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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95)화 (95/218)

95화

“저쪽에 하얀 돔형 지붕이 보이죠? 제13대 크루델시아 황제 때 지은 황궁 도서관 건물이에요.”

황궁 도서관……! 황궁 도서관이라니. ‘뷰티 앤 더 비스트’엔 나오지 않았지만 이거야말로 로판 필수 코스가 아니던가.

덕후로서 마음이 설레어 왔다.

설레는 덕후의 마음은 도서관에 들어서며 황홀함으로 바뀌었다.

13대 크루델시아 황제는 학자 황제였다. 그는 아카데미를 설립해 클랏샤를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또한 황궁 도서관을 설립해 세상의 모든 양서를 모으려는 야심을 가졌다.

그 결과 내 눈앞의 장관이 만들어졌다. 책으로 가득한 벽면이 광활한 공간을 타고 끝없이 이어졌다.

서가 꼭대기의 아치를 장식하는 건 황실의 상징인 아다만티스와 지혜를 상징하는 올빼미였다.

햇볕을 받아 책이 상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인지 전혀 빛이 들지 않도록 만들어진 실내였다. 그 대신 하얀 마력 조명이 곳곳에 켜져 있었다.

책 읽기 딱 좋은 600럭스 정도의 조도가 유지되는군. 놀랍다.

잽싸게 분야별 책꽂이의 위치를 파악한 뒤, 내 발은 로맨스 소설이 꽂힌 부분을 향해 저절로 움직였다.

“음? 어디 가세요, 고객님.”

물론 몇 걸음 떼기도 전 메디프가 붙잡았다.

“우리가 갈 곳은 이쪽이에요.”

그는 나를 돔형 지붕과 좀 더 가까운 2층으로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벽 가득히 책이 꽂혀 있었고, 1층과 달리 소소하게 모여 앉을 수 있는 책상이 있었다. 가벼운 대화를 편히 할 수 있도록 방음 마법까지 쳐져 있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1층의 로맨스 소설 코너를 미련 그득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여기라면 내가 지금껏 접하지 못한 책들도 있을 텐데. 희귀본. 한정판. 어쩌면 정신은 성인이었지만 몸은 너무 어렸던 13세 시절 분하게도 손에 넣지 못했던 ‘괴물 백작의 욕망’ 완전판도…….

책장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책을 뽑던 메디프가 책상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나도 현실로 돌아왔다.

예닐곱 권의 두껍고 얇은 책들은 마침 내 궁금증을 풀어 줄 만한 제목이었다.

[마계 접경의 변이수와 마물들]

[최신판 마수 대백과]

[신비로운 동물들 - 신수, 마수, 희귀 동물]

[혼우드 - 마성, 저주, 수호의 땅]

그 외에도 비슷한 느낌의 제목이었다.

“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누구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지식의 보고가 곁에 있었는데.

역시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책도 읽어 버릇 한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거다.

가장 두꺼운 ‘최신판 마수 대백과’를 펼쳐서 훑었다. 무시무시한 마수가 자세히 묘사된 삽화의 향연이었다. 조류 형태의 마수 종류도 상당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산드라 총장 말과 달리 내가 마수일 것 같진 않았다.

만약 마수였다면 병아리일 때 벨라와 말이 통했을 테니까.

“자세히 조사해 보긴 해야겠지만, 사실 당신이 마수일 가능성은 낮아요.”

다른 책을 펼쳐 보고 있던 메디프가 툭 던졌다. 마침 내 생각과 같았다.

“정말요?”

“네. 변이를 일으킬 만큼 장기간 마력에 노출된 적이 없잖아요. 그쵸?”

“그렇죠?”

마수란, 원래 평범했지만 오랫동안 마력에 노출되어 변이를 일으킨 짐승을 뜻했다.

혼우드에 마수가 자주 나오는 이유도, 깊은 숲의 마력 안개에 산짐승들이 접근하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보통 마수는 성체예요. 평범한 새라면 길어야 몇 주면 병아리 모습이 사라지죠. 몇 주라도 마수로 변하기엔 짧은 시간이고, 만일 변이된다면 외적으로 그 형태가 드러나요.”

“오, 그렇군요.”

“없던 돌기가 생긴다든지, 색이 변한다든지, 신체 일부가 단단해진다든지.”

카트레프티스를 공개할 때 메디프가 풀어 놨던 비둘기 마수가 생각났다. 그것들은 머리에 보석 같은 돌기가 빛났고, 날개는 황철석처럼 반짝였다.

“아, 하나, 변이하고도 겉으론 아무 티 안 나는 조류 마수가 있어요.”

메디프는 내 앞에 있던 마수 사전을 긴 손가락으로 넘겼다. 어디를 펼치면 뭐가 나오는지 잘 아는 사람 같았다. 마치 이 책을 수도 없이 읽은 것처럼.

“윽, 끔찍하네요.”

닭의 머리와 사자의 발톱을 지닌 검은 새였다. 주변에 비교 대상으로 사람을 그려 놓은 걸 보니 크기까지 엄청났다.

“그렇죠? 이 ‘마브로스 아르팍티카’도 완전히 자라기 전에는 당신처럼 귀엽고 노란 병아리랍니다.”

“말도 안 돼요.”

이렇게 흉측한 괴물이 될 바엔…… 그냥 병아리로 살래.

그런 심정이 전해졌는지 메디프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요. 이 마수도 작고 보송한 아기 새 시절은 고작해야 일주일이니까. 당신은 벌써 3개월이 지나지 않았나요?”

“하하…… 그거야 당연하죠. 제가 이런…… 이거일 리가 없잖아요?”

