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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46)화 (146/218)

146화

“재미있구나.”

한쪽은 하얗고 한쪽은 검은 날개가 늘어져 의자처럼 합체 마녀를 떠받치고 있었다. 달처럼 하얀 눈동자가 물끄러미 나를 향했다.

“그렇게 죽고 못 살더니 한순간에 울며불며 화내고.”

“그렇지만 클레멘츠가!”

‘죽고 못 살더니’ 부분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합체 마녀에게라도 공감을 얻고 싶었다.

“클레멘츠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아, 씨. 생각하니까 또 우울해지네.”

“뒤싱겐이 잘못했지. 뒤싱겐이 잘못했네.”

이질적인 목소리는 밤과 낮의 마물로 쪼개져 있을 때처럼 어색했지만 분명 날 달래고 있었다.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았다.

“제가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그냥 클레멘츠를 믿고 따랐어야 하는 걸까요?”

저주의 원흉인 마물들에게 대체 뭘 묻고 있는 걸까.

‘합쳐진 시간’이란 말을 들으니 왠지 오래 살아 온 선배처럼 느껴져서일까? 꿈에서 만나다 보니 친근감이 느껴져서?

“하늘의 황금 새는 원래 길들여지지 않아.”

합체 마녀 역시 나에게 친밀감이 있는지 조금은 웃으며 말한 것 같은데…… 무슨 새요?

멍청히 쳐다보고 있으니, 합체 마녀가 팔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그 동작에 공간이 갈라졌다.

마냥 검다고 생각했던 옷자락은 이제 보니 은하수로 수놓인 것 같았다.

“보렴.”

뭘?

의문을 품기가 무섭게 내 아래로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다. 밤의 어둠 속에 잠든 도시의 모습이었다.

한눈에 보이는 황궁과 아카데미, 교회, 크고 작게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건물들. 달빛을 반사하는 바닷물결까지.

이건 클랏샤의 야경이다. 그리고 내 발밑은 허공이다.

“꺄아아아악-!!!”

미친 마물! 기껏 속을 터놓았더니 추락사로 생을 마감하게 만들어?

질끈 눈을 감았지만 예상했던 추락이나 고통은 없었다. 하긴 이건 꿈이니까 떨어져 죽을 리 없지.

“그리 울었는데도 목청은 여전히 좋아.”

어쩐지 흐뭇한 투였다.

눈을 뜨니 맑은 밤하늘을 희부옇게 흐리는 빛이 보였다. 선명한 황금색을 띤 빛은 자꾸만 내 주위에서 일렁였다.

나의…… 날개와, 길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목 부근에서.

이게 뭐야?

합체 마녀가 등장하는 꿈에서는 곧잘 멋대로 모습이 바뀌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확연히 달랐다. 습관적으로 날개를 치니 퍼덕 하는 소리가 났다. 파닥이 아닌 퍼덕. 묵직한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다.

“황금빛 낮의 딸. 더 이상 보호받을 생각이 없는 새는 병아리라고 할 수 없지.”

합체 마녀는 밤에 반쯤 녹아들어 있었다. 나는 어둠과 별빛 속에서 어렵사리 그녀들의 눈동자를 찾아냈다.

“아름다운 밤의 딸은 숲을 움키는 발톱과 바위산을 호령하는 목소리가 어울려.”

벨라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황금빛 낮의 딸. 너에게는 마성에 속한 것을 깨어 내는 힘과, 집으로 돌아갈 날개가 있어.”

검은 손톱이 난 새하얀 손은 서쪽을 가리켰다. 그 순간, 원하기만 하면 그리로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찬 공기를 가르며 하늘길을 타고, 얼마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래? 아니면, 너의 사랑스러운 뒤싱겐을 위해서 싸우겠니?”

싸운다고?

세계의 손님이니 뭐니 하며 ‘원작’ 이후를 보여 줄 때 느꼈지만, 합체 마녀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내 힘을 보태 싸워야 할 일이 있을 만큼 클레멘츠의 상황이 안 좋은 걸까?

답은 이미 정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날개를 움직여 서쪽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기다란 꽁지깃이 휘날리며 빛났다.

합체 마녀는 웃었다. 밤을 갈라놓을 만큼 긴 웃음소리가 점차 멀어지며, 그 존재의 형상 역시 희미해졌다.

그리고 나 역시 꿈에서 깨어나…….

깨어나지 않았다!

당황스러워서 날개를 퍼덕이니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뭐야, 이거?!』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더 이상 ‘삐약삐약’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소리……긴 한데, 어쨌건 간에 도심 밤하늘에서 들리면 소음 공해지. 일단 부리를 다물었다.

모든 것이 두려울 만큼 선명했다.

달 아래 드러난 야경, 내게서 뿌려지는 빛, 뼛속에 공기를 품은 듯 가벼워진 몸.

깃털 사이사이를 훑는 바람.

망할. 이건 현실이었다.

멀쩡히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하늘에서 깨어나다니. 몽유병 수준이잖아! 이 마물들, 진짜 가만 안 놔둬.

애당초 마물이 맞긴 한가?

신조 아다만티스란 대단한 새였다. 병아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잠깐 만에 수도의 하늘을 다 누비자 무언가 벅차올랐다.

왜 자유를 늘 날아다니는 새에 비유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 * *

“덕분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마칠 수 있었어요.”

해가 떨어지기 직전, 벨라가 머무는 저택에 만찬이 차려졌다.

