218)

192화

메디프라면 마계의 입구까지는 물론, 마계 너머에서까지도 나를 호위해 줄 능력이 충분했다.

비록 그가 배신의 아이콘이긴 했으나, 언제나 내 일신의 안전만큼은 지켜 주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보험용으로 그의 마탑 배지 역시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카시스에게 벨라가 사실 흑표범으로 변한다느니, 사실 여기서 메디프를 찾았느니 하는 얘기까지 늘어놓을 순 없었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믿어 주세요. 반드시 안전하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할게요.”

통신구 너머, 카시스의 붉은 눈을 결연하게 마주 보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알겠습니다.

그 뒤, 그는 한숨을 쉬더니 당부했다.

-약속을 꼭 지켜 주십시오. 저에겐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것만큼이나, 오필리어 님께서 안전하게 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그럼요.”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거듭 당부하는 카시스와 통신을 종료하고, 벨라를 찾아 백작의 천막을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안쪽에서 뭔가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

“누굴 바보로 아는 모양이지. 너처럼 수상한 내를 풀풀 풍기는 놈이 세상에 흔한 줄 알아?”

“…….”

벨라와 메디프의 목소리였다.

“네놈이 황태자 자리도 먹었다며. 오필리어까지 위험하게 해놓고도 옆에서 얼쩡거려? 나랑 약속한 건? 너에게 양심이라는 건 있나?”

보아하니 메디프는,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벨라에게 정체를 들킨 모양이었다.

이게 바로 동물적인 감각이란 걸까?

무슨 약속을 했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벨라는 서슴없이 반말을 써 가며 메디프를 갈구고 있었다.

“내가 충성을 맹세한 귀족이라면, 지금 이 순간 너를 황실에 신고해야 하겠지.”

“잠깐만요. 잠깐만요, 벨라루시아! 한 번만 봐 주세요. 그리고 저는 나름대로 오필리어만큼은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

나는 이쯤 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저기…….”

“…….”

천막 안의 싸늘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새침한 눈으로 날 노려보던 벨라가 쏘아붙였다.

“이놈이 2황자가 아니라 마족이라 해도 내게는 거짓말하지 마, 오필리어. 짜증 나니까.”

“알겠어, 벨라. 미안해.”

시녀 시절의 기억을 살리며 생글거리자 그녀는 금세 표정을 풀었다.

반면 메디프는,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는 어디 가고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조금 가엾지만 그가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해 보였다.

“둘이서 잠깐 할 말이 있어.”

내가 운을 떼자, 벨라는 말없이 메디프 쪽을 노려보았다.

그는 쪼그라든 그 상태 그대로 터덜터덜 천막을 나갔다.

“뭔데?”

“마계의 입구 말이야. 너라면 알고 있겠지?”

그녀는 조용히, 푸른 눈으로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알지.”

꼭 내가 이런 질문을 하리란 걸 예상한 사람처럼, 이어서 차분히 질문했다.

“내가 데려다주면,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나는 클레멘츠를 찾으러 가야 했다.

하지만 얼마나 걱정할지 뻔히 아는 사람 앞에서, 마계로 들어가겠단 말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내 얼굴을 바라보던 벨라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책상 아래를 뒤지더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상자를 꺼냈다.

“받아.”

상자를 열자, 내 눈은 저절로 크게 벌어졌다. 조심스럽게 안에 든 것을 꺼냈다.

“이거…… 이걸 어떻게 찾았어?”

처음 시녀로 들어갔던 어린 날, 벨라에게 예물로 주었던 금팔찌였다.

클레멘츠가 찾아온 뒤에 벨라가 화살에 매달아 쏘아 버렸던.

숲속 깊숙이 처박혀 버려져 있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찾았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완 모양이 달랐다.

열두 살 어린이에게 맞도록 조그마했던 팔찌는, 성인 여성이 착용할 수 있도록 사이즈가 수선되어 있었다.

추가적인 부속과 보석 장식이 더해져 더욱 고급스러워 보였다.

“방어 마법이 걸려 있어. 물리 공격이든 마법 공격이든, 아무리 강한 거라도 한 번은 막을 수 있을 거야.”

“…….”

말문이 막혀 바라보니, 벨라는 살짝 다른 곳을 보며 중얼대듯 덧붙였다.

“넌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하니까.”

“벨라.”

“그 다음 네 몸에 유의미한 타격이 감지되면, 팔찌가 너를 모나한 저택으로 귀환시킬 거야.”

고맙다는 말로도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숲에서 되찾아 온 팔찌에, 백작이 된 후 마법사들을 고용해 마법을 걸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귀환 마법이 걸려 있다는 말에 문득 그녀와 한 약속이 생각났다.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했었지.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데.

“몸에서 빼놓지 마. 그리고.”

벨라는 감동에 빠져 있는 나를 남겨두고 책상에서 일어났다.

“마계엔 저 황가 출신 마법사와 같이 가도록 해. 그놈은, 내가 변신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응? 어떻게?”

언제부터?

