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그러고 보니 이게 오필리어 양이 제일 좋아하는 파이였죠. 이걸 어쩌나? 방금 전에 멋진 청년이 다 사가 버렸어.”
멋져 봤자 사재기꾼이었겠죠.
“새로 만들 수는 없어요? 기다릴게요.”
“하하! 미안해요. 오늘 판매를 여기서 중단한다는 조건으로 추가금을 받았거든요.”
추가금을 꽤 많이 받은 듯 아주머니의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내일이랑 모레도 나올 생각인데, 그때 사 가요.”
이럴 수가…….
눈 깜짝할 새 좌판을 접은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며 사라져 갔다.
산업혁명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곳에도 악독한 자본주의자가 있단 말인가? 맛있는 것, 좋은 것을 혼자만 독차지하려고 하다니.
세상을 삭막한 곳으로 만드는 사회악적인 존재일 것이다. 분명!
그 돈 많은 먹보 자식. 얼굴만 안다면 10미터 밖에서 몰래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어 줄 수 있을 텐데.
“젠장.”
허망함에 허우적대는 날 엔시가 흔들었다.
“이제 기운 내요, 누나. 그래야 새로운 간식을 살 수 있죠.”
“너 머리가 참 좋구나.”
“칭찬이죠?”
“그러엄…….”
혼우드의 명물인 ‘그 파이’를 맛보여 줄 수 없게 됐다. 나파르 아주머니는 내일도 나오신다고 했지만, 엔시와 나에겐 오늘뿐이니까.
그럼 이제 뭘 보여 주면 좋지? 일단 파이를 맛보여 주고 나서 혼우드 영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꼬여 버렸다.
“이제 그 빵은 잊어버리고 저길 봐요, 누나.”
엔시의 눈엔 아직도 눈앞에서 파이를 놓친 충격에 허덕이는 걸로 보인 모양이었다.
소년이 가리킨 건 광장에 즐비한 천막들 중 하나였다. 검은색 천으로 우중충한 느낌을 주는 천막은 입구 양쪽에 푸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진짜 마법사 마법 상담소]
[고민 상담 / 주문 / 마법 생물 / 저주 / 예언 풀이 전문]
아주 익숙한 홍보 문구인데? 다름이 아니라 마차 사고가 나기 직전, 내가 들어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천막이었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바깥에 간이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아마 천막 주인인 듯한데, 잠시 바깥바람을 쐬는 모양이었다. 체형은 마법사답게 호리호리해 보였다.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하나?
“저주를 다룬다는데, 누나가 걸린 저주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과연 실력 좋은 마법사일까? ……그 사람보다 뛰어난 마법사이긴 쉽지 않아.”
사실이 그랬다. 분명 사기꾼일 거라던 클레멘츠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뭐 어때요. 밑져야 본전인데.”
하지만 이젠 내가 아니라, 엔시 쪽이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무언가에 관심을 보인다는 게 기쁘고 대견해서, 한번 데리고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계속 물건을 돌려주라고 말하는 거, 누나도 그 못된 마법사에게 잡혀 있기 때문이죠? 만약 저주가 풀려 그 형에게서 벗어나게 되면 그럴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아니. 그런 게……”
“그럼 특별히 이 덮개를 넘기고 받은 돈은 누나랑 반으로 나눌게요. 누나가 톰슨네 패거리를 혼내 줬으니까.”
소년은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너, 그런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아! 왜 저한테까지 폭력을 쓰려고 해요?”
아차. 전생에 남동생의 등짝을 후려치던 버릇이 나올 뻔했다. 폭력은 나빠.
“크흠.”
살며시 손을 내리고 헛기침을 했다. 범죄로 번 돈을 갖고 그렇게 남까지 끌어들이려고 해선 안 된다고, 말로 설득해야지. 설득(물리) 이런 거 말고.
막 설득(정신)을 시도하려는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천막 앞에 우수에 젖은 채로 앉아 있던 마법사였다. 후드를 깊이 눌러써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이쪽을 보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자기 얘기 하는 거 알아차렸나?
앗. 눈을 너무 오래 마주친 모양이었다. 고개를 갸웃대던 마법사는 뭔가 알았다는 듯 손뼉을 탁 치더니 곧장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 오세요! 진짜 마법사입니다.”
으악! 몸소 영업 나왔잖아!
목소리는 중후한 미성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건들대는 것처럼 들릴 만큼 가벼운 어투에 희석되어 버렸다.
“저, 아직, 좀 더 생각을 해 보고…….”
“우리 누나는 대단한 마법사가 필요해요. 실력은 확실하겠죠?”
“어유, 그럼요.”
너 뭐야! 왜 네가 앞장서고 있는 거야!?
인간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동화에 나올 법한 추측을 던져 댈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엔시 녀석은 마법에 엉뚱한 로망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진짜 마법사’의 천막으로 들어섰다.
뭐, 이렇게 호감도를 올려놓으면 이따가 내 제안을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겠지- 라고 위안하며.
거기까진 좋았다.
천막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알록달록하고 조잡한 물품들.
