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혜수는 서준의 윗입술을 꾹 깨물더니, 전체를 물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이 여자의 키스는 서툰 것 같은데 분명 사람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묘미가 있다. 서준이 가만히 있자 초조한지 입술을 혀로 핥아 올렸다.
인내하던 그가 작은 얼굴의 턱을 잡아 입을 열고, 혀를 집어넣었다.
“으응!”
두툼한 살덩이가 서로의 치아와 점막에 부딪치며 질척거렸고, 술기운을 나눠 마셨다.
다른 사람처럼 굴더니 깊은 키스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면 여전했다. 취한다고 능숙해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애무하듯 조금씩 당기며 고개를 틀었다.
“흐음, 응으…….”
입속 깊숙이 집어넣고, 맞아서 입안에 상처가 남진 않았는지 확인하자 파르르 떨며 가슴을 밀어 냈다. 부은 입술이 아프다는 듯 혀로 핥는 바람에 둘 사이에 길고, 가느다랗게 늘어졌던 은사가 끊어졌다.
숨을 쉬기 위해 떨어진 그 잠깐이 아쉬워 다시 입술을 붙이려는데 혜수가 고개를 저으며 밀어 냈다.
그렇다고 순순히 밀리지 않았다. 서준은 밀어 낼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 귓불을 깨물었다. 귀밑의 진한 살냄새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이성이 안녕을 외치려 했다.
“하, 정우주는?”
“하아, 아……, 방에.”
문 너머로 타인이 있다는 사실은 배덕함에 묘한 흥분까지 더해 준다는 걸, 아침의 경험으로 둘 다 알고 있었다.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흐릿한 신음을 흘리는 입술 사이를 다시 벌리며 들어왔다. 턱을 잡아 억지로 좁은 그 안을 벌리며 혀끝을 찾아 물었다.
등에 달려 있던 원피스의 지퍼를 내리고, 어깨를 잡아 반쯤 벗겨 내자 애매모호하게 걸려 있던 속옷이 보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답답해서 푸른 모양이었다.
황홀한 괴롭힘에 신음하던 혜수가 갑자기 버둥거리며 그의 팔을 밀어 냈다.
“후읏! 안…… 안 돼! 싫어, 여기서, 여기서 하기 싫어!”
“못 멈춰.”
어림없다는 얼굴로 바지 버클을 풀려고 하자 혜수가 서준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고, 고목의 매미처럼 몸을 바짝 붙여 왔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서준이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너, 이거 진짜 반칙이야.”
혜수는 혀가 풀린 목소리로 끙끙 앓아 대면서 쇄골에 코를 비볐는데 딱히 위로되거나 도움이 되진 않았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다시 번쩍 안아 올렸다.
“네 방으로 가자.”
“싫어…….”
“뭐?”
“거기도 안 된다고……. 멋대로 올라가지 마.”
아까도 작업하던 걸 보이기 싫어 거의 쫓아내다시피 했다. 아무래도 그게 그대로 있어서 걸리는 모양이었지만, 무책임함에 화가 났다. 귀여운 표정을 짓더라도 이건 쉽게 용서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종일 이러고만 있을래?”
고양이 때문에 별채에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그때, 서준의 머릿속에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가슴 아래에 걸려 있던 원피스를 위로 올려 주고 다시 안았다.
“혜수야, 꽉 잡아.”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나쁜 놈처럼 웃었지만, 아래에서 꽉 끌어안고만 있던 혜수는 보지 못했다.
복도와 현관을 지난 그는 바깥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찬 바람에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존댓말이 나왔다. 대답이 나오기 전에 달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뒷좌석으로 밀어 넣어졌다.
“잠깐만, 서준 씨…….”
반대편 차 문에 정수리가 닿았다. 잠깐, 이라는 말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욕정을 이기지 못한 급한 손길이 이어졌고, 술과 흥분에 취한 이혜수는 대담하게 그를 도발했다. 젖은 눈가가 반짝거렸다.
“어차피…… 안 할 거면서.”
“뭐?”
“콘돔 없잖아요.”
서준이 눈썹 한쪽을 근사하게 찡그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긴 팔을 옆으로 뻗어 운전석 천장의 오버헤드 콘솔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혜수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도대체 저게 어디서 저렇게 튀어나오는 걸까. 철저한 준비성이 없이 덤비는 것보다 더 변태 같았다.
그는 눈 한쪽을 찡긋거렸다.
“키웠으면 제대로 책임을 져야지.”
차가웠던 차 안에 뜨겁고, 농염한 열기가 차올랐다. 헉헉거리며 서로의 몸을 만지고 음미했다.
부족했다. 아무리 깨물고, 먹고, 만지고, 움직여도 한참 모자랐다.
“서준, 서준 씨……!”
끝내 작은 발로 제 배를 차며 정신없이 우는 소리를 내는 이혜수가 그는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서로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는 사연 따위는 모두 잊어버릴 정도였다. 좁은 차 안에서의 시간이 그는 조금도 수치스럽지 않았다.
한참 감상에 젖어 떨어질 줄 모르는 그와 달리 지친 기력이 역력했던 혜수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 어딘가에 떨어져 있던 속옷과 옷을 주워 그대로 입었다. 힘이 없어서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진득하게 들러붙는 서준을 팔꿈치로 밀어 냈다.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땐 바들바들 떨더니, 섹스할 땐 괜찮아서 다행이야.”
