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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접점-18화 (18/76)

[18화]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림은 못 찾았지만, 덕분에 여기 온 거 후회 안 해요.”

“마지막 인사말 같네. 그러지 말고 다음에 봤을 때 맛있는 거 사 줘요.”

“그럼 좋을 텐데…… 우리가 또 볼 수 있을까요?”

“돌아가면 나랑 안 볼 건가?”

진심인지, 떠보는 건지 모를 질문에 혜수는 식물의 줄기처럼 뻗어 있는 혈관에 무심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불을 지폈다.

“뉴욕이랑 한국이…… 꽤 머니까.”

그 한마디와 손짓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이 증발했다.

결국 욕망에 지고 있는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다정한 안광은 사라졌고, 입매는 단단하게 다물렸다. 서준은 순식간에 혜수의 귀 뒤와 턱끝을 붙잡았고, 이번엔 코가 부딪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시작이 이러면 안 되는데.”

음습한 말에 입안은 점점 메말라 갔다.

“다음이…… 없으면요?”

다소 비관적이고, 현실적인 물음이었지만 내포된 뜻은 달랐다. 눈치 빠른 서준은 ‘당장 하자’는 말로 잘 번역해서 들었다.

“취한 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녜요.”

“후회하지 말아요.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나 집착이 좀 심해요. 그쪽이 도망간다고 해도 찾아낼 거야.”

낮아진 음성에 목뒤로 소름이 돋았고, 급했다. 자연스레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시작하면 못 멈춰.”

혜수가 대답 대신 먼저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춰 왔다.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의 연한 부딪힘이었지만 확실한 도화선이었다.

둘 사이의 간격이 잠깐 멀어졌다가 서준이 혜수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기며 확 가까워졌다.

단전 아래서 올라오는 흥분과 위압감, 어쩌면 바라던 바였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순응하며 눈을 감았다.

서준은 기다렸다는 듯 입술 사이를 벌리고 곧바로 혀를 집어넣었다.

체중으로 억누르다시피 소파 구석으로 몰아넣으며 깊게, 깊게 들어가 입안을 어지럽혔다.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호흡을 맞춰 보려 했지만, 흉악하게 몰아붙이는 살덩이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코로 겨우 숨 쉬는 게 다였다.

혜수의 신음과 혀와 혀가 부딪히는 질척이는 소리가 건조한 방 안을 메웠다.

숨을 앗아가는 듯 강한 입맞춤에 괴로워 단단한 가슴을 치며 밀어 내려 해 봤지만, 곧 양 손목을 붙잡혀서 자유를 잃었다.

앓는 소리를 내던 혜수의 뺨에 눈물이 흐르자 서준은 그제야 일어섰다.

“총을 들이대도 꿈쩍 안 하더니 이럴 때 우는구나.”

무섭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억지로 웃음 짓던 여자가 흥분하면 운다는 사실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무, 흐읍!”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헐떡거리며 완전히 소파 팔걸이에 등이 닿을 정도로 누워 있었다. 잠깐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서준이 혜수의 등과 다리 뒤로 손을 넣어 안아 올렸다.

아무리 체격 차이가 있다지만 마치 아이를 안는 것처럼 가볍고 쉽게 몸이 떠 버려서 놀란 혜수가 버둥거렸다.

“잠깐만……!”

혜수를 품에 안은 채, 침대 끝에 앉았다. 부드럽게 척추를 훑더니 말을 막으려는 듯 다시 입술을 먹어 버렸다. 녹아 버릴 것처럼 말랑거리는 입술을 씹다가도 집요하게 속을 탐했다. 혀가 얽히고, 치아를 두드리며 입안 곳곳을 괴롭혔다.

긴 입맞춤을 마치고 잠깐 놓아주자 혜수가 민망한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서준이 다시 턱끝을 잡아 똑바로 고정하자, 젖은 눈망울이 또르르 굴러 그를 담았다.

야한 얼굴에 서준은 정서적인 교감을 운운했던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그 잠깐 사이 얼마나 빨아 댔는지 벌써 입술이 부어 있었다. 가여운 표정이었지만, 흥분될 뿐이었다.

그런 그와 달리 혜수는 뭔가 생각난 듯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가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보여 줄 게 있어요.”

남자의 품에서 쏙 빠져나간 혜수는 거실로 사라졌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종종걸음으로 금세 돌아왔지만 거리를 유지한 채 머뭇거렸다.

“보여 줄 게 뭔데요?”

어딘가 야릇한 기대를 품은 그의 시선과 물음에 혜수는 잠깐 꼼지락거리며 망설이더니 이내 뒤에 숨기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날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서…….”

혜수가 내민 건 제 허리를 두르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속옷이었다. 서준이 입안을 씹으며 웃음을 참았다.

“마음이 급해서…… 직원이 주는 대로 가져왔어. 미안해요.”

“아뇨. 생각도 못 했는데 챙겨 준 건 고마워요.”

“내일은 제대로 사다 줄게요. 그러니까 애 그만 태우고 이리 와요.”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자, 그는 참지 못하고 손목을 잡아당겼다. 쭈뼛거리는 혜수를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돌아가면 나 진짜 안 볼 거예요?”