[머리숱이 많아지게 하는 가루약. 100실버]
[사랑의 묘약. 500실버]
[베개 속에 넣으면 암기력이 높아지는 부적. 시험기간에 적극 추천. 850실버]
아무리 봐도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물품명. 전혀 납득이 안 가는 가격. 500실버가 있다면 짝사랑을 포기하고 최고급 풀코스 식사로 포식한 뒤 혼자 집에 돌아가 잠들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잘못 들어왔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진짜 마법사? 빼도 박도 못 하는 사기꾼이다.
“아, 하하, 핫!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른 것 같아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이만…….”
“뭐예요, 누나.”
실망한 아이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크흑…… 그래. 초등학생의 로망, 소중하지. 눈 딱 감고 지켜 주자.
가까스로 의자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는 동시에 마법사도 개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손님, 저희 상담소에 들어오실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들어올 때도 내 마음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왠지 끼어들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굵은 목소리를 좍 깔자 흔들리는 색유리 램프 불빛과 어우러져 굉장히 음산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나가실 땐 아니랍니다.”
“…….”
“……크흠.”
하지만 마법사의 허세는 딱 거기까지였다.
“……뭐야.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할 거예요.”
“소비자…… 보호원이요? 그게 뭡니까, 손님?”
“사기꾼과 불량 상인을 잡아 가두는 기사단이에요. 억울하게 돈을 떼먹히거나 모욕을 당한 손님들이 신고를 하면 백마를 타고 출동하죠.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의 실력을 가졌달까?”
“그…… 그런…….”
마법사, 아니 사기꾼이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입을 가렸다.
아무래도 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기꾼인 것 같았다. 정말 수도 없이 소비자를 등쳐 먹는 데 익숙한 장사치라면,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
사기를 칠 의욕은 넘치는데 물가도 잘 모르고, 콘셉트는 잘 정했는데 경험은 부족한, 그런…… 초보 사기꾼.
엔시는 할 말은 많지만 가만있겠다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손님, 손님.”
“왜요?”
“손님이 제 마지막 희망이에요. 오늘 많은 사람이 상담소를 찾았지만…… 다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나가 버렸거든요. 어떤 사람은 욕하면서 나가기도 하고.”
“…….”
어쩐지 나까지 숙연해졌다.
“‘대머리, 짝사랑, 수험생’을 공략하면 웬만한 장사는 풀린댔는데. 거짓말이었나?”
“……정말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요?”
“뭔데요?”
“…….”
이 인간을 어쩌면 좋지?
“오늘 얼마나 벌었나요?”
“그, 그게…….”
“괜찮으니 솔직히 말해 봐요.”
마법사는 고개를 떨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제 보니 참 예쁜 손이었다. 클레멘츠가 떠오르는데.
“한 푼도 못 벌었어요.”
아니, 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도 한 푼을 못 벌었다는 게 말이 되나? 갑자기 마법사가 한없이 처량해 보였다.
“아, 아무튼 손님마저 가 버리시면 저는 어떡하란 거죠?”
“그거야…… 댁 사정이 아닐까요?”
“그러지 말고요.”
우리의 만담을 듣고 있던 엔시는 조금 무료해진 모양이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표가 붙은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키가 커지는 사탕’이라고 쓰여 있는 상자 속을 뒤적였다.
“그거 팔려고 진열해 둔 건데……. 휴, 됐다. 그냥 꼬마 손님 드세요.”
“돈 안 내도 돼요?”
“그래요, 그래.”
이내 엔시는 사탕을 한 움큼 들고 오도독 씹었다.
“굳이 여길 들어오신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역시 고민 상담인가?”
마법사는 장사는 반쯤 포기한 모양이지만 나만큼은 잡아 보겠단 듯 끈질기게 설득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업 문제든, 원치 않은 정략결혼 문제든 다 해결해 준다는. 필사적인…… 약 팔이였다.
“사기꾼 아니에요?”
난 솔직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럴 리가? 간판 봤잖아요. 진짜 마법사라고.”
“원래 본인이 진짜라는 확신이 없을수록 진짜라는 말 한마디에 집착하게 되는 법이죠.”
“……!”
마법사의 말문이 막혔다. 그 느낌이 ‘어, 어떻게 알았지?’보다는 ‘앗, 그런가?’ 정도라서 더욱 어이가 없었다.
“진짠데…….”
언뜻 보이는 마법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진짜 억울한 것 같다.
흠, 정말 아닌가?
단지 이런 종류의 장사를 한번 해 보고 싶어서, 축제를 맞아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연구실에서 기어 나온 마법사?
‘세상 물정 모르는 사기꾼’이란 구절보단 말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 저기 있는 물건들도 진짜예요?”
“…….”
마법사는 또 눈을 피했다. 후드에 가려져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눈을 피하다니. 그리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효과가 그렇게 확실하다곤 보증하지 못하겠어요.”
“…….”
“그렇지만 검증된 방법을 통해 마법을 걸었다는 건 보증하죠!”
사기는 쳤지만 전 사기꾼이 아닙니다, 라는 것인가?
역시 그냥 엔시를 데리고 나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만족스럽게 사탕을 해치운 엔시가 작은 의자 위에 팔짱을 끼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