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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의 삐약이가 되어 버렸다 (66)화 (66/218)

66화

그리고…….

클레멘츠가 오지 않아서 내가 버려졌단 걸 확인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생각해 보면 반대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존재했다. 그가 날 여전히 아끼고, 어떻게든 되찾으러 돌아오리라는 걸. 사실 진짜로 염원한 건 그쪽이었는지도.

……젠장. 클레멘츠 따위!

그럼 방금 전에는 어땠지?

어른 셋이서 작은 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었다. 말리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이런 하찮은 모습이 아니었다면. 긴 팔다리와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주먹이 있었다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가.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렇게도 생각했다.

사람으로 돌아가면 그 뒤엔?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난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어른 대 어른이라도 3대 1이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대도 마찬가지. 역시나 원만하게 해결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야.”

내가 그렇게 약아빠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눈앞에서 아이가 맞고 있는데? 그럴 리가. 그럴 리가.

하지만 아니라고 증명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나를 확실히 못 믿겠는걸.

“뭐 그렇게 진정성을 입증해야만 하는 거예요?”

비겁하게 들리더라도 우선 항의했다. 누구나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래요. 사실 저주가 풀린 뒤가 걱정되기도 했는데……! 그래도 난 정말 후작저를 탈출하고 싶었어요. 엔시를 구하고 싶어요! 내게 보상해 주려던 거 아니었어요? 좀만 더 쉽게 해 주면 안 돼요?”

“알았어, 인간의 딸.”

합체 마녀, 자칭 ‘시간’은 옥좌에서 내려왔다.

“인간의 진심은 복잡해. 우리의 기준으로 조건을 걸어선 안 됐어.”

그럴 리는 없지만. ‘시간’이 날 향해 미소 짓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얼굴이 내가 이해하는 대로라는 보장도 없는데.

“너의 불만을 알았어. 균열을 더 열어 줄게. 그럼…….”

-뒤싱겐도 이로써 너를 구했다면 우릴 탓하지 않겠지, 라는 중얼거림이 들린 것 같았다.

꽃잎처럼 살랑거리는 손톱이 날아왔다. 이제 보니 저번에 뽑아냈던 엄지손톱도 아직 다시 자라나지 않은 것 같았다. 뜨끔하는 감각이 가슴을 찔렀다.

“χρυσό μανιτάρι.”

* * *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솟아오른 진흙 위였다. 한낮의 태양이 하늘을 맑게 밝히고 있었다. 내 밀알을 다 해치운 닭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세 불량배 놈과 소년은 마당에서 대치 중이었다. 대치라기보단, 일방적으로 엔시가 당하는 중이지만.

“마지막으로 묻는다. 진짜 물건 어디다 뒀어?”

“할망구는? 찾기만 해 봐, 네 눈앞에서 죽여 버린다.”

저, 저 노인 공경도 모르는!

나는 서둘러 종종거리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엔시가 헐떡거리며 간신히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꺼져. 이 못생긴 새끼들아.”

“뭐?”

당황하던 못생긴 어른들은 심기일전해서 더더욱 못생기게 말했다.

“맞고 내놓느냐, 그냥 내놓느냐 차이일 뿐인데. 너는 꼬옥- 매를 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주먹을 올리는 순간.

“뺙!!!(아동 폭력 개새끼야!)”

반사적으로 웅크린 엔시의 등 위로 뛰어들었다.

모습이 바뀐다고 해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적었다. 3대 1로 풍운아처럼 싸워서 이기기? 불가능했다. 할머니를 먹여 살리며 도둑질을 하고 살아야 하는 신세도 바꿔줄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어른이었고, 여기 있었다.

제3자로서, 저들을 향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엔시에게도, 도망치기 위해 다른 범죄를 저질러선 안 된다고…….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이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껏 많은 순간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 왔겠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견뎌 내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 희망. 어쩌면 부질없을지도 모르는 환영을 심어 놓을 수 있었다.

사실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부도 수표고 허위 매물이라 해도, 중요한 건 믿음 그 자체였다.

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병아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삐약아?”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나는 사실 진짜 삐약이가 아니란다. 부업으로 삐약이를 하고 있는 누나지.

파삭-.

그런 의성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무언가에 쩍쩍 금이 가면서 틈새로 바람과 빛이 드나들었다.

그늘진 마당에 하얀 빛이 깜빡였다.

“뭐, 뭐야!”

실로 엑스트라 악역다운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허공에서 사뿐 바닥을 디디며 외쳤다.

“뭐긴 뭐야. 비싼 밀 먹고 미친 병아리지!”

“말도 안 돼!”

“돼!”

활은 쏴 봤어도 주먹질은 안 해 봤다. 여차 하면 일단 소년을 데리고 튈 생각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뒤로 손을 뻗으니, 잠시 뒤 머뭇거리는 작은 손이 쏙 들어왔다. 거친 생채기가 고스란히 만져졌다.

그런데 갑자기 펑- 하더니 병아리가 사람 됐다는 충격이 생각보다 큰 탓인지. 이 못난이들은 한참이나 정신을 못 차렸다.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짧은 금발이 턱을 간질였다. 이거 어쩌면…… 그냥 도망치지 않고 정의 구현 비슷한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생각난 게 있어 망토를 걷고 옷자락을 뒤적였다.

“뭘 하려는 거야!”

“마녀!”

“오- 하필 욕을 해도 마녀라니-. 좀 웃기는데?”

