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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91)화 (191/218)

191화

사실 정찰을 자원한 이유는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었다.

제국군이 서부로, 이어 마계로 진군하기까지 기다리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 발로 클레멘츠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 탓에.

결국 카시스를 설득해낸 나는, 곧바로 혼우드를 향하는 워프 포탈을 탔다.

나를 감싸던 워프 포탈의 파란 빛이 사라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혼우드.

이곳으로 돌아오면 모든 게 끝나 있을 줄 알았는데.

인생이 늘 예측불허라는 생각에 픽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포탈에서 영주의 성까지 가는 길은 훤했다. 예전 같았으면 걸어갔겠지만, 나는 이제 돈도 많고 급하므로 마차를 타기로 했다.

마침 바로 앞에 멈추어 있는 삯마차가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던 나는 마부의 얼굴을 보고 걸어가는 그 자세로 굳어 버렸다.

“타세요.”

아니…,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새 황태자님. 당신 실종됐다면서요.

“뭐가 ‘타세요’예요? 메라, 닉타.”

바로 경계하면서 마물들을 부르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맣고 흰 마물들이 나타났다.

“왜, 인간의 딸?”

“저주를 풀어줄까?”

“저주는 됐고요, 저 인간이 허튼짓하면 동물로 만들어 주세요. 어떤 동물이든 상관없고요.”

다행히, 마물들은 이번엔 눈치 없게 ‘우린 뒤싱겐의 말만 들어!’라느니 떠들지 않았다.

기괴한 눈 두 쌍이 고요히 메디프를 응시했다. 메디프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해치지 않을 테니 믿어 줄래요?”

“믿어요? 내가 당신을 왜?”

“당신 말대로, 엄마 말 한 번 지독하게 안 들어보려고 왔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메디프는 칼로카이리 축제 날, 마법사의 천막에서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정체 모를 은둔 마법사 같은 차림. 다른 사람이 봤다면 결코 이 사람이 지금의 황태자라곤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마부석에서 내려온 메디프가 한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날 감옥에서 당신 말을 듣고 많이 생각했어요. 지금껏…… 제 생각과 행동이 단단히 잘못되어 왔다는 걸 인정해요.”

“…그래서요?”

“미안해요, 오필리어. 지난날의 제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어요.”

낮은 목소리에선 겸허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게 진짜일까?

내 양어깨 옆에서 마물들이 사라지는 순간, 어디선가 황비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거 아닐까.

메디프가 실종된 탓에 황비를 비롯한 2황자파가 닭 쫓던 개마냥 얼빠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한 게 하도 많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나는 팔짱을 낀 자세로 되물었다.

“왜 여기 있어요? 황궁에서 얼마나 찾고 있는데요.”

“거기론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말했잖아요, 이제 엄마 말은 안 들을 거라고.”

“안 돌아가면 어쩔 거죠? 당신의 신분이 어디로 사라지나요?”

“사라질 거예요.”

메디프의 미소는 조금 자조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제 모습엔 마법이 걸려 있어요. 당신을 제외한 사람에겐 제 진짜 얼굴이 보이지 않을 겁니다.”

“…….”

“황족 메디프는 이제 없어요. 충분히 그의 삶에 휘둘려 왔으니.”

그래도 내가 팔짱을 풀지 않자, 그는 로브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당신도 아시겠죠.”

여름 무도회 때 보여주었던, 마탑 마법사의 배지였다. 하긴, 그는 마법에 대해서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이제부턴 마법 외길 인생을 살겠다는 걸까?

“제게 믿음이 생길 때까지 가지고 계셔도 좋아요.”

“…좋아요. 이렇게까지 하신다면.”

나는 오른편에서 아직까지 메디프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던 닉타에게 배지를 내밀었다.

“이것 좀 맡아 주시겠어요?”

“흥, 그런 잔심부름을… 우리는 뒤싱겐의 말만, 웁!”

우려했던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반대편에 있던 낮의 마물 메라가 자매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중에 봐, 인간의 딸!”

마물들이 배지를 가지고 사라지고 난 뒤. 다소 어색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마차에 올랐다.

“당신이 이쪽으로 올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마음이 앞서는 사람이니까, 형님의 행방을 찾아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죠.”

“네…, 그런가요.”

“형님이 그렇게 된 데엔 제 책임도 커요. 그리고…….”

갑자기 말을 끊은 메디프는 먼 산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 사람이 어디서 어쩌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 저도 비슷한 것 같으니까…….”

벨라 얘기로군……. 나는 일단 친절하게 모른 척해 주었다.

침묵 속에서 모나한 백작의 성이 가까워졌다.

벨라가 백작이 되었지만, 저택은 겉보기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적으로 조금 헛걸음했다.

“백작님이 안 계신다고요?”

“네. 수도에서 내려온 황명을 수행하러 숲으로 가 계십니다.”

하긴.

서부를 거쳐 마계로 출정한다는 지령이니, 혼우드의 영주인 벨라에겐 그 준비를 맡아 제국군 본대를 기다릴 책임이 있었다.