달콤한 질문이 무거웠다. 애정과 설렘, 흥분…… 그런 것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원초적인 자문을 씹어 삼키며 그를 보다가 대답 없이 입을 맞췄다. 그런 것들을 지금 생각하기엔 서준이 지독히도 달콤했다.

입술을 물었다, 놓아주자 서준은 자기가 직접 사다 준 옷을 위로 벗겨 냈다. 부드러운 소재의 원피스는 바닥으로 소리도 내지 않고, 떨어졌다.

“그래요, 뭐 천천히 합시다.”

대답이 없는 것에 실망한 것 같지만, 입술은 성급하게 여기저기에 떨어졌다.

흥분한 건 혜수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하고 탄탄한 상체, 보기 좋게 쪼개진 가슴과 아래로 이어진 복부의 근육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손끝으로 근육 틈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그릴 것처럼 훑었다.

서준은 그 간지러움을 참아 내며 하얗고 가느다란 목과 움푹 팬 쇄골을 빨아들였다. 놀라움과 민망함에 신음을 참아 내며 얼굴을 가리자 서준이 손목을 붙잡았다.

하얗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캄캄하게 낮춘 조명 아래서도 선명하게 그 차이가 보였다.

“하아.”

잠깐 멈추고 일어선 서준이 물어뜯는 바람에 엉망인 손끝에 입을 맞췄다.

쪽, 쪽, 쪽.

“상처투성이네.”

마른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처음 느끼는 감각에 전신이 움찔거렸다.

망가지기 전부터 손은 예민한 곳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가온 건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누워서 앓는 혜수의 반응을 살피다 약점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야릇하게 웃었다.

손목을 한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고정하고 다시 몸을 겹쳤다.

묵직한 체중에 헉, 하고 숨을 들이켜자마자 혀가 들어왔다. 거친 움직임에 따라 서툴게 뻐끔뻐끔 움직였지만, 그저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참기 힘들다는 심정이 점점 빨라지고, 과격해지는 키스로 나타났다.

반면 몸을 두드리는 커다란 손놀림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피부 아래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열기에 발밑이 꺼질 것처럼 아득해졌다.

“이런 거…… 그만, 그만해도 돼요.”

더한 짓을 벌이려던 서준이 황당한 말에 멈칫거렸다.

“별로예요?”

그럴 리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 그게 아니라…….”

“좋으면 밀어내지 마.”

“그냥, 그냥 빨리…….”

그 말을 끝으로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혜수는 제가 내뱉은 말에 후회를 담아 두고두고 곱씹었다.

차가운 계절처럼 긴 밤이었다.

계속되는 흥분에 자꾸만 울어서 혜수의 눈가가 붉게 부은 걸 안타깝게 여겼지만, 서준의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경련하는 작은 몸을 보던 그가 다시 손끝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세게 쥐면 부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가늘고 하얀, 소중한 손을 감히 탐해 봤다.

“아직 안 갔어, 한 번만 더.”

“네?”

***

서준은 정말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숙면의 감각이 신기한 것도 잠시, 옆자리는 온기 없이 비어 있었다. 식어 있는 시트만 문지르다가 벌떡 일어났다.

덜 떠진 눈으로 방과 욕실 어디를 뒤져 봐도 그 여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몰려오는 허탈감에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창밖에서 무엣진의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하아……. 젠장.”

후회 담긴 탄식을 팍팍 내쉬며 일어나 옷을 입고,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갔다. 어제 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키 큰 사이프러스와 가로수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올리브나무, 꽃이 잔뜩 핀 아름다운 정원.

분명 좋아했을 텐데, 나가면서 봤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염원했다.

나가는 길이 급했을까. 아니면 정말 하룻밤 보내고 끝내려고 한 걸까. 혹시 지난밤이 별로였던 건 아닐까. 고민이 깊어질수록 입술이 말랐다.

연락이라도 해 보려고 휴대폰을 찾는데 때마침 벨이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다.

“어.”

― 너 어디야?!

“호텔.”

― 통신 복구되는 대로 연락하라고 했잖아!

하찮은 잔소리가 귀찮아 일 얘기를 시작했다.

“전체적인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데 편의 시설이 좀 부족해. 뭘 사려고 해도 밤늦게는 이용하기 힘들어. 객실 준비도 완전히 된 게 아니라 오픈하려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 그런 건 직원한테 얘기하면 웬만한 건 해결해 줬을 텐데?

“얘기하기 민망할 수도 있잖아.”

― 뭐? 직원한테 부탁하기 민망한 게 뭔데.

커다란 분홍색 브래지어를 들고 인상을 쓰던 여자가 떠올라 무심코 웃어 버렸다.

― 드디어 미쳤니? 인성 검사라도 하든가 해야지 원. 아니, 내가 지금 호텔 상황을 말하라는 건 아니잖아! 뉴스에서는 범인들 검거 중이라고 하던데 현지 분위기는 어떤데?!

“호텔 안에만 있었으니 알 턱이 있나. 진정한 휴식이 목적이라고 방 안에 텔레비전도 두지 않는 콘셉트였잖아.”

― 잔소리하는 거 보아하니 몸은 멀쩡하군. 일단 알았으니까, 당장 짐 챙겨서 공항으로 가.

서준은 눈썹 끝을 매만지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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