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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07)화 (107/218)

107화

반면 로다나에선 마법의 발전과 함께 시계 제작기술도 빠르게 발전했다. 마석을 원동력으로 하여 정밀하게 돌아가는 시계가 있으니 필요 없는 고민이었다.

“아. 아, 맞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나는 방금 개소리를 왈왈 짖었던 둘을 가리켰다. 한 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버버거리고, 하나는 사색이 되어 있구만.

“저 사람들은 이거 쓰지 말라고 해요.”

“…….”

“뭐, 둘이서 좌표계 사서 달든지, 보정치에 상금 걸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라고 하긴 했지만 이미 다함께 알아 버린 걸 어쩔 수 없나. 그렇다면 권력을 남용할 차례다. 뒤늦게 사과하는 그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전하, 저 사람들이 이 방법 쓰는 거 싫어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본 클레멘츠는 참 기뻐 보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잘생긴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보통 그가 저렇게 웃을 땐 상당히 불행한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이번에 불행을 당하는 쪽은 내가 아니었다.

“네 뜻대로 될 거다.”

회의실에서 발표를 마친 뒤, 나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

“레이디의 존함은?”

“아…… 저는 레오라 남작가의 장녀입니다.”

“레이디 레오라 만세!”

“만세!”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 날 무시했던 둘은 이 프로젝트에 한 자리 얻어 이득을 볼까 하던 상인들이었다. 결정적이고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 내가 원한다는데 그들을 억지로 붙여 놔 달라고 편드는 자들은 없었다.

“쯧쯔……. 그러게 왜 겁도 없이 헛소리를.”

“심지어 귀족에게 혀를 놀리다니. 레오라 영애께서 자비로우시니 망정이지.”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자 그들은 한없이 찌그러진 채로 자진해서 나갔다.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 냈지?”

“아, 그거요.”

다 제가 천재라서 그렇습니다, 라고 넘어가면 믿을까? ‘당신의 완벽한 두상을 보다 보니 지구가 둥글다는 게 떠올라서’라는 말은?

“제가 생각해 낸 건 아니고, 배운 거예요.”

“배웠다고? 누구에게.”

“살던 동네에서 선생님에게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혼우드에 그런 현자가 있는 줄은 몰랐군. 마땅히 수도로 올라와 아카데미에서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실력인데.”

“그, 그냥 은둔하길 좋아하시는 분이었거든요.”

그렇다. 성적 정정을 요청하러 사무실에 찾아가면 안 계시는 교수님이었다. 분명 은둔하길 좋아했다.

“그저 유유자적 산에 오르시는 걸 즐기시고요.”

학교 익명 커뮤니티엔 해당 교수님과 함께 주말에 등산을 하게 생겼다고 울부짖는 조교의 폭로 글이 올라왔었지.

“……아쉽군.”

“뭐, 그분의 제자인 제가 대신 지식을 나눴으니 된 거 아니겠어요?”

날씨가 꽤 좋아서, 사무소 건물에서 나온 뒤 마차를 타지 않고 걸었다. 바다 냄새를 실은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그나저나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하고 계셨군요. 바다를 탈출구로 보고 계셨다니!”

마탑의 기술력은 독보적이었지만, 그만큼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한 분야의 사업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황족으로서 타개책을 찾고 있었다고 하니, 갑자기 꽤 유능하고 생각도 좀 있어 보인다.

“……전에.”

“네?”

갑자기 목소리가 잘 안 들렸다. 잘 들으려고 얼굴을 가까이하니, 날이 좀 더웠는지 다시 울긋불긋해진 뺨이 보였다.

뭐야, 정말. 귀한 몸께서 이렇게 피부가 약하실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메이드들이 옷 색깔과 맞춰 챙겨 준 양산을 폈다.

“전에 네가 그랬었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라고.”

“…….”

내가 그랬었나? 맞다. 칼로카이리 축제 날, 궁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이야기했다.

“원하기만 하시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실 수 있잖아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래서요?”

팔을 높이 뻗어 그의 한참 높은 얼굴을 가리려고 노력했다. 클레멘츠는 내 손에서 양산을 넘겨받아 내 얼굴이 가려지도록 안정적으로 씌워 주었다. 팔이 길고 탄탄한 만큼 참 간단해 보였다.

아니, 님 쓰시라고 편 건데요……. 관두자.

“마탑의 입김을 받지 않게 됐으니, 동방과의 무역은 완전히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었다. 전부 너의 공로지.”

“헤헤헤.”

잘했으면 보상을 주십시오. 정규직 채용의 기회를……!

“또…… 오전에 들러 봤던 건물들. 델 나파르처럼 상경하여 장사를 시작해 보려는 이들을 위해 임대료를 지원한 건물들이다.”

“오, 우와. 굉장해요!”

“그리고…….”

클레멘츠는 그동안 추진해 온 다른 정책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공립학교 증축, 장학 사업 확대, 내년 즈음엔 수도에 황실 예산으로 진료소 추가 운영.

대강은 나도 아는 이야기였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업무 계획을 내게 풀어놓는 걸 보면, 역시 같이 일해 보자는 거 아니겠는가.

“네 마스코트 홍보 덕분에 지지율이 올라 더 과감히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진행 속도는 더 빨라질 거다.”

“대단하네요!”

