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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73)화 (73/218)

73화

“거, 노래. 잘 들었어요. 지나가듯 말해 보길 잘했더군요. 옆 가게 주인들하고 같이 들었는데, 내가 아가씰 참가시켰다고 말해 줬지. 내가 다 자랑스럽더군요.”

“어, 아,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저 그러니깐, 이거.”

서점 주인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오필리어 누나의 커다란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

“‘당신이 있어.’ 정말 좋은 노래죠. 아가씨가 부르는 걸 들으니 주책맞게도 옛날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고. 재밌게 읽어요. 그럼…….”

엔시는 책을 훔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필리어 누나는 멋지게 책을 얻어 낼 능력이 있었다. 만일 제가 미리 훔쳐다 줬다면 누나는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그렇구나.’

엔시는 무엇을 훔친다는 게 왜 부끄러운 건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어, 어떡해……. 나, 심장이…….”

“레몬 크림 파이가 아니라 그쪽이 첫사랑이었어요?”

“……레몬 크림 파이가 첫사랑인 건 어떻게 알았어?”

놀란 표정에서까지 행복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덩달아 웃던 소년은 얼굴을 굳혔다.

“첫사랑?”

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익숙한 인영이었다. 지나치게 고고한 생김새와 우뚝 큰 키. 오필리어 누나의 옆에 서 있으니 더더욱 차가워 보이는 남자.

“좋아 보이는군, 오필리어.”

마차에서 내렸던 못된 마법사였다.

* * *

마차는 넓은 광장 바깥, 도로와 이어지면서 인적이 드문 곳에 서 있었다. 매끄러운 광택을 뽐내는 검은 마차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거기 서 있는 남자와 맞춘 듯이 잘 어울렸다.

수도를 둘러싼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는 빛으로 물들었다.

문득,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쩌고 있지?”

동시에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남자가 시야의 변두리에서 나타나 대답했다. 잿빛 망토가 가볍게 휘날렸다.

“그 어린 도둑과 함께 광장에 계십니다. 계속 물건을 돌려 달라 설득하고 계시는데, 잘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겠지.”

클레멘츠는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도둑이 왜 도둑이겠는가. 몇 마디 말로 설득할 수 있으면 애당초 범죄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오필리어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은 그가 골칫거리 거울 덮개를 회수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어린 도둑은 죽은 목숨이다. 그가 거두지 않아도, 자존심 상한 클라우디아가 살려 두지 않을 테니.

하지만 클레멘츠는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다. 괜한 일에 시간 낭비 말라 이르고 그녀를 데려올 수 없었다. 전언 때문이었다.

“제게 원하는 바를 말할 자격이 있다면, 저는 저 아이가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필리어는 소년이 죽길 바라지 않았다. 당연했다. 쓸데없이 정이 많아 곤란한 여자였으니까.

그녀가 그걸 원한다고 한 순간, 클레멘츠는 아무런 조건도 묻지 않고 소년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었다. 황족의 권위를 사용해 안전하게 지키고, 그 못된 소년은 네 덕분에 전에는 꿈도 못 꿨을 삶을 살고 있노라 오필리어의 귓가에 속삭이는 미래가 그려졌다. 그러면 그녀는 웃을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여자가 그의 앞에서 웃은 적이 있던가?

“즐거워 보이던가?”

“……예. 어린 도둑이 좀체 말을 안 들어 곤란해 보이셨습니다만, 종종 웃으셨습니다.”

웃었다고.

그리고 스멀스멀 불쾌감이 올라왔다.

왜 내게 오지 않고 그 애 앞에서.

분명 나와 함께 시장을 구경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메라와 닉타. 그들이 저주에 균열을 내어 위기의 순간 병아리를 사람으로 만든 게 분명했다. 그 하등한 마물들이 어떻게? 소환도 없었는데-라는 의문이 남았으나, 직접 저주를 건 그들 외에는 짐작 가는 존재가 없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위험을 벗어날 팔다리를 얻었는데도 왜 자신에게 도망쳐 오지 않았나.

그런 불쾌한 곳에서, 불량한 말종들 앞에 그의 작은 아기 새가 1초라도 있는다는 건 끔찍했다. 아기 새가 변하여 된 사람은 더더욱. 그는 그런 자들이 여성에게 얼마나 무도한지 잘 알았다.

하지만 그의 아기 새는 언젠가 그를 잠들게 했던 마비제를 이용해 불량배들 전부를 묵사발을 내 놓았다고 한다. 직접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쓸데없이 용감한 그 손이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 궁금했다.

남은 그림자들이 빌빌대고 있는 쓰레기들을 확보했다. 하지만 회수해야 할 물건과 그걸 지니고 있는 소년을 두고 모두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극히 아끼시는 모양이야.’

그림자는 생각했다.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전하께서 모든 계획을 중지하시다니.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그런데 기색은 불쾌해 보이시니…….’

무엄하게도 황태자의 얼굴을 힐끔대고 있었단 걸 깨달은 그림자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 역시 전에라면 없었을 일이었다. 전하께서는 언제나 한 김 식은 듯,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표정을 유지하셨으니.