그의 말에 괜히 민망해져 말을 톡 쏘아붙이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한참 있다가 들어와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였지만, 누구 하나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계단을 올랐다.
물감과 붓, 흉한 터치가 몇 번이고 중첩된 채 바닥에 버려진 종이들을 못 본 채 부정하며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흔적부터 씻어 냈다.
***
갑작스레 벌어진 정사에 모든 일정을 취소한 서준은 별채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혜수와 하루 두 번 몸을 섞은 것만으로 엄청난 만족감이 온몸에 흘렀다.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앉자, 멀리서 자던 고양이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다가오더니 다리에 몸을 비벼 댔다. 한참을 우앙우앙 울면서 살벌하게 굴고,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더니 이젠 여유가 좀 생긴 모양이었다.
본채와 달리 따뜻하고 정겨운 이미지의 별채는 온전히 서준을 위해서 만들어 준 공간이었다. 억 소리가 나는 건물과 빌라를 상속받았지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지은 집이라는 이유로 머물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을 택했다. 모든 걸 정리하고 돌아가려고 했기에 여기서 머무는 일이 더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곳에…… 또 이혜수가 나타날 줄이야.
억지를 부려 정립된 꼴이 세컨드였지만, 나름 즐기고 있었다.
제 밑에서 흥분한 채로 정우주와 이딴 거 안 한다고 소리친 이혜수를 떠올리며 속절없이 또 웃고 말았다.
사나운 생각을 읽었는지 검은색 고양이가 손에서 멀어졌고, 재킷 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현진이었다.
“왜.”
― 왜냐고?! 남의 차 끌어 보겠다고 가져가 놓고 왜냐고?
오늘 뒷좌석에서 벌였던 정사를 떠올리며 턱끝을 매만졌다.
“시세보다 더 줄 테니까 나한테 팔아.”
― 하! 넌 아주 그냥 내가 우습고, 쉽지?! 나도 반년 기다려서 받은 차야. 싫어!
잠깐 생각하던 그가 적당한 먹이를 던졌다.
“시세보다 오백 더 쳐주고, 관리비랑 월세도 반년 지원해 줄게.”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차는 너무 오래된 기종이어서 새것이 필요한 참이었다. 새 차를 타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고, 모르는 이가 타던 중고차는 성격상 찝찝했다.
― 앗……. 주인님. 필요한 서류랑 절차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한껏 순해진 목소리로 현진이 간드러지게 말했다.
“근데 안에 콘돔은 왜 있냐?”
주행이 끝난 후에 우연히 누른 콘솔 박스에서 발견한 콘돔이 그렇게 쓰이리라곤 생각 못 했다.
― 뭐? 아아…… 그거! 전 여친한테 샘플로 받은 거야. 사이즈가 안 맞아서 쓸 일 없었지만.
“어쩐지. 너한텐 좀 크겠더라.”
― 그걸 네가 어떻ㄱ……. 설마. 너, 너 이 새끼. 썼냐?
“노코멘트.”
― 차, 차 안에서…… 아니지? 아니지?
서준이 휘파람만 불자 현진이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확실하게 차를 인수받으려는 시도였는데, 효과는 대단했다.
― 으아아악! 나의 제네바가…… 나의 제네바가 더럽혀졌어!!
“닥쳐.”
― 닥치게 생겼어?! 신차 검수 받고, 선팅에, 보호 필름, 보조 배터리, 유리 막 코팅까지 싹 한…… 어흐, 흑. 제네바, 마이 제네바…….
“내가 잘 써 줄게. 급하면 지하 주차장에 있는 내 차 써. 동물 병원 봉고차 옆에 세워 놨어. 차 키도 넣어 놨고.”
― 너 이 정도면 강도야. 알아?!
“그럼 지금이라도 세차해서 돌려주고.”
― 이전할 때 주인님이 직접 오셔야 편할걸요. 흐흑. 오늘 가맹점 돌고 온다더니…… 그 지랄 하느라 안 왔냐?! 누군데? 뭐야? 혜수 어쩌고 하더니 그새 여자 생겼냐?!
스캔들 이후, 현진은 서준이 완전히 혜수에 대한 건 잊었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반응했다. 이혜수를 만진 날이면 늘 이런 식이었다. 흥분을 자제하지 못했다.
― 양아치 새끼. 아무튼, 장사도 안 하는 가맹점 계약하고, 직원들 하나씩만 뽑아서 재료 수급 받는 거 본사도 수상하게 생각해! 메뉴 연습한다고 거짓말 치면서 버티는 것도 정도가 있지.
명의만 빌려준 현진은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서준의 일에 동참했다.
“오래 안 걸릴 거야. 전에 말한 거는?”
― 기본 계약서랑 원부 재료 리스트, 본사랑 주고받은 세금 계산서 모아 달라고 얘기는 했어. 근데 그거 어쩌려고?
“최근 5년 치 전부. 정리는 안 해도 좋으니까.”
― 하, 언제까지 이 짓 해야 돼? 쌀국수 사장님이야 강아지까지 키우고 계셔서 우연히 친해졌지만, 다른 사장님들한테 막 사근사근, 나긋나긋…… 이거 알려 주세요, 저거 알려 주세요. 그런 거 못한다고!
“그럼 내가 할까.”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 아…… 아니다. 그냥 내가 할게. 너무 깡패 같을 것 같아. 근데 너 진짜 뭐 하려고 이 지랄인데? 끝까지 말 안 할 거야?
“그냥, 선물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