빌린 저택이고 원래는 밝고 세련된 수도의 감각으로 장식돼 있었을 텐데도, 이상하게도 머무는 사람의 분위기에 물들었다고, 메디프는 생각했다.

어둑어둑한 겨울 저녁이라서일까. 만찬 식탁 위에 켜 둔 붉은 촛불 탓일까?

어쨌든 그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이 공간을 지배했다. 벨라는 금빛 테를 두른 것 외엔 별다른 장식이 없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잔을 들어 올렸다.

“이 잔은 2황자님을 위해 들겠습니다.”

“별말씀을.”

메디프는 잔을 마주 들어 올리며 웃었다.

속으로는, 이 여자가 단둘이 만찬을 하자고 초대한 건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부질없는 희망을 품어 보며.

탄원서 작성을 돕겠다고 한 뒤로, 그는 벨라와 곧잘 만났다. 서류와 증언, 연구와 책이 난무하는 만남이었다.

“무슨 절차가 이렇게 복잡하죠?”

머리를 싸매고 양식을 채워 넣던 벨라가 펜을 던지며 불평했다.

‘호쾌해.’

그 전부터 그녀를 슬쩍슬쩍 훔쳐보던 메디프는 읏차, 하고 펜을 주워 주며 대답했다.

“행정이란 그런 거죠.”

“당신이 직접 폐하께 말씀 올릴 수 있지 않나요?”

“그럼 역효과예요.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뜬구름 잡는 헛소리로 아시니까.”

서늘한 벽안에 대충 알겠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메디프는 왠지 억울해졌다.

“마수 이름은 다 왜 이 따위로 복잡한 거죠? 어차피 우리……. 아니, 마수들은 인간이 만든 이름 같은 거 쓰지도 않는데.”

“고대의 연구가들이 붙이던 게 시작이라, 고대어로 이름을 지어서 그래요.”

메디프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불만을 표하는 벨라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황태자 형님께서 불태워 버리신 ‘마브로스 아르팍티카’는 ‘검은 포식자’라는 뜻이에요.”

그러자 신기할 만큼 예쁜 눈매가 반듯이 펴졌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아다만티스’는 무슨 뜻이죠?”

“길들일 수 없는.”

“음식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네, 맛있네요.”

“다행입니다.”

벨라는 서글서글한 태도로 그릇을 비우는 남자를 차갑게 응시했다.

수도에서 마수들이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꼴을 본 이상, 반드시 뭔가 해결을 보고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2황자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비인도적인 마수 사육을 멈춰 달라는 탄원서를 오늘 오후 황실에 제출했다.

그녀와 2황자 모두 며칠 동안 매달린 일이었다.

무사히 마쳤으니 답례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불러냈다. 물론, 진짜 목적은 감사 따위를 표하려는 게 아니었다.

탄원서 작성을 도와준 건 고마웠다. 그러나 그 어떤 가산점으로도 만회할 수 없는 끔찍한 실책은 오필리어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었다.

통신구를 주어, 오필리어가 봉마 의식장으로 나오게 한 것.

처음엔 고의가 아닐 수도 있다고 여겼다.

가까이 있는 동안 유심히 살폈지만, 과연 철두철미한 남자라 그런가,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의심이 확신이 된 건 궁 바깥에서 오필리어를 만난 날이었다.

난데없이 카밀 드 베일리스에다 이 남자까지 끼어들어 버렸던 그날.

헤어지기 직전, 그녀는 마침내 오필리어에게 귀띔했다.

“2황자를 경계해. 그자는 믿을 수 없어.”

평소의 그 아이였다면, 커다란 황금빛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을 텐데.

“……응. 알았어.”

그날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벨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2황자 놈은 확실히 악의를 품은 거였다. 순진하고 순진한 그 아이마저 이미 의심하고 있을 정도라면, 보통 뒤가 구린 놈이 아니다.

“헌데 말입니다, 전하.”

“네, 벨라?”

“마브로스 아르팍티카. 전하의 말씀대로 ‘검은 포식자’라는 이름을 가진 그 짐승은 아주 오래전부터 수도 근교에 살고 있었습니다.”

청보랏빛 눈이 긴 직사각형 식탁을 건너 벨라에게 고정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그런데 왜 하필 지난 엔클레이오 때 황궁에 날아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마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벨라는 그녀의 정체를 숨겼다.

어떻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는지. 건강하던 그녀가 엔클레이오 때 갑자기 쓰러진 이유는 뭐였는지.

2황자는 직접 묻지는 않았으나, 궁금해하는 시선이 내내 따라붙었다.

그래도 입을 꾹 다문 이유는 간단했다. 정체가 드러나면 거대 마수가 들이닥친 게 저 때문이란 것까지 밝혀질 테니.

국가 행사가 망쳐지고 황족과 귀족들이 위험에 처한 대형 사고였다. 한순간 마녀로 몰려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필리어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할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진 모든 두렵고, 꺼림칙하고 혐오스러운 카드를 꺼내어 2황자를 위협할 수만 있다면야.

그녀가 지척으로 다가가자, 메디프는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당신과 관련이 있는 이유인가요?”

질문하는 얼굴엔 미소가 배어 있었다.

‘눈치 빠른 놈.’

“다 드셨으면 일어나십시오.”

메디프도 이제 눈치챘다. 벨라는 그저 오붓하게 저녁이나 먹자고 초대한 게 아니었다. 다만 다른 목적의 방향이 그의 기대와는 멀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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