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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90)화 (190/218)

190화

클라우디아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전하, 전하…! 진정하십시오!”

그때,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분명 메디프를 찾으라고 파견한 그들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로브는 진창에 대여섯 번 구른 듯 더러워져 있고, 드러난 신체 부분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부러진 스태프를 든 자도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그 모습을 못 본 것처럼 날카롭게 캐물었다.

“찾았나?”

“저, 저기……전하. 그것이.”

“메디프가 오지 않겠다고 하더냐? 이 어미가 너무했다고? 그래. 인정하마.”

그리곤 마치 아들이 앞에 있는 것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이 너무 편협했던 듯하구나. 원한다면 황위에 오른 뒤에도 마법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

“그래……, 마법사 황제가 되는 거야! 현왕 유스티온의 재림으로 불리는 거지. 얼마나 멋있겠니?”

파르르 떨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점점 기괴하고 절박해졌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황태자께선 절대로 돌아올 생각이 없으시답니다.”

“저, 저희를 이렇게 만드신 것도 그분이십니다만, 그게……. 뒤싱겐의 족보에서 지워질지언정 황실의 사람으로 살아가진 않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자식이 뭐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는진 관심 없다. 뭐가 됐든 내 앞에 데려오라니까?”

“그게, 더 이상 수도에서 메디프 전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법을 쓸 수는 없지만, 페리윙클 가문 사람인 클라우디아는 그게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마법사의 기척을 읽을 수 없다는 것. 메디프가 작정하고 자취를 감춰 버렸단 뜻이었다.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이대로 수도를, 제국과 대륙을 계속 뒤진다면 찾을 수 있을까? 얼마 동안이나?

“나가거라. 이 쓸모없는 놈들아.”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클라우디아는 한참 동안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써 인내하고 설계한 세월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내 아이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 * *

“어찌 이럴 수가!”

황제 코넬리우스는 집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의 손에는 오늘 아침 귀족 의회에서 올라온 서류가 들려 있었다.

황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페리윙클을 선택하고 교회를 끌어들였거늘. 다 다스렸다고 생각한 귀족들이 애써 정리해 둔 일을 뒤집으려 들었다.

“무엄한……, 무엄한 자들 같으니라고!”

알아서 흩어지리라 생각한 클레멘츠의 잔당들이 손을 쓴 건지. 그동안 비밀에 부쳐 왔던 황실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황가의 후손을 지키고 마계에 대응하라고? 서부로 군사 출정까지 요구해? 이런 불온한!”

더욱 환장하겠는 건, 비밀을 알게 된 제국민들이 이 불온한 무리에 찬동하고 있다는 거였다.

황제는 스스로도 이들의 주장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짚어내지 못했다.

“감히 황제인 나에게!”

그저 다른 이가 황제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게 화가 나고 답답했다.

그리고 이 성명을 받아들인다면 황실, 즉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때마침 황제의 귀에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황비! ……왜 그러시오?”

평소완 다른 모습이었다.

눈가에 늘 자리하던 온화한 웃음이 사라졌다. 심지어 틀어올린 머리카락마저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은 퀭했다.

그러나 코넬리우스는 곧 그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 버렸다. 부인네에게 걱정거리가 있어 봤자 황제의 근심보다 중할 리 있겠는가?

“클라우디아. 이것 좀 보시오!”

황비의 눈이 팔락거리는 서류를 무감하게 응시했다.

“이들이 감히 우리가 내린 결정을 뒤엎으려 하고 있소. 어서 어떻게든 해보시오!”

원래대로라면 이럴 때, 클라우디아는 부드러운 투로 그를 위로했을 것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요…?”

하지만 그녀는 멍하니 되뇌더니 픽 웃었다.

“제가 내린 결정이겠죠. 당신이 뭘 했다고.”

황제는 한동안 제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이젠 귀까지 어두우십니까?”

황비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꾸며내지 않았다.

메디프가 도망쳤다. 더 이상은 어머니와 페리윙클이 내세우는 황자로 살지 않겠다는 편지 하나 달랑 남기고는.

그녀가 더 이상 황궁에서 어떤 짓을 하든, 저가 황태자 따위 하지 않겠다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푸른 눈에 떠오른 건 공허함, 그리고 여태껏 잘 감춰 왔던 경멸감이었다.

“클레멘츠의 추종자들이 군사까지 이끌고 마계로 따라가겠다고 하더이까? 가라고 하시든지요. 후훗….”

“뭐야? 클라우디아. 당신 미쳤소?”

“그런지도요.”

모든 것을 놓아 버린 클라우디아가 웃었다. 그 미소에서 기묘한 생기가 빛났다.

“당신께서 사람을 돌게 만드는 구석이 있으시니 말입니다. 황제 폐하.”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폐하께서 뭐든 똑바로 정하시는 게 있던가요. 두 황자 모두에게 기회를 줄 것처럼, 제가 제 아이를 괴롭히게 만드셨습니다.”

