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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100)화 (100/218)

100화

행색을 보아하니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 같았다. 여성용 정장을 입고 옆에는 서류 가방과 마법 영상 저장기를 낀 채, 문짝에 기대앉아 한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후우…… 그래, 역시 우리 같은 어중이떠중이 신문사가 황태자 전하를 인터뷰할 수 있을 리 없지.”

보아하니 클레멘츠와 신문사의 사활을 건 인터뷰 약속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집무실이 잠겨 있으니 헛걸음한 줄 알고 절망하는 듯했다.

클레멘츠 이 인간, 대체 왜 약속해 놓고 안 나타나서 사람을 좌절에 빠뜨린담?

“……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늘 그는 어느 귀족과 만났을 터였다. 이름이…… 마리마나 백작이라고 했던가?

“……하여 전하, 그날은 마리마나 백작과의 면담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나. 벌써부터 피곤하군.”

“면담 후에 드실 피로 회복제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며칠 전 집무실에서 노닥거리다 주워 들었다. 마리마나 백작이란 양반은 어찌나 말이 많은지, 상대방을 끔찍하게 벗어나기 힘든 수다의 늪에 빠뜨린다고 했다.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음 일정이 밀리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그러니까 클레멘츠와 카시스는 지금껏 그 백작과 같은 공간에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약속 시간까지 어기게 된 거고.

어떡하지? 좀 더 기다리라고 해 볼까?

“모두 헛된 꿈이었어. 지난번 병아리에 대해 허황된 칼럼을 내보낸 이후로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

병아리? 내 이야기 같은데.

“병아리가 황태자 전하의 변신한 애인이라니, 내가 미쳤지. 왜 그 따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칼럼이라고 써 갖고는…….”

허어? 댁, 그런 칼럼을 썼단 말이오?

베일리스 후작의 생일잔치 날. 난입한 클레멘츠와 카밀의 갈등,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나에 대해 신문 기사까지 난 건 알았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추측성 칼럼까지 나왔을 줄은.

당연히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고, 그 결과 안 그래도 규모가 작던 신문사의 신뢰도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을 것이다.

나 때문에 한 회사가 존폐의 위기까지 겪고 있다니 왠지 양심이 찔렸다. 게다가 ‘사실은 변신한 사람이다.’ 부분은 맞힌 거나 다름없잖아? ‘심지어 애인이기까지 하다.’라는 급발진만 아니었어도 좀 더 그럴싸했을 텐데.

안 되겠다, 도와줘야지.

“저기요.”

“네에…… 흐힉? 사람이! 아, 저…….”

나와 눈이 마주친 기자는 황급히 일어났다. 미처 손으로 챙기지 못한 마법 영상 저장기 주머니가 와장창 떨어졌다.

“흐아아……!”

“아이구…….”

물건을 주워 든 기자는 이제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망가진 건 아니겠지? 저거 비싸던데.

“황태자 전하께서는 이전 일정이 길어지는 바람에 늦는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인터뷰가 무산된 게 아니었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뭐 제게 감사할 필요는 없지만요.”

기자는 굉장히 안도했다는 표정으로 연신 허리를 굽혀 댔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준비해 오셨나요? 저도 황태자 전하의 업무와 밀접한지라, 웬만한 답은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사기꾼 같아 보이지만 정말이었다. 매일 아침 클레멘츠가 일하는 걸 구경하면서 놀다 보니, 어느덧 그가 뭘 추진하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정도는 훤했다. 그러니 그가 돌아오기 전 간단한 질문에는 응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름 무도회 때 황태자 전하께서 병아리 오필리어 님을 파트너로 데려오셨다는 소문이 파다하지 않습니까?”

소문이 파다하게 났어?

“그 건에 대해 밀착 취재하려던 참입니다!”

밀착 취재까지 들어올 만큼?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클레멘츠,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병아리를 두고 후작가에서 카밀과 결투를 벌였을 때도 클레멘츠는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때야 다들 ‘허허. 별일이 다 있군.’ 하고 넘어간 모양이지만, 무도회 파트너까지 병아리였다는 소문이 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제국민들은 뭔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할 텐데, 클레멘츠가 대책을 준비했을지 의문이었다. 묘하게 이런 쪽으론, ‘내가 귀여워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지?’적인 태도로 넘어간달까.

안 되겠다. 적당히 도와주고 물러서려고 했는데,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으로 내가 나설 때였다. 헛기침을 하며 운을 떼었다.

“크흠. 마침 저를 잘 만나셨군요. 그 건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

“저만 믿으세요.”

“……!”

감동에 허우적거리는 기자를 데리고 근처의 비어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나는, 이제부터 누가 들어도 클레멘츠의 병아리 사랑을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실례지만, 어느 신문사에서 나오신 분이라고 했죠?”

