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아니, 저 수상쩍기 짝이 없는 건 뭐람! 메이드들과 집사장은 커다란 종이봉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번에는 미안했어. ……너에게 주려고 직접 스콘을 구웠단다.”
병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밀 드 베일리스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한 메이드가 황급히 외쳐 댔다. 황갈색 금발에 유약한 인상의 카렌이었다.
“오, 오필리어 님은! 아무리 배가 고프셔도 아무 데서나 음식을 드시지 않는답니다!”
“…….”
바스락 소리를 내며 종이봉투 입구에 머리를 밀어 넣던 오필리어는 가만히 뒷걸음질 쳤다.
“그, 그래요! 지정된 마호가니 식탁에서 게히렌산 능직물 냅킨을 깔고, 반드시 전용 은 식기를 사용하신답니다!”
이번엔 유렌이었다.
이것은 임기응변이었다.
베일리스 영애가 만나려는 상대가 황태자 전하가 아닌 오필리어 님이라면, 오필리어 님이 저렇게 긍정적으로 나오시는 이상 만남 자체를 막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후작 영애가 호의로 구워 왔다며 간식거릴 내놓는다면, 그들의 신분으론 ‘개수작 부리지 마라! 독이 들었을 거다!’라고 할 수 없었다. 암만 그녀의 전적이 화려하다 해도, 감히 문제 삼을 수 없었다.
그러니 유일한 방책은 그녀가 외부인임을 들어 황태자궁의 시스템을 들먹이는 거였다.
“그럼요, 그럼요! 아울러 외부 음식을 들일 땐 반드시 특수한 검사를 거친답니다.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카밀 드 베일리스는 오만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하지만 병아리는 생각했다.
‘아니, 언제 그런 절차가 있었는데요……?’
* * *
“후우…….”
황태자궁의 어느 아늑한 방에 딸린 주방. 각각 갈색 포니테일과 연갈색 긴 머리를 한 메이드들은 사뭇 비장한 눈으로 조리대 앞에 나란히 섰다.
머리를 높게 묶은 유렌은 긴 집게를 가지고 봉투에 담긴 덩어리를 집어 올렸다.
“형태는 문제없어요.”
베일리스 영애가 직접 구웠다 주장하며 가져온 수상한 물체. 일단 겉보기엔 노르스름하고 먹음직스러웠다.
“냄새도 별 이상은 없군요. ……병아리 콩 가루를 넣은 것 같아요.”
병아리 콩을 곱게 갈아서 밀가루와 함께 치댄 다음 뜨거운 오븐에 굽다니! 그걸 병아리에게 먹으라고 주다니!
“의미심장하군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렌.”
스콘(추정)을 도마에 올려놓은 뒤 반으로 갈랐다. 안쪽을 봐도 별 문제는 없었기에 오히려 더 수상했다.
그들은 미용과 공예에 능할 뿐, 음식을 검사하는 법은 아는 바가 없었다. 심지어 요리도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카렌.”
“네.”
“우리는 어떻게든 오필리어 님을 지켜야 해요. 그렇죠?”
“당연하죠.”
‘오필리어 님’을 만나기 전, 황궁 생활은 하루하루 숨 막히게 돌아갔다.
각종 이해관계와 권력 관계가 뒤엉킨 황궁에선 각 궁의 사용인들끼리도 자존심 싸움과 알력 다툼이 있었다.
황태자궁 내부에서도 마음 놓고 일하기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누구보다 완벽하기에 가장 위태로우신 분이었다. 그런 이를 절박한 마음으로 보좌하는 집사장 글로리나 부인의 기준에 맞추려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도 부족했다.
제국의 최고급 인력으로서 일한다는 자부심만이 간신히 그들을 지탱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너희를 부른 건 특수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다.”
평상시엔 눈웃음 속에 감춰 두는 글로리나 부인의 안광은 마치 칼날 같았다.
“모셔야 할 동물…… 그리고 사람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너희는 동물과 놀아 주고 그 털을 빗겨 주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동시에 어느 영애의 시중을 들어 주어야 한다.”
황궁은 어떤 비밀도 없었지만, 역으로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일이 발설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욘 없겠지.”
황궁의 사용인은 감히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유렌과 카렌은 복종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처음 만난 오필리어 님은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귀여웠다.
귀부인들의 과시욕은 상상을 초월했다. 독보적인 처지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면, 이미 시중을 들고 있는 자들에게 그만큼 더 떠받들어 주기를 요구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오필리어 님은 그러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쯤 되는 분의 총애를 받으면 기고만장해질 만도 하건만.
전하와 피크닉을 다녀온 날 밤, 오필리어 님은 처음으로 원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인간이 되시고 나서도 왠지 그들의 눈에는 병아리일 때와 닮은 점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모처럼 인간 모습을 되찾고 나서도 위압적인 태도나 명령은 전혀 없었다. 그저 모나한 백작 영애께 편지를 부쳐 달라, 그리고 신간 로맨스 소설을 구해 달라는 명령이 다였다.
평상시엔 그 말도 안 되게 귀여운 병아리의 몸으로 늘 쾌활하게 지내니, 삭막하던 황궁 생활의 활력소였다. 게다가 그들이 만들어 바치는 장신구까지 언제나 자랑스럽게 걸고 다니시지 않나.
처음엔 미심쩍음과 공포로, 그다음엔 숨 막힐 듯한 귀여움으로 다가온 오필리어 님은 어느새 그들에게 최고의 상전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장차 황태자궁의 안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거야.’