“허, 참! 결국 정말 메디프가 황태자가 되었잖소!”

클라우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한 낯으로 황제를 쳐다보다가, 별안간 소리쳤다.

“아니요! 그 아이가 저를 떠나게 만드셨죠!”

“무슨….”

메디프가 떠났다고?

황제는 멈칫했다. 요사이 둘째 놈이 통 안 보이긴 했단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맞받아치듯 언성을 높였다.

“왜 내 탓을 하지? 과인은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기회를 준 것뿐이오!”

“사랑하는?”

클라우디아는 허리를 꺾어 가며 웃었다. 끅끅대는 낮은 웃음소리가 낯설었다.

“그렇게 사랑해서, 당신의 장남을 마계로 쫓아내셨습니까? 왜, 설마 저도 사랑하셨나요?”

“…맞소!”

그는 우물쭈물하다가도 이내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이렇게 우스울 수가…. 그럼, 저까지도 그 여자처럼 만드실 셈입니까?”

‘그 여자’.

황비는 셀레네에 관련된 그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비웃고 있었다.

‘너에게 너 자신 말고 중요한 게 있긴 했는가?’

그 사실을 깨달은 황제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클라우디아!”

그는 이미 돌아 걷기 시작한 아내를 쫓아갔다.

“당신 미친 게 틀림없어!”

쿵, 문이 닫혔다.

커다란 집무실 안에 홀로 남은 코넬리우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폐하께선, 아버지로서 그분을 지킬 생각이 있으셨습니까?”

“그렇게 사랑해서, 당신의 장남을 마계로 쫓아내셨습니까?”

“아니야. 아니란 말이다!”

어째서 그 둘이 똑같은 이야길 하는지, 황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셀레네. 사랑한다고 수없이 속삭이면, 수줍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저 공허한 눈일 뿐이던가?’

‘방금 전 나를 차갑게 비웃었던 클라우디아의 눈과 똑같지 않던가?’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다!”

가족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

사랑은커녕,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자.

주변은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코넬리우스는 계속 아니라고 부르짖었다. 그처럼 완벽한 사내이자 아비이자, 지배자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힘이 빠지고 말 때까지 고개를 도리 젓다가, 그는 이윽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 * *

출정 허가가 났다.

완강하던 황제가 어떻게 마음을 바꿨는지. 마계와의 경계인 서쪽으로 제국군의 부대 진군을 명령했다.

사람들의 요구대로, 황족을 지키기 위해 국가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황제가 허가하더라도 황비 쪽에서 가만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새 황태자 메디프가 갑자기 사라져 눈이 뒤집혀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그 뒤로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페리윙클 가문을 비롯한 2황자파는 이럴 수 없다며 난리를 피웠으나, 중심인 황비가 열의를 잃어 더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클레멘츠를 구하겠다는 명분도, 황제의 허가를 받은 절차도 아무런 하자가 없으니까.

“클레멘츠 전하를 구하자!”

“클라티아 제국 만세!”

수도에서는 출병 준비가 한창이었다. 황제의 검인 듀프레 후작으로서 카시스 역시 지휘에 참여했다.

조금씩 해결되어 나가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 걱정거리가 있었다.

첫째는 클레멘츠의 행방이었다.

“전하의 행적은 아직인가요?”

“추가적인 단서를 계속 수집하고 있습니다만, 크게 잡히는 건 없습니다.”

아무리 물색해도 그의 행적이 안개의 숲 근처에서만 발견된다는 건….

역시 클레멘츠가 마계로 떠났기 때문이겠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클레멘츠가 이미 마계 쪽으로 돌아선 건 아닐지, 혹은 그러기도 전에 험한 꼴을 당한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걸 구구절절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오필리어님.”

내 마음을 아는 듯, 카시스는 늘 그랬듯 선의로 가득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둘째는, 현재의 제국군이 단 한 번도 마계로 나아가 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마계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혼우드의 숲.

서부의 숲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마계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정찰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제가 가 볼게요.”

“오필리어 님께서 말입니까?”

카시스는 놀라서 대답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위험한 일은 맡길 수 없습니다.”

“혼우드를 거쳐 진군하니 모나한 백작의 협조가 필요한데, 제가 마침 벨라의 친구니까 적임자예요.”

“…….”

틀린 말은 아니니 카시스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붉은 눈을 똑바로 보며 계속 설득했다.

“그리고 위험하지 않아요. 변신도 할 수 있고, 전하께서 떠맡기고 가신 마물들도 있거든요.”

메라와 닉타는 아직도 나를 따라 다니며 ‘저주 풀어 줄까?’라고 염불을 외고 있었다. 부르면 바로 나타나니, 그들에게 뭔가 명령하진 못해도 위협용으론 쓰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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