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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23)화 (123/218)

123화

‘통신구를 이렇게나 훌륭하게 이용하다니. 내 아들은 영리하기도 하지.’

클라우디아는 마수 둥지의 상황이 통신구를 통해 전해진 것이 메디프의 설계라고 믿었다.

또한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온 때가 드디어 왔음을 알았다.

말을 타고 황비궁으로 돌아와 내실에 앉자마자, 그녀는 참아 왔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화, 황비 전하.”

“아하하하! 하하! 하하하!”

어린아이처럼 맑고 영롱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도무지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황비 곁으로 사용인들이 다가왔다.

“환복할 것이다. 황제궁으로 가야지.”

얌전한 드레스와 머리 장식. 수종을 드는 단 몇 명의 시녀. 온화한 표정.

황제궁으로 행차하는 클라우디아의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걸친 것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드러내는 감정으로 위세를 부리는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입궁하고 진즉에 그런 것들을 버려, 소박하고 욕심 없는 황비라는 이미지를 얻어 냈다. 공녀였던 클라우디아가 당연히 누리던 걸 쉽게 버린 이유는 하나였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권력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따르는 이들을 물리고, 침전에 들어섰다.

“폐하.”

예상대로 황제는 어두컴컴한 침실 속에서, 사냥복조차 벗지 않은 채 구겨져 있었다. 클라우디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하루 황태자가 저지른 실책은 많고 많았지만, 그중 가장 무거운 것의 결과가 바로 이 꼴이었다.

그는 제 아비의 열등감을 건드렸다.

“……클라우디아?”

“네, 저예요.”

어둠에 눈이 익으며 드러난 황제의 눈동자는 불안에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봄바람처럼 살랑대며 다가섰다.

“내 사랑, 무슨 걱정이 있으신가요?”

* * *

엔클레이오 때 있었던 일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

쉽게 믿을 수도 없고, 충격적인 얘기가 하나둘도 아니었다. 그러나 목격자가 많으니 결국은 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군.”

“세상에!”

사정상 엔클레이오에 참석하지 못한 귀족들은 희대의 구경거리를 놓쳤다며 땅을 쳤다.

터진 게 많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불분명했다.

수도를, 나아가 제국 전체를 들썩이게 할 소식에 언론사들은 밤을 새웠다. 이윽고 다음 날, 소식은 한꺼번에 뿌려졌다.

[야생 마수 출현?! 충격의 엔클레이오]

[레이디 오필리어의 진실은?]

[단독 공개! 숨겨져 있던 그분의 소환 능력]

소식지는 눈 깜짝할 새 팔려 나갔다.

“레이디 오필리어가 사실은 귀여운 귀족 영애였단 말이야? 동시에 진짜 아다만티스라고?”

사람들은 황실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황족의 사랑 이야기에 가장 열광했다. 현 황제와 셀레네 황후 이후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주제였다.

엔클레이오에서의 정황은 황태자의 마음을 추측해 보기에 충분했다. 그는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다가 여인이 위기에 처하자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섰다.

황태자는 레이디 오필리어를-.

언론사들이 알아낸 바로는 레이디 오필리어 H. 레오라를 사랑하는 게 확실했다.

이제는 그녀를 둘러싼 일체의 사건들에 대한 윤곽이 잡혔다.

“서부로 가셨을 때 그녀를 발견하셨겠지.”

“모나한가의 가신 가문이라니! 신분 차이가 심하지만 거부할 수 없도록 끌리신 거야. 워낙 사랑스러우시니까.”

“사랑스럽다뿐인가. 국조(國鳥)인 아다만티스로 변하시는걸. 황태자의 반려로는 의미심장하지.”

요행히도 많은 이들이 오필리어를 좋게 생각했다.

사람으로 돌아온 모습도 왠지 병아리일 때와 괴리가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밝고 순수한 이미지가 신선했다. 거기에, 엔클레이오 당일 날 원래는 현장에 없었음에도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는 증언이 가산점을 받았다.

“엉덩이가 무거워서 제 몸만 사리는 귀족들과는 다르죠. 황궁에 기거하기 알맞으신 분이에요.”

벌써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황태자궁에 꽁꽁 숨겨 두신 이유도 이해가 가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었겠죠.”

“베일리스 영애와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원만히 해결된 모양이에요.”

“전하께서는 능력을 숨기고 계셨지만, 오필리어 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적이든 혹독하게 멸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 거예요.”

여러 반응들은 이내 한 가지로 수렴했다.

“로맨틱해……!”

신분은 낮지만 순수하고 신비로운 시골 출신의 영애와, 그런 그녀를 절절히 아끼는 황태자의 모습.

소설 속에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또한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을 진작 예측한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사실 병아리의 정체는 그간 황태자 전하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던 오필리어 양이다.

서부의 사특한 마법에 걸려 병아리로 변해 버린 여인에게 전하께서도, 우연히 그 모습을 본 베일리스 영애도 모조리 반해 버리고 만 것이다.]

베일리스 후작의 생일연 직후, 화제의 병아리가 처음 노출되었을 때 연맹일보사에서 보도한 내용이었다.

당시엔 모두가 개소리라며 냄비 받침으로 쓰던 신문.

하지만 이후 연맹일보사는 ‘레이디 오필리어의 마스코트 인터뷰’ 건으로 대박을 터뜨렸고, 이 사건으로도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다만 어떻게 아다만티스가 되었는지, 베일리스 영애와는 어떻게 화해했는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호기심을 담아 오필리어를, 황궁 쪽을 주시했다.