카밀 드 베일리스 후작 영애가 어떤 이던가. 그 집착과 잔혹함. 그녀가 곧 오필리어 님을 해치려 들리란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오늘,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다.
누굴 더 섬기고 싶은가. 표독스럽고 무서운 사교계의 군주? 사랑스러운 오필리어 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먹어 보죠.”
“제가 할게요.”
비장하게 말한 유렌이 반으로 잘린 스콘을 베어 물었다. 묵직한 긴장감이 흐르고 드디어 유렌이 입을 열었다.
“욱.”
“왜, 왜 그래요? 독인가요?”
“맛없어요.”
“…….”
분명 겉보기엔 멀쩡한데 어떻게 맛이 이럴 수가. 유렌이 지금껏 먹어 본 스콘 중에 최악이었다.
“그리고……?”
“그냥…… 맛이 없어요.”
그게 다였다. 덩달아 먹어 본 카렌도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이 따위 음식을 오필리어 님 드시라고 가져갈 수 있겠어?
하지만 아무리 맛이 없어도 후작 영애가 직접 만들어 갖고 온 음식이었다. 메이드 주제에 함부로 배제하고 다른 다과로 대체할 순 없었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니고 ‘맛없어서’라는 이유라면 목이 날아가고도 남는다.
‘죄송해요, 오필리어 님!’
어쩔 수 없이 양도 더럽게 많은 스콘을 데우려고 하는데, 유렌이 한 손을 들었다.
“잠깐, 혹시…….”
“예?”
“병아리에게만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요?”
“아! 그렇군요. 치사량이란 체구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사람이 먹었을 땐 그냥 좀 맛없는 스콘이지만, 오필리어 님처럼 작고 여리고 보송거리는 새가 먹으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만한 독이 들었는지도.
과연 카밀 드 베일리스다운 악랄한 발상이었다. 두 메이드는 치를 떨며 스콘을 노려보았다.
“어쩌죠?”
카렌의 질문에 유렌은 결심을 굳힌 듯 벽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마탑의 푸른 봉인이 찍힌 스크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필리어에 대한 시중은 뭐든지 나와 같은 수준으로 맞춰라’라는 황태자의 지엄한 명으로, 음식의 성분을 정밀 분석하는 이 일회용 스크롤 역시 하나 지급되었다.
다만, 마탑에서 생산해 낸 다른 스크롤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터무니없는 고가였다. 독살 방지를 위해 구비했다 하나 평소에 사용은 꿈도 못 꾸고, 사전에 집사장에게 보고가 필요했다.
“유렌, 설마 그걸 쓰려고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걸 마음대로 써서 잘리는 편이, 오필리어 님을 지키지 못해 잘리느니보단 나으니까.”
슬프지만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카렌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떨리는 손에 의해 봉인이 떨어지고, 스크롤이 찢어졌다.
* * *
오필리어의 방.
주인이 생긴 뒤로 이곳에 외부인이 들어서기는 처음이었다.
볕이 잘 드는 방이었다. 커다란 유리창이 여러 개였고 모두 깨끗이 닦여 있었다.
방의 주인과 어울리게도 인테리어는 금색과 흰색이었다. 데이지 꽃이 수놓인 망사 캐노피가 열린 창으로 들어온 바람에 휘날렸다.
원래 용도로는 처음 사용되는 마호가니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주인과 객이 마주앉았다. 캐모마일 차 향기가 퍼졌다.
‘마음에 안 들어.’
방 구석구석을 훑어본 카밀의 총평이었다.
물론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은 최고급품이었다. 언뜻 투박해 보이는 물건들도 그랬다.
이를테면, 저 병아리가 깔고 앉은 방석. 아무 무늬도 없고 단순한 자수가 가장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지만, 바다 건너 콜케니스의 장인이 전통 방식대로 한정 생산하는 명품이었다.
한때 수도 사교계에선 콜케니스 방석을 응접실에 몇 개나 두느냐로 주인의 품격과 감각을 가늠하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카밀의 취향은 소박해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녀는 척 봐도 고급인 티가 나는 물건에 관심이 있었다. 특별히 우아하고 화려하거나, 혹은 유행의 첨단을 달리거나.
그래야 보는 이들에게 주인의 권세와 안목을 명명백백히 각인시켜 줄 게 아닌가.
방 꼴이 이게 뭔가. 꼭, 기껏 돈을 쓰고 애를 써서 꾸몄다는 걸 비밀로 하려는 것처럼.
황태자는 이 병아리를 지극히 아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당연히 방에서부터 온갖 사치와 위용을 부려 놓을 일이지.
‘나라면 이러지 않을 건데. 이 아이가 머무는 곳이라면 세련미의 극치를 느낄 수 있게 만들 거야. 아, 아니지. 오필리어라면 좀 더 귀여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던 카밀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오필리어가 있었다.
그토록 고대해 왔던 만남이었다.
삼 년간의 짝사랑에 죽음이 선고되었던 그다음 날, 카밀은 퀭한 눈으로 일어났다.
‘자꾸만 약해지면 안 돼. 그 새를 없애야지.’
한순간의 온정이나 충동으로 단념할 순 없었다. 그동안 악행도 서슴지 않으며 쌓아 온 집착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갖춰 입고 외출했다. 조류에 대한 책을 좀 사 올 생각이었다.
그동안 그녀가 상대해 온 적들은 모두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종(種)을 상대하는 만큼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신체 구조, 행동 습성, 호불호.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