그러나 지금은 뭐랄까. 불충하고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토라지신 것 같았다.

“잠깐.”

“예, 전하.”

“지금 어디쯤에 있다고 했지? 어디 한번 직접 보고 싶군.”

“…….”

클레멘츠는 그렇게, 제 모습을 되찾은 여인이 불량한 소년과 함께 이곳저곳 들쑤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축제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층의 레스토랑 겸 카페였다. 들어오자마자 전세 낸 가게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물 잔만 천천히 두어 번 채우고 비워 냈다.

“설득한다고? 놀고 있는 것 같은데.”

열린 창문 아래, 얄궂은 금색으로 반짝이는 머리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얼굴엔 엷은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그 수상쩍은, 사기꾼이 들어앉았을 게 분명한 마법사의 천막에서 나온 다음엔 더 가관이었다. 진짜 사기라도 당한 건지 터덜터덜 걷고. 쓸데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넋 나간 표정으로 소년이 건네주는 불량 식품을 우물거렸다.

그의 얼굴에 걸린 웃음이 짙어졌다는 걸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바보인가?’

그러나 클레멘츠는 잘 알았다. 오필리어 레오라는 바보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걸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골치 아프게.

마침내 오필리어가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가 돌발 행동의 절정이었다.

여자는 편하게 무대를 딛고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건반음의 반주가 울려 퍼지자, 황실 예산과에서 울며 쥐어짜낸 세금으로 개발해 냈을 판정 마법이 시작됐다.

“봄이 온기로 나에게 왔을 때. 그리고 겨울이 되어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나도 함께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 그건 당신이었어.”

그녀가 입을 열자 주변을 떠다니던 흰 막대는 최고점을 나타내는 황금빛을 발하며 터져 나갔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이한 기분이었다.

오감이 활짝 열려 주변의 자극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초여름의 무르익은 공기. 저물 준비를 하는 하늘에 일찍 떠오른 저녁별. 저 아래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와 소동이, 그가 있는 위층의 적막한 공기와 분리되며 생긴 층을 느낄 수 있었다.

“무뎌지고 흐려질 모든 날. 당신도 사라지고, 마침내 나도 나를 잊어버리겠지만-.”

모든 것이 지나칠 만큼 생생했다. 멀리서 노래하고 있는 오필리어까지도.

그 아이가 눈을 감았다. 무슨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는가.

다시 떴다. 무슨 생생한 꿈을 꾸고 있는가.

“먼지구름 속에서, 엉키고 망가지고 언젠가 모든 것을 잃고 말겠지만-.”

오필리어가 편히 들이마시고 노래로 토해 내는 호흡까지 눈여겨보고 나서야, 자신의 숨은 멈춰 있었음을 깨달았다.

갈비뼈 안쪽이 뜨끔거렸다.

‘오필리어는 노래를 참 잘했어요. 함께 배웠는데도 주인보다 잘하는 것이, 그 목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모나한의 영애가 어느 날 찾아와서 그런 이야길 했던가.

어둡고 습한 마력이 가득한 여자였다. 마(魔)에 속한 존재를 휘젓는다는 목소리다. 본능적으로 싫어했을 만도 했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뭘까.

아직 따끔한 느낌이 가시지 않은 가슴 언저리에 손을 짚었다. 저 목소리가 그의 몸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럴 리 없었다. 그는 인간이었다. 클레멘츠는 오필리어가 노래를 마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저항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하듯이.

* * *

“나는 당신을 알았고, 우리는 빛처럼 서로를 보고 있었지. 그러곤 더 이상 두렵지 않았어.”

무대 위의 작은 여자는 주변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었다. 이전 순서에서는 옆 사람과 두어 마디씩 잡담을 하던 이들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간간이 하품을 하던 이들 역시 그랬다. 지나다니던 이들조차 발길을 멈추었다.

‘당신이 있어’는 마냥 밝은 가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또 멜로디는 어딘지 희망찼다. 그걸 저 사람이 부르니 근거 없는 희망찬 느낌은 답도 없이 커졌다.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자리에 모인 모두가 ‘왠지 뭔가 앞으로 괜찮을 듯한’ 기분이 들었음은 분명했다. 천막에 기대 선 남자 역시 그랬다.

여자는 웃었고, 팔을 벌렸다. 금빛 머리카락 탓인가. 최고점을 나타내며 금빛으로 터져 오르는 조명은 꼭 그녀에게 맞춘 것 같았다. 심지어는 무대를 장식한 하얀 조화가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 목소리.

상담소 천막에 들어와 말을 걸었을 때 처음으로, 그리고 목에 새겨진 문양을 봤을 때 두 번째로 의심했다. 지금은 확신했다. 저 목소리가 그 자체로 마력이었다.

저주에 대해서도 마법 물약에 대해서도 하나도 몰라 허둥거렸으면서, 저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고 있었다.

“흥미롭네.”

마법사는 검게 뒤집어쓴 후드를 벗었다. 눈에 확 띄는 하늘색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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