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아야! 뭐야, 이 병아리?”
소년은 당황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움직임을 방해하는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자, 놀라운 손놀림으로 나를 잡아채 손 안에 쥐었다.
“……!”
그사이 가져온 다른 가방으로 덮개를 바꿔치고 문을 닫았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야, 이 자식!
소년은 비상한 몸놀림으로 인파에 섞여 들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분명히 프로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전과자라는 뜻이다.
“뺘!!(클레멘츠으!)”
가냘픈 새소리는 군중의 웅성거림 속에 금세 묻혔다. 하지만 나는 팔짱을 끼고 교통사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공갈꾼을 내려다보던 클레멘츠가, 그 순간 이쪽을 돌아본 것 같다고 느꼈다. 아니, 느낌이면 안 되는데. 사실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돌아가지?
납치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납치당했다. 클레멘츠는 대비를 해 두었다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도 과연 대비가 되어 있을까?
범죄자 소년은 발에 바퀴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삐흑.(젠장!) 뺘삐비욱.(날 어쩔 셈이…… 욱.)”
너무 빠른 속도로 허공에서 흔들리다 보니 멀미까지 났다.
“조용히 해, 삐약아. 나라고 책임감이 없진 않아. 반드시 닭이 될 때까지 키워 줄 테니까.”
필요 없어…….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누가 병아리 따위 키워도 된다더냐며 소년의 부모님에게 쫓겨나, 수도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길고양이의 별미가 되어 생을 마감하나?
혹은 맛있는 모이를 먹고 커서 멋진 영계백숙으로 삶을 마감하나?
긍정적인 전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패기보단, 그냥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집과 집 사이, 상권과 상권 사이를 요리조리 통과했다. 소년은 어느 한적한 직물 가게에서 외벽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하나 훔쳤다.
“뺘.(이게 진짜!) 뺙삑삐잇…….(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웃…….)”
“아, 조용히 좀 해. 귀엽게 생겨서 엄청 시끄럽네.”
범죄자 소년은 퉁명스레 내뱉곤 나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녀석은 용의주도했다. 으슥한 골목에 도착해 주위를 두리번대더니, 가방에서 문제의 마법 덮개를 꺼내 셔츠 속에 숨겼다. 몸집에 비해 큰 조끼와 두터운 재킷으로 잘 덮으니 감쪽같았다.
비어 있게 된 가방은 훔쳐 온 태피스트리로 채워 넣었다. 대충 금빛에다 화려한 수가 놓인 태피스트리는 부피감도 얼추 비슷했다.
주머니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그 꼴을 보다가 경악했다.
“삑삑!(이 야바위꾼 꿈나무 자식아!) 삐약삣! 삐약삣!(대체 어쩌려는 거야!)”
그게 어떤 건지 알아? 네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기는 하냐고!
튀어나와 매섭게 폴짝이자 소년이 가소롭다는 듯 날 내려다보더니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제 열두세 살쯤 되었을 아이한테 이런 취급을 당하다니. 뒷골이 아찔해진다…….
클레멘츠, 어디서 뭐 하니? 내가 이러고 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패악을 부리거나 말거나, 소년은 유유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얼마쯤 걸었을까. 소년의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어이, 엔시.”
“잘 갔다 왔어? 물건은 확보했냐?”
불량배들이었다.
정말 누가 봐도 불량배 같은. ‘불량배’라는 단어를 인간의 형태로 끄집어내면 이런 모습일 것 같은 패거리 세 명이었다.
“그럭저럭.”
“이 새끼. 어른한테 말본새 좀 봐라?”
퍽-.
커다란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가장 덩치 큰 금발이 소년의 어깨를 밀쳤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 ‘엔시’는 우당탕 뒤로 넘어갔다. 왁 하는 웃음소리가 골목을 한가득 울렸다.
엔시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나도 덩달아 충격을 받았다.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삐이.(뭐 하는 짓이야!)”
까딱 잘못했으면 엔시의 몸무게에 깔려 세상을 하직했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나는 무사했다. 경범죄 꿈나무 소년의 손이 땅에 부딪히기 직전 내가 들어 있는 재킷 호주머니 쪽을 감쌌다. 의연히 일어나 툭툭 터는 손을 보니 그쪽 손등이 대차게 까져 있었다.
…….
“캬. 높으신 분이 찾는 물건은 역시 다르네. 금실에, 자수에. 응?”
“그러게나 말이다. 에라이, 썅!”
그들은 소년이 넘어지면서 놓친 가방을 주워 들었다.
“야, 야, 만지지 마. 때 탔다가 돈 못 받을라.”
“씨, 내 손이 무슨 구정물이냐?”
저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말끝마다 욕이었지만 입 끝이 귀에 걸려 있었다. 검은 머리를 가운데만 남기고 밀어 버린 남자가 씩 웃으며 다가와 엔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수고했다, 인마. 좀 웃어 봐라. 어? 이제 돈 벌게 됐잖냐. 할머니도 한동안 편히 모시고. 그치?”
“아하하. 네, 잘됐네요, 유진 형.”
“새끼. 꼭 이렇게 한 번 기를 눌러 놔야 사근사근해져요.”
유진이라는 모히칸 컷 불량배는 엔시의 머리를 아프게 쥐어박았다.
“유진, 얀마! 이리 와. 한탕 하기 전에 한 판 땡겨 놔야지.”
“좋지!”
그리고 삼총사 불량배는 건들거리며 사라져 갔다. 엔시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병신 새끼들.”
