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77)화 (77/218)

77화

신기할 만큼 맛있게 먹는다.

사실 노천 식당의 음식은 별 특별한 게 없었다. 황궁의 요리에 길들여진 그에게 있어선 더더욱. 오필리어의 메뉴 선정은 그가 듣기에도 합리적이었으니, 아마 이 정도가 이 식당이 내올 수 있는 맛의 최대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연신 집어 입에 넣는 오필리어의 얼굴은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다. 황궁 요리사들이 솜씨를 발휘해 내온 식사를 앞에 두면, 저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말을 할까. 그는 그저 생명 연장이라는 개념으로서만 적당한 식사를 할 뿐이지만, 오필리어는 다른 것 같았다. 기쁜 듯 삐약거리며 붕붕 날아오르는 병아리와는 또 다르겠지.

어느덧 클레멘츠는 계약한 1년이 지나고도 오필리어를 황궁에 둘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아니, 애당초 1년이란 기한은 우선 붙잡아 두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그리 짧은 기간에 필요 없어질 리도, 포기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눈이 마주쳤다. 문득 궁금했다. 저 황금색 눈은 어느 시간대라도 저런 빛을 발할까.

드디어 시선을 알아챈 오필리어의 기색이 불편해지자, 그는 자연스럽게 들릴 만한 질문을 하나 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나?”

“네. ……어, 들었어요?”

“안 들렸을 리가 있나. 온 광장이 네 노랫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는데.”

음향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애초부터 지켜본 결과 자연히 노래하는 모습까지 보게 된 거였지만. 그는 어느 건물의 이 층에서 그녀를 내려다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생각이 없었다.

잘 구워진 토마토를 포크로 집어 오려던 작은 손이 그대로 멎었다. 심지어는 식기를 그대로 놓아 버렸다. 억누른 기침 소릴 삼키기도 했다.

“어, 어땠어요?”

고개를 푹 숙인 오필리어의 정수리는 병아리일 때와 비슷했다. 질릴 줄 모르고 만져 댄 노랑 솜털의 촉감이 손가락 언저리에 선명했다. 클레멘츠는 그녀의 머리로 손을 뻗어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리고 입을 열려다 당황했다. 어땠냐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단순한 노래와는 달랐다. 그건 단지 목소리에 깃든 마력의 문제였을까? 주위를 둘러싸며 터지던 청마법의 빛 탓이었나?

“……뭐예요. 별로였다는 걸 그렇게 티 낼 건 없잖아요.”

“별로가 아니야. 좋았다.”

클레멘츠는 얼른 대답했다. 혹여라도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자세히 말할 수 없으니 일단 좋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

오필리어의 볼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클레멘츠는 단순히 저녁을 잘 먹어 혈색이 도는 건지, 아니면 이곳이 조금 덥거나 혹은 갑작스러운 열병의 전조인지 가늠하려고 미간을 좁혔다.

이내 편하게 미소 짓는 걸 보니 아프거나 더운 건 아닌 듯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게 신경 쓰였다.

오필리어의 노래. 그게 문제였다.

귀가 뚫려 있다면 다른 이들도 그 노래를 듣고 자신과 비슷한 걸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다들 얼빠져 있다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꽃과 상금을 건네고, 굳이 안 줘도 되는 책을 선물하질 않나. 여기서까지 힐끔거리며 꼬이는 인간들도 죄다 노래를 듣고 그러는 거였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오필리어가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화가 났다.

“꼭,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야 하나?”

스스로 들어도 딱딱한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말을 잃었던 오필리어는 또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별로 안 좋은 노래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오필리어는 벨라를 떠올렸다.

“노래하지 마.”

벨라는 그 말을 염불처럼 외며 노래하는 자신을 기피했다. 그런데 클레멘츠까지 다른 사람들 앞에선 자제해야겠다니.

아무래도, 취향이 고상하신 높은 분들만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심각한 문제가 제 노래에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듣기는 좋아도 남들 앞에서 부르면 안 될 정도면.

‘창법이 근본 없다든지, 뭐 질색하게 만드는 그런 게 있나 봐.’

“오필리어, 나는…….”

물론 그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 혼자 듣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한번 노래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오해는 이미 가속력을 얻고 굴러갔다.

“됐어요. 억지로 좋은 말 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답지도 않게 왜 그러신담?”

“…….”

“아무리 싫다고 하셔도 저는 제 노래가 좋다는 사람들 앞에서 계속 부를래요. 기회가 되면.”

클레멘츠는 그게 자신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결국 본전도 못 찾은 채 유독 떫게 느껴지는 싸구려 포도주나 머금었다.

“……그런데, 엔시는 왜 이렇게 안 와요? 이러다 음식 다 식겠어요. 가까운 데로 갔다면서…….”

우뚝 말을 멈춘 오필리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한 심부름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따라서 일어난 클레멘츠를 노려보았다.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커다란 황금빛 눈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클레멘츠는 당황했다. 무슨 오해를 했는지는 익히 상상이 가능했다.

“엔시를 어떻게 했어요? 설마 이미 데려가신 거예요?”

“……아니야.”

