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01)화 (101/218)

101화

“최근 전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사상이죠. 전하께선 정말 훌륭한 생각을 갖고 계시군요!”

“예! 그러나 결코 인간들이 동물에 뒤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제국민을 사랑하시는 전하께서 최근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냐면…….”

그 자리에서 나는 클레멘츠가 진행했거나 진행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기밀에 부쳐야 하는 것들을 빼고, 홍보가 될 만한 것들의 목록을 읊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집무실 병아리 삼 개월이면 브리핑이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거의…… 준카시스 급으로 클레멘츠의 업무 전반을 파악하고 있었다. 크으, 나의 유능함에 취한다!

마탑에서 고액의 운송 수수료를 붙여 그동안 동결되다시피 했던 대륙 간 무역의 문턱 낮추기.

클랏샤 이외의 지역에서 사업을 위해 상경한 이들을 위한 건물 임대료 지원. 수도엔 클랏샤 토박이보단 제국 이곳저곳에서 모여들어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 민심에 도움 될 만한 정책이었다.

또한 공립 학교 증축과 장학 사업 시행. 공립 진료소 확충.

그러고 보니 이런…… 신문에 널리 홍보할 만한 일들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생각해 보면, 나와 함께 칼로카이리 축제에 나갔다 온 다음부터가 아닌가 싶었다.

뭐 우연이겠지!

인터뷰가 끝날 즈음이 되자, 기자는 감동에 울먹거리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덕분에 한 시름 놓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흠흠, 뭘요. 전하와 제국민들을 위하는 게 제 본분인 것을요.”

“그러고 보니 인터뷰이님은 황태자궁의 비서직이신가요? 대변인분들 가운데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앗…….

해명 자체에 정신이 팔려, 내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잊고 있었다. 뭐라고 하지?

“예, 예…… 비서……. 저는 비, 비정규직! 비정규직 파트타임 비서라서 아마 잘 모르실 거예요.”

“그렇습니까? 황궁 비서직은 모두 정규직 고용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이렇게 젊은 나이에 황태자궁 비서라니, 멋있으세요! 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소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태까지 그렇게 ‘오필리어 님’에 대해 떠들어 놓고, 내 이름도 오필리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필리아 레오…… 라고 합니다.”

그래. 신원을 날조해 낸 게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병아리 당사자의 의견을 말한 거잖아.

기자는 앞뒤 한 글자씩 생략된 내 이름을 받아 적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눈물겨운 회사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이 한 번의 인터뷰를 통해 연맹일보사가 기사회생할 것이고 그러므로 나는 은인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도 그들의 이번 신문은 잘 팔릴 것 같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가득했으니까.

“당장은 가진 게 없지만, 언젠가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녀는 끝내 눈물을 슥슥 닦으며 나갔다.

이걸로 의미 불명의 병아리 광인이 될 뻔한 클레멘츠의 이미지도 되살리고, 망해 가는 신문사도 하나 되살리게 되겠구만. 푹신한 의자에 기대 늘씬히 기지개를 켰다.

“뿌듯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몰랐다.

연맹일보사의 기자는 벅찬 가슴을 안고 황태자궁을 나섰다. 비록 예정돼 있었던 황태자와의 인터뷰는 진행하지 못했으나, 젊고 당찬 대변인이 알려 준 것만으로도 수도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들 기삿거리가 가득했다.

기자는 힘들었던 지난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병아리의 정체가 황태자의 연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추측 글을 발표한 이후, 가차 없는 비난과 비웃음을 견뎌 내야 했다. ‘기자 말고 소설가로 데뷔하지 그러냐.’부터, ‘이 신문은 앞으로 냄비받침 예약이다.’까지.

그러나 폐간 위기까지 갔던 연맹일보사의 눈물겨운 고난도 이걸로 끝이었다. 그 황태자가 의문의 병아리를 아끼는 게 그렇게 깊은 뜻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 일자리를 위해 수도로 올라온 이들의 주거 문제까지 진지하게 염려하고 계실 줄은…….”

본인도 타 지역 출신인 기자는 다시금 차오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꺾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뒤싱겐 황가 만세!’

하루 뒤, 예상대로 연맹일보사에서 내보낸 기사는 대박을 쳤다.

* * *

평소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수도의 아침. 출근을 하거나, 등교하거나, 가게를 열던 사람들은 길가의 신문 꽂이를 지나쳤다.

‘연맹일보사?’

지난번 병아리 소동 때 가장 황당한 추론을 내놓은 신문사 아닌가. 모두가 ‘이런 발로 쓴 기사가 다 있나.’라고 평했던.

그저 코웃음치고 돌아서면 되는 일이었지만, 대문짝만 하게 박힌 초상화와 헤드라인이 눈길을 끌었다.

[황가의 마스코트]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듯 점잔 빼는 병아리가 컬러 인쇄되어 있었다. 수도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챘다. 이건 황궁 무도회에 황태자의 파트너로 나왔다는 문제의 그 병아리, 오필리어에 대한 내용이다.

