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가장 가까운 호텔로 체크인했다. 새로 단장을 마치고 최근에 오픈했다는 특급 호텔이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게를 나오면서부터 술기운이 올라와 어질어질했고, 서준에게 기대 있는 상태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혜수가 성급하게 그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불을 밝히지도 못한 채 키스했다.
“아…….”
고개를 숙여 입을 열어 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혀끝을 물었다. 진한 술 냄새에 제정신이었던 서준마저도 취하는 기분이었다.
“이혜수, 잠깐만.”
“싫어요.”
취한 혜수가 정신없이 그의 입술을 먹어 치웠다. 술만 마시면 작은 몸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궁금했다. 마구 끌어당기는 바람에 큰 몸이 휘청거렸다.
서준의 외투를 거칠게 벗겨 바닥에 떨어뜨리고, 침대까지 끌고 가 눕혔다. 당장 뭐라도 해 버릴 것처럼 움직이던 혜수가 올라탄 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가슴팍에 쓰러지듯 얼굴을 묻었다.
“어지러워?”
“아니, 그냥…… 안고 싶어서.”
뒤통수를 부드럽게 매만지던 그가 혜수의 등을 안고, 일어나 앉았다.
“그럼 제대로 안아 줘.”
촘촘하게 메워지는 체온에 안도감이 일었다. 탄탄하고, 커다란 몸체에 제 냄새를 묻히듯 꼼지락거렸다.
다시 닿은 도톰한 입술을 서준이 간지럽히듯 굴다가 세게 물었다. 놀라 움찔거리는 사이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두툼한 살덩이를 감아올렸다. 몇 번이고 부딪치고, 미끄러지며 서로의 숨을 앗아갔다.
척척 들러붙어 액체가 늘어지는 소리가 났다.
“실수, 하라고 했어. 네가.”
혜수가 달뜬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취해서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입고 있던 니트와 슬랙스, 검은색 속옷들을 차례차례 벗겨 냈다.
서준은 혜수의 몸을 눈으로 안았다.
한차례 흥분을 참고, 바닥에 떨어진 외투 주머니에서 준비한 걸 꺼냈다. 붉은색의 정사각형 케이스, 테두리엔 금박으로 잔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게 뭔지 혜수는 대번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손.”
습관처럼 올라오려던 손이 부담감에 허공에서 멈췄다. 서준은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로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손톱 끝에 닿은 은색 반지가 반짝였다.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심플한 모양이었다. 사이즈가 너무 작은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쏙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게…… 뭐예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었어. 그냥 지나간 게 걸려서 좀 늦게 준비한 거야.”
다 지나간 크리스마스 선물에 아연했지만, 섹스 전의 반지는 로맨틱하기보단 색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난 준비한 거 없는데.”
서준이 혜수의 몸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거의 다 풀려서 중간쯤에 걸려 있던 머리 끈을 잡아당겼다. 좁고 가녀린 어깨 위로 진갈색 머리카락이 풀려 부드럽게 내려왔다.
어쩐지 옷을 벗길 때보다 그 행위에 더욱 열이 일었다.
손바닥, 손등, 약지에 차례차례 입을 맞췄다.
“난 이거면 충분한데.”
나신으로 제가 해 준 반지만 끼고 있는 혜수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치사하게 또 혼자 준비해서 멋있는 거 다 해 먹지.”
“그래서 싫어?”
확신받고 싶어 하는 유치한 물음에 고개를 젓고, 그의 다리 위에 앉아 목을 끌어안았다.
“소름 끼치고, 좋아요.”
침대 위로 눕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팔꿈치로 푹 들어가는 매트리스를 딛고 일어났다. 서준은 뭔가 잘못된 거냐는 표정을 했지만, 혜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서서히 뒤로 눕혔다.
행복하고 느린 시간이 둘의 위로 흘러갔다. 바람을 잃은 파도처럼. 불안과 걱정은 그림자처럼 뒤로한 채 원하는 만큼 서로를 안았다.
흥분에 젖어 탁해진 눈동자, 땀이 흘러내리는 근사한 얼굴에서 쓸쓸한 겨울 냄새가 났다. 반지 낀 손으로 매만지며 혜수가 먼저 고백했다.
“좋아……해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조금 울었던 것 같다.
***
일정하게 이어지던 섹스는 혜수가 일을 시작하고, 서준의 일이 늘어나며 그 빈도가 확실히 줄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세컨드’에서 ‘연인’이 된 이후 하는 횟수가 줄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할 때마다 그 정도가 심해졌다.
와인의 숙취와 더불어 밤새 서준이 괴롭힌 탓에 한숨도 못 잤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서, 서준……, 서준 씨……, 좀! 강서준!!”