나는 어디고, 여기는 누구냐…….
불량배들과 헤어지고 온 곳은 수도 변두리의 허름한 판잣집이었다. 얼기설기 이은 지붕과 벽은 반쯤은 뒤쪽의 성벽에 의지하는 형국이었다.
대제국의 수도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뭐, 나는 애당초 수도에 대해 잘 모르긴 했었지.
혼우드의 시내는 훨씬 작았지만 그 안에서 이렇게 극과 극의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원래 도시 문제라고 해서, 인구가 밀집될수록 쓰레기나 범죄나 양극화가 심해지긴 했다. 번화가의 어쩔 수 없는 이면이랄까. 하지만 로망을 빚어내는 로판 소설 안에서까지 이런 장면을 보고 나니 새삼 충격이었다.
“여기가 집이야. 마음에 안 들겠지만 조금만 참아. 곧 더 좋은 곳으로 떠날 거니까.”
풀도 돌도 깔리지 않은 진흙땅은 비가 내린 지 한참은 지났는데도 축축해 보였다. 낡고 허술해 보이는 입구 앞엔 간단하게 꾸린 채소밭이 있었고, 닭 한 마리가 돌아다녔다.
“아까 그 험악한 놈들은 신경 쓰지 마. 제 버릇 못 버리고 도박하러 갔으니까. 뭐, 내일이면 볼 일 없을 거고…….”
엔시라는 이름의 소년은 내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주워섬겼다. 그래도 이렇게 병아리를 상대로 말을 붙이는 걸 보니 꽤 아이처럼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차 안에서 봤던 반짝이는 눈은 착각인 양 단단히 찌든 기색이었는데.
“배고프지? 먹을거리를 가져다줄게.”
소매치기 소년은 점심을 가져다주겠다며 어두운 판잣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마당에 닭과 단둘이 남겨지자 그제야 머리를 좀 굴려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먼저, 거울 덮개를 바꿔치고 나를 납치한 소년 엔시는 아까 전의 불량배들과 한패다.
한패는 한패인데, 벌써부터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 소년은 삼총사를 속여 넘겼고, 불량 삼총사는 걸핏하면 소년을 때렸다.
아까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소년의 할머니까지 약점으로 잡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 성깔 하는 엔시 소년이 붙잡혀 있는 거다.
그리고, 이들을 사주한 사람은 높은 확률로 클라우디아 황비. 달리 누가 있겠는가. 황비 본인이 물건을 빼돌릴 수는 없으니 거리의 불량배들에게 하청을 넣은 거다.
“뺙뺙!(아악! 그 사람 진짜!!)”
이게 제국민들이 한마음으로 공경하는 황비의 실체였다.
그걸 바꿔쳐서 대체 어쩔 생각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동기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너무 걱정은 마라. 충분한 대비는 해 두었으니.”
클레멘츠는 잘 대비했다며 날 안심시켰다. 원작에서도 아티팩트와 관련된 일로 그가 곤경에 처하는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황비에게 덮개를 가로채이게 될 텐데. 진짜는 엔시의 옷 속에 숨겨져 있으니까.
엔시는…… 엉뚱한 태피스트리, 그것도 장물을 의뢰 물품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불량배들 대신 황비와 거래를 할 생각인 것 같고.
클레멘츠는 과연 그 전에 엔시와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순식간에 떨어져 버렸는데.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못 한다면?
황비는 바꿔친 덮개를 이용해 뭔가 수작을 부릴 테고, 클레멘츠는 함정에 빠져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황태자의 자격으로 부귀를 누리며 살아갈 테지만, 나는…….
허망해진 내 눈이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을 향했다. 닭……. 이 닭은 알을 얻기 위해 키우는 걸까? 아니면 잡아먹으려고? 아마 차후 내 운명도 이 닭과 비슷할 텐데.
뭐라도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이쪽 좀 봐줘요, 선배님……. 아, 눈 마주쳤다.
“꼬꼬댁.”
하지만 닭은 잠깐 날 쳐다보다가 붉은 눈을 무심하니 돌려 바닥을 쪼아 댈 뿐이었다. 심지어 방금 뭐라고? 꼬꼬댁?
“삑 삐약삐.(저기요, 어르신.)”
“꼬꼬댁,”
“삐이약.(제 말이 들리면 대답 좀…….)”
“꼭꼬.”
아…….
그렇지. 닭이랑 말이 통할 리 없지. 원래…….
젠장. 아무도 내가 인간인 줄 모르는 상태로 병아리로 살다가 죽기? 내 빙의 인생이 레전드다.
아니야. 뭐하면 엔시와 교신을 시도해 보자. 나를 황태자에게 데려다 달라고 의사 표현을 하는 거지. 엔시가 글을 안다면 편할 텐데. 알고 있으려나? 저 불량배들이 학교를 보내 줬을 것 같진 않은데…….
“많이 기다렸지?”
마침 나왔다. 엔시는 내 앞의 땅바닥에 밀알 한 줌을 뿌려 주었다.
“어서 먹어, 배고팠을 텐데.”
으음…… 물론 배고프다. 점심때가 지났으니까.
하지만 얘야, 나는……. 기껏 갖다줬는데 미안하구나. 사실 난 앞다퉈 돈과 정성을 바쳐 날 떠받드는 귀족들 사이에서 살다 왔단다. 갑자기 땅에 떨어진 걸 먹기가…… 좀 그렇다고나 할까.
내가 이렇게 버릇 나쁜 병아리라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자괴감을 떨쳐 냈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