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형! 형!! 잠까안…… 잠깐만! 놔, 강서준! 일단 놓고 말해!”
도축되는 짐승처럼 끌려가던 그가 서준을 불러 세웠다. 서준이 잡은 머리채를 뜯어내며 바닥에 집어 던져 버렸다.
“으악!”
우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굴렀다. 서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씨발……. 미쳤어?! 너 돌았어? 정신 나갔냐?!”
담배를 빨아들이며 다가온 그가 우주의 앞에 주저앉아 연기를 뿜어냈다.
“콜록, 크흑!! 야, 미친!!”
우주가 눈을 찡그리며 몸을 뒤로 뺐지만, 그 틈에 손을 뻗은 서준이 그의 하얀 목을 쥐었다. 얄팍한 피부와 근육, 작은 목울대 따위가 한 손에 들어와 움찔거렸다. 격하고, 역겨운 박동이 손안에서 느껴졌다. 서준이 한쪽 팔로 붙잡아 쥐는 것만으로 온몸이 흔들렸다. 금방 숨이 막혀 왔다.
“크흑, 놔!! 이거 놓으라고!! 안 놔?!”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인상을 쓰던 우주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서준이 놓아주자 주저앉은 채로 물러나며 거리를 띄웠다.
“미안해. 많이 아팠어?”
서준은 비웃으며 아침에 정우주가 혜수에게 내뱉었던 말을 고대로 돌려줬다.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두려움과 공포에 바닥에 앉아 있는 정우주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성질 고약하고, 냉정한 사람이긴 해도 내 편이라 믿었던 남자가 제 목을 짓밟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때의 친절이 절절한 배신감으로 변해 끓어올랐다.
“그러니까 모르는 척 봐줄 때 적당히 했어야지. 죄책감에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여자를 한 번 쯤은 동정했어야지. 이용해 먹는 것도 모자라서…… 손을 올려?”
정우주가 핏대를 세우며 서준의 멱살을 움켜쥐고 발악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유로운 얼굴로 담배를 빨아들일 뿐이었다.
우주는 그 태도에 현실을 자각했다. 약점 잡힌 건 자신이었고, 힘이나 무엇으로도 눈앞의 이 남자를 이겨 낼 수 없었다.
“형! 형, 내가…… 잘못했어. 실수였어. 두 번 다시 안 그럴게.”
“그래, 너라면 실수할 수 있지.”
웃으며 일어난 그가 우주의 발치에 담배를 던지고 비벼 껐다. 누렇게 마른 잔디가 빨갛게 타다가 종국엔 까맣게 자국이 남았다.
“근데 이혜수 남자 친구가 그럼 안 되지.”
“어? 나랑 이혜수 그런 거 아니야!! 그, 혜수가…… 혜수가 힘들어서 도와주려고 그런 거야. 나 쟤 안 좋아해!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
특히 강서준에게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중독성 앞에서 그런 것들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정우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이성 잃은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며 책임감 없는 말을 내뱉었다.
“……저 여자는 병신 같은 널 감싸 주느라 끝까지 제 잘못이라고 하던데, 이 와중에 넌 전부 다 이혜수 탓이라고 하네.”
“정말이야! 혜수 도와주려고, 그래서 그런 거야. 왜? 혜수가 아니래? 그런 거 아니래?! 내가 다 설명할게! 혜수 불러 봐. 이혜……, 윽!”
“긴말 필요 없어. 인생 종 치기 싫으면, 이혜수한테 티 내지 말고 오늘 안으로 조용히 나가. 앞으로 저 여자랑 엮이지도 말고, 감히 엮을 생각도 하지 마.”
우주는 그제야 강서준이 혜수를 지켜보던 눈빛과 관심의 온도가 다른 것임을 깨달았다. 측은함이나 호기심 혹은 그것보다 열렬한 원망.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
“하, 미쳤어? 형……, 강서준. 네가 아무리 발악해도 이혜수는 안 돼. 넌 쟤한테…… 독이잖아.”
“그러는 넌 뭐 대단히 좋은 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저 여자한테 물어볼까?”
이미 전적이 있었다.
“하지 마!”
말도 안 되는 이기적인 쾌락이 종국엔 이런 파국을 맞았다. 당연했고, 예상한 일이었음에도 끝내 이 순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필 제 허무한 실수로 빼앗겼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와중에도 목이 탔다.
“내가 잘못 했다니까! 어? 근데……, 근데 있잖아. 내 방에 있던 거, 다 버렸어?”
쌉싸름하고 달콤한 액체를 목구멍에 붓고 싶은 욕구에 정우주는 결국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친 새끼.”
혐오를 담은 서준의 일갈에도 히히 소리 내어 웃던 우주의 눈동자가 점점 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추위에 붉게 상기된 얼굴은 또 만취한 것처럼 변했다. 충혈된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고, 콧물과 침이 흘렀다. 어지러움에 잔디를 뽑아 버릴 것처럼 꽉 붙잡았다.
‘우리가 아무리 숨겨도 그 사람은 결국 알아차릴 거고, 들킬 거야. 그것도 아주 추하게.’
혜수의 말이 떠올랐다.
술에 취하면 늘 꿈을 꿨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악몽이었고 단 한 번은 행복한 환상이었다. 그 한 번 너무 달아서 끊을 수 없었다. 지금 제 눈앞에 있는 현실은 그 아홉 번 중 하나였다.