품에 혜수를 안고 깊이 잠들어 있던 그가 번쩍 눈을 떴다. 비몽사몽 중에 제 잘못은 모르고,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응, 왜 그래?”
“비…… 아윽! 비켜요!”
동이 틀 때까지 진득하게 붙어 있던 참이었다.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휘청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다시 침대에 드러누운 서준은 남아 있는 혜수의 냄새를 맡으며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자기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아 헛웃음만 나왔다.
일어난 시간을 확인한 그가 프런트로 연락해 레이트 체크아웃을 요청했다.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를 확인하고, 욕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갈게.”
아직도 성이 났는지 대답은 없었다. 들어오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었으니, 문을 여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다 젖어서 뒤로 넘긴 머리, 젖은 몸으로 노려보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세면대에서 양치하며 핑계를 만들고, 거울로 혜수가 씻는 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그만 쳐다봐요.”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좀 추워서 그래. 나도 따뜻한 물로 씻고 싶어.”
“그럼 와서 씻든가.”
입을 빠르게 헹군 서준이 음흉한 목적을 감추고 다가갔지만, 혜수는 말끔하게 씻은 몸으로 두꺼운 팔 밑을 쏙 빠져나갔다.
함께 씻는 상상을 하며 들어왔던 그가 한숨을 쉬며 온수를 냉수로 바꿨다.
능글맞은 눈으로 다가오는 그를 버리고 나온 혜수가 긴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머리를 말렸다. 최근에 미용실을 간 게 언제였는지. 말리는 데 한참 걸리는 머리를 자를까 고민하는데 아래만 가린 그가 훌쩍 다가왔다. 가까워진 몸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깜짝 놀란 혜수가 그의 팔뚝 근처로 손을 뻗었다.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찬물로 씻었어요?”
“아니, 옆구리가 시려서 그래.”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렇게 걱정되면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 주지. 어젯밤처럼 좋아한다고 입이라도 맞춰 주면서 같이 씻으면 좀 좋아?”
“양심 좀 챙겨 봐요. 어제 그렇게 해 놓고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해요? 온몸이 아파 죽겠는데.”
“아파? 보여 줘.”
“손만 대 봐 진짜!”
두르고 있는 수건 끝에 손을 대자 혜수가 드라이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빠르고, 날카로운 반응에 서준이 두 손을 들어 올려 항복 의사를 표했다.
“안 댈게, 안 볼게. 근데 정 아프면 병원이라도…….”
“그 정도는 아녜요.”
“흐음. 배는 안 고파? 체크아웃 늦췄으니까 룸서비스라도 시킬까.”
“됐으니까, 고개나 숙여 봐요.”
새 장난감을 의심하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보다가도 순순히 고개를 숙여 줬다.
혜수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한숨을 뱉어 내며 드라이어의 전원을 켰다. 숱이 많고, 부드러운 머리를 만지며 말려 주었다. 머리카락조차도 차가웠다.
수건으로 몇 번 털다 보면 금방 마를 테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 받아 보는 종류의 애정에 마음이 동한 그가 몸을 일으키고 안으려 하자 혜수가 머리를 잡아당겼다.
“움직이기만 해 봐요. 머리카락 다 뽑아 버릴 거야.”
드라이어 소음이 섞인 협박에 웃어 버렸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마구 뻗는 손길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금방 말랐다. 거울로 확인한 결과물도 얌전하니 나쁘진 않았다.
“고마워.”
“얼른 옷 입어요. 재재 혼자 너무 오래 뒀어요.”
취하고, 정신이 팔려서 고양이를 잊었다. 혼자 두고 나온 동물에 대해 죄책감이 생긴다는 게 신기했다. 그건 서준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선수 쳤다.
“어제 필요한 것도 가져올 겸 현진이보고 가서 자라고 했어. 아침 먹고 출발해도 괜찮아. 여기 빵, 엄청 맛있다고 들었어.”
“정말요?”
“잘했지?”
잠깐 방심한 사이 성큼성큼 다가와 아직도 수건만 걸치고 있는 몸을 끌어안았다. 가까워지려는 입술을 손으로 간신히 방어했다.
“하지 말라고 했죠?”
단호하게 말하다가도 제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아프고, 힘들었으면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앞으로 내가 잠들면 하지 말아요.”
“음……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한데.”
“앞으로 아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가 보네.”
생긋 웃으며 하는 무서운 말에 한껏 기가 죽더니 널따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앞머리도 다 내려서는 평소보다 훨씬 순하고 어린 모습이었다.
“플라토닉은 내 취향 아니야.”
“요즘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대신 횟수가 덜하잖아. 그리고 어젠 네가 너무 적극적으로……. 알았어. 과하지 않도록 노력은 해 볼게.”
동공의 경계선이 진해진 눈동자가 한 바퀴 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