한편 클레멘츠가 대악마를 소환한 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뒤싱겐 핏줄의 본질은 악마 소환자니까요. 초대 당시엔 그것이 현자의 기질이었죠.”

“페리윙클을 적극 영입하긴 했지만, 황가의 전승은 적마도술에 가까웠습니다.”

“모친이신 셀레네 황후를 닮으신 걸까요?”

어쩔 수 없이 황후와 그 가문 샹그리아가 거론될 때면, 사람들은 쉬쉬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아니라면 오로지 황태자 전하께만 그렇게 대단한 권능이 있는 것이 설명되지 않잖습니까.”

철없는, 혹은 세상이 돌아가는 논리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그저 황태자가 멋있다며 박수 쳐 댔다.

“그 장밋빛 악마가 집채만 한 마수를 산 채로 불태우는 모습을 실제로 보았다네!”

좀 더 약거나 걱정 많은 무리는 말했다.

“교단의 시선이 두렵진 않은지…….”

아무리 황실과 교단의 사이가 안 좋다곤 해도 제국의 국교였다. 공공연한 악마 소환, 그것도 대악마 소환은 언제고 대가를 치를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주목받는 자리의 누군가가 추락하기를 기다리는 자들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백성들을 기만한 일 아닌가?”

“결혼한 것도, 심지어 약혼한 상대조차 아닌데 같은 궁에 머물다니……. 용기 있을진 몰라도 행실에 미덕이 있는 영애는 아니로군.”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말을 옮기는 이들이 있었다.

“과연 출신을 숨기진 못하는군. 궁정에 오래 몸담은 이들은 알고 있다잖아. 황태자 전하의 출생에 얽힌…… 그 사악한 일 말이야.”

하지만 정면에서 황족을 비방하는 건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일. 오필리어와 클레멘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말들은 드러나지 않은 물밑에서, 구석진 곳에서 은밀하게 영토를 넓혀 갔다.

여론을 뒤집을 건수가 없는 이상, 당장은 언제 그런 이야기가 오가냐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 * *

엔클레이오가 끝난 뒤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클레멘츠를 포함해 다들 무사히 황궁으로 돌아온 것까지 확인하고…….

정신을 놨었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어떤 절차를 거쳐서 내가 방 침대에 누워 있는 건지. 마치 필름이 끊긴 상태 같다.

“오필리어 님!”

“오필리어 님, 정신이 드세요?”

“네.”

유렌과 카렌이었다. 뭐지. 왜들 저렇게 울 듯이 감격한 표정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피곤해서 눈을 감았다. 단잠이 쏟아졌다. 잠시 후엔 누가 내 손을 살짝 잡아 오는 게 느껴졌다.

잠결에 손을 꼬물거리며 고민했다. 익숙한 촉감인데, 이게 누구 손이더라?

아, 벨라다.

기분 좋게 돌아누우니 벨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왠지 촉촉하게 느껴졌다.

“……바보.”

그래, 나 바보 맞아. 웃으며 대답하려고 했지만 한없이 잠꼬대에 가까운 신음만 나왔다. 내가 생각보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벨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야무지게 지적하고 들어왔다.

“지금 대체 왜 오필리어를 보고 바보라고 하는 거죠? 누구 맘대로…….”

“……그쪽은 이 바보랑 무슨 상관이시길래.”

카밀이었다. 둘이 아는 사이였나?

“꿋꿋하군요. 그리고 아픈 사람 손을 너무 막 잡으시네요. 저 여린 손까지 다쳤을 줄 어떻게 알고……. 막상 저 애가 납치당했을 때 아무 것도 안 하셨으면서.”

“당신이 뭘 알죠? 저는 이 아이가 끌려간 둥지까지 직접 갔다 왔는데.”

“흥, 그건 메디프 황자님의 공에 당신이 끼어든 거죠.”

“……그러는 후작 영애께서는 뭘 하셨습니까?”

아니, 왜 싸우는 거지? 조금 괴로워져 끙끙댔지만 살벌한 분위기가 지워지지 않았다. 왠지 익숙한 상황인데.

“……이봐요, 모나한 백작.”

카밀이 떨떠름한 말투로 받아쳤다.

“제 뒤에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과 물건들이 안 보이나요? 다 오필리어가 걱정되어 가져온 거잖아요. 그런데 뭘 했냐니.”

어쩐지 눈을 뜨기가 무서웠다.

얘들아, 가능하면 너희끼린 싸우지 말아 줄래? 원작 생각나니까…….

다시 돌아누워 눈을 뜨니 이번엔 글로리나 부인이 보였다.

왠지 오랫동안 거기 앉아 날 보고 계셨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벨라와 카밀은? 돌아갔나?

“부인?”

내가 부르자, 고민스러워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언제 그랬냔 듯 펴졌다.

“정신이 드시는 모양이군요. 꼬박 사흘을 누워 계셨습니다.”

“정말요?”

“전하께서 아시면 기뻐하시겠습니다.”

“전하께서는…… 괜찮으세요?”

클레멘츠는 엄청 무리했었다! 그리고 이마가 찢어졌다. 어떻게 그것도 잊고 팔자 좋게 잘 수가 있지?

다행히도 글로리나 부인은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라며 나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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