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아, 이건 어마마마께서 쓸데없는 짓을 하셔서.”
메디프는 조금 허둥대면서 로브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상자 안의 병아리들에게 뿌리고 나직이 발현 주문을 외우자, 솜털에 입혀졌던 색소가 빠지고 노란 본모습이 돌아왔다.
한 무리의 병아리들은 안도한 듯 삐삐거리며 더 편하게 돌아다니고 서로 모여 잠을 청했다.
귀여운 것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으니 더 귀여웠다. 그동안 변신한 날 본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쓸데없는 짓이요? 병아리로?”
“당신이 시작한 마스코트 사업이 워낙 잘되니까, 저도 한 마리쯤 데리고 다니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에요.”
“아…….”
그러니까 클라우디아는 나를 따라 하려고 죄 없는 병아리들을 이용한 거다.
착잡해지는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메디프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이 애들은 2황자궁에서 책임지고 닭이 될 때까지 키우도록 할게요.”
“그 약속 꼭 지켜요.”
메디프는 지나다니던 시종을 불러 병아리 상자를 2황자궁으로 옮겨 놓도록 했다.
“엔클레이오가 궁금하다고 했죠? 그럼 잘 왔어요. 보기 드문 구경을 하게 될 거예요.”
대체 무슨 구경이길래? 뭐가 됐든 난 메디프의 유능함을 믿었기에 군말 없이 그를 따라 내부로 들어섰다.
연구 A동 내부는 외부와 마찬가지로 장식이 적은 대신 실용적이었다. 하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저기, 비켜 줄래요?”
“아, 죄송합니다.”
서너 사람이 천으로 덮은 커다란 물건을 옮기기도 했다. 무심코 본 입방체의 물건이 살짝 흔들렸다. 마치 안에 든 뭔가가 스스로 움직인 것처럼.
가까이 붙으면서 느꼈는데, 메디프가 든 머그잔에선 어쩐지 익숙한 내음이 풍겼다. 분명 맡아 본 적 있는데 최선을 다해 기피하게 되는 느낌. ……맞다, 아카데미에서 산드라 총장이 권하던 초록색 탕약이었다.
“그 음료는…….”
“아, 이거요? 으음, 몸에도 좋고 머리에도 좋은 차예요. 조금 쓰긴 한데.”
재료가 분명 트롤의 쓸개 어쩌고 하지 않았나.
“아카데미 시절에 산드라 선생님이 억지로 권하셨죠. 정말 싫었는데 나중엔 중독되더라고요.”
그는 조금 흐릿한 눈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나 역시 흐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셔 볼래요?”
“아니요.”
이윽고 우린 하얗고 넓은 공간에 도착했다.
넓은 양쪽 벽면 가득 철망으로 지은 우리가 들어차 있었다. 각 칸마다 문자와 기호로 된 일련번호가 붙어 있었고, 우리 안에는…….
짐승들이 가둬져 있었다. 한 마리씩.
오소리나 참새처럼 작은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몸집이 컸다. 말, 사슴, 곰……. 심지어는 머나먼 곳에서 들여온 듯한 코뿔소나 타조도 보였다.
그리고 그 짐승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즉, 마수가 되어 있었다.
흰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서류나 약병을 들고 다니며 짐승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2황자님, 7번 케이지의 개체를 좀 봐주셔야겠습니다.”
“네, 급여 기록은요?”
“여기 있습니다.”
메디프는 책상에 머그를 내려놓고 받아 든 서류를 훌훌 넘겨 보았다. 7번 케이지엔 몸집이 크게 불어난 토끼가 있었다.
“이것들은 대체 뭔가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엔클레이오에서 사용될 마수들이에요. 다양한 동물들을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고, 사전에 마력을 주입해 마수로 변이시키죠.”
“…….”
“이 상태에서 직접 볼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어때요? 신기하죠?”
“신기하냐고요?”
그는 마수가 되어 가는 동물들을 완전히 구경거리처럼 말하고 있었다.
방금 전 염료로 물들이고 도장을 찍은 병아리는 측은히 여겨 놓고선. 그보다 더한 짓을 할 땐 태연했다. 그 괴리감에 할 말을 잃었다.
메디프는 토끼와 서류를 번갈아 가며 살피다가, 내 표정을 발견하고 잠시 침묵했다.
“……충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못 했네요. 저에겐 마탑 시절에 일상이었던 광경이라.”
그는 서류 이곳저곳에 펜으로 재빨리 휘갈겨 적은 뒤 처음 말을 걸었던 연구원에게 돌려주었다. 그러곤 곤란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일단 이곳을 나갈까요?”
“아, 아니에요.”
말은 그리 했지만 메디프를 따라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를 적당한 휴게실에 앉혔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메디프는 따뜻한 김이 솟아오르는 머그컵을 내밀었다. 안에 든 건 다행히 트롤 쓸개 탕약이 아니라 평범한 허브차였다.
천천히 내 옆에 앉은 그는 뭔가 생각하며 하늘색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다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제가 우습겠군요.”
“…아뇨, 그렇게까진…….”
“병아리는 그렇게 챙겼으면서 평범한 동물이 마수가 되는 실험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거리 취급하고. 가식적으로 느껴졌겠어요.”