벨라와 합체 마녀가 생각나서 배시시 웃었더니 불량배 3종 세트는 ‘히, 히익!’ 같은 양산형 추임새를 넣으며 찌그러 들었다.

“마녀들의 대선배이자 증조할머니인 대마녀 랜니스라고 알고 있어? 내 친구야. 그리고 밤과 낮의 2단 합체 마녀 들어 봤어?”

“뭐라는 거야!”

“진짜 미친 건가?”

순순히 경악해 주던 그들도 슬슬 나 역시 한 주먹거리란 걸 깨달았을 시간이었다. 한 명이 눈치를 보다가 손을 쓰려는 그때였다.

“그 합체 마녀가 바로 내 채무자야!”

나 역시 손을 뻗어 무언가를 확 그들의 얼굴에 뿌렸다. 이건 뭐냐면…… 내 영원코도 든든한 우군. 하빌 가루였다.

벨라의 탈출을 위한 ‘빠르고 안전하게 기절시키는 향’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 왔다. 효과를 시험해 보다가 실수로 기절한 적도 있었고, 몇 번은 실패작도 만들었다.

그 실패작 중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 둔 과거의 나야, 잘했어.

말려서 빻은 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거나, 실수로 이파리나 줄기 부분이 들어가면 약효가 급격히 느려졌다.

바로 기절하지 않고 좀, 힘이 빠지고 헤롱헤롱한 상태가 된달까.

“우어어어!”

유진 놈이 내지르는 주먹을 가뿐히 고개만 틀어 피했다.

“내…… 내 주먹을…… 피했어?”

무척 무림 고수 같은 바이브였지만 그냥 저 녀석이 약에 취해 느려진 것뿐이었다. 나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놈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그는 가련하게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라고 묻는 듯한 표정. 나머지 둘은 이미 비슷한 포즈로 땅을 짚고 허물어져 있었다.

나 역시 꿇어앉아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췄다.

“폭력은 안 좋아. 그치?”

“므순…… 장꼬댈…… 하냐?”

가운데 다소곳이 널브러진 톰슨이 중얼거렸다. 약 기운에 혀가 잘 안 돌아갈 텐데도 말대답을 하다니.

혀뿐일까. 아마 손발에 힘주는 건 물론이고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텐데.

정성이 갸륵해서 특별히 웃으면서 때려 주었다.

철썩.

“아아-!”

“특히 저항도 못 하는 어린애를 이용하고 협박하고 때리는 건 정말 최악이야. 그치?”

“느…… 네가 제일…… 퐁력적…… 아야!”

뭐?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어딜 비벼?

“게다가 뭐? 할머니를 어쩐다고? 나는 유교 문화권 출신으로서 너희를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어. 잘못한 거 알지?”

인의예지와 장유유서의 이름으로.

철썩.

“대체 먼 소일 하은 거야!”

“반성은? 사과는? 대답은?”

“자, 잠……!”

철썩.

“…….”

철썩.

앗, 내가 무슨 짓을?

감정적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불량배들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 자꾸 화가 났다. 내가 하는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티가 나니까. 휴우.

“모르겠으면 따라해. 나는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

“나, 나는…….”

“병아리 마녀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살려 주시면, 새 사람이 되겠다.”

“자, 자까만…….”

왜 이렇게 겁먹었지?

아, 마음이 앞서서 손부터 치켜들고 말했구나. 그리고 셋이나 있다 보니 누구부터 때릴지 고민하느라 눈을 희번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나는 이렇게 작고 연약하고……. 사람을 때린 적도 없는 민간인인데. 하등 무서워할 이유가 없구만. 엄살은 수준급이네. 엔시를 때릴 땐 피도 눈물도 없었으면서.

나는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엔시가 날 잡아당길 때까지 세 놈의 따귀를 번갈아 가며 때렸다. 그래도 이 못생긴 불량배들이 한 것처럼 인정사정없이 발길질은 안 했다. 정확히 뺨만 때렸다. 인도적으로!

“응? 왜?”

그러고 보니 인간으로 변하고 나선 처음 마주치는 거잖아. 소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싱긋 웃어 보였다. 아이는 약간 뜨악한 표정이었다.

“아, 미안. 교육적으로 안 좋은 걸 보여 줬구나. 딱 네가 맞은 두 배만큼만 때려 주려고 했어. 이제 가자!”

일어나며 척! 하고 손을 내미는데, 아이는 주저했다. 의도와 전혀 다르게 엔시에게까지 겁을 준 건가 싶어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소년은 앞으로 나오더니 구둣발을 들어 세 사람을 발로 몇 번인가 뭉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정확히 얼굴을.

“엔싀이이-!”

“그아! 어! 우오오아!”

약효가 번져 기절하기 일보 직전인 그들은 말이 되지 못한 괴성만 질러 댔다.

“이제 두 배가 맞는 것 같아요.”

“너 정말 학습이 빠른 친구구나.”

이제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다시 제대로 된 하빌 뿌리 향을 맡게 하고 깔끔하게 기절시켜야 하나? 중간에 병아리가 사람이 되는 교훈적인 꿈을 꾼 셈 치게 되는 거지.

우연히 같이 있던 두 사람도 같은 꿈을 꾸고, 정말 우연찮게도 얼굴에 사이좋게 교훈적인 흔적이 남게 되긴 하겠지만…….

“삐약이 누나.”

“어떡하지?”

“다 저질러 놓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고민하고 있는 내 손을 엔시가 끌어당겼다. 엉겁결에 그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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