백작이 된 첫해에 벌써 군사 임무라니.

조금 걱정되지만, 벨라라면 잘 해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입니다. 레오라 영애.”

“아, 안녕하세요!”

“어이쿠, 말씀 낮추십시오.”

저택 문 앞에서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모나한 저택의 집사님이었다.

이 집 시녀일 적 자주 얼굴을 보던, 사람 좋은 할아버지인데.

“이젠 제국의 상징인 아다만티스 아니십니까.”

날 보며 반갑게 눈을 찡긋거리다가도, 금의환향한 사람 보듯 선망의 눈길을 보내시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정작 내 직위는 상경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그저 남작 영애에 불과한데.

“그리고 황족이 되실지도 모르는 분인데…….”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메디프의 말이 사실인지, 집사님도 그의 정체를 전혀 추측하지 못했다.

나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적당히 지어냈다.

“저를 호위하기로 되어 있는 마법사요.”

“오오, 그렇군요! 마법사의 호위를 받으시다니!”

그마저도 대단하다는 듯 감탄하는 집사님의 태도에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때 메디프가 말했다.

“실례지만 백작님께서 계신 곳이 어딘지, 지도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레오라 영애께서 급히 그분을 만나 봬야 해서 말입니다.”

“오오, 물론입니다!”

집사님은 어쩐지 감동한 채로 서재로 달려가, 혼우드의 지도를 꺼내왔다.

메디프는 벨라가 진을 치고 있다는 안개의 숲의 위치를 눈여겨 보았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어?

잠깐 눈을 깜빡이는 사이, 주변의 풍경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시야가 점멸하고. 금세 달라진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여긴…….”

안개의 숲. 그 안에서도 꽤 널찍한 공터였다.

저 앞쪽에 하얀 천막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모나한 가의 붉은 깃발이 걸려 있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근처를 순찰하러 돌아다녔다. 대부분은 저택에서 일할 때 오며 가며 봤던, 모나한 가의 사병들이었다.

“오오….”

우리 벨라가 이런 귀족다운 일을 하고 있다니, 멋있잖아!

……아니, 그게 아니지. 나는 일단 옆에 있는 메디프를 타박했다.

“왜 다짜고짜 이동마법을 쓰는 거예요? 놀랐잖아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여기까지 마차를 타고 오나요? 숲길인데.”

“말 잘했네요. 마차는 어쩌고요? 왜 두고 와요?”

“모나한 가에 주는 선물이라고 해 두죠.”

나 참!

어쨌든 한시가 급한 건 사실이었으니, 메디프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건 잠시 미뤘다.

신분을 밝히고, 병영으로 들어가 벨라를 만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필리어 레오라.”

천막 안에서 나를 맞은 벨라는 상당히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윤이 나는 은빛 갑옷과 붉은 망토. 거기다 손에 든 지휘봉까지 아주 잘 어울렸다.

“벨라!”

“…….”

여전히 서늘한 푸른 눈이 나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걱정한 보람이 없게 만드는 태도는 여전하구나.”

짧은 한마디에는 타박과 애정이 골고루 섞여 있어, 내가 알던 벨라의 모습 그대로였다.

“저 사람은?”

벨라는 턱짓으로 메디프를 가리키며 물었다.

본인 스스로 더는 황족 따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딱히 무례를 저지르진 않은 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메디프의 태도가 이상했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모나한 백작.”

신분도 가려진 상태면서 갑자기 겁을 먹은 건지 긴장을 한 건지. 서 있는 자세마저 부자연스러웠다.

아니, 자기소개하라고.

“……?”

벨라의 표정도 안 좋아져서, 나는 일단 저택에서와 비슷하게 둘러대었다.

“수도에서부터 나를 호위하러 따라온 마법사야. 듀프레 후작님이 붙여 주셨어.”

“…그렇습니까?”

그들은 일단 서먹서먹한 표정으로 서로 예의를 차렸다.

-알겠습니다, 오필리어 님. 그럼 나머지 조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통신구에 카시스의 진중한 얼굴이 비쳤다.

도착한 뒤 벨라를 따라다니며, 숲의 자세한 구조와 보급 상황을 확인했다.

그 뒤 수도에서 가지고 온 통신구를 통해 카시스에게 전달을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마계에 관한 보고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모나한 백작의 병력을 차출해 간다 해도, 마계에 다가가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

-지시만 전달하시고, 오필리어 님께선 병영에서 기다리시는 건 어떠십니까.

“아니에요.”

사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카시스는 우리가 마계의 입구를 찾는 데만도 한세월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마계의 위치는 벨라가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밤마다 흑표범으로 변해 혼우드의 산지를 제집처럼 누빈 데다, 마수를 통제하는 그녀는 안개가 짙은 깊은 숲속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니.

직접 말해준 적은 없지만, 확실했다.

그리고 내게는 웬만한 군사들이나 한 떼의 황궁 마법사들보다 유능한 마법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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