흐려진 눈을 굴려 읽어 보니, 마브로스…… 뭐시기는 흉포한 잡식성 마수였다. 인간도 먹고, 같은 조류도 먹고. 특히 많은 마력을 품은 먹이인 신수나 마수에 욕심을 낸다고.

그래, 내가 이런 거일 리 없어. 병아리로 변해도 그런 이상한 것에 식탐을 느낀 적 없다고. 카시스 표 특제 모이나 열심히 쪼았지.

음……? 잠깐.

“마수는 혼우드에만 사는 거 아니었나요?”

“물론 아닙니다.”

이 마브로스 아르팍티카도, 다음 쪽에 나오는 원숭이 마수도, 그다음 쪽에 나오는 곰과 멧돼지의 중간 형태도.

서식지가 전부 ‘수도권’이었다. 곤드와나 북부, 클랏샤 근방.

“너무 가깝네요.”

“하하. 겁먹지 마세요. 지금은 수도의 마력 흐름이 안정돼서 좀처럼 나오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초대 황제로부터 수 대 동안은 여러 봉인을 통해 마력 흐름을 안정시켜야 했거든요.”

초대 유스티온 시절, 마계로부터 올라와 활개 치던 악마와 마물들은 황가의 피를 통해 봉인했지만, 그들이 공간에 제멋대로 뚫어 놓은 통로들은 여전했다.

페리윙클과 샹그리아, 두 마법 가문의 도움을 받아 통로를 봉인하고 마력을 안정시키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포탈을 들쑤시고 파헤쳐 다시 메꾸느라 부작용으로 마력이 넘쳐났다. 제국 곳곳에 마수가 생겨났다.

대부분은 토벌되었다지만, 깊은 숲이나 물로 들어간 놈들 가운데는 생사가 불분명한 개체도 있다는 게 메디프의 설명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마수도 짐승의 습성이 있어서 함부로 인간들 사는 곳까지 찾아오지도 않고.”

그래도 뭔가 석연찮았다. 중요한 걸 하나 놓쳐 버린 듯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페이지를 뒤적이고 있자, 메디프는 마수 대백과를 덮어 아예 다른 곳으로 치워 버렸다.

부러 안심시키듯 밝은 미소가 코앞에 다가왔다. 메디프는 내 손을 감싸 책상을 두드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당신은 마수가 아니에요, 오필리어. 내 생각엔, 태생부터 성숙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종류의 새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 것도 있나요?”

“물론이죠.”

하긴 있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내 존재가 설명이 안 될 테니까.

[신비로운 동물들 - 신수, 마수, 희귀 동물]

메디프가 다른 책을 펼치자, 일반적인 동물과 성장 양상이 다른 사례가 쏟아졌다.

“예를 들자면 신성 왕국의 상징인 흰 뿔 거북은, 부모가 돌보고 있는 경우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새끼 상태예요.”

이래서 책이 좋은 거구나.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흰 뿔 거북은 시미크 교단의 본산인 신성 왕국의 상징이었다. 그저 강인함과 사랑을 의미하는 신수라고만 들었는데, 그런 생태적인 특징이 있을 줄은 몰랐다.

“천재지변이나 천적의 습격, 혹은 그저 수명이 다해 보호자가 죽을 경우, 그것도 아니면 사고로 혼자 둥지에서 내쳐졌을 때, 버려진 흰 뿔 거북은 구슬피 운다고 해요. 보통 힘없는 새끼가 그런 식으로 자연에 내던져지면 죽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꼬박 여섯 날을 울고 나면, 그 신수는 자라난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요.”

6은 시미크 교의 신성 수였다. 빛, 사랑, 진실의 세 가치가 각각 땅과 하늘에서 이루어짐을 뜻했다. 그렇기에 등딱지에 온통 육각형을 새기고, 엿새 동안 울어 성장하는 흰 뿔 거북을 신수로 두었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책장을 넘겼다. 섬세한 한편 단단한 클레멘츠의 손과는 다른, 학자의 손이었다.

“칼로니아의 고대종인 환락조는, 완전히 성장하기 위해 짝의 죽음을 필요로 합니다.”

“짝의…… 죽음이요?”

책장의 왼쪽에는 붉고 화려한 한 쌍의 새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에 홀로 서 있는 큰 새는 온통 새하얀 모습이었다.

“네. 환락조는 금슬이 좋고, 암수 수명이 비슷해요. 따라서 보통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 쌍이 같이 죽음을 맞습니다. 하지만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애도의 기간을 마친 개체가 또 한차례 성장합니다.”

“…….”

그 뒤의 이야기는 나도 들어 본 적 있었다. 마지막 성장을 거친 환락조는 영생에 가까운 삶을 누리지만, 더 이상은 짝을 두지 않고 홀로 긴 세월을 살아간다고 들었다.

슬프군.

“그러니까 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반려를 잃어야만 한다는…….”

“당연히 아니죠, 오필리어.”

역시 그건 너무 성급한 결론이었나.

“버림받은 뿔 거북이나 짝을 잃은 환락조.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상실?”

온몸으로 겪은 세상의 차가움?

“그것도 맞지만, 답은 심경의 변화예요.”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헤어스타일을 바꿨습니다, 라고 할 때 그 심경의 변화 말인가.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심리적 변화를 통한 성장을 겪는단 게 신수들의 특징이에요.”

메디프는 [신비로운 동물들 - 신수, 마수, 희귀 동물]을 흔들며 말했다.

잠깐. 이거 계속 듣다 보니까 뉘앙스가 마치…….

“제가…… 아니, 그러니까 제 변신 형태는 신수라는 거예요?”

메디프는 그럴싸하게 웃었다.

“네. 제 생각엔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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