“안 돼, 안 돼, 형……. 안 돼, 제발, 제발 살려 줘. 아니야! 아니야!! 흐악, 흑, 으악……!!”
결국 정우주가 환각을 보며 발작을 일으켰지만, 서준은 정원 의자에 앉아 새 담배를 물 뿐이었다. 완벽한 방관인의 모습이었다.
헛기침하고 컥컥거리며 구역질을 했지만 침밖에 흐르지 않았다. 눈이 점점 뒤집히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서 굴렀다. 그때, 정원 밖으로 나온 혜수가 달려왔다.
“정우주!!”
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정우주의 상태를 본 혜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생수를 들고 나왔다. 입에 꽂듯이 억지로 먹이고, 우주가 어느 정도 삼키자 다시 입을 벌려 그 안으로 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가끔 있는 일이라 혜수의 조치는 익숙했다. 피가 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쿠헤엑……!!”
방금 마신 물을 토해 낸 정우주가 맨바닥에 얼굴을 묻고 괴로운 듯 숨을 내쉬었다. 혜수가 그의 고개를 안고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서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쾌한 얼굴로 담배만 태웠다.
“으흑, 흐으억, 허억…….”
“정우주, 정신 차려. 괜찮아?!”
“나 좀, 나 좀 제발……. 잘못했어.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혜수 너도 알잖아. 은재 그렇게 된 다음에 엄마까지 나한테……!!”
정신을 차린 우주가 혜수의 품에서 말하자 가만히 있던 서준이 참지 못하고 움직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는 정우주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정우주가 날아가듯 밀려났다.
“서준 씨! 하지 말아요! 제발, 서준 씨!”
깜짝 놀란 혜수가 달려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서준은 다시 우주에게 다가가 턱을 쥐어 들었다. 발이 살짝 들리기까지 했다. 엄청난 악력이었다. 우주의 입을 막고, 코를 막아 호흡을 제어했다.
충혈된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미간까지 닿은 손가락은 머리를 깨뜨릴 것처럼 세게 눌렀다. 서늘한 눈동자엔 죽여 버리겠다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강서준 씨!! 우주가, 우주가 좀 아파요! 거짓말한 건 사정이…….”
혜수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서준은 우주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괴로운 소리를 내며 구르는 정우주에게 다시 다가가려 했지만, 붙잡혔다.
“네 눈엔 저게 그저 아픈 걸로 보여?”
우주는 입김이 부유하는 허공을 보고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허망함과 충격에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준의 바짓가랑이만 붙잡았다.
‘극단적인 건 없어요. 다 현실이죠.’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극단적인 일이 전부 다 현실이었다.
***
“깼어?”
샛노란 조명은 이 집에 와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우주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시야가 맑아지고 나서야 거실의 샹들리에 빛이라는 걸 알았다. 켜면 저렇게 예쁘구나. 고개를 슬며시 들자 일그러진 혜수의 얼굴과 목소리가 들렸다.
강서준이 늘 앉던 자리에 제가 누워 있었고, 혜수는 우주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떤 슬픈 예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혀, 형은?”
“아직 밖에 있어.”
“나 이제…… 끝인가?”
“저 사람 성격에 널 끝내고 싶었다면 저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
혜수는 서준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강서준이 혜수에게 보여 준 관심이 일방적이지 않음을, 정우주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피식 웃으며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네 말이 맞네.”
“그래도 너랑 난 진짜 끝이겠다.”
우주의 입술 사이가 벌어지고, 떨렸다. 눈물 한 방울이 얼굴 아래로 흘러내렸다. 입술을 악물고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았다.
“미처 말 못 했는데 솔이 씨가 찾아왔었어. 난 그 사람이 네가 사귀던 사람인 것도 몰랐는데, 기억하고 보니까 사진 속 그 남자더라. 많이 힘들어 보였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연락해 줘.”
“……혜수야.”
“네가 필요할 때까진 여자 친구로 조용히 지낼게. 윤 회장님한텐 알아서 잘 설명하고, 아프지 말고, 내년이면 서른이니까 제발 이상한 사고도 치지 말고 지내.”
“나 그렇게 심각한 상황 아니야. 모델 동기 박희진, 알지? 걔도 나랑 비슷해. 약 먹고 나면 일상생활…….”
“더는 싫어.”
“내가, 내가 죽는다고 그래도? 알잖아. 나 너 없으면 안 돼. 어?”
이 와중에도 여전히 자기만 생각하는 정우주의 이기적인 호소에도 혜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프고, 힘들었던 거 알아. 할 수 있으면 이해하고 받아 주고 싶었어. 너도 그랬으니까. 은재랑 가족들이 그렇게 된 다음에…… 내가 제일 힘들 때, 재활 치료 할 때도 온갖 성질 내면서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던 건 너니까.”
혜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 갔다.
“너한테도 하나뿐인 친구를 내가 뺏어 간 것 같아서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어. 근데 어떻게 은재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술을 마셔?!”
“잠을 못 자서…….”
“그만! 듣기 싫어. 이제 그만하자. 제발, 제발…… 제대로 좀 살자.”
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우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손을 붙잡았다. 처음이었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붙어 있었으면서 최초로 닿은 순간이었다.
울음으로 엉망이 된 예쁘장한 얼굴을 혜수가 끌어안았다.
우주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