‘이번엔 대체 뭐라고 써 놨나 한번 볼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병아리 그림만으로도 신문 값은 하는군.’

황궁 무도회에 기자들이 초대받지 못했으니 실제로 포착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초상화는 상상화에 불과했는데, 제법 귀여웠다.

내용을 보기 위해 별 기대 없이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침묵했다. 잠시 후엔 그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아니, 이런……?’

그야말로 신선했다. 화제성과 재미가 충분한 데다 감동 요소까지 갖췄다.

“너 그거 봤어? 이번에 연맹일보사에서 나온……!”

“연맹 뭐? 무슨 그런 듣도 보도 못 한…… 아니, 못 봤는데.”

“이 소식에 뒤쳐진 자식 같으니! 내가 지금 사 줄 테니까 냉큼 읽어!”

그런 식으로 사다가 지인들에게 뿌리는 자들까지 등장했다. 저녁을 먹을 때가 채 안 되어, ‘황가의 마스코트 오필리어 님’이 모든 수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오필리어 님 너무 귀여워!”

일단 1면 그림의 귀여움이 마음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생명 존중 사상이라……. 그래! 요즘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야말로 그런 기본적인 가치가 잊혀서는 안 되는 법.”

기사에 견지된 사상의 보편성은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깊은 뜻을 모든 이들에게 전달하시다니. 황태자 전하께선 도대체……!”

마지막은 과감한 행동을 통해 뭇사람들에게 제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황태자에 대한 감탄으로 이어졌다.

불과 아침까지 그의 행보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행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뿌려지고 난 뒤, 서부에서 돌아온 이후로 지금까지 그가 한 모든 행동은 제국민의 권리와 황실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한 용단이 되어 있었다.

시선을 크게 끈 만큼 오히려 더욱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 클라티아의 상징은 정의로운 새 아다만티스였어!”

다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국조의 존재를 떠올렸다. 초대 황제를 도왔던 전설 속 새라면 왠지 까마득하고 어려운 느낌이었지만, 그런 굉장한 신수도 어릴 땐 작고 노란 병아리였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친숙하고 또 사랑스러웠다.

“부엌을 장식할 새 꽃은 노란색이 좋겠어.”

“오필리어 님을 수놓아서 아이 이불에 붙여 주는 게 어떨까?”

노란색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병아리를 연상시키거나 형태를 표현한 물건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화가들은 ‘오필리어 님 초상화’ 주문을 연이어 받고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이윽고 거리거리에 황태자의 초상화까지 들어간 노란색 현수막이 걸렸다. ‘황실 마스코트, 오필리어’의 인기와 함께 황태자의 지지율도 그야말로 치솟았다.

황실에 대한 관심거리를 찾던 서민들의 열정이 ‘마스코트’를 출구 삼아 폭발한 것이다.

한편, 그날의 병아리가 화두에 오르자 새로이 주목받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베일리스 후작 영애, 카밀이었다.

새벽부터 한 무리의 기자들이 후작 저택 문 앞에 모여들자, 베일리스 후작은 벌컥 짜증을 냈다.

“원, 하다 하다 이젠 별 잡놈들이 다 우글거리는군!”

그는 제 대에 가문에 망조가 드는 꼴은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후작 각하!”

“후작님, 후작님께서도 이번 일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연회 당시의 사건은 황태자 전하와 의견이 일치되셨던 건가요?”

“영애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제발 저희 클랏샤일보와 인터뷰를……!”

친히 쫓아내기 위해 대문을 열어젖힌 후작은 멈칫했다. 어쩐지 이놈들, 펜으로 사람을 물어뜯으려고 부득불 찾아온 낯은 아니었다.

‘그보단…… 어째 좋은 말을 써 주려고 온 것 같은데?’

인기에 집착하는 베일리스 후작은 이런 쪽으로 감이 좋았다.

후작의 예상대로였다. 그들은 경쟁사보다 먼저, 오필리어와 카밀의 관계에 대한 후발 기사를 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미 마스코트인 오필리어와 황태자의 여론이 좋게 형성됐으니 카밀 쪽의 인터뷰는 그 흐름에 편승하기만 하면 되었다.

즉 후작이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좋은 이야기를 쓰리라는 것이었다.

“어흠흠. 딸아이는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오. 소란 피우지 말고, 질서를 지켜서 들어오게.”

가문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만 형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이야기이건, 심지어 사실이건 아니건 베일리스 후작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멍하니 차를 마시던 카밀은 소란스러움에 놀라 일어섰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전해 듣곤 오히려 활짝 웃었다.

“그래요. 저는 원래부터 오필리어 양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알고 있었답니다.”

정원 이곳저곳에 기자들을 앉히곤 홍조 띤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카밀 역시 연맹일보사에서 나온 기사를 읽었다. 원래도 소식이 빠른 그녀가 1면에 커다란 병아리까지 그려져 있는 신문을 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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