생각보다 둘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널 지키겠단 약속을 잊지는 않은 것 같아.”

벨라는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리곤 천막을 나섰다.

우리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해가 지자, 천막에 앉아 있던 벨라는 검은 구름에 감싸이며 변신했다.

성체 흑표범으로 변한 벨라가 묵직하고도 날렵하게 걷는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천천히 걸어 나오니 드문드문 번을 서고 있는 병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나서서 그들을 기절시켜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백작이 된 벨라는 굳이 흑표범인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었으므로.

“크르릉.”

메디프와 나는 그녀를 따라 빠른 속도로 걸었다.

병영을 빠져나가 깊은 숲으로 들어가자, 땅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우리를 둘러쌌다.

기묘하며 오싹한,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들이 들려 왔다.

벨라가 한 번 목을 빼고 포효하자, 그 소리들은 한 번에 조용해졌다.

이제는 맑은 달빛만이 고요한 숲을 비추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였어요? 지금….”

메디프가 좌우를 두리번거렸지만, 벨라는 말없이 앞장서서 숲을 통과했다.

“마수들이 내는 소리일 거예요.”

내가 속삭였다.

안개의 숲속에서 나는 정체 모를 소리. 마수와 소통하는 벨라가 통제할 수 있는 거라면, 원작에도 나오는 마수들의 ‘목소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

짧은 설명에 메디프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안개가 자욱해져, 중간에 메디프가 짧게 주문을 외웠다.

작은 푸른빛의 구가 우리 앞을 떠다니며 안개를 흡수하고 시야를 밝혀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크헝.”

멈춰 선 벨라가 작게 포효했다.

“여기가….”

“마계의 입구군요.”

메디프가 감탄한 어조로 응수했다.

누가 봐도 저 안쪽이 바로 마계의 입구였다.

검은 나무들은 점점 크고 음산해져서, 이곳에선 마치 마물의 종류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나무들 사이로 뻗어나간 길.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빽빽해진 안개는, 바로 길 저편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가 볼까요?”

메디프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벨라는 그런 우릴 한참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고마워, 벨라.”

“…….”

“우리 다녀올게.”

날 바라보는 흑표범의 파란 눈이 조금 서글퍼 보였다.

크르릉, 작게 목을 긁던 벨라는 이내 내게서 휙 얼굴을 돌려 버렸다.

냉큼 가 버리라는 듯.

문득 그녀를 위해 하빌 뿌리를 캐러 들어왔던 날이 생각났다.

길은 그때보다 훨씬 어둡고 습했다. 또한 그땐 마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나올 마족을 상대해야만 했다.

엑스트라라고 주어지는 그 어떤 면책도 없다. 나는 그때보다도 더, 정말로 많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그때처럼 나아가야만 했다.

“뭐 해요, 오필리어?”

몇 걸음 앞에서 메디프가 부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망토에 달린 후드를 좀 더 깊이 눌러썼다.

그리고 마계를 향해 달려나갔다.

“제 옆에 붙어 서세요.”

메디프의 옆으로 가자, 그는 품에서 미리 챙겨 온 완드를 꺼냈다.

“φως και προστασία”

주문을 외우자 완드 끝에서 좀 더 강한 푸른빛을 뿜는 구가 생겨났다. 동시에 우리를 둘러싸는 투명한 보호막이 생겼다.

흠. 역시 마법사를 하나 챙겨 오길 잘한 것 같군.

“형님께서 어디 계신지는 알고 계십니까?”

“…아마도 마왕성이겠죠.”

제국 안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마계로 갔다는 것만이 그의 행방을 추적할 유일한 단서였다.

하지만 인간계와 마계가 무슨 이웃 나라도 아니고. 자세한 지리는 어떤지, 어디쯤 그가 있을지 알 방법은 없었다.

내가 아는 건 글로리나 부인이 해준 말뿐이었다.

육각의 용광로이자 시공의 열점, 아타누르에 마왕이 묶였다는 것.

클레멘츠가 평생 완벽한 후계자로 살아왔음에도 모든 것을 빼앗긴 건, 마왕이 제 욕심으로 그의 탄생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라면 모든 것의 원흉인 마왕을 만나기 위해 마계의 심층부를 향하지 않았을까?

아직 주변은 지금껏 지나온 숲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좀 더 황량하고 어둡다는 점만 제외하면.

경계가 풀린 상태로 걷고 있을 때였다.

“조심하세요!”

메디프가 외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뭔가 우르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투명한 보호막이 새까맣게 덮였다.

“으아악! 저게 뭐야!”

“마물 박쥐들입니다. …주문을 외울 테니 이것 좀 놔 주시겠어요?”

메디프의 로브를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던 손을 머쓱하게 놓았다.

조금 전보다 더 긴 주문이 외워지고, 보호막 너머에서 이번엔 분홍색을 띤 빛이 팍 터졌다.

그와 함께 마물 박쥐들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흐아악!”

꼭 기름에 튀기는 듯한 소리가 나서, 끔찍함에 또다시 앞에 있는 것을 붙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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