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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27)화 (127/218)

127화

“그런 잔혹 행위를 전부 중지해 주십시오.”

본론으로 곧장 떨어지는 말이었다. 메디프는 그런 벨라의 화법에 또다시 당황했다.

“요즘 마수 사육에 반대 의견을 가지신 분들을 몇몇 보네요.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했나 봅니다.”

당황한 그는 벨라가 붙이지 않은 사족을 스스로 덧붙였다.

오필리어도 마수 사육장을 들여다보곤 충격에 빠져 한동안 얼굴이 창백해졌었다. 그때의 죄책감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안타깝지만 제국의 전통을 제 뜻대로 중지시킬 순 없어요.”

그러자 날카로운 눈빛이 바로 꽂혀 들어왔다. 매서운 기세에 메디프는 눈을 피했다.

왠지 이 여자에겐 줄곧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언제나 유했지만 주도권을 쥐는 쪽이었다. 저를 휘두르는 여자는 클라우디아 페리윙클 뒤싱겐 한 명으로 족했다.

‘이런 상황은 질색이야.’

메디프는 대강 인사말을 주워섬기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지성이 있는 존재를 그렇게 대하는 게 비인도적이지 않습니까?”

“지성이요?”

그러다가 들은 황당한 말에 또다시 발이 묶였다. 그는 청보랏빛 눈을 깜빡였다.

“마수에게요?”

* * *

“전하!”

황태자궁의 집무실로 돌아온 클레멘츠는 오필리어와 마주쳤다.

“기다렸어요……. 저어, 그런데요.”

좋은 소리라곤 한마디도 못 듣고 왔지만, 반가운 이를 보자 안 좋던 기억은 싹 잊혔다.

“왜 그러지?”

오필리어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가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숙이자 답답한 마음에 클레멘츠의 고개도 같이 내려갔다. 저 사랑스러운 얼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제가 통신구를 떨어뜨려서……. 그래서 마수 둥지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중계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랬지.”

그가 긍정하자 안 그래도 어둡던 그녀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병아리가 저고 제가 병아리란 것도, 아다만티스인 것도, 전하께서 크렘시아 님을 소환해서 다 쓸어버리는 장면까지 공개된 것 맞죠?”

워낙 큰 사건을 겪은 뒤라 오필리어는 며칠을 앓아누워 있었다.

괜히 걱정할 테니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선 함부로 떠들지 말라고 해 두었지만, 지나치게 활발하신 레오라 영애께서 어떻게든 알아내신 모양이었다.

“그래.”

대답을 듣자 황금빛 큰 눈에서 눈물이 후둑 떨어졌다.

클레멘츠는 당황했다. 아비에게 폭언과 조롱을 들을 때보다 황망하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그래.”

“죄송해요…….”

“뭐가?”

“제가 다 망쳐 버렸네요.”

그렇게 말하고 오필리어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클레멘츠는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에 허둥거렸다. 요약하자면 미칠 노릇이었다.

“진정하고 천천히 말로 해 봐라.”

“흐흑!”

“누가 네게 헛소리를 했나? 누구지? 내 그자를…….”

네 눈앞에서 영원히 치우겠다고 해 봤자 그녀가 울음을 그칠 리 없었다. 클레멘츠는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전하께서는 애당초 나오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하셨는데……. 제가 나가서, 괜히 돌아다니고, 게다가 바보같이 통신구까지 흘려서…….”

“하아…….”

그 일로 내내 자책하고 있었나.

물론 처음엔 기어이 빠져나왔다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흉포한 마수가 천횡하는 앞에 오필리어가 나와 있는 걸 보고, 온몸의 피가 한 번에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의 한숨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오필리어는 사과를 반복했다.

“괜찮아.”

“그렇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겠어요……. 흑,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시는 건 깊은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그렇게 발표해 둔 게 이제 독이 되겠죠. 다들 전하께 속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오필리어.”

구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오필리어가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만남 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은 저 눈물을 멈출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것 같았다.

“차라리 제가 아무 것도 안 했다면…….”

특히 저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당장이라도 땅으로 꺼질 듯한 표정을 짓는 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클레멘츠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괜찮아.”

“…….”

별안간 그의 품에 안긴 오필리어는 젖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씨근대는 숨결 사이로 다 멎지 못한 흐느낌이 간헐적으로 새어 나왔다. 클레멘츠는 그녀의 눈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흑?!”

그는 히끅대다가 파드득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혀로 스며든 눈물방울에서는 짜고 달콤한 맛이 났다. 그 순간, 오필리어가 자신 때문에 우는 게 꽤 괜찮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진 그녀가 울지 않길 바랐으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건전하지 않은 발상이었다.

“괜찮다고 했어.”

겉으로 들리는 속삭임은 마냥 달콤하기만 했다.

“하지만…….”