그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단지 해야 할 말을 뒤로 미루고 당장을 즐기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보다 큰 범위의 기만은 아니었다. 오필리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거슬리는 것 치워 버리듯 내보내어 죽였을 거라니. 그녀가 실망할 것이 두려워 아무 감정 없는 소년에게 증오까지 생겨났던 클레멘츠였다.

“내가 뭐 하러 그러겠나. 널 속상하게 만드는 것…… 외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을.”

널 속상하게 만드는 것. 본심은 거기에 그쳤으나 입은 저절로 움직여 꼬리를 붙여냈다. 그동안 해 왔듯, 입력 값에 맞춰 이상적인 반응을 출력하듯이.

조그만 손이 꼭 쥐어졌다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럼요?”

“그 애는 살아 있어. 네 말대로 거울 덮개를 돌려주었다. 네 상금과 함께. 앞으로도 로메오를 통해 보살필 생각이다.”

잘만 함께 식사하다가 갑자기 일어서 대치하는 남녀에게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클레멘츠는 그것이 신경 쓰였다. 저도 모르게 한쪽 팔을 움직여 그녀를 감쌌다.

“정말인가요?”

아직 눈물이 가시지 않은 눈이 아까 전보다 훨씬 가까웠다. 클레멘츠는 찌푸려진 그 눈에서 의심과 경계를 읽어냈다.

“그래. 로메오에게 물어본다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다. ……혹은, 원한다면 다음에 만날 수 있게 해 주지.”

금빛으로 빛나는 눈꺼풀 사이로 오필리어의 눈동자가 두어 번 감춰졌다가 드러났다. 클레멘츠는 노을 지는 하늘 아래의 아기자기한 연못을 떠올렸다. 그 물속으로 경계와 의심이 하나둘 잠기더니 사라져 갔다. 그는 또다시 가슴 한쪽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노래를 들었을 때와 흡사하지만, 더 강했다. 이번에는 저 목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그럼 왜…… 굳이 그런 거짓말을 했어요?”

오필리어는 물었다. 그는 조금 뒤 입을 열었다. -너, 그리고 여기.

“너와 같이 식사하고 싶었다.”

그것 말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 *

“너와 같이 식사하고 싶었다.”

그 말과 함께 우리 사이에 큰 침묵이 흘렀다. 딱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이유라 나는 또 경악했고, 그는 잠잠했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마차에 오르는 동안 나는 크나큰 착각에 빠져 있었다. 아니, 뭐라고? 나랑 밥 먹고 싶어서 그런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했다고? 이건 혹시……? 그린 라이트?

그렇게 착각의 바다에서 조난될 뻔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니야. 이건 면담이었어.’

엔시에게도 말한 바 있었다. 클레멘츠는 나의 고용주이자 계약자라고. 그만큼 우리는 특수한 상황으로 묶여 있었다. 밥 좀 같이 먹으려고 했다고 해서 무작정 그린 라이트를 쾅쾅 때려 버리면 안 된다는 거다.

황비의 계략이 바로 턱 끝까지 뻗쳐 왔던 이 시점. 통보하듯 엔시를 설득할 거라고 던져 놓고, 클레멘츠를 기다리게 한 뒤 하염없는 개인행동을 했다. 아무리 내 자유와 의지를 보장한다는 계약이었어도, 상호 계약자로서 이의를 제기할 만한 일이었다.

엔시가 떠났다고 하면 내가 감정적으로 대응할 테고, 마차에 바로 오르면 황궁에 도착해 버려 시간이 없을 테니 느긋하게 식사나 하면서…… 그간 내가 친 사고들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던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날 물끄러미 쳐다보던 것도, 대뜸 노래하는 걸 좋아하느냐 묻던 것도 이해가 갔다.

나, 눈치 없었나……? 눈치 화법으로 말하는 상사 앞에선 살아남지 못할 타입의 사회생활 최약체인가?

아니- 그러면 좀 더 확실하게 포인트를 잡아 말할 일이지! 괜히 부끄러워한 거며, ‘허헛, 제가 노래 좀 합니다. 좋아하고요.’ 한 거며, 내가 없어진 사이 엔시를 끌고 갔을 거라 의심하고 화낸 것까지 한 무더기의 흑역사가 되어 버렸잖아.

지금도, 봐.

달리는 마차 안, 클레멘츠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나는 그의 얼굴을 힐끔대던 시선을 다시 살그머니 내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지?”

으아! 이거 봐. 역시 책임 소재 추궁이잖아! 찔리는 게 많아서 뭘 얘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뭘 말인가요?”

“……엔시 말이다. 적당히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왜 반드시 살리려고 굴었지?”

“그건…….”

왜 나대서 여러 사람 힘들게 만들었냐고 묻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난 할 말이 있었다.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게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나의 상사가 이해 못 하는 것 같으니 좀 더 그럴싸한 걸 덧붙였다.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엔시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걸요.”

누군가의 삶은 날 때부터 정해져, 아무리 원해도 바꿀 수 없다. 신분제가 있는 세상에선 그걸 더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클레멘츠도 엔시의 삶이 불공평했다는 것에 동의해 줬으면 했다. 그래서 굉장히 무엄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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