“확실히 그 부분이 아이러니하긴 했죠…….”
그렇다고 메디프가 ‘난 쓰레기야!’를 외치며 자괴감에 빠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제가 싫어졌나요?”
앉은 상태에서 몸을 낮추고 날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는 메디프는 왠지 가련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건 그의 일상이었다.
이전에 살던 세계에서도 매일 도처에서 동물 실험이 행해졌다. 실험 연구원 중에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이중적이라고 매도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필요에 의해 무언가가 희생된다. 이곳이 소설 속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산 사람 머릿속에서 나왔을 테니.
그럼에도 진정할 수 없는 건 아마 벨라가 생각나서일 것이다. 마수들은 그녀에게 식구나 다름없었다.
따뜻한 허브차를 꼴깍 넘겼다. 마수, 그리고 벨라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또 하나 있었다. 원작 1부의 결말이다.
엔클레이오는 ‘뷰티 앤 더 비스트’에서도 후반부에 있는 사건이었다. 1부의 후반부는 워낙 몰아쳤고, 충격적인 결말이 있었기 때문에 직전의 사건과 설정을 일부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 속에서 엔클레이오는 제대로 끝맺어지지 않는다. 결말부의 충격적인 ‘그 사건’ 탓에.
봉마 의식의 마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불안해졌던 건 그 때문이었다.
“저는 한 번도 엔클레이오를 직접 본 적 없어요.”
“……그렇군요.”
“레오라 가문은 매년 황실 행사에 참여할 여력이 없어서요. 혼우드의 귀족 중 매년 엔클레이오에 참가하는 건 셀레우시스 아메시트 모나한이라는, 못된 백작님뿐이었죠.”
귀족이면서 한 번도 엔클레이오에 참가한 적 없다고 하니, 메디프도 내가 받은 충격이 좀 더 와 닿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2황자님. 저기서 나온 마수들은 어떻게 되나요?”
“폐하께서 피를 내어 봉인진을 발동시키면, 진에서 뻗어 나온 마력이 마수들을 집어삼키는…… 그런 쇼가 펼쳐지죠.”
“쇼…….”
현왕의 봉마 의식, 엔클레이오 투 바실리아.
초대 황제가 마족을 봉인했던 의식을 재현해 황권을 공고히 하고 귀족들의 결속을 다지는 행사였다.
오래전 유스티온이 마족을 봉인했고, 그 덕에 모두가 번영할 수 있었음을.
지금의 뒤싱겐 황가는 그 유스티온의 피를 이은 강력한 지배자라는 것을.
클라티아 제국이 오래되고 귀족들이 힘을 키울수록, 황실은 그 두 가지 사실을 끊임없이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엔클레이오는 그걸 위해 이어져 온 의식. 즉 황실이 보여 주는 쇼였다.
“인위적으로 마수를 변이시키는 데도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모되지요. 대부분은 살려 둬요. 그리고 다음 해에 조금 모습을 바꿔 다시 쓰는 거죠.”
그 옛날의 마족들은 마계로 강제 송환되었으나, 저 연구실의 마수들은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 철사로 된 케이지 말고는.
“……대부분이 아닌 나머지는요?”
“너무 사납거나 몸집이 커서 유지비가 많이 드는 마수의 경우엔, 정말로 그 자리에서 희생시키기도 해요.”
“아…….”
왠지 혼우드에서 소환했던 마수가 생각나 눈을 질끈 감았다. 클레멘츠가 한 방에 없애 버렸던. 당시엔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잘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끔찍한 장면이었다.
사납고 거대한 마수가 굴복되는 모습을 보면, 자연히 황실에 대한 경외심은 높아지리라. 게다가 사람을 해치는 못된 마수이지 않은가.
평범하던 동물들을 변이시켜 일부러 만든 마수라는 점 따위,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 모든 장면을 본 벨라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바로 흑화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황궁에 없으니 이 끔찍한 꼴을 볼 일이 없어 정말 다행이었다.
“꼭 이런 걸 해야 할까요?”
“어떤 거요? 마수를 죽이는 것? 만드는 것? 엔클레이오 그 자체?”
“글쎄요.”
죽이지 않으면 되는 일일까? 갇혀 사는 건 더 힘들지 않나?
마수가 없어도 엔클레이오는 사냥회를 겸한다. 짐승의 죽음과 마수의 죽음은 무게가 다를까?
제국이 제국으로 존재하는 한, 황권을 유지하는 상징적인 의식은 어쨌든 필요할 터였다. 결국 무엇 하나를 꼬집어 말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잔인하긴 하잖아요?”
“동의해요.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모두가 만족하면 참 좋겠죠.”
메디프도 선선히 인정했다. 그냥 반 대항 운동회 같은 걸로 결속을 다지면 얼마나 좋냔 말이야.
“아무튼 고마워요. 약간의 충격은 있었지만 엔클레이오에 대한 궁금증은 채워졌어요. 클, 황태자 전하께선 알려 주기 싫어하거든요.”
말해 놓고 보니 이래서 알려 주기 싫어했나 싶다. 내가 병아리로 변한다고 해서 정신까지 병아리 솜털처럼 연약할 거라고 생각했나? 그놈의 과보호 모드를 어떻게 하면 좋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