오필리어가 멍하니 중얼거리며 그의 등에 손을 감았다. 작은 새가 날개를 들어 올리는 듯 여린 감각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제가…… 제가 전하의 평판을 오히려 망쳤는걸요. 많은 일을 하셨는데, 노력하셨는데……. 얼마나 중요한 분인데.”

당황에서 벗어나 다시 상황을 되짚어 간 오필리어는 또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의 노력을 한순간 진창으로 처박았다고 생각하니 그저 겁이 났다. 그가 잘되길 바랐고, 그에게 절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다 제가 벌인 일이라고 할게요. 황태자 전하의 옆을 차지하기 위해 제가 독단적으로 벌인 사기극이고, 전부 밝혀졌으니 이제 책임지고 떠난다고요. 어차피 전 고향으로 돌아가 살 생각이었으니까…….”

작은 등을 토닥거리던 손이 멈추었다.

“내게 미안하다면서?”

“그럼요! 정말 죄송…….”

“그럼 떠난다는 말로 겁주면 안 되지.”

“네……?”

순진하게 치뜨고 되묻는 눈이 원망스러웠다. 클레멘츠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품 안의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건 그런데요…….”

붉어진 얼굴로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울면서 제 품에 엉겨 붙은 주제에 돌아가겠다고 용쓰는 걸 보니 아주 혼내 주고 싶기도 했다.

“그대도 나를 좋아하신다면서, 레오라 영애.”

이번엔 조금 전보다 깊게 입 맞추었다. 물컹한 살은 따뜻했고 그만이 들을 수 있는 가냘픈 숨소리가 들렸다. 왜 좀 더 일찍 이런 관계가 될 수 없었는지. 제 마음도 모르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가지 마. 다른 놈들 말 듣고 맹랑한 생각 하지도 말고.”

“그렇지만…….”

“뭐?”

오필리어는 젖어 있는 입술을 다물었다. 뭔가 허튼소리를 하면 또 입 맞출 작정이란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클레멘츠의 손가락이 아쉬운 듯 그녀의 턱을 살살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심각한 일은 없어.”

“정말요……?”

“그래. 감히 황태자와 그의 연인을 비난할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도 없고.”

“연, 연인…….”

“너를 숭배하는 이들은 더 많아졌지. 네 행동은 용기 있었고, 대중은 로맨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클레멘츠는 반쪽의 사실만 전달해 주었다. 그 이면의 복잡하고 힘든 진실 따위, 오필리어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다간 또 어쩌냐며 울상을 지을 게 뻔하니까.

그때는 이런 식으로 입 맞추며 달래 줄 수도 없으리라. 그는 말랑하고 머리 아플 것 없는, 달달한 것들만 오필리어에게 안겨 주고 싶었다. 그것이 생전 처음 사랑을 하는 그가 머릿속에 떠올린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악마를 소환하시는 걸 사람들이 다 봤잖아요? 클라티아는 시미크 교라서…… 그럼 안 되는 것 아니에요?”

“그쪽 역시 생각 외로 괜찮다. 오히려 뒤싱겐 황가의 핏줄답다는 반응이야.”

“시미크 교단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똑똑하네.”

하지만 미리 고민할 건 없어. 나른하게 속삭인 클레멘츠는 그녀의 뺨에 쪽 입을 맞췄다. 똑똑한 오필리어는 맹하니 눈을 치켜뜨곤 바보로 뒤바뀌었다.

클레멘츠가 전혀 이런 타입이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가 이렇게 나올 때마다 깜짝 놀라서 멍해졌다. 두근대는 심장과 뜨거워지는 얼굴도 생각을 방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 한참, 클레멘츠는 이런저런 걱정을 꺼내 놓는 오필리어를 어르고 달랬다. 그의 다정한 손길에 눈물 자국이 완전히 닦여 나가고, 작고 도톰한 입술은 부르트고 나서야 오필리어가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다 괜찮으니까 전 아무 걱정할 필요 없고, 전하께선 제가 너무 좋으시니까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히 황태자궁에 붙어 있으라고요?”

“옳지.”

“흐으…….”

클레멘츠는 휘청거리는 오필리어를 안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필리어는 뾰족한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사실 납득이 안 갔다. 그런 큰 사건이 있었는데 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더 캐물었다간 돌아오는 건 입맞춤 세례란 걸 알았다.

‘이런 식으로 입을 막다니. 치사한 남자.’

어쨌든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건 사실 같으니, 신경 쓰이는 건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전하는 제가 언제부터 좋으셨어요?”

오필리어는 그의 가슴에 편하게 기대어 물었다. 한 사람의 체온이 제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너에게 저주를 내렸을 때부터?”

마침 손에 닿는 감촉 좋은 머리카락을 콕 잡아당겼다. 클레멘츠는 무엄하다고 투덜거렸지만, 병아리 때부터 줄기차게 해 온 짓이라 그런지 위화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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