“수도에서 괜찮은 성과를 거두면, 통제력이 닿는 도시부터 차차 제국 전체로 확대해 나갈 수 있겠지.”

“좋아요! 벌써 정말 좋은 곳이 된 것 같은걸요.”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고용주의 사업 방향에 완전 찬동한다는 리액션을 보냈다.

“그래서 말인데, 오필리어.”

“네!”

“너만 괜찮다면, 황태자궁에서…….”

그가 드디어 본론을 꺼내나 싶더니, 그대로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보니 순서가 약간 이상했다. 마치, 내가 기회를 주라는 말 한마디 했다고 이 많은 일들을 다 벌인 것 같잖아.

취업 플래그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왜 이렇게 말을 잘 들어주지? 장르가 좀 바뀌어 버렸나. ‘빙의했는데, 개싸가지 황태자를 성군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기가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땅이 되고, 네가 살고 싶은 곳이 되면. 그땐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살 수도 있나?”

“어, 뭐 그렇죠?”

안 그래도 사무관으로 취직하는 걸 고려하던 차였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니 클레멘츠가 흡족하게 웃었다.

“레몬 크림 파이 말고, 또 뭘 좋아하지?”

“네? 음식이요?”

“뭐든지.”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곁들인 스콘이요. 차는 꽃, 특히 찻잎에 오렌지 꽃 향이 배도록 만든 게 좋아요. 음…… 파란색 천을 모으는 것도 좋아하고, 약초를 가공하는 것도 꽤 해 볼 만한 것 같아요.”

그는 재빨리 카시스를 불러 내 말을 받아 적게 했다.

“오필리어의 기호와 취미에 해당하는 점포를 빠른 시일 내로 수도에 확보해라. 모든 과정에서 오필리어의 의견을 묻도록 하고.”

“네, 분부 받들겠습니다.”

“……?”

‘저,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라고 묻기엔, 클레멘츠의 얼굴이 너무 기쁨에 차 있었다. 꼭 ‘내 마음 알지?’라고 하는 듯한…….

내가 큰일을 해냈으니 포상을 해 주려는 것 같긴 한데, ‘너 채용!’이라는 확답이 없었다.

아무리 특채라도 자격이 필요한 건가?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지.

“전하.”

“또 뭔가 필요한 게 있나?”

“황태자궁 비서관으로 채용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하죠?”

그 순간 클레멘츠는 발을 헛디뎌 비틀거렸다.

“앗, 조심해요!”

다행히 순발력이 좋은 그는 넘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이 뒤로 그는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반년마다 한 번씩 시험이 있지. 과목은 제국사, 논술, 행정학. 시험 이후에 두 차례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군. 제국사는 가정 교습으로 배웠지만 논술과 행정학이라.

“잠시, 저길 들러도 될까요?”

걷다 보니 어느새 다시 상점가로 진입했다. 나는 조금 큰 서점으로 클레멘츠를 끌고 갔다.

음, 여기 있군.

‘수험 서적’ 코너에서 황궁 사무관용 논술서를 집어 들었다. 어떤 문제가 나오나 하고 뒤적여 보고 있는데, 우두커니 서 있는 클레멘츠의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긴 그는 원하는 책이 서재에 다 있을 테니, 책을 직접 고르는 건 익숙하지 않으려나.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정말 그 시험을 볼 생각인가?”

“그럼요.”

이쪽이 정식 절차라면 회피할 생각은 없으니까.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지.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거라면…… 천천히 보거라.”

그는 사연이 한가득 있는 것처럼 중얼거리더니 자리를 벗어났다. 이걸 원하는 게 아니었나?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어렵네, 어려워…….”

기출문제를 보니 꽤 난이도가 있었다.

결국 이번 생에마저 공부를 해야 하는 운명. 책 몇 권을 결제했다. 클레멘츠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대다가, 조금 떨어진 서가에서 뭔가를 탐독하는 은빛 머리를 발견했다.

“전하?”

세상 심각한 얼굴로 대체 뭘 읽고 있는가.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101가지 스킬……. 그녀의 머릿속엔 대체 무엇이…….”

제목을 다 읽기도 전, 클레멘츠는 책을 내던졌다.

“손님! 책을 던지시면 안 됩니다!”

“어어! 죄송해요! 살게요! 배상할게요!”

호다닥 튀어가 책을 주워 들었다.

“어휴, 나 참. 파는 물건을 그렇게 던지면 어떡합니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미안합니다. 여기 책값이요.”

툴툴대는 서점 주인에게 다시 은화를 꺼내 내밀고,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101가지 스킬 - 그녀의 머릿속엔 대체 무엇이 들었나! 오래되고 오래된 난제의 핵심을 꿰뚫는 연애 고수들의 실전 솔루션, 클랏샤 연애 심리 연구 협회 편저’를 클레멘츠에게 다시 가져갔다.

“괜찮아요. 제목이 장황하다고 꼭 이상한 책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수치스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하…….”

클레멘츠는 꼭 고장 난 것처럼 한숨만 쉬었다. 얼굴조차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이거…… 필요 없어요? 재미있어 보이는데.”

“……그럼 네가 가지거라. 그저 시간이 비기에 아무 거나 펼쳐 보고 있었을 뿐이야. 필요 없다.”

“그렇군요…….”

이후, 그는 혼자 있고 싶다며 나를 먼저 마차에 태워 황궁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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