“연맹일보사! 연맹일보사입니다!”

“예, 연맹일보사. 사실 조만간 공식적으로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황태자 전하의 전략적인 판단 하에 특별히 연맹일보사에 특종 거리를 푸는 겁니다. 병아리 오필리어는 바로…….”

긴장된 분위기 속, 난 침을 삼킨 뒤 질러 버렸다.

“황실의 마스코트입니다.”

“……!”

‘클레멘츠,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

상당한 무리수이긴 했으나, 상황이 극단적이다 보니 해결할 방법도 그만큼 극단적이어야 했다. 누가 그의 이미지까지 이렇게 지켜 줄까? 나만큼 훌륭한 계약 병아리는 없다.

“마스코트라 하심은?”

“클라티아 제국을 세울 때 현왕이자 초대 황제이신 유스티온 세실 뒤싱겐을 도운 신성한 새, 아다만티스를 아시겠지요. 잘 아시다시피 아다만티스는 클라티아의 국조이고, 황실 문양에 있는 날개 달린 다이아몬드의 정체이기도 하죠.”

기자는 껌뻑 죽을 듯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수첩에서 펜촉이 날아다녔다.

아다만티스. 모든 새들의 왕이자 천상의 신조. 빛나는 날개로 천공을 감싸 안으며, 파마(破魔)의 목소리로 마성을 깨뜨린다고 알려진 그 새는 클라티아 제국의 상징이었다.

초대 황제 유스티온이 마족들을 봉인하는 데는 신조 아다만티스가 가진 정찰 능력과 파마의 음성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건국 이후, 유스티온은 신조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황실의 문장을 그 새의 모습으로 정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오, 오필리어 님은 멸종했다는 그 아다만티스인가요? 전하께서 오필리어 님을 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쓰셨단 얘기는 그래서…….”

“후우, 아뇨. 그 이야기는 헛소문입니다.”

물론 메디프는 내가 진짜 아다만티스일 수도 있다며 물타기를 시전했지만,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런 불확실한 정보를 진짜인 양 흘리는 건 위험했다.

“오필리어 님은 전하께서 숲속에서 주우신 평범한 암평아리에 불과하죠.”

“그런……! 그럼 어째서…….”

“말씀드렸죠? 마스코트라고. 중요한 건 상징성입니다.”

기자가 ‘허헉!’으로 추임새를 넣자, 나는 존재하지 않는 안경을 내적으로 추어올렸다.

“새 자체의 품종보다는 전하께서 저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그걸 읽어야 하는 거죠.”

좋아. 나 꽤 프로페셔널해 보여.

마침 방에서 들고 나온 것도 필기구류와 종이와 책이었다. 대충 황태자궁에 속한 사무직으로 보이길 기원하며, 책 제목을 슬쩍 편지지로 가렸다. 양장 제본된 한정판 로맨스 소설은 그러자 제법 전문 서적으로 보였다.

“사실, 요즘 제국에선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요? 황궁에서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겉으로는 눈부시지만, 한정된 이권을 놓은 계층 간의 반목으로 분열은 심화되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황실은 충분히 제국민 전체를 보듬어 안고 있는가, 전하께서는 침식을 잊을지언정 그 고뇌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오오……!”

병아리의 정체도 알아채는 기자라서 그런지, 벌써 내가 무슨 얘길 하려는지 감 잡은 것 같았다. 얼굴이, 감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고심한 끝에 전하께서는! 제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황실로 모으고, 황실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국조의 어린 시절 모습을 품기로 하신 것입니다.”

“오오, 오!”

역시 모든 건 의미 부여를 하기 나름이다.

대학 레포트를 쓸 때, 한없이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분량을 채우기 위해 2단, 3단의 의미 부여를 해 대던 바로 그 스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덧붙이자면 여름 무도회에서 공개된 카트레프티스의 덮개에도 아다만티스 문양이 들어가 있었지요. 황비 전하께서 직접 직조하시고 황태자 전하께서 보존 마법을 걸어 오신 거랍니다.”

성공이었다. 기자는 내가 지나가듯 덧붙이는 말도 몰입해서 받아 적었다.

“뒤싱겐 황가에 영광을!”

좋아. 이렇게 된 거, 내친 김에 마음에 걸리던 건 전부 변명하자.

여러 자리에 한사코 데려가시는 건 정치의 투명함을 표방하심이며.

자칫 필요 이상이라 생각될 만큼 살뜰히 돌보시는 건 생명의 소중함을 피력하기 위함이며…….

“어미 닭을 떠나온 한 생명을 책임지시기 위해 그분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시는 것이죠. 많은 동물들이 인간들을 위해 이용되고는 있지만, 전하께서는 모든 생명에 기본적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정말이지 꿈보다 해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자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척 하면 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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